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4

(1)

 

어느날 아침.

정준하가 지배인실에 가 최장근과 사업토론을 하고있을 때 조형례국장이 들어섰다.

여기 왔다 올라간지 오래지 않아 다시 나타난 국장을 보고 두사람은 어지간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예고없이 서둘러 다시 온것이 아무 모로 보나 상서로운 일같지 않아서였다.

벌써 국장의 무거운 얼굴표정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는것 같았다.

최장근지배인이 쏘파를 권했다.

조형례는 말없이 자리에 앉으며 지배인과 기사장을 일별했다.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요?》

지배인이 넌지시 물었다.

조형례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담배갑부터 내놓고 한대 피워물었다. 기분전환을 하려는것 같았다. 이윽해서야 기사장한테 눈길을 돌렸다.

《가양도공사준비를 다그치고있겠지?》

《그럼요. 설계수정안토론을 끝내고 이제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때 국장동지가 성에 올라가 우리 립장을 지지해서 설계수정을 하도록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보나마나 론의가 분분했겠지요?》

《두말할게 있소. 그래도 평양에 있는 설계실사람들이 침착하고 리해성이 높두만. 동무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구 존중하더라니까.》

조형례국장은 담배불을 재털이에 끄고나서 자기가 다시 급히 내려오지 않으면 안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동무네 도에 갑자기 새로운 과제가 떨어져서 이렇게 서둘러왔소.》

최장근과 정준하는 긴장한 눈길로 국장의 얼굴을 주시했다.

《원래는 전화로 알려줄가 하다가 가양도송전선공사준비로 열이 올라있는 동무들에게 무거운 덧짐을 지워주는것만큼 서로 토론해볼것이 있어 다시 내가 왔소. 새로운 고압선공사를 당장 시작해야 할 긴급과제가 떨어졌소!》

정준하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그럼 가양도공사는 어떻게 합니까? 중지한다는겁니까?》

《중지한다는 말은 없소. 고압선공사를 빨리 먼저 하라는 지시요.》

《그래요?… 그건 중지하라는 말과 같구만요.》

정준하는 피가 끓어오르는듯 했다. 어쩌면 일조직을 그렇게 할수가 있는가. 바위구멍에도 용수가 있다지만 이건 정말 빠질 구멍이 없이 일조직을 해놓지 않았는가.

가양도공사는 급한것이 아니란 말인가. 발등의 불을 끄는데만 급급한다면 조국의 만년대계의 공사는 질질 끌며 미루기만 해야 하는가.

정준하는 아무리 격하지 말자고 해도 도저히 자신을 다잡을수가 없었다.

최장근지배인이 물었다.

《원래 새로운 고압선공사는 래년에 예견돼있지 않았소?》

《그렇소. 그런걸 제기된 사정에 의해서 올해로 당겨온거요. 상동지가 내각에 가서 지시를 받아가지고 온 다음 우리도 동무네 일이 난처해서 여러모로 토론해봤소. 그렇지만 고압선공사가 더 급한 과제로 떨어진 이상 성에서도 철저히 집행해야 할 임무밖에 없소.》

이윽고 정준하는 자기의 속상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

흥분하지 말자, 가양도공사준비로 열이 올라 끓고있는 우리들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어주는듯싶어 신경이 올랐댔지만 그런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형례국장은 우리들의 열의를 잘 알고있어 몹시 힘든 걸음을 했고 새 과제를 주는것조차 미안해하지 않는가. 우리를 도와주려 애쓰는 조국장과 성일군들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러면 안되지. 이런 때일수록 내가 참모장답게 처신을 바로해야 한다.

