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6

 

철탑들의 첫 구간부터 린접 도의 마지막구간까지 돌아보고 편향을 바로잡아준 정준하는 자기 승용차를 돌려보내고 곧 급행렬차에 올라앉았다.

전력공업성으로 가는 길이였다.

출장길에 올랐지만 마음은 현장으로만 향했다. 어느 구간에 들려보나 작업조들의 열의가 높고 철탑을 높여 팔을 달고 선을 늘이는 일을 속도있게 하면서도 깨끗하게들 했다. 정말 다들 눈에 들게 해나갔다.

역시 부기사장의 책임성이 높았다. 철탑들이 대체로 산줄기를 타고 흘러서 어느 작업조나 산속에서 이동천막을 치고 살았다.

송강림의 조가 제일 앞서나갔다. 승호는 매부와 같이 일하는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렇지만 작업강도가 높아 여간 힘들어하지 않았다.

정준하는 평양에 잠간 다녀올 생각을 하고 떠난 길이였다. 지금껏 여러해 붙들고 애써오는 전압주파수조절기의 완성을 위해서였다.

이미 그것을 달포전에 성기술국에 올려보냈었다. 기술국에서도 전에 몇번 보아주고 적극 지지해준것이였다.

이번에도 기술국에 가 좋은 의견을 받아가지고와 짬짬이 연구를 심화시킬 생각이였다.

이것은 전문연구사들처럼 통시간을 내서 탐구할수가 없는것이였다.

큰 공사들이 많은 도송배전부의 실정에 맞게 전투들을 지휘하는 여가의 밤시간이나 휴식일을 리용하여 연구를 계속 심화시켜야 했다.

이것을 가양도송전선공사의 시작과 함께 빨리 완성해야 이 섬에 더 많은 전기를 보내줄수 있다.

공사의 완성과 함께 전기를 풍족히 보내줄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아야 한다.

가양도뿐만아니라 서주강철공장에도 건설이 끝나면 많은 전기를 보내주어야 한다.

전압주파수조절기만 완성되면 우리 나라 전기공업에서 획기적전환을 가져올수 있다.

전력문제로 하여 심려가 많으신 우리 장군님의 로고를 덜어드릴수만 있다면 이 한몸이 전선이 되여 어느 고압선의 한토막을 이어준들 어떠리.

평양에 도착한 정준하는 성기술국에 들어가 진지한 토론을 했다.

합평회의 결론은 이 전압주파수조절기가 강전과 약전이 배합되여 구성됐으므로 이제는 약전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는것이였다.

강전체계에서는 별로 나무랄데가 없다. 본인자신이 강전에서는 내노라 하는 사람이니 리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막힐것이 없었다.

하지만 정준하도 약전에 들어가서는 소리칠수가 없었다. 하여 ㅊ약전연구소에 있는 문박사의 방조를 받기로 락착이 되였다.

그길로 준하는 연구소로 찾아갔다.

접수에 앉아있는 점잖아보이는 녀인이 문박사는 출근하지 않는다고 친절한 어조로 알려주었다.

《어데 출장갔습니까?》

《아니지요. 문선생은 나이도 80고령인데다가 몸이 몹시 불편해서 둬달전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서 저술사업을 하고계십니다.》

《예―》

어떻게 할가?… 집에라도 찾아가볼가?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다는 늙은이한테 내가 덧짐을 지워주는건 아닐가… 좌우간 이왕 평양에 왔던 길이니 한번 찾아가보자, 그냥 돌아설수야 없지 않는가.

정준하는 접수실녀인한테서 문박사의 집주소를 알아가지고 나왔다.

집은 통일거리에 있었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였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생선국밥 한그릇을 사먹고 나왔을 땐 비가 내리고있었다.

아침만 해도 해가 쟁글쟁글하던것이 어느사이 흐려져 비가 쏟아진다. 농장들에서는 좋아하겠구나, 요사이 날이 너무 가문다고들 하더니… 얼마쯤 내리던 비가 즘즛해졌다.

뺨을 가볍게 스치는 비발을 몸에 받으며 문수―토성행 궤도전차에 올랐다.

통일거리에 내린 그는 문박사의 집을 찾아들어갔다. 승강기를 타고 15층에 올라가 2호집을 찾으니 박사의 로부인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집안에 들어섰다.

별로 방안이 가뭇 괴괴했다. 부인한테 자기를 소개하고 찾아온 사유를 말했을 때 늙은이는 몹시 미안해하는 낯색을 지었다.

《멀리서 왔구만요. 참 안됐어요. 령감님은 집에 없다우. 한주일전에 룡산군 우승리 료양소로 갔지요.》

《몸이 몹시 편찮은가요?》

《이제야 로환이지요. 위도 좋지 않고 다리질환도 있어 걷기를 괴로워하지요. 작년에 그곳에 한달 가있다 와서 상당히 좋아졌댔어요. 거기 유명한 약수가 령감님몸에 맞는대요. 그래서 금년에 또 갔다우.》

거기 가서 오래 있을 작정으로 집필할 일감까지 가지고갔다고 했다. 좋으면 년말까지 있다가 새해에야 돌아오겠다고 했다 한다.

