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8

(2)

 

승호가 작식을 하는 날이 왔다. 내가 작식을 못할줄 알구. 매부가 우정 작식을 순번제로 정했다는것을 내가 다 안다. 솜씨를 보여야지.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많이도 오지 않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지만 삭정이나무는 다 젖었다.

쌀을 소랭이에 넣고 돌가마밥을 지으려 하나 젖은 나무는 연기만 실실 피워올렸다.

승호는 약이 올랐다.

안되는 놈은 닭알에도 뼈가 있다더니 굳이 내가 하는 작식날에 비가 올건 뭐야. 머리가 어찔하도록 후후 불었으나 연기만 쏟아져나왔다.

기침이 련속 터져나왔다.

승호는 속수무책으로 돌가마앞을 왔다갔다 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잔뜩 찌프러진 얼굴로 구름이 두텁게 깔린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승호가 부지중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허 이거, 승호의 얼굴이 저 하늘보다 더 시꺼먼걸… 당장 소나기가 쏟아지겠어, 허허.》

언제 왔는지 탁수환이 승호의 표정을 띠여보며 헌헌히 말했다.

그리고는 돌가마앞에 쭈그리고앉아 연기나는 나무가지들을 다 걷어냈다.

배낭을 열고 비닐에 싼것을 펼치니 일매지게 잘라 단을 만든 작은 불쏘시개묶음이 나졌다.

너부죽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떠올리고는 마른 가지에 불을 달았다.

혀끝을 날름거리는것 같은 불길이 일더니 제법 탁탁 나무튀는 소리까지 났다.

탁수환은 젖은 삭정이들의 껍질을 벗긴 후 될수록 속이 드러나도록 짜개 불쏘시개우에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끝으로 끓는듯 한 물방울들을 내뿜던 삭정이들은 언제 젖었던가싶이 불길을 솟구치며 용을 쓰기 시작했다.

난감해있던 승호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눈앞의 모든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승호의 모습은 철부지애들과 다를바 없었다.

얼마 안있어 구수한 밥냄새가 코안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이날 승호는 탁수환의 도움으로 밥과 국은 물론 생각지 않았던 산채까지 차려놓아 전에 없는 호평을 받았다.

어떤 축들은 힘든 일은 자기들이 다하겠으니 승호를 식당근무로 고정시키자고까지 하였다.

절로 어깨가 으쓱해있던 승호는 그 말을 듣자 그것만은 못한다고 숨넘어가는 소리로 아부재기를 쳤다.

그통에 또 한바탕 웃음판이 터져 분위기를 한결 즐겁게 했다.

한사람만이 시무룩한 웃음끝에 신중한 기색을 짓고 승호의 일거일동을 눈여겨보았다.

송강림은 생각끝에 무엇인가를 결심한듯 밥술을 천천히 뜨기 시작했다.

어느날 오후 자재가 한두가지 미처 도착하지 못하여 송강림은 주변산과 골짜기들에 많은 분지따기를 조직했다.

20여명이 두사람씩 한조가 되여 마대를 가지고 온산에 널려 까맣게 익은 탐스러운 분지송이들을 따넣었다. 이미 숱한 분지를 따서 자재를 싣고오는 자동차편에 실어 들여보냈다.

송강림은 승호와 같이 분지를 땄다.

그는 조용한 기회를 타서 처남한테 넌지시 앞발을 쳐보았다.

《오늘은 너한테 긴히 물어볼게 있다. 똑바로 대답하겠냐?》

승호는 어딘가 긴장한 낯빛이 되여 매부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자고 그렇게 다짐을 받으면서 그래요? 그럼 내가 먼저 물어보라요?》

《그래.》

《처옥이에 대한 소리겠지요. 나도 다 알아요. 방처옥이와의 관계를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누이, 매부까지 알고있다는걸.》

《앞으로 처옥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작정이야?》

《모르겠어요. 처옥이가 더는 자기를 찾지 말라고 선언했으니까요.》

《왜 그 정도가 되도록 처녀를 노엽혔나?》

《내가 노엽혔나요. 제가 앵돌아섰지.》

《잘못을 처녀한테 넘겨씌우구. 사내라는게 부끄럽지 않아.》

《난 잘못한게 별로 없어요.》

《정말?》

《예… 그럼 내 말을 들어보라요.》

승호는 숨길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툭 터놓고 이야기해야 속이 시원할것 같았다.

