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1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0
(1)
방금 송수화기를 놓은 정준하는 책상앞에 그대로 서있었다. 경애한테서 온 전화를 받은것이였다.
딸은 그저께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 왔노라고 했다. 오늘부터 건강한 몸으로 소년회관에 출근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정말 다행이다. 이름높은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았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남편이 훌륭한 산줄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에도 혼자 갔다온 딸이 생각할수록 기특했다. 경애가 산줄공남편을 받들어 위훈을 세우도록 고임돌이 되여주는 좋은 안해로서의 역할을 잘할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아버지는 가슴이 흐뭇했다.
그렇지만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되겠는데…
병이 다 나았다고 안심하고 무리하면 다시 몸이 나빠질수도 있다. 딸이 귀중하여 아버지된 마음은 그저 걸음걸음 마음놓이지 않는다.
한참후에야 다시 자리에 가앉아 가양도공사를 위한 인원선발명단을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침부터 이 일에 몰두하고있었다.
각 과들에 극히 제한된 인원들만 남겨두고 모든 사람들이 다 공사장으로 출동해야 했다.
행정부서들은 물론 당위원회와 후방부서들이 전투대오를 따라 명산포에 집결해야 한다.
전투보장을 위한 조직별 회의들이 열리고 당원돌격대, 청년동맹돌격대, 직맹돌격대들이 무어지게 된다. 전투조는 크게 두개 조로 나누었다.
명산포륙지조와 가양도조였다. 명산포륙지조에는 기업소의 각 과들과 직장들에서 뽑힌 여러 부서들의 인원들이 망라되고 여기 책임자는 부기사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가양도조에는 건설직장이 통채로 들어간다. 책임자는 그대로 건설직장장이다.
공사의 총책임자는 최장근지배인, 현장전투총지휘자는 정준하기사장이였다.
가양도송전선공사가 선포되자 도간석지건설사업소에서 발동선 한척과 평배, 해상굴착기배를 지원해주었다. 고마운 일이였다.
이튿날 정준하는 먼저 선발대를 떠나보냈다. 큰 화물자동차에 각종 목수도구들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짐들을 싣고 출발했다.
탁수환이 이미 명산포와 가양도에 가보고왔으니만큼 그가 정해주는대로 숙소를 지을 자리를 잡게 했다.
두 전투조는 뒤로 돌격대가 와서 림시로 살만 한 집들을 짓고 식당, 창고, 위생실을 꾸리고 먹을 물도 찾아야 했다.
선발대의 임무는 자못 컸다. 이를테면 준비건설을 먼저 하러 떠나는것이였다.
겨울이 코앞에 다가들고있는 때 숱한 사람들이 나와살며 일해야 할 생활거점을 소홀히 했다가는 전투에서 성과를 거둘수 없다.
두대의 자동차는 평탄한 길을 따라 먼지구름을 뽀얗게 피우며 질주했다.
서해안의 기름진 벌판들에서는 벌써 벼가을이 끝나고 논두렁들에서 농장원들이 벼단을 모아 종낟가리를 치고있었다.
철탑2회선개조작업은 이젠 남아있는 량이 많지는 않았다. 하여 산줄반만은 그냥 이 작업에 붙여두고 떼지 않았다. 대신 보조공들은 철탑이 지나가는 해당 지역 군송배전소들에서 동원되도록 조직사업을 했다.
승호와 탁수환이는 다들 가양도공사조로 들어오고 송강림은 군에서 나온 사람들과 작업조를 무어 2회선공사를 밀고나갔다.
철탑작업을 하고 들어와 변변히 휴식도 못하고 또 다음 고지전투를 위해 달려가는 전투원들이 많았지만 누구도 고달프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차들이 명산포구의 바다기슭에 닿자 다들 망망한 수평선을 내다보며 감탄했다.
