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8

(1)

 

높은 철탑꼭대기에 올라가면 마치 인간세상이 시작되기 전인듯 한 그런 태고의 정적만이 흐른다.

모든 소음이 끝나버린 곳, 외진 산중의 바람소리만이 적막의 심연을 흔들다 지쳐서 그것마저 멎어버릴 땐 숨죽은 고요가 오히려 귀청을 메워버린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송강림의 작업동작은 실로 번개같았다.

철탑2회선개조작업은 이렇듯 속도있게 진행되고있었다.

여기서 기본역할을 하는것이 산줄작업반이였다.

왜냐하면 1회선고압선에서 흐르고있는 전기를 끄지 않고 2회선 늘이기작업을 하기때문이다. 매 작업조에 산줄공들이 배속되여 그의 지휘하에 작업이 진행된다.

철탑의 웃부분을 높여주고 좌우에 팔을 더 달아주는 작업은 1회선의 고압이 흐르는 속에서 해야 하므로 산줄공들이 아니고는 할수가 없다.

승호를 비롯한 여러명이 철탑에 오르긴 해도 이들은 다 산줄공을 도와주는 보조공들이다.

철탑을 하나씩 맡아나가며 2회선걸기작업을 하는 20여명의 인원들이 산속에서 천막을 치고 항일유격대식으로 살며 일한다. 천막 하나에 10명씩 들어가 잤다.

식당은 소대별로 만들었다. 철탑작업이 앞으로 나가면 소대식당이 상당히 멀어진다. 거리가 10리를 넘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밥먹으러 다니는 시간이 너무 많이 랑비되고 또 힘이 들어 작업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었다.

이런 때는 소대식당을 헐어서 앞으로 옮겨내가야 한다. 이것이 며칠씩 걸려 그때는 천막별로 돌가마밥을 해먹는수밖에 없었다.

작업에서는 송강림조가 단연 앞장에서 나갔다. 강림이와 승호를 비롯한 여러명이 철탑에 올라가고 탁수환이와 맹동무 등 많은 인원이 밑에서 보조했다. 나이는 탁수환이 제일 많고 다음은 맹동무였다.

탁수환은 가양도에 갔다가 상한 발이 제때에 나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하마트면 그것때문에 2회선걸기작업에 참가하지 못할번 했다.

그는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장차 가양도에 나가면 숙소와 식당은 물론 창고, 위생실까지 림시건물들을 어떻게 해야 로력과 자재를 적게 들이면서도 쓸모있게 지을것인가를 곰곰히 타산해보군 했다.

탁수환은 보조공을 하면서도 조에서 스스로 림시 작식을 맡군 했다. 식당이 옮겨올 때까지 며칠씩 한다.

승호는 이번 일을 통하여 철탑에 오르는 동작이 더 숙련되였고 고도에서 일하는 동작을 매부한테서 깐깐히 배웠다.

송강림은 작업에 들어가서는 아무리 처남이라도 건성건성하는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철탑작업은 높은 책임성을 요구했다. 볼트 하나도 규정대로 꼭꼭 조이고 팔의 위치도 각도를 정확히 잡기 위해 애썼다.

승호가 보다못해 그렇게 꼼꼼히 하다가는 속도가 너무 떠서 다른 조에 뒤지겠다고 불평하면 타일러주었다.

《한가지 일을 배워도 실속있게 해버릇하는 알찬 솜씨를 익혀야 한다. 우리의 매 철탑들에 자기의 깨끗한 량심을 바친다고 생각지 않으면 후날 조국앞에 죄를 짓는 인간으로 될수 있다는걸 명심하라구.…》

승호는 매부의 말이 옳기는 해도 심장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준비가 모자랐다.

그가 자기의 동작을 신입생들가운데서 맨 나중에야 완성하긴 했지만 이렇게 철탑에 오르기까지에는 실로 별별 수모를 다 당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강한 요구가 있었고 건설직장장의 엄한 채찍질이 있었다. 게다가 같이온 사람들이 다들 동작을 완성할 때 락오자가 된 자신을 저주하며 격렬하게 타오른 승벽심이 없었더라면 끝끝내 수치를 당할번 했다.

이것을 승호는 두고두고 다행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이곳으로 건설직장이 몽땅 떨쳐나설 때 새파랗게 젊은 자기가 철탑에도 못 올라가는 두꺼비신세가 돼서 땅우에서만 벌벌 기였다면 얼마나 민망스럽고 쓰디쓴 비웃음을 살번 했는가.

