
(제 36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2
(2)
이튿날 바다가에는 사람들로 한벌 덮였다. 조개를 캐고 맛도 캐고 갈게들을 마대에 주어담았다.
승호는 기찬이와 한조가 되여 마대를 끌고다니며 갈게는 물론 발마다 털이 부르르한 털게도 다 잡아넣었다. 마대가 차면 그걸 둘러메고 들어와 식당앞에 내다놓은 독만큼씩한 100리터짜리 빈 물통들에 쏟아넣었다.
벌써 그런 물통 몇개가 갈게독이 되여 독안에서 게들이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감탕에 버무러진 조개들도 마당가에 군데군데 무지를 이루고 솟았다.
용만이는 키가 전보대같은 《장대기》와 한짝이 되여 감탕판을 휘저으며 조개를 캤다. 그는 오늘 태평이와 갈라지게 되여 아침에 티각태각했다. 태평이는 농어잡이에 나갔던것이다.
용만이는 잡지도 못할걸 가지고 흰소리만 친다고 나무랐으나 태평은 듣지 않았다. 그는 낚시질을 아주 잘한다고 했다. 특히 가양도일대에 농어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나올 때 농어낚시도구도 가지고왔던것이다.
태평은 이른아침부터 가양도의 뒤쪽 유축진 곳으로 갔다. 바위들이 듬성듬성 솟아있는 감탕판으로 들어가 가지고온 삽으로 감탕을 한삽 벗겨냈다.
구멍이 진흙속으로 숭숭 뚫어져있었다. 서우라는 놈이 들어가 숨어있는 구멍이였다. 서우는 농어를 잡기 위한 낚시미끼다. 생김이 산골물에 사는 가재와 비슷했다.
태평은 마른 쑥대를 꺾어 구멍에 가만히 꽂아보았다. 쑥대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이것은 구멍안에 서우가 있다는 소리다. 그는 쑥대를 재빨리 뽑고 그 구멍속에 개털로 만든 붓대를 들이밀고 뱅뱅 돌리면서 그놈을 홀려냈다.
붓끝이 구멍밖으로 나올 때까지 홀리워서 따라나온 고놈의 대가리를 재빠른 솜씨로 잡았다. 서우는 매우 날래고 역은 놈이여서 구멍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재치있게 얼리고 묘리있게 구슬려서 구멍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서툴면 한놈도 못 잡는다.
그놈은 잡히면 약이 올라 집게발로 손가락을 깨물기도 했다. 태평은 근기있게 앉아서 서우를 여러놈 잡았다.
그는 보기엔 둔하게 생긴것 같아도 손이 어방없이 날래고 동작도 놀라우리만큼 빨랐다. 그래서 산줄공이 돼보겠다고 하는것을 김평반장이 막아치워 두고보자고 벼르고있지만 영웅심리는 변함이 없었다.
철탑도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모른다.
태평은 섬의 도래굽이에 나가 농어가 있을만 한 물곬에 낚시를 던졌다. 거기는 깊은 곳이여서 항시 물이 차있었다.
그는 녀성일반을 다 위해주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있었다. 명산포륙지조에서 두명의 처녀들이 입맛을 제껴 식사를 못하면서도 끝내 자리에 눕지 않고 전투장으로 만가동한다는 감동적인 소식을 듣고 그들한테 농어생선국을 끓여먹이게 하겠다고 나선것이였다.
저녁에 바다에 나갔던 사람들이 다 돌아왔다.
하루수확이 대단했다. 조개가 숙소 앞마당에 무둑무둑 쌓이고 갈게는 독마다 가득가득 차고도 남아 그것을 큰 가마에 넣어 닦아냈다.
빨갛게 익은 게를 퍼서 버치에 담아 뜨락에 놓고 작업반별로 빙―둘러앉아 게추렴을 했다. 바작바작한게 여간만 고소하지 않았다.
그때에야 아직 태평이가 돌아오지 않은데 정신이 미쳐 걱정들을 했다.