그 감탄의 의미는 여러가지였다. 단지 바다가 넓고 물더미가 높아서만이 아니였다. 저런 사나운 날바다우로 과연 고압선을 건너띄울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가 더 짙게 깔려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바다가 얌전했다. 바람이 없이 마가을의 따스한 해볕에 노그라져 조으는듯 등어리를 지지며 흥떡흥떡 금닐고있었다.
가양도조는 또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 섬으로 가야 했다.
잔교앞에 식량, 간장, 된장, 소금, 부식물, 식기류, 모포류, 작업도구들… 좌우간 많은 짐들을 쌓아놓고 주위에 둘러앉아 담배를 피웠다.
탁수환이 배가 떠나기 전에 먼저 륙지조사람들에게 숙소와 식당 등 림시건물들을 앉힐 자리를 정해주었다. 특수철탑을 세울 전투장과 샘물터가 다 가까운 곳이여서 알맞춤하다고들 했다.
명산포륙지조사람들은 벼랑산 뒤기슭에 저들이 살아야 할 천막들을 치고 식당부터 짓기 위한 준비에 서둘렀다.
그들은 우람한 바위산밑에 옹달샘이 있는것을 보고 환성을 질렀다.
물이 콸콸 솟구쳐 흘러내렸다.
가양도조사람들은 그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럴수록 발앞에 놓여있는 자기들의 100리터짜리 물통들을 한심한 눈으로 시무룩이 보며 미지의 섬생활에 불안을 느끼였다.
《하, 저 사람들은 오자바람부터 일이 되누만. 아무래도 생활조건은 륙지조가 낫겠어.》
태평이 함지배를 슬슬 쓸며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참을성없이 거취가 달랑한 용만이가 밭은 다리를 각족각족 놀리며 륙지조사람들이 물맛을 보며 웃고떠드는 샘가로 달려갔다.
바위짬에서 맑은 샘이 꼴록꼴록 소리를 지르며 세차게 솟구쳐올랐다.
물량이 얼마나 많은지 밑으로 도랑져 흘렀다.
용만은 꼴록샘의 물맛을 보고와서 히뜩 자빠지는 시늉을 하며 꿀처럼 달다느니, 랭동맥주보다도 더 시원하다느니 하고 혀를 찼다.
그 말에 심술이 난 키가 전보대처럼 큰 친구가 용만이 살망스럽다고 시까슬렀다.
《그렇게 까불면서 보태겠어? 과장하는건 조상때부터 물려받은 유전인가봐. 차라리 물이 아니라 술이 나온다고 하지 뭐.》
《여, 여, 장대기동무. 그 긴 다리는 뒀다 뭣에 쓰겠어. 한번 가서 물맛을 보고 륙지조사람들을 축하해주라구. 왜 그렇게 속통머리가 좁아. 같이 련합전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용만이 짜증을 내는 바람에 장대기는 물론 승호와 태평이, 기찬이도 달려갔다. 장대기란 얼핏 듣기엔 그 친구의 이름같지만 실은 몸이 없이 키만 크다는 뜻으로 지은 별명이였다.
긴 장대라는 말을 순편한 발음으로 이름처럼 불러주었다.
륙지조사람들이 태평이에게 자기네 100리터짜리 물통들을 다 가져가라고 넘겨주었다. 태평은 호박을 잡았다고 히쭉했다. 넙적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고맙네. 이웃집이 갑자기 잘살게 되니 옆집 가난뱅이한테도 공짜가 생기누만. 다들 오라구. 물통 날라가자우.》
그들은 낑낑거리며 물통들을 잔교쪽으로 옮겨갔다.
얼마쯤 시간이 흘러 통통배가 고르로운 기관소리를 울리며 기다란 평배를 끌고 명산포구로 들어왔다. 가양도조사람들은 많은 짐들과 물통들을 배에 싣고 올랐다.
태평이네들은 다들 말없이 바다를 들여다보았다. 늠실늠실 흔들리는 산더미같은 물결은 흰천을 담그면 금시 물이라도 들듯 새파랗게 맑았다.
