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0

(2)

 

어느날이였다.

작업반장은 태평에게 긴급과업을 주었다.

《먹는 물이 얼마 남지 않았소. 이 섬에서 죽으나사나 먹는 물을 찾아야겠소. 용만이와 같이 떠나라구.》

대답은 하고 나왔지만 어깨는 무거웠다.

그들은 험한 산발과 수림을 헤치며 방향없이 헤맸다. 종일 쏘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허탕을 쳤다. 맥이 빠질대로 빠졌다. 저녁에 들어와 물통을 들여다보면 물은 점점 줄어들었다.

태평이와 용만이는 먹는 물을 찾기 위한 현지정찰을 꾸준히 나갔다.

그날도 종일 돌아가다가 너무 힘들어 자기네 천막이 멀지 않은 수림속에서 좀 쉬자고 했다. 둘다 다리를 절룩절룩 절었다.

《야― 이건 목이 말라 죽겠구나야.》

태평은 손수건으로 땀투성이 된 얼굴을 문지르며 락엽떨어진 수림속의 컴컴한 땅에 육중한 몸을 무너지듯 쿵― 주저앉혔다. 용만이도 곁에 앉으며 《이 섬엔 먹는 물이 없는것 같애.》 하고 어쩔수없이 탄식했다.

《먹는 물이 없으면 야단 아닌가. 앞으로 이 섬이 군소재지가 된다던데.》

《그러게나 말이야.》

태평은 자신이 없다는듯 큰 머리를 흔들었다.

《이거, 우리 직장에 샘물 잘 찾는 선수는 없나? 닭이 천이면 봉황이 하나는 있다던데 누가 봉황노릇을 할수 있겠나?》

용만이가 갑자기 언제 탄식을 했던가싶게 핀잔을 주었다.

《또 또 맥빠진 소릴 한다. 그 봉황은 바로 나란 말이야.》

《네까짓게 봉황. 미꾸라지도 못되는게… 어쨌든 큰일났군.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줄 우리 집 토끼동무가 알겠나. 에― 보고싶어 못견디겠다.》

《챠, 챠, 이거 정말… 장가 못간 사람 부럽게 그러겠어?》

《그러게 빨리 장가를 가라구… 참, 이 섬엔 산짐승도 많구만. 우리 며칠동안 바라다니면서 메돼지만 해도 여러놈 보지 않았어.》

《노루, 여우, 산토끼에다 사슴까지 봤지. 메돼지나 한놈 굽혀놓구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늘어진 소리를 하며 땀을 들이던 용만이의 동그란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는 별안간 말더듬이처럼 저, 저, 저 하고 손가락으로 태평의 물함지같은 엉치를 가리키더니 다급하게 고함을 지르며 벌떡 뛰여올랐다.

《뱀이다!》

태평이 기겁하여 후닥닥 일어났다.

그는 뱀이 제 엉치를 물었는가 하여 두손으로 야단스레 탁탁치며 쿵덩쿵덩 들뛰였다. 용만은 경황없는중에도 제자리뜀을 하며 엉치를 때리는 태평의 꼴이 너무도 우스워 허리를 꼬부리고 웃어댔다.

이윽해서 두사람은 눈이 휘둥그래서 태평이가 앉았던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태평은 자기가 뱀을 방석처럼 깔고앉아있었다는것을 알았다.

무슨 뱀인지 알수 없는 흙색갈의 긴 놈이 또아리를 뱅뱅 틀고 락엽을 들쓴채 깜빡 잠이 들었댔는지 태평이 다가온것을 보고서야 도사린 몸을 풀려고 했다.

그 순간 태평이 떡함지만 한 엉뎅이를 쾅 메때리고 주저앉는 바람에 납작 깔리워 죽고말았다.

그때 모지름을 쓰는 뱀의 몸뚱아리를 얼핏 보고 용만이가 소리쳤던것이다.