정준하는 인사하고 돌아서 나왔다. 비발은 굵어져 들붓듯 쏟아졌다. 그는 아래층 현관으로 내려와 비내리는 바깥을 침울한 얼굴로 내다보았다.

날씨도 구질거리고 만나야 될 사람도 못 만난 속상함으로 하여 우울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담배연기가 탄식처럼 비발들사이로 사라져갔다.

(어떻게 할가? 룡산군 우승리라…)

먼 고장이다.

길만 먼것이 아니라 룡산군은 대낮에도 범이 나온다는 산골중에서도 꼽히게 험한 중중심처가 아닌가.

얼마후에야 그는 우려만 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쳐 놀라 정신을 버쩍 차렸다. 이런 나약한 생각에만 시달리고있을 형편이 되는가.

룡산군이 먼 산골이라고는 하지만 내 나라, 내 땅에 있는 고장이 아닌가. 마음이 가까와지면 먼길도 가깝게 보이는 법이다. 가기 싫은 길은 문앞도 만리처럼 멀어보인다.

비발이 성글어지기 시작하자 손목시계를 보고난 정준하는 곧 대동강역으로 나갔다. 주저없이 덕천행기차에 올랐다.

비속을 뚫고 달린 차는 자기가 내릴 역까지 무탈하게 실어다주었다.

또 뻐스를 타고 밤깊도록 달려 룡산읍에 들어선 그는 려관에서 자고 아침에 길을 떠났다. 물어보니 우승리 약수골까지 가려면 50리를 걸어야 한댔다.

일이 되느라고 한 20리구간은 빈 말달구지를 얻어타고 가 한결 길을 덜었다.

정준하는 먼 산발들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걸었다. 평양에서 며칠 일을 보고 돌아가려던 길이 이런 산골길과 잇닿게 될줄을 상상이나 했던가.

어제 밤새도록 내리던 비는 새벽녘에 멎고 오늘은 구름 한점없이 말짱 개이였다.

몹시 무더웠다. 오가는 사람들이 찌는듯 한 무더위에 다들 땀을 흘렸다.

돌들이 다분히 박힌 산골길이 발바닥을 자극했다. 좌우에 산발들이 치받고솟아 우중충한 산그림자가 드리웠다.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벽계수의 단조로운 음향이 산촌의 적막을 부채질하는듯 했다.

산길은 구배도 많고 고개도 많았다. 나무가 울창한 굽인돌이를 돌아서니 산골치고는 꽤 큰 마을이 나졌다. 멀리 산밑에 크지 않은 학교도 있었다.

개울에서 두 아이가 고기잡이를 하고있었다. 웃동을 벗어던지고 큰 양어장밑에 있는 웅뎅이의 물을 퍼내고있었다. 언제부터 물을 퍼넘겼는지 바닥이 거의 드러나 고기들이 오골오골 끓었다.

정준하는 다리가 아파 쉬여갈 생각이 들었던차라 고기잡는 구경이나 좀 하자고 그들의 가까이 있는 바위에 가 걸터앉았다. 두 소년은 고기가 퍼그나 많은것을 보고 사기가 나서 바께쯔와 소랭이로 물을 빨리 펐다.

그때 마을쪽에서 키가 큰 한 로인이 나와 이쪽으로 다가왔다. 차림새가 퍽 단정해보이는 깨끗한 로인이였다. 그는 웅뎅이를 들여다보더니 《음― 거 고기가 많구나.》 하고는 다시 돌아서서 마을로 들어갔다.

그사이 아이들은 조그마한 반두그물로 바글바글 끓는 물고기들을 쭉쭉 건지여 물이 얼마간 차있는 빨간 비닐소랭이에 퍼담았다. 큰고기는 많지 않았다. 다 새끼고기들이였다.

마을에 들어갔던 로인이 다시 나타났다. 손에는 비닐구럭을 들고있었다. 그는 아이들 가까이로 다가와 타이르듯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얘들아, 이 물고기는 나한테 다오. 내가 가지는 대신 너희들한테는 이걸 주마. 이 물고기는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이우에 있는 양어장이 넘어나며 흘러내려온거란다. 이 고기를 다시 양어장에 넣어 한두해만 키우면 팔뚝같이 커질텐데 새끼고기를 다 잡아 씨를 말리우면 안되지 않겠냐.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우리 산골사람들에게도 사철 물고기를 먹이시려고 저렇게 큰 양어장을 만들어주시지 않았느냐. 자, 이걸 받아라.》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주는 까만 비닐구럭을 받아 풀밭에 펼쳐놓았다. 두몫으로 갈라싼 학용품이였다. 학습장들과 필갑, 지우개, 수지연필, 원주필, 수채화구 등 좌우간 듬뿍이들 마련했다.

두 소년은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며 할아버지한테 잘 쓰겠노라고 꾸벅꾸벅 절을 했다. 로인도 기뻐하며 고기소랭이를 들고 양어장에 올라가더니 물가에 쏟아넣었다.

소년들은 학용품들과 소랭이, 바께쯔를 들고 먼저 마을길로 뛰여들어갔다.

