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1

(2)

 

퍽 시간이 지나서야 그는 기초파기전투장을 돌아보고 부기사장을 불러 필요한 지시를 준 다음 포구의 잔교로 나갔다.

된장, 간장, 소금과 부식물을 싣고 가양도로 건너가는 발동선우에 올라섰다.

가양도철탑은 바다가로 내뻗친 바위산의 중턱에 세운다. 여기 기초파기전투장에서도 암반이 나와 몽땅 수굴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속도는 명산포륙지조보다 얼마간 떨어진 상태였다. 륙지조에서는 절반쯤 내려가서부터 암반이 나왔지만 여기서는 거의 시작부터 암반과 맞섰다.

그러고보면 사실 여기서 일은 더 많이 한셈이였다. 그렇지만 정준하기사장은 모르는척 하고 메터수 실적만 따졌다.

이제는 마당처럼 넓은 기초구뎅이마다 절벽가에 선것처럼 까맣게 내려다보였다.

2호구뎅이밑에서 태평이 힝힝 메질로 정머리를 조겨댔다. 정준하는 그에게 태평이 같은 힘장사가 있으면서도 륙지조한테 경쟁에서 밀리는가고 물었다.

《우리가 지는 원인은 꼭 한가지가 없어서입니다. 그것만 풀어주면 제꺽 이깁니다.》

태평은 빙글빙글 웃으며 기사장을 올려다보았다.

《뭔데? 그거야 풀어줘야지. 한가지면 많지도 않구만.》

《처녑니다. 처녀들만 있으면 이깁니다.》

왕청같은 소리에 와하― 웃음집이 터졌다. 정준하도 웃었다.

《그럼 처녀가 없어서 진다? 저런 엉터리가 있나.》

《기사장동지, 곁에서 처녀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야 기운이 부쩍 솟지 이건 꾸어온 보리자루같은것들만 있으니 어디 기분이 납니까. 륙지조에서는 처녀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춤도 추면서 풍창풍창 사기를 돋구어준다는데 우린 직장장아바이가 꽥꽥 욕질만 합니다.》

곁에 서있던 직장장이 상고머리를 쓸어넘기며 허― 하고 허파가 빈 웃음을 터뜨렸다.

《야 이녀석아, 내가 언제 너들을 욕하더냐. 이건 기사장이 왔다구 없는것까지 꾸며서 고발하는구나.》

《야―참 직장장아바이, 이런 때는 우리들한테 자꾸 욕질만 했다고 그러십시오. 그래야 기사장동지가 우리들이 측은해서 처녀들을 여라문명쯤 보내줄게 아닙니까.》

또 하하 웃어댔다. 작업장은 늘 이렇게 흥성거리고 롱담과 익살로 이어져 힘든줄을 몰랐다.

사실 가양도에는 녀자가 한명도 없었다. 건설직장자체가 그렇게 녀자가 전혀 없는 곳이여서 어쩔수가 없었다.

전투원들의 손은 다 물집으로 터져 천오리를 감고있었다.

태평의 말은 롱담같지만 진담이 섞여있었다. 우선 여기서 위생지도원 한명을 임명하여 륙지조에 와서 자주 약을 타다쓰게 했다.

4개 작업장에서 일제히 폭약을 다져넣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윽고 도화선에 불을 다는 발파공들만 남고 다들 땅우로 올라왔다.

작업성원들은 안전계선까지 물러섰다.

정준하는 4개 작업조의 기초구뎅이를 내려다보며 도화선에 불을 다는 동작들을 지켜보았다. 직장장이 기사장더러 위험하다고 어서 피하라고 만류했다.

발파공들은 날래게 담배불로 도화선에 불을 달고는 땅우에서 기초바닥까지 늘여놓은 바줄을 잡고 다람이처럼 가볍게 달려올라왔다. 첫번째, 세번째, 네번째가 다 올라왔다. 두번째는?

거기서는 태평이 방금 올라오다가 잡았던 바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기초바닥에 쿵 떨어졌다.

《바줄이 끊어졌다!》

태평의 목갈린 소리가 기초밑에서 터져올라왔다.

조원들이 왁 달려가려는것을 직장장이 막았다.

정준하는 마침 옆에 있던 예비바줄을 쥐고 번개같이 달려가 태평에게 던져주었다. 우에서 바줄을 잡고 두발을 버티고 서있는 기사장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4개의 기초밑에서는 도화선이 칙―칙―칙― 타들어간다. 한초 또 한초… 위기일발의 순간에 태평은 땅우에 올라섰다. 그들이 냅다 달릴 때 등뒤에서 련속 폭음이 울려퍼졌다. 무수한 돌쪼각들이 우박쳐내렸다.

발파가 끝난 다음 태평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일어섰다.

《에― 10년 감수했다.》

정준하가 직장장에게 말했다.