《뱀을 보지 못하고 앉았댔나?》

《못 봤지.》

《산 뱀을 깔고앉아있었으면 무슨 감각이 있었겠는데 그렇게도 모르겠던가.》

《글쎄 엉치밑에서 무엇이 뭉글뭉글하는건 느꼈네만 그게 차마 또아리뱀일줄이야 알았나.》

《감각이 무디기란…》

둘이서 어이가 없어 웃었다.

땅밑을 열심히 들여다보고있던 태평이 순간 《엉? 저게 뭐야?》 하고 오른쪽의 시꺼먼 덤불숲을 가리켰다. 그들은 그곳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머루, 다래덩굴로 뒤엉킨 컴컴한 잎새들 사이로 아가리를 항― 벌리고있는것 같은 그 무엇이 어렴풋한 자태를 드러냈다. 무슨 동굴이 아닐가?

그들은 죽은 뱀을 발길로 차버리고 후미진 곬으로 뛰여내려 동굴아구리로 다가갔다. 잡관목과 머루덩굴로 뒤엉켜 더 나갈수가 없었다.

꽁무니에 차고다니던 우멍낫으로 그것들을 마구 쳐갈기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그마한 동굴아구리로 다가간 그들은 만세를 불렀다. 천연동굴안에서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나오고있었던것이다.

그것이 오랜 세월 두텁게 깔린 락엽밑으로 슴새흘러 물길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오가잡탕덩굴숲속에 숨어있는 샘터를 알수가 있나. 물을 먹어보았다. 시원한 단물이였다.

《생명수다!》

그들은 두손을 높이 들고 탄성을 질렀다. 샘물동굴은 식당과 천막에서 가까운 곳이여서 그들은 더 사기가 났다.

태평은 머루덩굴을 한아름 거두어지고 개선장군마냥 걸었다. 용만은 벌써 앞서 뛰여가 샘물을 찾았다고 선통을 놓았다. 다들 기뻐 용만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태평이 지고온 머루덩굴을 본 친구들은 눈들이 떼꾼해졌다. 누군가가 그건 뭘하려는가고 물었다.

《새집의 천반을 머루덩굴줄기로 하자는거야. 기지리대 대용이네.》

《그것 참, 그럴듯한데… 역시 야전식이구만.》

《여, 여,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그러나. 천반이나 새나. 그건 짚신에 국화 그리기야. 그만두자구.》

《그래, 그래, 그만두자우. 머리칼 없는놈이 댕기치레한다더니. 그런 형식이 뭣때문에 필요한가.》

《이게 왜 형식이야. 천반까지 하면 보기도 좋고 겨울에 찬바람을 더 잘 막는단 말이야, 그저 하기들이 싫어서.…》

별별 소리들로 떠들썩했다.

탁수환이 천반을 해야 한다고 지지하여 더 말을 못했다. 구들놓는것도 그만두자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어 탁수환이 듣다못해 꽥 소리를 질렀다.

건달뱅이들은 물러가라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반대하던 축들은 입을 다물었다. 일상 말이 적다가도 성이 나면 무서웠다. 그들은 여기저기 무져있는 구들장들이 탁수환이가 끼니를 번지며 발까지 상하면서 애써 모은것이라는것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착실한 탁수환의 손에서 집은 우줄우줄 일어섰다.

 

×

 

기본전투집단을 받을수 있는 준비가 대체로 됐다는 보고가 명산포에서 들어왔다.

정준하는 종업원들을 큰 회의실에 모여놓고 이제부터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위해 다들 현지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래일 아침 8시에 출발하겠습니다, 경리과장동무.》

《예.》

《무엇인가 미진된게 없소?》

《다됐습니다.》

정준하는 세밀한 조직사업을 해놓고 일찌감치 퇴근했다. 래일부터 자기도 명산포에 나가 살아야 했다. 도당책임비서에게 공사를 시작한다는 보고도 했다.

정준하가 집에 오자 백순옥은 부엌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바쁘게 돌아갔다. 시집살이하는 경애까지 불러다가 무엇을 만드느라고 분주하게 들락날락했다.

