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4
(2)
이튿날 아침 넓다란 회의실에 종업원모두가 모여앉았다. 정준하기사장이 연단에 나가 이제부터 2회선을 뽑기 위한 송전선전투를 먼저 벌린다는것을 선포했다.
별안간 장내가 웅성웅성했다. 가양도송전선공사준비로 끓던 앙양된 분위기가 졸지에 가라앉아 다들 맥풀린 상들로 끼리끼리 수군거렸다.
정준하의 기백있는 목소리가 다시 회의실을 흔들었다.
《2회선공사를 먼저 시작한다고 하여 가양도공사를 중지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두개의 큰 송전선공사를 다같이 밀고나가자고 합니다. 놀랄수 있습니다. 무슨 힘으로 한단 말인가. 우리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모두가 마음을 합치고 지혜를 합치면 못할것이 없는 거대한 힘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이 두개 공사를 다 할수 있는 방도를 찾기 위해 현상모집을 조직하겠습니다. 다들 좋은 안들을 제기해주기 바랍니다.》
기사장은 세분화된 항목을 짚어내려가며 현상모집요강을 발표했다.
오후에는 그것을 큰 종이에 써서 게시판에 공시했다. 그가 아무리 두개 공사를 다같이 내민다고 력설했어도 가양도공사준비는 끓다만 물처럼 미미하게 식어갔다.
설계실에서도 손맥을 놓고 주저앉았다. 다음해에 가서나 할지말지 한걸 지금부터 덤빌 필요가 있는가. 정준하가 그런것이 아니라고 설계수정을 무조건 빨리 끝내라고 다그어 다시 연필들을 잡긴 했지만 마지못해 움직이였다.
정준하는 진퇴량난에 빠졌다. 자나깨나 가양도공사에 온넋을 집중했던 그 불붙던 정열을 갑자기 2회선공사로 돌리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두개 송전선공사를 다같이 밀고나갈수 있는 고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될가. 2회선공사에서 어떤 실마리를 잡는게 옳지 않을가. 어느 모퉁이를 풀어야 전체를 풀수 있을가.
낮이나밤이나 생각했다. 무엇인가가 잡힐듯 하면서도 형체없이 사라져버리군 했다. 아무리 고심하고 또 고심해도 신통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신신고 발바닥긁기처럼 안타까왔다.
그러는 사이 현상모집을 통하여 좋은 방안들이 많이 제기되였다. 그중에는 실현가능성은 부족하지만 아주 기발하게 착상한것도 여러건 있었다. 앞으로 공사과정에 리용할것들도 많았다. 현상모집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근본적인 안은 제출되지 못했다. 더러 있기는 하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운것들이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날은 흘렀다.
벌써 성에서 송전선들과 각종 애자들을 비롯한 자재들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괴로운 마음을 안고 날을 보내는 사람은 정준하기사장만이 아니였다.
송강림도 낮이나밤이나 안고있는 문제가 풀리지 않아 모대겼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늘 신중한 표정이였다.
두눈은 깊은 사색에 잠겨 발앞에 놓여있는 큰 물건도 보지 못하고 다녔다. 남의 생활을 모르는 동무들은 강림이가 별나게 돼간다고 수군수군했다.
송강림은 지난달에 결혼식을 하고 경애를 자기 집에 데려갔다. 고층살림집 3층의 너렁청한 방들이 늘 비여있는것 같더니 경애가 들어온 다음부터는 꽃처럼 생활이 피여나 사람사는것 같다고 어머니가 무척 기뻐했다.
남편이 점점 시무룩해지고 말이 없어지는데다 무엇인가 무거운것을 안고 모지름을 쓰는것 같아 경애는 근심이 되여 자꾸 물었다. 왜 그러는가고, 무슨 일이 있는가고 했다. 너무 못 견디게 알자고 졸라대여 할수없이 강림은 안해한테 자기 속마음을 터놓고말았다.