정준하는 가라앉은 어성으로 국장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기된 과업이니 달라붙어 해야지요.》

《너무 쉽게 생각하는건 아니요?》

《쉽다니요? 그 일이 부엌에서 숟가락얻기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사장동무, 방대한 공사라는걸 잊지 마오. 철탑만 해도 동무네 도구간에 한 200여개 세워야 할거요.》

《그렇게 될겁니다. 이미 15년전에 한선 뽑지 않았습니까. 그 1회선이 있는데 이번에 2회선공사를 또 하라는거지요?》

《옳소, 2회선공사요.》

《자재는 있습니까? 철탑용자재들과 고압선자재들…》

《그건 제때에 집중수송으로 보내주겠소. 준비작업부터 시작하오. 수도에 보내는 전기공사라는걸 잊지 말고 빨리 하면서도 질적으로 해야 하오.》

《각오하고있습니다. 우리 송전선건설자들은 다들 주인답게 일합니다. 믿으십시오.》

조형례국장은 2회선공사에 들어가면 가양도송전선공사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물었다.

《내가 실은 이 문제를 론의해보자고 해서 우정 왔소.》

말없이 입을 다물고있던 최장근이 너무도 명백해진것을 묻는다는듯 오히려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론의하고말고가 있겠소. 2회선공사가 좀만 큰 공사요? 가양도공사가 뒤로 밀려난건 스스로 정해진 자리가 아니요. 이제는 가양도공사에 대해서는 더 론의하지 않는게 좋겠소. 래년 이때쯤 가서 고압선공사가 끝난 다음에 론의해도 늦지 않다고 보우.》

정준하는 지배인의 긴 얼굴을 마주보았다. 꾹꾹 모를 세워 힘주어 외우는 목소리와 무표정한 낯빛… 그 어디에 가양도공사의 운명이 갈림길에 놓인데 대해 속상해하는 모습이 있는가.

오히려 중간철탑문제로 말썽많던 공사가 저절로 중지당한것이 다행이라는듯 한 기색이 아닌가. 가양도공사에 대한 자기의 주장이 스스로 리행됐다는듯 한 안도감으로 속이 편안해하는것만 같았다.

정준하는 못 볼것을 본것 같아 저으기 기분이 거슬렸다.

최장근지배인의 말을 묵묵히 듣고난 조형례국장이 큰 입을 씰룩하더니 기사장도 그렇게 생각하는가고 했다.

《가양도공사준비는 중단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압선공사를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가양도공사준비를 계속 밀고나가야 합니다.》

지배인의 웅글은 목소리가 실내를 쩡 울렸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일단 고압선공사에 붙으면 모든 력량을 거기에 집중해야지 력량을 분산시키면 안된다는걸 모른단 말이요? 두개 공사안을 다 붙들고있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놓쳐.… 그렇겐 안되오.》

정준하는 지배인이 아무런대도 태연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는 국장에게 서슴없이 자기 생각을 내놓았다.

《저는 방금 지배인동지한테도 말했지만 어떻게 하나 2회선공사와 가양도공사를 다같이 내밀수 없겠는가 하는 생각뿐입니다.》

조형례국장의 두눈이 번쩍 빛났다. 그는 머리칼이 몇오리밖에 없는 둥근 대머리를 한번 쓸어넘겼다.

《역시 정준하동무답구만. 무엇을 하든 쪼물짝하게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통이 크게 작전할줄 알거던. 내 그 말을 듣고싶어서 우정 내려왔소. 무슨 방도가 있소?》

《대중의 힘과 지혜를 발동하자는겁니다. 당장 현상모집을 조직해서 두개 공사안을 다 추진할수 있는 좋은 안들을 내놓게 하겠습니다. 대중의 높은 열의가 발휘되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입니다.》

《좋은 안이요. 대중에 의거하면 안되는 일이 없소. 나는 지지하오.》

《전에도 현상모집을 조직해서 크게 덕을 봤댔습니다.》

《작전이 마음에 드오. 대중의 힘을 믿으면 랑패가 없소.》

《국장동무!》

돌연 최장근의 책잡는듯 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말은 분명 정신이 있는 소리요? 그러지 않아도 분별없이 큰 일감들을 한꺼번에 다 안고나가려 하는 정준하한테 그런 바람까지 불어넣으면 어쩐단 말이요, 하는듯 했다.

국장은 웃었다.

《기사장동무, 난 그 기개가 마음에 드오. 그토록 용감하게 맞받아나가는 정신만 가지면 안될 일이 없다고 보오.》

《신심을 주어 고맙습니다.》

얼마후 정준하는 기사장실로 갔다.