《난 방처옥이한테 량심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돼있어요. 처옥이는 내가 위급할 때 초면이지만 서슴없이 나서서 도와준 고마운 처녀예요. 난 그건 잊지 않아요. 그러나 내 마음을 리해하기는 커녕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걸 어떻게 해요.》

《그래, 그 마음이란게 뭐냐?》

《나도 아버지를 존경했어요. 그래서 아버지처럼 한생을 전기공학으로 살려는 결심도 했고…

그러나 학교에 다닐 때도 느꼈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어처구니 없는것이 있어 나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나는 전기공학을 공부한것을 후회했지요. 공학쟁이는 볼것이 없고 먹을알이 없구나, 이것이 내가 보고 느낀거예요.

나는 소학교, 중학교, 전문학교를 다 최우등 졸업했어요. 하지만 나보다 공부에서 뒤떨어졌던 사람들이 가까운 연줄들을 잡고 먹을알 있는 기관으로만 뻗더란 말입니다. 그리고는 저이상 없는듯이 으시대면서 우릴 비웃는단 말이예요.》

승호는 어깨를 떨며 반문하듯 어성을 높이였다.

《난 분한 마음이 내려가지 않아요. 나는 그들보다 못한게 하나도 없는데 왜 그들만 못하게 살아야 해요. 그래서 전공은 전기공학을 했지만 그것을 그만두려고 한거예요. 아버지처럼 전주대나 철탑을 한생 오르내리며 고지식해봤댔자 무슨 락이 있고 행복이 있겠어요.》

순간 강림의 고울사한 얼굴의 미세한 안면근육들이 살아나며 험상궂게 이지러진다.

으스러지게 틀어쥔 두주먹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몰라한다.

《그래서 수룡강종합식당에 들어가려 했니? 그래, 네가 말하는 힘있는 기관, 먹을알 있는 기관이란게 고작 그게 다냐? 흥, 넌 안돼. 너처럼 당이 맡겨준 초소를 자신의 치부를 위한 곳으로 여기는 매미들을 받아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어.》

《사람을 모욕하지 마세요, 난 배고픈건 참을수 있어도 자존심을 건드리는것만은 못 참아요.》

《닥쳐, 모욕은 네가 하고있다. 깨끗한 량심으로 저 철탑처럼 한본새로 조국을 받드는 아버지와 같은 로동계급을 모욕하지 말라. 뭐, 락, 행복. 지금도 너 나이의 병사들은 조국의 안녕과 부강을 위한 길에 자기들의 땀과 피까지도 서슴없이 바쳐가고있다. 그들은 그것을 고생으로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큰 락, 행복으로 자부하고있다. 그 병사들을 지금 바로 네가, 남을 위해 땀 한방울, 피 한방울 흘려보지 못한 네가 모욕하고있다.》

강림의 절통한 어조에 흠칫 놀라는 승호의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네가 조금만 덜어져도 투정질하는 그 행복이 결코 너의것이 아니다. 누릴수 있다고 해서 주인이 되는건 아니야.》

송강림은 신중한 어조로 뒤말을 이었다.

《승호, 우리 주위에 몇몇 있는 옳지 않은 일부 현상들을 보고 무슨 손해나 본것처럼 외곬으로 생각지 말아. 사람은 직위나 직업으로 그 이름이 빛나는게 아니라 강성대국건설을 위해 어느만큼 헌신하는가에 따라 한생이 빛날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수도 있다. 헛눈을 팔지 말아야 해.

네가 이번에 아버지를 도전해서 무슨 상업부문이요, 뭐요 하고 전기공학의 길에서 탈선을 시도해봤지만 제때에 타격을 받고 물러선것이 다행이다.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돼. 넌 처옥이한테도 량심이 없고 너를 품들여 공부시켜준 조국앞에도 량심이 없어. 새겨듣길 바란다.》

강림의 예리한 말마디들이 속을 헤집고 들어와 울컥, 울컥하는것들을 사정없이 쳐버리는듯싶었다.

전신의 기력이 졸지에 땅속에 잦아버린듯 승호는 한자리에 굳어진채 멍해있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하는 부탁이라고 여겨도 좋다. 더는 너때문에 걱정많은 아버지, 어머니의 속을 태우지 말아.》

그들은 서쪽하늘에 해가 퍽 기울었을 무렵에야 분지마대를 둘러메고 천막으로 내려왔다. 때를 같이 하여 자재를 실은 화물자동차가 도착했다.

철탑2회선개조작업은 이렇듯 힘차게 추진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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