《꼭 알아야만 되겠소?》
《녜― 그렇게 명랑하고 활기롭던 당신이 왜 날이 갈수록 멍청해지구 벙어리가 돼가요? 제가 무얼 잘못하는게 있으면 가르쳐주세요.》
《경애때문에 그러는게 아니요. 실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지 못해서 그러오.》
《아버지 일? 그게 뭔데요?》
《풀리지 않아 속상해하는 일이요.》
송강림은 2회선건설에 대해 말하여주었다. 아버지는 지금 이 전투와 함께 가양도공사를 동시에 다 할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와한다고 했다. 현상모집에 대해서도 말했다.
들어보니 경애로서도 난감한 일이였다. 어떻게 해야 금년안으로 두가지 전투를 벌려나갈수 있을가.
《아버지도 못 찾는 묘수를 당신이 꽤 찾을수 있을가요?》
《좌우간 몸부림쳐봐야지. 그러느라면 무엇인가 잡히는게 있겠지. 응당 못하겠거니 하구 팔짱끼고있으면 할일도 못하오. 우둔한 놈이 곰잡는다는 말도 있으니 내가 해보자는거야. 나는 원쑤놈들에게 아버지를 일찍 잃어서인지 가시아버지가 친아버지처럼 생각되오.》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마워요.》
경애는 남편의 어깨에 살그니 머리를 기댔다.
송강림은 밤에도 자지 않았다.
책상우에는 별나게 생긴 갖가지 형태의 철탑들을 그려본 종이장들이 가득 널렸다. 영어로 이런 내용의 글을 써놓기도 했다.
《룡을 낚을 날은 다가온다.》
산줄작업을 끝내고 내려올 때도 한참이나 철탑의 구조들을 뜯어보고 연구해보느라고 우두커니 서있군 했다. 반장이 소리쳐서야 제정신이 돌아온듯 서둘러 몸을 움직이군 했다.
그 깊은 사연을 모르는 김평이도 어느날엔가는 강림을 꾸짖었다.
《어떻게 된 일이요? 어제 밤도 또 못 잤구만, 눈에 피발이 선걸 보니… 참 야단났군.》
《아무 일도 없습니다. 걱정말라는데두요.》
《안되겠소. 동문 대전작업을 더 못하겠소. 오늘 대전공은 리성룡동무가 하시오.》
《하―참, 일없다는데… 제가 합시다.》
《안돼. 오늘 송동무는 철탑밑에서 보조공을 하시오.》
이런 일이 있은 때로부터 여러날이 흘렀다.
그날 밤, 세시반쯤 됐을 때였다.
별안간 송강림이 《룡을 낚았다!》 하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깊이 잠들었던 경애가 깜짝 놀라 깨여났다. (마침 시어머니는 친척집대사에 가고 없었다.)
《여보,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해요. 전에 없던 버릇이네.…》
경애가 혼자소리처럼 뇌이며 불을 켜자 송강림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너무도 흥분하여 안해를 와락 끌어안았다.
《경애, 잠꼬대가 아니요.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가졌소. 오늘 밤에야 룡을 잡았단 말이요, 룡을…》
《녜? 룡을?!… 어서 그 룡 잡은 얘길 들려주세요.》
잠시후 송강림은 안해한테 자기가 착상한 새로운 안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느라고 언제 날이 밝았는지도 몰랐다.
×
이날 저녁.
정준하가 집에 퇴근했을 때 강림이 먼저 와 부엌문턱에 걸터앉아 제 장모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장인이 들어오는것을 본 송강림은 훌쩍 뛰여일어났다.
《아버님을 좀 뵙자고 왔습니다.》
《그래? 어서 들어가자구.》
송강림은 안방으로 따라들어가 정준하가 앉기 바쁘게 2회선공사를 간단히 할수 있는 방도를 생각했노라고 했다.
《그래?!… 어떤거냐?》
정준하는 호기심이 동해 다그쳐 물었다. 송강림은 령리한 두눈을 반짝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15년전에 건설한 1회선철탑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철탑들에 2회선까지 동시에 같이 걸어주자는겁니다. 그러면 2회선 큰 공사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순간 정준하는 눈앞이 번쩍하는것 같은 환희를 느꼈다. 어쩌면!… 정말 착상이 기발하구나! 한 철탑에다 1회선, 2회선을 다같이 걸잔 말이지?