《2번작업조에서는 발파공을 바꿔야겠소. 태평이같이 무거운 뚱보가 자꾸 매달리니까 바줄이 끊어지지. 바줄검사들을 다 해봐야겠소.》

《그래두 태평이가 발파실수률이 제일 높아서 시켰댔는데… 태평이 넌 철직이다!》

직장장이 한손을 홱 내리치며 선언하자 조원들이 하― 웃었다.

전투원들이 다시 기초작업장으로 내려가는것을 보고 정준하는 직장장에게 물었다.

《왜 우리 녀석은 보이지 않소? 저쪽에 떨어진 보조철탑들 기초파기에 동원시켰소?》

《아니요.》

《그럼?》

직장장은 버릇처럼 상고머리를 또 한번 올리쓸고나서 말하기가 거북한듯 몸이 좀 말째하더라고 했다.

《환자?》

놀라는 정준하의 막대기눈섭이 꿈틀했다.

이 섬에 건너와 첫 환자가 승호란 말인가.

그는 발길을 돌려 숙소로 걸어갔다.

승호는 벌써 이틀째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모든 일이 힘들고 괴롭기만 했다. 성수가 나지 않았다. 걸핏하면 짜증이 나 얼굴을 붉히군 했다.

날이 갈수록 섬생활이 재미없었다. 꼭 우리속에 갇히운것만 같았다. 일은 서툴고 잠을 못 자 피곤했다. 그래서인지 오금이 쑤시고 오슬오슬 오한이 나는것 같기도 했다.

더구나 재미없는것은 작업이후의 생활이였다. 전기가 없어 텔레비죤도 못 보는 형편이여서 방등불놀음이 고작이였다. 모든것이 시꺼먼 두더지생활같았다. 아, 개척자란 갖은 고난을 이겨야 하는 억센 존재다. 난 아직 이런 시련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솔곳이 잠들었을 때 정준하가 출입문을 열었다. 직장장이 들어오는가 했다. 번쩍 눈을 뜨니 아버지였다. 벌떡 일어났다.

정준하의 표정은 무서웠다. 쓸개빠진 자식, 구실 못하겠으면 바다물에라도 뛰여들어가라. 마음속 고함이 벽력같이 터졌으나 꾹 눌러참았다. 조용히 물었다.

《어디가 아프냐?》

《뭐… 감기 같애요.》

《부끄럽지도 않냐. 제일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감기가 조금 왔다고 이틀씩이나 자리펴고 누워있어? 밖에서 쾅쾅 남포터치는 소리가 안들려? 가양도공사장에서 〈영예스럽게〉도 네가 첫 환자다. 명산포륙지조엔 녀성들도 많고 나이든 아바이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 그 누구도 자리에 누운 사람이 없어. 감기가 와서 재채기를 하면서도 주저앉은 사람이 없단 말이다.》

《래일부턴 일어나겠어요.》

《넌 지금 감기가 온게 아니라 머리통에 병이 왔어. 전기공학공부를 한걸 후회한다면서? 먹을알이 없는 부문이라고 다른데로 들구뛰려다가 안되니 고민하고있지? 그런 쓸개빠진 고민을 언제면 털어버리겠어? 그걸 털어버리고 진짜 옳은 로동계급이 되는 길은 이 가양도공사장에서 단련되는 길이다. 그런 결심을 하겠으면 여기에 있고 아버지 얼굴에 흙칠이나 해주겠으면 집으로 가라. 두 길뿐이다.》

정준하는 더 긴말하지 않고 돌아서나왔다.

구실 못하는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괴로운것은 없다. 속상한 심정을 어디에 가 말하랴. 정신이 번쩍 들라고 귀통이라도 답새겨야 속이 후련할상싶다.

나이가 어리면 아직 철이 덜들었다고나 하련만 나이도 먹으리만큼은 먹었고 전문교육까지 받았다는 녀석이 오히려 자기만이 옳은듯이 투정질뿐이다.

머리에 쥐꼬리만큼 들어간 지식을 가지고 자기는 되게 지성인이나 된것처럼 행세하고싶어하며 로동자들을 깔보고 우쭐렁거리려 하는 거기에 벌써 너의 천박성이 있다는걸 언제야 알겠는가.

남들과 처지를 대비해보면서 자기만 못한 사람들이 무엇을 한다는둥 전기공학을 전공한것을 밑지는 장사를 한것처럼 속상해하며 딴길을 꿈꾸니 얼마나 어리석은 녀석인가.

언제까지나 얼리고 타이를수는 없다. 이제는 강한 육체적단련밖에 없다.

이 가양도공사장이 너와 같이 귀족화돼가는 청년들에게 더없이 좋은 단련장으로 되고 새 인간이 태여나는 청춘의 고향으로 되게 해야 한다.

직장장한테 말해서 승호를 기사장의 아들이라 하여 조금도 사정두지 말고 어렵고 힘든 곳마다 빠짐없이 들여세우라고 단단히 일러줘야겠다.

