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1

(1)

 

철탑기초파기작업은 여러날째 낮에 이어 밤에도 계속되였다.

기초구뎅이는 어방없이 컸다. 길이가 사방 6메터이고 깊이가 5메터나 된다. 이런 기초구뎅이를 4개씩 파야 했다. 철탑의 발통이 4개여서 그렇게 판다. 썩 뒤에 3개의 보조철탑들의 기초구뎅이도 동시에 팠다.

명산포의 벼랑산중턱에 세우는 67메터짜리철탑은 가양도의 돌출부에 세우는 철탑과 꼭같은 규격으로서 일반철탑과는 대비도 안되는 보통철탑이 아니였다.

명산포와 가양도에 세우는 철탑은 특수철탑으로서 발통 하나만도 몇톤씩이나 되는 웅장한 거물이였다. 보조철탑들은 키가 낮은 작은것들이였다.

명산포 륙지조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기초구뎅이들에 들어서서 삽질, 곡괭이질, 지레대질로 땅을 파헤쳤다. 4개 구뎅이에서 어느쪽이 먼저 깊이 5메터까지 파내려가는가를 경쟁했다.

최장근지배인은 며칠 나와있다가 도송배전부로 들어갔다. 기관책임자가 노상 현장에서만 살수는 없었다. 성에서 내려오는 지시들을 집행처리하고 성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조직하는 회의들에 참가해야 하기때문이다.

장유상당비서도 자주 기업소와 명산포에 드나들며 일을 보아주었다. 요즈음 장유상은 여러날째 명산포의 기초작업장에서 곡괭이질을 했다.

정준하는 전투를 벌려놓고보니 불합리한 구석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어느날 그는 명산포의 전투원들을 모여놓고 작업조를 다시 짰다.

《지금 인원수에 비해서 능률은 적게 오릅니다. 왜 그런가. 조직사업에 걸렸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구뎅이들에 비좁게 들어서서 자가살이 끓듯 오골오골하니까 오히려 실적이 적게 나옵니다.

그래서 적당한 인원들로 교대조를 뭇겠습니다. 먼저 구뎅이들을 맡겨주겠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구뎅이는 인원수가 제일 많은 청년돌격대, 세번째는 당원돌격대, 네번째는 직맹돌격대가 맡겠습니다.

돌격대들에서는 인원이 다 구뎅이에 들어가지 말고 3분의 1씩 갈라서 먼저 1조가 파고 2, 3조는 휴식하고 또 다음 교대하고… 이렇게 해서 작업이 끊어지지 않고 쉬임없이 이어지게 합시다. 경쟁입니다.》

다음은 장유상당비서가 일어나서 말했다.

《방금 기사장동무가 째인 작업조직을 했으니만큼 이제부터는 작업성과가 더 부쩍 오를것 같습니다. 제가 한가지 더 보탤건 매 돌격대에서 1조가 작업을 할 때 교대를 기다리는 2조, 3조는 전투하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추며 고무해줘야겠습니다. 1조가 2조와 교대하고 올라와서는 또 2조에서 노래를 불러줘야겠습니다. 이것도 경쟁입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다들 웃고떠들며 이구동성으로 호응했다. 직맹돌격대에서 푸념을 했다.

《그러니 우린 질게 뻔하구만. 아무래도 일하는거나 노래를 부르는데서도 저 청년돌격대를 이길 힘이 있나.》

그건 패배주의라고 여럿이 공박했다. 장유상이 허허 웃으며 뒤말을 이었다.

《옳습니다. 맞서보지도 않고 질것부터 먼저 생각하면 이길것도 못 이깁니다. 단합된 힘이 무섭다는걸 가슴에 새기면 누구한테서나 더 큰 힘이 나옵니다. 참새가 백마리면 산 범의 눈알도 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마음을 합치고 힘을 합치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이날부터 작업조들에서는 번개불이 일었다. 그에 맞추어 아름다운 노래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렸다.