정준하는 모르는척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뻔하지. 에미가 승호때문에 저러겠지.)

건설직장에서 승호가 선발대로 가양도에 나갔으니 백순옥의 속이 편안할리 없었다. 첫째 근심이 배곯는것이였다.

그래서 래일 아침엔 기본전투집단이 떠난다니 그편에 무엇을 한배낭 채워 승호한테 보내주려고 그러는것이였다.

승호가 이번에 철탑2회선개조작업에 나가 제 매부와 같이 일하며 단단히 교양을 받은것 같긴 하지만 이제 가양도송전선공사에서는 어떻게 하겠는지 두고봐야 할 일이다.

그의 행동여하에 따라 처옥의 마음이 돌아설수도 있고 안 돌아설수도 있을것이다. 처옥이는 참 똑똑하고 더할나위없는 처녀가 아닌가.

그런데도 승호는 언젠가 돌아서지 않는 처옥이를 욕하면서 만약 그가 정녕 가버리면 은동이를 잃은것과 같으니 두고봐라, 내 그대신 금동이같은 처녀를 맞아들일테다 하고 흰소릴 쳤다지.

주제에 속은 살아서 풀떡거리지만 그녀석한테 처옥이는 너무도 과남한 처녀다. 처옥이가 그대로 금덩이같은 처녀인줄도 모르고… 이러나저러나 이번 가양도전투에서 새 사람이 돼야 할텐데.…

정준하는 경애가 저녁식사를 하자고 찾아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위한 기본주력이 출동했다.

도송배전부에는 극히 필요한 인원들만 남고 다 동원되였다. 일부 가정부인들까지도 나갔다. 그런 녀성들은 식당근무성원들이였다.

정준하는 지배인 최장근, 당비서 장유상과 같이 화물차를 타고 명산포로 갔다. 수백명의 전투인원들을 태운 화물자동차들이 십리에 늘어섰다.

명산포구에는 갑자기 사람사태가 났다. 숱한 인총이 한벌 덮여 바글바글 끓었다.

차에서 내리자 륙지조사람들은 부기사장이 숙소를 배치해주었다.

가양도조인 건설직장사람들은 식량, 부식물 등 크고 많은 짐짝들을 끌배에 싣고 섬으로 건너갔다.

가양도바다기슭에 탁수환, 태평, 승호, 기찬이 등 선발대성원들이 다 나와 기본대오를 맞이했다.

용만이는 식당에서 점심준비를 하노라고 정신없이 돌아쳤다.

이 배편으로 최장근지배인과 장유상당비서도 같이 건너가 생활조건과 섬형편을 알아보았다. 그사이 탁수환이가 얼마나 많은 집들을 잘 지어놨는지 그것을 보고 지배인, 당비서가 흡족해했다. 륙지조에서는 이렇게까지 잘해놓지 못했다. 게다가 가양도에서는 먹는 물까지 찾아 물도 풍족하게 쓰고남았다.

정준하는 전투조의 기술핵심들인 시공참모들을 데리고 명산포구 벼랑산중턱에 철탑자리를 정했다. 정확히 설계대로 했다. 오후에는 가양도에 건너가 또 설계대로 철탑 앉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전투의 첫공정이 철탑을 세울 자리를 파는것이였다. 이것부터 이만저만 크고 힘든 공사가 아니였다. 특수철탑을 세워야 하는것만큼 그 기초구뎅이들이 너무도 굉장하니 크고 깊기때문이였다.

전투원들의 숙소배치가 끝나고 그들이 자리를 잡고 짐들을 풀어놨을 때는 오전 한겻이 다 지나갔다.

점심후 한대씩 피우고 이미 금을 그어준대로 철탑기초파기에 들어서려할 때였다.