물론 아직 큰소리를 칠수는 없다, 과학적인 수치를 따져봐야 하기때문에. 어쨌든 정준하는 기뻐서 송강림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임자 어떻게 그런 묘한 생각을 했나?》
《아버지가 열이 올라 가양도공사준비를 하는걸 갑자기 2회선공사를 먼저 하라니 속상해하길래 생각을 좀 굴려봤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늘 철탑에 올라가는것이니 철탑과 관련된것에 더 생각을 깊이 해볼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낮 생각을 굴려본걸 경애한테 말했더니 그가 들어보고 손벽을 치며 지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돼서 아버지를 찾아왔지요.》
《허허, 좋다. 그런 묘안을 생각해낸다는게 보통 탐구심이 없인 안되는 일이다.》
정준하는 제꺽 전화로 기술과장을 찾았다. 래일부터 1회선철탑들에 대한 력학계산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 철탑들에 2회선을 동시에 또 걸수 있는가를 확정하라고 했다.
기술과장도 기뻐했다.
새로운 철탑공사를 하지 않고도 2회선을 걸수만 있다면 막대한 자재와 로력을 절약하여 국가에 엄청나게 큰 리익을 줄수 있는것이 아닌가.
《이건 되기만 하면 로력영웅감입니다!》
흥분하기 잘하는 기술과장은 이렇게 소리를 질러 기사장을 웃기였다.
정준하는 어깨바람이 나서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그가 이러기는 처음이였다.
《여보, 우리 사위가 왔는데 빨리 한상 잘 차려야지.》
《예― 조금만 참으시우.》
백순옥이도 사위가 고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철탑2회선개조가 합리적인 안이라고 하는것은 처음 1회선철탑들을 세울 때 앞으로 2회선을 또 걸리라는것을 예견하고 설계했기때문이다.
날은 흘렀다. 도송배전부의 안뜨락에 있는 기발형의 게시판에 《송강림동무를 열렬히 축하한다!》라는 대문짝같은 속보가 나붙었다. 그동안 기술과에서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그 1회선철탑들에 2회선을 같이 걸어줘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것을 력학계산으로 정확히 검출해냈던것이다.
그것은 이미 고압선을 물고있는 철탑의 맨 꼭대기를 조금 더 올려준 다음 좌우에 두팔을 붙여주고 이미 붙어있는 세 팔들사이에 또 한팔을 붙여주면 되는것이다. 즉 세선을 물고있던 철탑에 여섯선을 물게 한것이였다.
결국 이미 있는 철탑에 올라가 산형강으로 팔만 3개씩 더 붙여주면 된다. 큰 철탑공사를 예견했던 방대한 일이 덧손질만 해주면 되는 보강작업으로 바뀌였다.
곧 성에 보고되였다. 과학적인 력학계산수치들과 철탑도면을 받아본 그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조형례국장이 더 크게 기뻐하며 전화로 축하해주었다. 송강림이 누군가고 물었다. 정준하가 자기 사위라고 하자 되는 집엔 가지나무에 수박이 열린다고 하며 즐겁게 웃었다.
최장근지배인은 처음엔 송강림의 묘안에 의아한 표정을 띄웠다. 다시 전력공업성 기술국에 문의해보고 거기서도 아무 일없으니 어서 작업을 시작하라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고 적극적인 조직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언제 반기를 들었던가싶게 정준하의 두개 공사안을 내밀었다.
정준하기사장은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2회선개조를 이제부터 달라붙으면 금년중으로 할수 있다는것을 타산했다. 가양도공사준비도 드팀없이 밀고나갔다. 금년이 아직 반년가까이 남아있어 가능했던것이다.
어느날 기사장은 지배인과 같이 뽑은 인원선발명단을 가지고 당비서방에 가 장유상과 합의했다.
장유상도 이번 일이 잘되여 신심에 넘쳐있었다.