다들 너무 늦어진다고 생각할 때 태평이가 배를 척 내밀고 개선장군마냥 여봐란듯 걸어왔다. 그 넙적하니 큰 얼굴에 함박웃음이 활짝 피여 달덩이가 둥둥 떠오는것 같았다.
기쁨은 곧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가. 아닐세라 잔등에 번쩍하는 놈을 하나 둘러업었다.
《농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다들 닦은 게를 씹으며 그리로 우르르 달려갔다. 태평은 세네키로쯤 될 놈을 조개더미우에 철썩 내려놓았다. 농어로서는 새끼축밖에 못되지만 어쨌든 대단한 수확이였다.
모두들 태평이 수고했다고 치하해주었다. 게를 담은 버치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은 그들은 태평이 농어낚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저녁을 먹고는 들어붙어 조개를 깠다. 아침에 국을 끓일것이였다.
어느날 아침이였다. 그날도 태평이네들은 철강재들과 애자들, 볼트, 나트 등 부속들을 운반하느라 줄땀을 흘리고있었다.
명산포에서 떠난 발동선이 경쾌하게 달려 가양도의 바위기슭에 와닿았다. 거기서 자그마한 보따리를 든 방처옥이가 내렸다. 그는 가양도에 처음 건너와 호기심어린 눈길로 섬둘레를 바라보았다.
작업복을 산뜻이 다려입은 그의 몸매가 별로 더 호리호리하고 날렵해보였다.
그가 누렇게 깔린 모래불을 걸을 때였다. 저기 앞쪽 조금 높은 둔덕에 난데없는 남자들이 우르르 나섰다. 그들은 철강재를 나르면서 발동선에 누가 왔는가 하여 이리로 나왔던 모양이다.
태평이 언덕에서 처옥을 내려다보며 감탄하여 큰 입을 벌리고 웨쳤다.
《히야― 그 모습 눈부신데… 백사장에 아장아장 금자라걸음이구나!》
다들 웃었다. 처옥은 높은 곳에 서있는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잘들 있었어요―》
그 소리에 태평이네들은 처녀가 오는것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뜻으로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모래밭으로 우르르 달려내려왔다. 그 기세는 처옥이를 애기처럼 냉큼 안아올려갈듯 했다.
처녀는 당황한 눈길로 바라보며 《어마어마… 어쩌자고 그러니…》 하고 발을 굴렀다. 태평이네들은 모래불로 내려오며 능청스럽게 목소리를 합치였다.
《공주님 행차이시요!》
《아이참, 장난꾸러기들…》
처녀는 얼굴이 빨개서 반쯤 돌아서며 즐겁게 웃었다. 이 섬에 녀자라고는 처옥이가 처음으로 들어선것이였다. 태평이네들은 처녀를 귀중한 손님으로 모시고 섬우에 올라섰다.
무슨 일로 오는가, 누구를 만나자고 오는가, 특별히 누가 더 보고싶던가, 싱검둥이들은 별별 질문을 다하며 줄곧 처녀를 웃기였다.
처옥이가 작업장에 갔을 때 건설직장장도 반가와했다.
《기사장동지가 보내서 왔습니다.》
《오 그래, 무슨 일루?》
《이틀동안 빨래를 해주고 오랍니다.》
《거참 고맙구만. 홀아비들만 살다나니 빨래감이 밀렸소. 수고를 좀 해달라구.》
직장장은 전투원들에게 빨래감부터 내놔주라고 일렀다. 다들 숙소로 우르르 달려들어갔다.
처옥은 그것을 한아름 안고 숲속의 동굴샘가로 갔다. 샘터앞은 깨끗하게 정리되였고 빨래질하기 좋게 넙적한 돌들도 깔아놓았다.
처녀는 쪼그리고앉아 땀에 절은 옷가지들의 호주머니를 하나하나 뒤졌다. 혹시 무슨 꺼내지 못한 물건이라도 있는가 해서였다.
첫옷을 들고 손을 넣으니 난데없이 밤이 여라문알 나왔다. 아이, 밤이 다 있네, 여긴 참, 밤나무가 많다고 했지, 누군가가 잊어먹고 그냥 옷을 내놨구나.