경쟁은 승벽을 낳는 법이다. 어느 한 돌격대가 손풍금을 메고나오자 또 이쪽 돌격대에서는 어데 가 구해왔는지 장고, 북, 꽹과리, 기타, 지어는 나팔까지 얻어다가 불어댔다.

작업장은 들썩 끓어번지였다.

어깨들을 흥떡흥떡하며 삽질을 하고 메질을 했다. 이쪽 돌격대가 노래를 불러도 저쪽 일터에서도 같이 흥겨웠고 저쪽 돌격대에서 춤을 춰도 이쪽 일터에서도 흥이 났다.

작업장은 밤을 몰랐다. 두세시간씩 자고는 또 달려나와 파제꼈다.

방처옥은 청년돌격대원이였다. 여기에는 처옥이또래의 처녀들이 여럿이였다. 그중에서도 처옥은 누구보다도 노래를 잘 부르고 춤도 잘추었다.

언제 다 준비했댔는지 두손에 붉은 기발들을 들고나와 철탑신호수춤을 추는 처옥이네 조 다섯명처녀들의 기백있고 아름다운 춤가락은 깊은 감동을 자아내며 전투원들을 크게 고무했다.

날은 흘렀다.

웅장하게 넓고 큰 기초들은 점점 깊이 내려갔다. 5메터라면 아찔하도록 깊은것이다.

드디여 4개 작업장에서 암반들이 나타났다.

수굴작업이 진행되였다.

지금까지 맹렬한 속도로 파내려가던것이 뚝 멈추어섰다. 정대를 대고 메로 때려 암반에 구멍을 뚫었다. 폭약을 장진하여 폭발했다.

남포소리들이 연방 터져 벼랑산을 흔들었다.

정준하는 명산포와 가양도에 각각 지휘부를 두고 일주일씩 번갈아 오가며 전투지휘를 했다. 매일 진행한 일들을 도당과 성에다 보고했다.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바다가에는 해풍이 몹시 불었다. 이곳에서 잠풍한 날은 별로 없는것 같았다. 오후에는 더 세게 불었다. 어촌마을에서 끌어내온 조명용전기줄이 바람에 흔들려 자주 사고가 났다. 림시적관념을 가지고 해놓은 일이여서 모든것이 다 어설폈다.

그날 정준하는 전투지휘부전선이 끊어져 제가 뻰찌를 차고 지붕우에 올라가 그것을 고쳤다. 낮에는 숙소와 전투지휘부에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모두 작업장에 올라가있었다.

지붕우에서 내려다보니 저쪽에서 무엇을 가지러 가는지 한 녀성이 얼굴과 머리를 늄버치로 가리우고 바람에 밀려 넘어질듯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이쪽에서 또 쟁개비로 얼굴을 가리운 녀성이 마주가다가 서로 잘 보지 못해 땡가당! 맞부딪쳤다. 둘이 동시에 얼굴을 내밀고 호호 웃어댔다.

이렇듯 바다바람이 세찬 날은 모래와 콩자갈을 날리며 눈을 못 뜨게 하여 처녀들은 버치나 세면기로 얼굴을 가리우고 다녔다.

쟁개비가 방처옥이였다. 처옥은 빌려갔던 쟁개비를 식당에 가져다주고 인차 돌아서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왔다.

정준하는 처녀를 내려다보며 《처옥동무.》 하고 찾았다. 종종걸음쳐가던 처녀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들어 지붕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입가에 엷은 웃음을 머금고 반기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서 무얼합니까?》

《끊어진 선을 좀 잇느라고.》

《아이, 그걸 뭐 기사장동지가 직접합니까,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다 바쁘게 뛰지 않나. 저기 있는 사다리를 좀 이리로 옮겨다 놔달라구.》

처옥은 그쪽으로 뛰여가 사다리를 옮겨왔다. 기사장이 지붕에서 짚고내려오는데 움직이지 않도록 꼭 붙잡아주었다.