정준하는 그 로인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담배 한대를 권하며 말을 붙여보았다.

로인은 이곳 소학교에서 한생 교원을 하고 지금은 나이가 많아 집에 들어앉았노라고 했다. 머리에 서리가 내려 비록 교단은 내려섰어도 여전히 마음의 교단에 서있는 참 좋은 아바이구나!

정준하는 좋은 사람을 본 즐거운 마음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별로 더 걸음발이 가벼워진것 같았다. 얼마쯤 걸으니 학교와 잇닿은 긴 고개길이 시작되였다.

정준하는 터벅터벅 걸었다. 역시 고개길은 힘겨웠다. 무더위로 목이 말랐다. 앞서가는 사람들도 목이 마른지 샘터를 찾았다. 있을리가 없었다.

저 앞쪽에서 두 소년이 마주오고있었다. 한사람이 먼저 샘터를 물어보는것 같았다. 아이들은 이 고개가 아주 길다면서 샘터는 없다고 하는듯 했다. 이어 자기 책가방에서 비닐물병들을 꺼내주었다.

정준하가 그리로 다가갔을 땐 이미 물 두병이 다 없어졌다. 그걸 보고 아이들이 위로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뒤에서 우리 반동무들이 또 옵니다. 그들한테도 다 물병들이 있어요.》

《너희들도 목이 말라 물병들을 갖구 다니냐?》

《아니예요, 우린 학교에 샘물터가 있어 거기서 먹고 떠나면 목마른건 몰라요.》

《그러면 왜 다들 물병을 가지고다니냐?》

《우리 학교에서는 이 고개를 넘어다니는 학생들만은 다 물병을 가지고다니게 했어요. 인민군대아저씨들이랑 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누구나 목말라해서 우리들이 아무때나 물을 꺼내줄수 있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별치 않은 일같아도 그속에 큰것이 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고운 마음을 키우는것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

정준하가 소년들과 말을 나누고있을 때 소녀애들 셋이 오다가 멈추어섰다. 벌써 물을 찾는 손님이라는것을 알고 한 아이가 자기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주었다.

준하는 물을 달게 마시고는 아이들의 머리들을 쓰다듬어주었다.

《얘들아, 고맙다.》

《안녕히 가세요.》

어린 학생들은 일제히 소년단경례를 했다. 참 좋은 아이들, 참 좋은 학교구나.

앞에서는 훌륭한 로인을 보았고 뒤에서는 기특한 학생들을 보고… 내 나라는 어데 가나 이렇듯 한결같구나.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 사는 내 조국인가.

기관청사안에서 평양선 철탑2회선공사요, 가양도송전선공사요, 그 준비로 옥신각신하는 머리아픔속에서 부대끼다가 예견치 않게 이곳으로 온 그는 마치도 피곤에 노그라졌던 육체가 청수를 맞고 새 기운을 되찾은듯싶었다.

문득 이 청수가 승호의 병든 마음도 쭉 씻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아이적부터 곱고 착한 마음을 길러주고 근면하고 성실한 품성을 갖도록 키워주었더라면 왜 저렇게 되였으랴.

정준하는 승호가 그 접대원을 찾아다니며 동력부문에서 리탈하여 먹을알 있는 자리를 찾아가려 했다는것과 처옥이와의 관계도 이즈음에야 알게 되였다.

안해 백순옥이 네거리특산물식당 접대원 방정옥이를 통해 알았다고 했다.

원래는 정옥이와 경애가 잘 아는 사이였다. 정옥이가 소학교시절에 소년회관 탁구소조에 따라다녀 가깝게 알고있었다.

처옥이와 승호가 그런 사이란 말이지. 처옥이야 더할나위없이 똑똑한 처녀지. 그런 처녀한테 생명을 구원받고도 이제는 그 고마움을 잊었다고?

자기 목적을 위해 처녀한테 그런 비량심적인 행동을 꺼리낌없이 한단 말이지.

못된 송아지 엉뎅이에 뿔난다더니 승호의 엉뎅이에 언제 그런 몹쓸 뿔이 돋았는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돼간다지, 그래서 처옥이가 가슴아파한다지.

사회에 나와 아름답고 고상한것을 배우기에 앞서 건전치 못한것부터 먼저 배우며 자기 리기심이 하자는대로 그길로만 가려 하니 저게 무슨 사람질을 할텐가.

옳은 인간이 돼야 장차 나라를 받드는 쓸모있는 사람이 될게 아닌가.

그는 우승료양소가 가까와오자 아픈 마음을 애써 누르고 흔연한 낯색을 짓기에 애썼다.

문박사를 만난 정준하는 자기 소개를 하고 여기까지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박사는 키가 크면서도 침착한 늙은이였다. 80고령 같지 않게 아직 정정해보였다. 자기를 찾아 이렇듯 먼 산골료양소에까지 쫓아온 기사장의 정열이 불같다고 감심했다.

문박사는 자기가 얼마만큼 만족하게 도움을 줄수 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력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했다.

정준하는 고마와하며 가지고간 전압주파수조절기의 도면들과 기술자료들을 넘겨주고 이튿날 다시 그곳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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