《마음놓고 두개 공사를 같이 내밉시다. 송강림동무가 참 기특합니다. 지배인동무도 신심있어 합디다. 그런데 여전히 가양도공사의 중간철탑철페문제를 놓고는 속을 앓고있더군요. 그는 기사장동무가 중간철탑을 없앰으로써 모험을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 못 놓고있습니다. 공사도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지 몰라 몹시 불안해합니다. 기사장동무가 지배인동무를 잘 리해하도록 도와줍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준하는 당비서의 책상우에 베개통같이 큰 백과사전이 펼쳐져있는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뭐 이런것까지 볼 시간이 있습니까?》
당비서는 히죽이 웃으며 심심해서 한페지씩 읽어본다고 했다.
(심심해서? 모를 소리다. 당비서가 여간 바쁘지 않은 사람인데.)
《내 그러지 않아도 기사장동무한테 하나 부탁할게 있습니다.》
《뭡니까?》
《이번에 기업소가 비다싶이 많은 사람들이 출동해서 철탑2회선개조를 위해 산속에 들어가 살게 되겠지요. 이제 한 두어달 있으면 분지가 익을겁니다. 여가시간에 분지열매를 좀 땄으면 해서요.》
《분지요?!… 그건 어느 산에나 많지요.》
정준하는 당비서가 갑자기 분지열매를 왜 요구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분지를 따자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건 해서 뭘하려구요?》
장유상은 너부죽한 얼굴에 사람좋은 웃음을 띄웠다.
《이건 제 혼자 생각인데요… 우리 로동자들이 송전선작업을 하느라고 늘 밖에서, 또 높은 곳에서 일하다나니 추운 겨울에 감기에 잘 걸리지요. 그래 천식과 기침을 막아줄 방법이 없을가 하다가 분지기름이 특효라는걸 알았지요. 금년에 가양도공사를 하느라면 또 추워서 고생들 할거요. 그래서 분지기름을 좀 짜놓자는겁니다. 내 그래 미리 공무반에 과업을 줘서 기름짜는 기계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역시 당비서동무는 늘 사람들부터 먼저 생각하고있구나.)
《그것 참 좋습니다. 분지를 많이 땁시다.》
정준하가 웃으면서 얼핏 살펴보니 펼쳐놓은 백과사전에 분지나무에 대한 설명이 사진과 함께 올라있었다.
장유상은 이 책을 결코 심심풀이로 보는것이 아니였다.
당비서는 생각난듯 기사장에게 탁수환의 발이 이제는 거의다 아물은것 같다고 했다.
《예, 다행입니다, 더 크게 번질가봐 걱정했었는데…》
《기사장동무가 탁수환은 강직하고 담찬 사람이라고 한 말이 옳다는걸 또 한번 느꼈습니다.》
그때 가양도에서 탁수환의 상한 발가락이 집에 들어와 며칠 있으면서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쏘고 저리고 퉁퉁 부어오르면서 심한 아픔으로 일어서기도 괴로와했다. 겨우 시병원에 찾아가니 당장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탁수환은 지팽이를 짚고 가까스로 다니면서도 매일 맡은 일을 군소리없이 제꼈다. 당비서, 지배인, 기사장이 며칠 쉬며 치료를 받으라고 해도 《예, 이제 일요일에 쉬면 됩니다.》 하는 대답뿐이였다.
정준하는 이번에 가양도에 갔던 탁수환의 일을 놓고 많은것을 생각했다. 늘 말이 적은 사람이지만 그가 얼마나 굳세고 투지있는 인간인가 하는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빈속으로 아픈 발을 끌면서도 쉬지 않고 그 무거운 구들장들을 져날랐다니… 물론 그의 주인다운 일본새에 대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다.
구들장을 모아놓지 않았다고 누군들 탓할 사람이 있었는가.
동시에 장유상당비서의 너그럽고 푸근한 인간성에 대해서도 감동하지 않을수 없었다. 누구나 역에 나와보고 약속했던 사람이 안 오면 뒤쫓아오겠지 하고 먼저 가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자기 사람들의 신상에 티끌만 한 일이라도 생길가봐 다심하게 마음쓰는 그 심정에 누군들 어머니다운 정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래서 종업원들모두가 이 당비서를 좋아하는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