서해의 물이 대체로 흐린것이 특징이지만 이 해협의 물은 동해처럼 맑아 오히려 이상한 생각이 들게 했다.
통통통통… 배가 전진할수록 가양도가 점점 크게 안겨왔다. 물길 2 500메터, 바다가운데에 들어와 저기 륙지쪽인 명산포구와 이쪽 가양도쪽을 바라보니 별로 아득하고 묘연해보여 과연 중간철탑없이 고압선을 넘길수 있겠는가가 우려되였다.
반대로 이 날바다가운데에 중간철탑을 세울 섬을 인공적으로 만든다는것도 난감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섬을 단 몇시간내에 완성한다면 몰라라 여러날 해야 할텐데 물이 들어오고 나가며 돌을 부리우는 족족 휩쓸어버릴테니 그것을 무슨 수로 당한단 말인가.
배가 섬기슭의 바위턱에 닿았다. 가양도에 들어와 명산포륙지쪽을 바라보니 그쪽산들이 더 높아 올려다보였다.
가양도는 아름다운 섬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서 둘레가 60여리쯤 된다던지… 적지 않게 큰 섬이였다. 산세가 험하고 풀밭도 가없이 넓었다.
높은 산과 긴 언덕들에는 소나무, 이깔나무, 밤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하늘을 가리우고 머루, 다래, 밤, 돌배도 많고 오미자와 찔광이도 지천했다. 분지나무도 한벌 덮였다.
특히 여기엔 맨 다래천지였다. 다래알이 애기주먹만큼씩한 크고 향기로운 왕다래가 무진장하게 깔려있었다.
도라지, 두릅, 더덕, 고사리를 비롯한 산나물도 길길이 자랐다. 바다가에 나가면 조개가 깔리고 맛도 많지만 흔한것이 갈게였다.
태평이네들은 배에서 무거운 짐들을 섬기슭에 끌어올리고는 맞춤한 풀밭에 천막들을 쳤다.
역시 탁수환이가 이미 이곳에 와보고 정해놓은대로 펑퍼짐한 둔덕에 숙소자리를 잡았다. 다들 좋다고 했다. 앞에는 탁수환이 전에 왔을 때 날라다놓은 구들장들이 여러곳에 무져있었다.
다음날부터는 산에 들어가 나무를 찍어내다 식당을 짓고 돌격대원들이 살 집터를 닦았다.
명산포에서는 먼 어촌마을에서 전기를 끌어들여 천막가에 전등을 켰지만 가양도에서는 초불을 켜고 등잔불을 켰다.
천막마다 등잔불이 가물거리고 들리는것은 파도소리, 갈매기울음소리뿐 바람이 불면 울울창창한 나무숲이 쏴―쏴― 설레며 울부짖어 절해고도에 떨어졌다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쳤다.
여기서는 개짖는 소리, 닭울음소리도 들을수 없다.
곧 집짓기가 시작되였다. 가양도조의 선발대를 책임지고 나온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가까운 산에 들어가 맞춤한 목재들을 마련해왔다.
몇달 살고는 갈 집이지만 겨울을 나야 하므로 바자를 엮어 흙을 두툼히 발라 바람막이를 든든히 해야 했다.
이런 일에서 탁수환은 솜씨있는 목수였다. 젊은 사람들이 메여내온 돌들을 주추로 박고 번개같이 치목을 하여 버쩍버쩍 들어일쿠군 했다.
그는 일하는데 성수가 나서 나무를 깎거나 자르는 등 바심질하는 일손이 춤을 추는듯 했다.
섬에 특별히 많은것이 뱀이였다. 해마다 장마가 지면 산에서 쏟아지는 물과 사태에 밀리여 떠내려온 뱀들이 섬기슭에 닿으면 기쓰고 기여올라 그렇게 많았다. 한번은 밤에 잘 때 천막으로 뱀이 기여들어 소동이 일어난적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