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7

(2)

 

…그후

두주일쯤 지나서였다.

어느날 도송배전부에 전력공업성에 있는 한 일군이 내려왔다.

정준하는 시송배전소에 볼일이 있어 나가고 최장근이 손님을 맞이했다.

성일군은 최장근도 잘 아는 점잖은 사람이였다. 그는 지배인과 마주앉기 바쁘게 찾아온 용건부터 말했다.

《갑자기 정준하기사장을 료해해야 할 일이 제기돼서 왔습니다.》

《그래요?》

최장근은 놀라운 눈길로 손님을 주시했다.

《원래는 조형례국장동지가 오게 돼있었는데 함경북도에 출장중이여서 제가 왔습니다. 정준하기사장의 건강은 일없습니까?》

《예, 튼튼하지요.》

《행정실무능력이 높으면서도 손탁이 세고 기술에도 밝은 실력가를 성의 책임적인 위치로 소환해야 할 사업이 긴급히 제기되였습니다. 정준하기사장이 적임자라고들 해서 이렇게 걸음을 하게 됐습니다.》

최장근은 처음 듣는 말이여서 긴 허리를 펴고 자리를 고쳐앉았다.

그는 언덕이마를 한손으로 긁적긁적 긁고나서 성일군의 둥그런 머리를 건너다보았다. 다우쳐물었다.

《그래서 우리 기사장을 데려가겠단 말인가요?》

《허허, 뭐 그렇게 놀랄건 없습니다. 일을 하느라면 당의 조치에 따라 다른 혁명초소로 옮겨갈수도 있는게 아닙니까. 기사장을 한생 데리고사는 안해처럼 늘 옆에 끼고있을 작정입니까?》

《글쎄 그런건 아니지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합의가 되면 올라가 우에 제기하겠습니다.》

(정준하를 올려보낸다?)

성일군은 말이 없는 최장근에게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혹시 가양도공사때문에 그러는건 아닙니까?》

《그 생각도 아니할수 없지요. 가양도공사는 이젠 성과 내각의 계획에 물린것이여서 죽으나사나 해야 합니다. 그걸 하려면 정준하 같은 억센 일군이 있어야 할텐데…》

《글쎄 그렇긴 합니다만… 누구나 처음부터 큰 소가 된건 아니지 않습니까.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큰 소노릇을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엔 부기사장이 젊고 똑똑해보이던데요.》

《물론 부기사장이 똑똑하오. 책임성도 높구요. 아직 경험은 좀 어리지요.》

《경험이야 일을 해가느라면 쌓아지겠지요.》

《운영 부기사장이 가양도공사를 맡으면 성에서 더 적극적으로 도와줄수 있겠지요?》

《거야 물론이지요.》

최장근은 생각을 굴려보았다.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가? 정준하가 성으로 소환되면 중앙급일군으로 승급되니 좋아하지 않을수 없을게다. 나는 또 누구의 반대도 없이 마음에 드는 첫 설계안으로 송전선공사를 벌리면 일이 순조롭게 돼서 좋지 않을가. 조형례국장이 반기를 들겠지만 어디까지나 선택권은 시공자측에 있다, 운영 부기사장은 내가 하란대로 할테고.)

최장근은 부쩍 기분이 피여올라 우선우선한 표정을 띄웠다. 목소리도 시원스럽게 울리였다.

《하긴 발전할 사람은 발전도 해야지. 기사장을 떼우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 어찌겠소. 성에서 등용하겠다는걸 내가 반대하면 되겠소. 좌우간 본인이 응해나서면 난 두말없이 내주겠소. 그대신 가양도공사를 부기사장한테 책임지우면 성에서 발벗고 도와줘야 하우. 난 부기사장을 믿고 그 공사를 하는게 아니라 성을 믿고 한다는걸 다시 강조하오.》

《그건 념려 안해도 될겁니다.》

내가 이제 지배인을 하면 얼마나 더 할가. 이 공사가 나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큰 일로 될게다.

이것을 잘 마무리하는것이 내 인생총화로 될수도 있다.

하지만 정준하가 하늘높은줄 모르고 꿋꿋이 내버티고 제 고집만 세우니 정말 속상하다. 이제 와서 정준하는 나를 괴롭히고 나의 말년의 일을 망쳐줄수도 있는 방해군처럼 되여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성에서 정준하를 소환해갈 의향을 표시하는것은 어딘가 모르게 나의 걱정거리를 덜어줄 암시인듯싶었다.

그전에 정준하를 외국출장으로 데려가려 할 때는 진심으로 기사장을 놓아주고는 일할것 같지 않아 못 보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도가 넘어 나의 앞길을 괴롭히는 인간으로 나섰으니 어쩌는수없이 헤여지는게 피차 마음편한 일이 아닐가.

나는 그때 어느 기회인가 정준하에게 장차 지배인사업은 기사장이 해야 한다고까지 암시해주었지만 어찌겠는가. 인간은 각기 자기 목적이 따로 있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정준하한테 미안한것은 있지만 어쨌든 그도 승급되는 자리로 가는것이니 과히 섭섭치는 않을게다. 이런 식으로 자체위안을 했지만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이때 정준하가 지배인실로 들어왔다.