송강림은 처남이 철탑에 오르는 동작을 기어이 완성하고야만것을 몇번이나 칭찬했다. 남자는 그래야 한다고, 한번 결심한 일은 기어이 해내고야마는 강한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고무해주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처남을 데리고 일하면서 고도작업을 보다 깨끗하게 하는 숙련을 익혀주자고 생각했던것이다. 승호는 송강림의 요구에 군말없이 순종했다.

그렇지만 강림은 승호가 산속에서 조원들과 같이 살며 일하는 조건에서 마음과 뜻을 합쳐야 하겠지만 생활에서 튀는 일이 많아 자꾸 마음이 씌여졌다.

오늘도 종일 철탑에서 일하느라 육신은 물먹은 솜처럼 나른했다. 철탑에 올라간 사람만 힘든것이 아니였다. 보조공들은 또 그들대로 자재들을 메나르고 각종 시중을 다 드느라 눈코뜰사이 없이 돌아쳤다.

그리고도 나이가 많은 탁수환은 또 군말없이 저녁준비를 했다. 천막앞에 돌가마를 걸고 늄소랭이에 밥을 하는것이였다.

소대식당이 또 멀어져 그것을 저 앞쪽으로 이동해가려면 며칠 걸린다. 이런 때는 당분간 천막별로 밥을 지어먹는다.

탁수환은 고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좀 넉넉히 먹이지 못하는것을 자기 죄처럼 안타까와했다.

집에서 준비해가지고온 젓갈품이나 콩장, 풋고추절임 같은것을 아껴먹었다. 제일 먹고싶은것이 국이였다.

김치는 바랄수도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짬짬이 뜯어놨던 산나물로 국을 좀 끓이자고 하니 애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송강림이와 다른 조원들은 다음철탑으로 이동해나갈 준비를 위해 바쁘게 뛰여다니고 승호는 배고프고 맥살이 빠졌다고 잔디우에 벌렁 드러누워 꼼짝도 안했다.

탁수환이 보다못해 심부름을 시켰다.

《승호, 샘터에 가서 물 한통 길어오라구. 오늘은 국도 좀 끓여먹자.》

승호는 마지못해 일어나 흰 비닐밥통을 쥐며 눈살을 세웠다.

《왜 그렇게 동작이 굼떠요. 좀 빨리빨리 하자요. 젠장…》

《뭐라구? 어쩌다 심부름 한번 시키는데 역증을 쓰냐?》

《됐어요, 됐어요. 아바이같이 나이든이가 여길 뭘하러 나와요. 못 나오겠다고나 할것이지.》

《허, 이 녀석 봐라. 나이 좀 먹었다고 괄세가 여간 아니다. 하지만 아직 네 짐이 될 생각은 꼬물도 없다. 너한테 심부름을 시킨 내가 잘못이지.》

탁수환은 이곳에 나와 천막생활을 하면서 승호의 사람됨을 눈여겨보았었다.

(안되겠구나.)

한마디로 찍었다. 생활이 불편하다고 걸음걸음 투정질이였다. 그만한 각오도 못하고 나왔단 말인가.

너는 단련을 거쳐야 사람이 되겠다. 기사장이 저녀석때문에 마음고생이 많겠구나.

송강림도 이것을 잘 아는지라 생각이 많았다. 저녁을 먹은 다음 강림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래일부터는 작식을 순번제로 합시다. 지금까지 소대식당을 옮길 때마다 탁아바이가 혼자 맡아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래일은 내가 하고 모레는 맹동무, 그다음은 승호… 이런 순서로 소대식당을 옮길 때마다 다들 밥을 한번씩 해봅시다. 앞으로도 소대식당은 계속 옮겨나가야 할테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송강림이 밥을 지었다. 탁수환이 자기가 하던 일이니 그대로 하자고 했으나 강림은 말한대로 하자고 했다.

밥을 먹은 후 탁수환은 작업준비를 갖추더니 먼저 철탑에 올라갔다.

침착하게 동작했다. 송강림이 만류했으나 그는 벙글서 웃으며 말했다.

《조장, 작식도 순번제로 하는데 철탑도 순번제로 오르자구. 내 이래뵈두 철탑작업에서 펄펄 날던 사람이야. 오늘 승호는 밑에서 보조공을 하며 좀 쉬라구 하세.》

승호의 눈섭이 갈구리처럼 휘여들었다. 모닥불을 들쓴듯 얼굴이 붉어져 탁수환을 속으로 욕했다.

(나한테 본때를 보이자는건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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