육체로동의 도가니속에서 강철이 되여나오면 네가 사람질을 하는것이요, 슬라크가 돼버리면 쓰레기통으로 나갈 길밖에 더는 없다.

아무리 제 자식이라 해도 자기가 설자리를 못 찾고 가정에도 짐이 되고 나라에도 짐이 되여 걱정거리, 우환거리로 식객노릇이나 할바엔 차라리 없는것만도 못하다.

정준하는 결심어린 얼굴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안되겠어. 강하게 단련시키지 않으면 진실한 사람으로 되지 못하겠구나.)

그는 전투지휘부에 들어가 건설직장장을 불렀다. 즉시 생활조직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바꿀것을 지시했다.

《여기는 말그대로 불꽃튀는 전투장이요. 그런것만큼 전투원들의 생활도 군대처럼 강한 규률속에서 진행해야 하오. 어려운 환경이라 하여 풀어놓아 먹고 자고 일하는것밖에 모르는것으로 하면 긴장성이 다 없어집니다. 그러면 오늘은 승호가 감기가 조금 왔다고 자리에 눕고 래일은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눕게 되오.

우리의 가양도송전선공사는 단지 고압선을 바다우로 넘기는것만이 아니요. 이 전투를 통해서 도송배전부의 모든 사람들을 억센 인간들로 키워주자는데 목적이 있소. 난 그래서 가양도조를 시범으로 만들자고 하오. 명산포조가 따라오도록 말이요.》

《허허, 우리를 시범단위로 만들겠다고요?》

《그렇소. 여기는 송전선건설직장이 통채로 건너와있어 행정지휘체계가 그대로 살아있소.》

명산포륙지조는 기업소의 각 과들에서 뽑아만든 집단이여서 단결력이 부족했다.

정준하는 이곳으로 나올 때 벌써 생활을 군대처럼 하려고 신호나팔 두개를 가지고와 각각 나누어줬지만 어느 조에서도 쓰지 않고있었다.

정준하는 건설직장장에게 아침기상으로부터 시작되는 생활일과표를 짜주었다.

저녁총화때 기사장은 래일 아침부터 모든 생활은 군대식으로 한다는것을 선포했다.

이날 밤 정준하는 직장장과 전투지휘부에서 잤다. 이곳에 건너와서는 이 방에서 자며 한주일간 전투지휘를 하고 또 명산포로 건너가군 했다.

날이 밝자 류량한 기상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새벽고요를 흔들며 바다가 멀리로 울려갔다.

정준하도 직장장과 함께 일어났다. 그는 숙소앞의 공지로 직장장을 데리고가 적당한 곳에 금을 그어주었다.

《여기다가 평행봉대를 둬개 조 세워주는게 어떻소? 이쪽엔 철봉대를 세우구요, 인민군대처럼…》

《좋수다. 나무도 많은데 그거야 못해놓겠소.》

직장장도 기꺼이 받아물었다.

《동굴샘물터와 위생실도 좀더 알뜰하고 규모있게 다듬읍시다. 깨끗한 환경속에서 살아야 깨끗한 정신이 나옵니다.》

《예, 곧 조직사업을 하겠수다.》

기상나팔에 맞추어 일어난 전투원들이 내복바람으로 우르르 달려나와 앞마당에 작업반별로 정렬했다. 인원점검을 한 책임기사가 직장장한테 보고했다. 이어 아침달리기를 했다.

쩌렁쩌렁한 구령소리에 맞추어 인민보건체조를 하고 률동체조도 했다. 다음은 분대별로 질서있게 달려가 동굴샘터에서 세면을 했다. 더러는 랭수마찰을 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엔 정신이 번쩍 든다고 다들 웃고떠들었다.

《난 제대된지 6년 됐는데 다시 그때 그 기분이야.》

《난 10년 됐는데도 그때 그 기분일세.》

《집단생활엔 이런 기백이 있어야 돼.》

정준하는 아들을 살펴보았다. 침울한 기색이였다.

긴장되고 동원된 자세, 강한 규률속에서만 공사를 원만히 해낼수 있고 그 과정에 총알처럼 땅땅 여문, 그렇게 단련된 사람들이 튀여나올게다. 승호, 너도 이속에서 총알처럼 여물어져야 한다. 다들 풀어만 놓으면 늘크레해져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인다 해도 총공격전을 성과적으로 치를수 없다.

며칠 안되여 규률생활은 인차 자리가 잡혔다. 집단의 힘은 강철처럼 굳세여갔다. 밤작업을 하고 늦게 들어와 누웠던 사람들도 다들 자각적으로 기상나팔에 복종했다. 하지만 명산포륙지조는 가양도조만큼 규률이 서지 못했다.

한주일후에 아버지가 명산포로 건너가자 승호는 막혔던 숨이 나가는것 같음을 느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명산포에서 정확히 일주일만인 월요일 아침엔 또 가양도로 건너와 공사와 생활을 틀어쥐고 지휘했다.

승호는 마지못해 대오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