그는 성일군에게 인사를 했다.

다음은 지배인에게 시송배전소에 나갔던 일을 간단히 말했다.

성일군이 소환문제를 꺼냈다.

정준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저 덤덤한 얼굴로 그 일군을 보며 두툼한 입가에 애매한 미소를 띄웠다.

《성에서 준하동무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동무가 올라오면 맡은 국사업이 활기있게 잘되리라고들 기대하고있지요. 도송배전부에서 중요한 사업을 맡아 그만큼 오래 일했으면 이제는 성에 올라와 일할 때도 됐지요. 나이로 보나 사업능력과 경험으로 보나 짝질것이 없으니까요.

그래 본인의 의향을 알아보라는 과업을 받고 제가 왔습니다.》

《글쎄, 거 뭐 갑자기 제기되는 문제여서 얼떨떨해지누만요.》

《기회는 자주 차례지는게 아닐겁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올라가서 동무가 동의하더라고 보고해도 되겠는지…》

정준하는 최장근을 넌지시 바라보며 물었다.

《지배인동지생각은 어떻습니까?》

덤덤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최장근은 얼굴에 일부러스러운 웃음을 띠우며 기회를 놓치지 않는게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나야 기사장을 내놓고싶지 않지. 그렇지만 내 욕심만 부리면서 발전해야 할 사람들 앞길까지 막으면 내가 한을 살수도 있지 않소.》

(그래요? 지배인동지 입에서 오늘은 그런 말이 나옵니까. 내가 가는게 좋겠다는거군요. 섭섭합니다. 왜 전번에 외국출장이 제기됐을 때처럼 나를 보내면 심장을 떼주는것 같애서 못살겠다는 말을 못합니까.

아니,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겠지요. 그러니 내가 이제는 곁에 있는것이 말째다는겁니까.

기사장이 가면 가양도공사는 누가 하겠는가 하는 말조차 없군요.)

최장근은 정준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뒤말을 이었다.

《내 그전에 기사장을 외국에 보내자고 할 땐 막아섰댔소. 그후 혼자 후회를 많이 했소. 남의 발전을 막는것 같애서 속이 좋지 않더라구.》

《그럼 좋습니다. 가라면 가야지요. 제가 간다고 해도 가양도공사를 중단하진 않겠지요?》

《중단하다니, 그거야 죽으나사나 해놔야지.》

《제가 없어도 일없겠습니까?》

《글쎄, 기사장이 있으면 더 마음 든든하지. 그러나 어찌겠소. 큰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멍에를 메야지. 여기 일은 걱정마오. 가는 사람이 그런 걱정까지 하겠소.》

《제가 가면 설계는 어느 안을 택하겠습니까?》

《아, 글쎄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니까. 어떻게 하든 공사는 다 해놓을테니.》

(내가 소환되는걸 때맞춘 기회로 여기는것만 같구나.)

정준하는 낮으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 의향을 밝혔다.

《저에 대한 성일군들의 믿음과 기대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공식적인 소환이라니 가양도송전선공사를 끝내놓고 가겠다는걸 전달해주기 바랍니다.

이 공사를 끝내야 제가 마음편히 떠날수 있습니다. 일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훌 떠난다는게 어쩐지 속에 걸립니다.》

최장근지배인은 자기의 예상이 뒤집어지는것이 놀라와 얼굴에 민망한 표정을 짓고 마주보았다.

그는 김빠진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성일군은 더 권고하지 않았다.

이윽고 최장근은 퍽 나무라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사를 끝내고 가겠다? 그 자리가 뭐 당반에 얹어뒀다 아무때나 찾으러오면 내주는 보따린줄 아오?》

《빈 자리를 메우는게 그렇게 급한가요? 그럼 적임자를 빨리 고르지요 뭐.》

《결국 안 가겠다는 소리구만.… 좋도록 하오. 목을 매서 끄는것은 아니니까. 사람이 성의에는 성의로 대답하는게 례절이 아닐가. 하긴 뭐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니까 할수 없구만.》

얼마후 정준하는 기사장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도 최장근지배인에 대해 생각했다.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앞두고 사람이 달라지고있구나. 이 공사는 지배인으로서 자기의 마지막공사라고 했지. 그러니까 말년을 실수없이 장식하고싶어 하는거지.

그런 지배인이여서 공사를 성의 지원밑에서만 해야 한다고, 그래서 우에서 하라는대로만 하자고 하며 나의 수정설계도면에 대해 못마땅해하지 않는가. 내가 자기한테 점점 불편한 인간이라는거다.

내가 떠나면 수정설계안은 버림을 받을게다.

나는 자리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어느 초소에서 일하든 지휘일군답게 강성대국건설을 위해 한몸바쳐 일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럴수록 지배인을 더 잘 받들어주고 위해주자.