아침만 해도 쟁반같은 해가 쟁글쟁글 웃던것이 어느사이 뿌연 장막속으로 숨어들어갔다. 때를 같이하여 바다일경에 구름결같은 안개장막이 서서히 덮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서운 재난을 몰아오는 전조라는것을 아직은 모르고있었다.

별안간 어데선가 악마의 휘파람소리같은 아츠러운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바다를 아는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다.

《바람꽃이다! 벼랑에서 피하라!》

순식간에 와지끈, 탕!… 하는 란동을 부리며 하늘중천에서 폭풍이 터져나왔다. 모래먼지와 돌이 윙윙 날리고 바다는 회색장막으로 가리워져 가양도가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밀물이 쓸어들며 태풍을 앞세운 물기둥이 무섭게 곤두섰다가 악소리를 지르면서 내리꽂히군 했다.

처녀들이 목에 둘렀던 꽃수건들이 붙잡을 사이도 없이 날아나 새처럼 사라지고 벌이줄이 끊어진 천막들이 윙윙 공중으로 떠올라 핑글핑글 돌다가 희뿌연 장막속으로 꼬리를 감추군 했다.

새로 지은 숙소건물들의 지붕에 씌웠던 새초이영이 모조리 날리고 식당창고지붕이 무너져 서까래들이 바다물로 콩튀듯 뛰여들었다.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 사람들은 바다의 무시무시한 행패질에 넋을 잃고 전률했다. 다들 천방지축 벼랑산 숲속으로 달려가 엎디였다.

게거품을 문 도깨비바람에 나무숲이 통채로 누웠다일어났다 하며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치광이춤을 추어댔다.

두시간이 지나도록 미친 지랄을 하고나서야 그 무슨 분풀이가 좀 됐는지 얼마간 숙어들기 시작했다. 뒤이어 비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녀자들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재난에 놀라 얼굴들이 해쓱하니 질리였다.

철탑기초파기는 중지되였다.

선발대가 미리 나와 준비를 해놨던것이 순식간에 날아났다. 정준하는 다들 달라붙어 피해복구부터 하게 했다.

부기사장이 조직사업을 하여 다시 새초를 베고 날라오고 지붕에 씌우고 하는 분주한 역사질이 반복되였다.

천막들이 어데론가 다 날아나 거기에 들었던 청년돌격대는 일조에 한지에 나앉았다. 어쩔수없이 새 숙소에 더 조여서 드는 수밖에 없었다.

파괴된 창고, 식당을 복구하느라 뛰여다녔다.

그래도 사람들은 락심하지 않고 셈평좋게 롱담을 했다.

《이제라도 바다신령님한테 제사를 해야 될가봐. 그걸 안했더니 룡왕님이 노해서 바람주머니를 터쳐놓은것 같애.》

《이를테면 터세를 하누만.》

정준하는 휴대용전화기로 가양도를 찾았다. 건설직장장이 역시 휴대용전화기로 말을 받았다.

《거기 피해정형은 어떻소?》

《말이 아닙니다. 오자마자 대접이 푸짐합니다. 천막들은 다 날아나고 새로 지은 집의 새초이영도 밴밴 날렸수다.》

《인명피해는 없소?》

없다고 했다.

대책을 빨리 세우라는 지시를 주었다.

설핀 잠을 하루밤 자고나니 또 종일 비가 쏟아졌다. 정준하는 쓴입을 다시며 비내리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기초파기는 하루하루 밀리였다.

그래도 가양도에서는 놀지 않았다. 섬을 돌아본 장유상당비서가 비옷을 입고 숲속에 들어가 흔하게 널린 분지나무들에서 열심히 분지송이들을 땄다.

장유상의 뒤를 따라 다들 우비를 갖추고 분지를 따러 나섰다. 이날 가양도에서는 숱한 분지를 따들이고 산나물들과 돌배, 오미자, 찔광이를 마대로 땄다.

여기는 말그대로 바다산골이였다. 알밤은 이미 락엽에 다 떨어져서 눈에 보이는대로 주어서 열심히들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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