밤을 한알 까먹었다. 달콤한것이 별맛이였다. 처옥은 그 밤을 꺼내 큼직한 물바가지에 넣었다. 옷을 물에 담그고 다음옷을 들어 손을 넣었다.
또 밤이 한웅큼 나왔다. 아니, 여기도 밤?… 세번째 옷에서도 또 밤이 그만큼 나왔다. 마지막옷에서까지 밤은 한줌씩 다 나와 물바가지에 그들먹이 찼다.
어쩌면… 아이참… 빨래하기에 수고한다고 나더러 까먹으라고 다들 우정 넣어줬구나, 락엽에 떨어진 알밤을 몇알씩 주어 배낭에 넣어뒀던걸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 꺼내 이 옷속에 넣어줬구나, 어쩌면… 어쩌면… 인정깊은 사람들이구나.
호젓한 숲속의 동굴샘앞에 앉아 그들의 후더운 정으로 가슴이 뜨거워진 처녀의 긴 속눈섭에 맑은것이 맺혀 반짝이였다. 그의 동그란 어깨와 함함한 머리우에 락엽이 하늘하늘 내려와앉았다.
(이 밤은 다 삶아서 오늘 밤 간식으로 까먹게 해주자.)
처녀는 밤을 한쪽 락엽우에 쏟아놓고 그 바가지로 맑은 물을 풍― 떴다.
빨래를 하면서 보니 아무리 봐도 승호의 옷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내놓지 않았구나, 속이 옹졸하다는건…
처옥은 승호를 욕하며 숙소로 달려갔다. 집안팎에는 누구도 얼씬하지 않았다. 침실에 들어가 승호의 배낭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중가운데쯤에 있었다.
승호가 전기전문학교의 졸업학년에 올라왔을 때 그의 배낭이 낡아서 자기의 새 배낭과 바꾸어주었던 처옥이여서 제꺽 알아보았다.
그가 배낭아구리를 헤치고 빨래감들을 되는대로 쓸어넣은것을 꺼낼 때 승호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숙소에 무엇을 가지러 왔던것 같았다. 처옥이가 돌아보며 눈을 할겼다.
《왜 빨래감을 내놓지 않았어요?》
승호는 잠간 어물어물했다. 얼마만에 단둘이 만나는것인가. 지난날의 감정은 어떻든간에 좌우간 오래간만에 만나니 어쩐지 반가움이 앞섰다. 사실 그동안 한번 만나자고 했으나 처녀가 곁을 주지 않아 어쩌지 못했었다.
《나한테는 빨래감마저 내놓기 싫은가요?》
《싫기야 뭐… 그렇게 다 내놓으면 힘들어서 어떻게 빨겠소.》
처옥은 하얀 이를 내놓으며 입술을 방긋 벌리였다.
《아이구머니나― 그 따끈한 사랑에 코허리가 다 새큼해지는군요.》
그는 옷을 들고 또 투정질을 했다.
《이 옷주머니엔 왜 밤이 한알도 없어요?》
《뭐? 밤?!》
승호는 갑자기 무슨 소린가 하여 두눈이 둥싯해졌다. 이어 깨도가 된듯 시무룩이 웃었다.
《밤이 있다는건 또 어떻게 알았소? 정말 고양이같이 냄새도 잘 맡누만.》
승호는 신발을 벗고들어와 배낭을 끄당기더니 맨밑에서 보자기에 싼것을 통채로 꺼내주었다. 한되박은 될것 같았다. 밤 한알이 애기주먹같이 큰 왕밤이였다.
《사실은 처옥이 주려고 주었댔는데 언제 먼저 알고 찾아먹는거요?》
《나를 주려고? 그런데 요게 다예요?》
《쳇, 무슨 밤이 그렇게 많겠어. 멀리 가지도 않고 이 주변 풀밭에 떨어진걸 몇알씩 주어다 모은건데.》
《좌우간 고마와요.》
승호는 자기의 빨래감들을 와락와락 걷어가지고 냉큼 일어서 나가는 처녀의 뒤모습을 우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