나를 멀리하려는것이 가슴아프긴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는가. 내가 스승도 몰라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됐는가.

그렇다고 지배인의 요구를 무턱대고 받아들일수는 없지 않는가. 이 심연같은 격차를 무엇으로 메울가.

그가 안타까움으로 모대기고있을 때 문득 또다른 마음속 아픔이 갈퀴로 긁는듯 했다. 얼굴에 병색이 도는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까 시송배전소에 갔다 들어오는 길에 역전광장에서 우연히 경애를 만났던 정준하였다. 큼직한 가방을 든 경애도 갑자기 아버지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듯 어지간히 당황해했다.

(아니? 아버지를 만나는데 왜 이리 놀랄가?)

《어델 가냐?》

《탁구… 경기 가요.》

왜 그런지 경애의 목소리가 떨리였다. 정준하는 대뜸 딸이 거짓말을 한다는것을 눈치챘다. 이상한데? 왜 그럴가? 전에 없던 일이 아닌가.

《탁구소조원들은 없이 너만 혼자 경기를 간다는거냐?》

따지듯 물었다.

순간 경애의 두눈에 물기가 자르르 흘렀다. 하지만 입은 곱게 웃었다. 목소리도 더 살틀하게 울렸다.

《아버지, 용서하세요.》

《무얼 용서하라는거냐?》

《전 지금 가까운 사람들이 다 모르게 병원에 가는 길이예요. 적십자병원으로 가요.》

《뭐라구?!》

정준하는 낯색이 바래지며 굳어졌다.

《어데가 아파서 갑자기 큰 병원엘 가는거냐?》

《갑자기가 아니예요. 다들 알면 안되겠기에 지금껏…》

경애는 병명을 알려주며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아버지, 마음 푹 놓으세요. 한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제가 병원에 갔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말아주세요. 어머니한테는 물론 더구나 우리 시집사람들한테는 절대로 하지 마세요. 사실은 아버지도 모르게 가려댔어요. 그런데 마주쳐서 그만 당황했던거예요.》

《꼭 평양까지 가야 한다더냐?》

《도병원에서도 수술을 받을수 있지만 남편과 시어머니가 알가봐 멀리 평양으로 가는거예요. 산줄공일을 하는 사람은 자그마한 근심도 없어야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버지, 제 걱정은 아예 말고 저와 한 약속만 꼭 지켜주세요.》

경애의 말을 들어볼수록 기특하여 그를 쓰다듬어주고싶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해하면서도 자기 병보다도 남편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더 깊이 헤아리고있지 않는가.

안해가 앓는다는것을 알면 강림이가 산줄작업에서 크게 지장을 받을가봐 그리도 마음쓴단 말이지. 경애야, 너는 정말 산줄공의 안해답구나. 내가 너를 강림이와 결혼시킬 때 산줄공의 똑똑한 안해가 못될가봐 걱정했더니 이제는 마음놓겠다.

내 너와 한 약속을 꼭 지키마. 어서 병을 털고 건강해서 돌아오너라. 아버지 사무실로 자주 전화해주렴.

경애는 몇번이나 자기 걱정은 말라며 밝게 웃었다. 그 밝게 웃는 모양이 아름다울수록 딸에 대한 걱정으로 정준하의 가슴은 못을 치는듯 아팠다.

이런 쓰라린 마음을 안고 지배인실로 들어왔던 기사장이였다. 딸로 하여 얼어든 가슴을 무엇으로 녹일가. 사위는 물론 집의 안해한테조차도 말할수 없으니 이런 괴로움이 어데 있는가.

그는 고민의 심연에서 헤여나려는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었다. 기분을 바꾸어보려 애쓰고있을 때 전화종이 울렸다. 송수화기를 들었다.

맏처남한테서 오는 전화였다. 처남은 다들 잘 있는가 문안하고나서 승호가 전기전문학교를 졸업했는가고 물었다.

《졸업한지가 언제라구요. 그건 왜 묻습니까?》

《승호가 어려서부터 공부를 뛰여나게 잘한다고 했지?》

《예. 늘 최우등을 했지요. 이번에 전기전문학교도 최우등졸업했구요.》

《음― 용쿠만. 자네 거 승호를 우리한테 보낼 생각 없나?》

《그건 왜 갑작스럽게 물어요?》

《승호같이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필요해서 그래.》

《그래요.… 글쎄, 형님이 생각해주는건 고마와요. 그렇지만 승호는 나라의 중요한 초소인 동력전선을 떠날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집을 대대로 전기집안이 되게 하자는겁니다. 나와 내 자식들은 전기공학과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합니다. 승호가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외삼촌이 있는 학교에 가고파 하더군요. 그때 두말도 못하게 막아버리고 그후 전기전문학교에 보냈지요.》

《허허허, 자넨 역시 고박한 사람일세. 자네 같은 사람이 내 매부라는게 자랑스럽네.》

두사람은 껄껄껄 웃었다.

맏처남과 한참 이야기를 하고나니 한결 기분전환이 되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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