정준하는 땅에 내려서며 두손을 툭툭 털었다. 그는 처녀를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어데 가던 길인가, 바쁜가?》

《아닙니다.》

《그럼 지휘부에 잠간 들렸다 가라구.》

처녀는 기사장의 뒤를 따라 전투지휘부안으로 들어왔다.

정준하는 먼저 자기 자리에 가앉으며 책상앞에 서있는 처녀에게 앉으라고 했다. 처녀는 무슨 일로 이럴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오그리고 의자 한끝에 불안스레 앉았다.

그러고보니 정준하는 이 처녀를 단독으로 제앞에 불러다 앉히기는 처음이였다. 그것도 처옥이와 승호의 관계를 알기 전까지는 그저 공급과 통계부원이 인물맵시 곱고 똑똑한 처녀라는것외에 더 다른것은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후에 알았지만 그들 둘의 관계가 아주 좋았다면 약혼하기 전까지는 그저 모르는척 하려던 기사장이였다. 하지만 들어보니 결렬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며 그 내용을 자세히 료해한 그여서 여기에 말려들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정준하는 지금 처녀를 데리고 들어온것이였다.

《처옥이가 여기 나와있으니 집엔 어머니 혼자 계시겠구만. 아버지는 늘 나가 계실테지?》

《녜.》

《적적하겠는걸.》

《아마 어머닌 적적할 사이도 없을겁니다. 양복감이 늘 밀려있어서 어떤 땐 식사를 건느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양복을 잘하는 모양이구만.》

《우리 어머닌 내놓고 자랑할만 합니다. 남자고급양복에서는 전국적인 패권잡니다. 전국품평회에서 1등한적이 여러번 됩니다.》

《오, 그것 참 손꼽히는 고급재단사구만. 그런 어머니의 딸이니 처옥이도 양복을 잘하겠구만.》

《전 뭐 겨우 제 옷이나 해입는 정도입니다.》

처옥은 수집게 웃었다.

정준하는 이어 처옥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처옥이, 난 지금껏 처옥이와 우리 승호와의 관계를 모르고있었소. 최근에야 알았지. 무슨 내용으로 그렇게 좋던 사이가 벌어졌는지도 알았소. 자식교양을 잘못한 아버지로서 내 처옥이한테 용서를 빌고싶구만.》

순간 처옥이 덴겁하며 커진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 허둥거렸다.

《기사장동지, 이러지 마십시오. 제발…》

다음 발가우리하게 상기된 처옥의 고운 뺨을 타고 두줄기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처녀의 목소리는 갸날프게 떨리였다.

《기사장동지, 고맙습니다!》

《하나 묻자구. 승호가 전기공학을 전공한것을 후회한다던데 사실인가?》

처옥은 고개를 푹 숙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입속말로 한마디 얼버무렸다.

《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처옥이가 내놓고 말하지 않겠지.)

(기사장동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승호동무의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한건 거기서부터입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동무들이 좋은 기관, 먹을알있는 곳에 들어가 저밖에 없는듯이 풍청거리는것이 꼴사납던 나머지 이지러졌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승호동무가 그걸 바란다고 탓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마음속 대화를 나누는 방처옥은 절로 설음이 솟구쳐올라 다시금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녀는 놀라 얼른 손수건을 꺼내 긴 속눈섭을 꼭꼭 찍어냈다. 서러워하는 처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정준하의 가슴도 몹시 저려들었다.

(똑똑치 못한 녀석!)

그는 이런 말이 부지중 목너머에서 고패쳤다. 승호가 언제쯤이나 그런 소아병 비슷한 이지러진 병을 털고 나라를 위해 한몸바쳐 헌신하는 진실한 사람이 될가.

정준하는 침중한 어조로 타이르듯 처녀에게 말했다.

《그럴수록 처옥이가 자주 만나 승호에게 좋은 말을 해주라구.》

《제 말은 듣지도 않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전기공업부문을 떠나 다른 기관에 들어가겠다고 하는것을 제가 적극 지지해나섰다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겁니다.》

처옥이가 돌아간 다음에도 정준하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한동안 서성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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