지배인실에는 조형례국장이 마주앉아 2회선공사와 관련한 실무적인 론의를 더 벌렸다.

최장근은 큰 공사를 앞에 놓고 조형례국장이 정준하에게 두개 공사안을 다 안고추도록 부추기는데 대해 심히 못마땅해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력량분산은 실패의 전제요. 이제라도 기사장에게 가양도공사는 래년에 가서 보자고 딱 찍어말해주. 더는 가양도소리가 나오지 않게 해주오. 그래야 마음을 합쳐 2회선공사에 력량을 집중할수 있소.》

조형례는 빙그레 웃었다.

《정준하동무를 믿소. 기사장한테 있는 특이한 성격을 아직도 모르겠소? 그는 용감한 정신을 가진 일군인 동시에 가장 분별이 높은 사람이요. 모든 균형을 바로 볼줄 안단 말이요. 왜 그리 기사장이 하는 일에 자꾸 겁이 나서 그러오?》

최장근은 빈입을 다시며 부지중 탄식했다.

《꼭 일을 칠것만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소. 우린 인젠 앞날이 얼마 없지 않소.》

《허―참… 젊었을 때의 그 펄펄하던 기개는 어디로 갔소?》

《이마에 늘어나는 주름살이 다 빨아들인것 같소. 국장동문 아직 기개가 시퍼런걸 보니 볼수록 부럽구려.》

《나이가 갈수록 보신하려는것을 생리적인 현상으로만 생각지 마오.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보오. 청춘의 기백으로 살며 일하려는 각오만 높으면 젊은 일군들을 더잘 받들어줄수 있소. 지금 지배인동문 높이 날려고 애쓰는 기사장의 날개를 자꾸 붙잡아내리고있소. 그러니 정준하동무도 얼마나 속상하겠소. 영용하게 나가려는 사람앞에서 거칫거리니 그런 안타까운 일이 어데 있겠소.》

최장근은 후― 긴숨을 내쉬며 두눈을 내리깔고 아무 대꾸도 안했다.

그러는 지배인을 바라보던 조형례가 다짐받듯 물었다.

《그래, 어떻소? 정말 지배인동무는 두개 공사안을 다 안고 추진해볼 용력이 없소?》

최장근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역정스럽게 내쏘았다.

《너무 다궂지 마우. 어디 숨이나 쉬겠소.》

그러는 그에게 조형례는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답을 짜증으로 굼때누만. 우린 젊어서부터 한길을 걸어오면서 고락을 같이하는 사이인것만큼 내 동지적으로 충고하겠소.

지배인동문 지난날 얼마나 많은 일을 했소. 하지만 어제날의 공로도 오늘의 위훈속에서만 빛나는것이요. 우리들이 나이 좀 들었다고 해서 앉아뭉개며 자리지킴이나 하려 하면 당앞에 죄를 짓게 되오. 우리 장군님앞에 죄를 짓게 된단 말이요. 우리들의 최대의 임무가 무엇이요. 장군님을 높이높이 받들어모시는것이 아니요. 이 일에서 로세대일군들이 앞장서야 그이의 앞에서 떳떳할것이 아니겠소. 이것이 바로 참된 인생의 길이 아니겠소.

무슨 일이나 조건을 먼저 타산하며 옴니암니 계산부터 앞세우면 난관을 뚫고나갈 각오를 가질수 없게 되오.

나이를 먹으면 육체적으로는 딸리지만 오늘의 시대적높이에서 옳고 그른것을 더잘 가려볼수 있지 않소. 젊은 일군들이 선군천리마를 타고 달리려는것을 왜 막아서려고만 하는가 하는거요. 왜 좀더 키질을 해주고 부추겨줄 생각을 못하는가 말이요. 늘쌍 자신이 젊은 마음으로 살려는 결심이 부족하기때문이요.

젊은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해야 몸도 마음도 젊어지오. 젊은이들속에 들어가 섞이기를 즐겨해야 하오. 일요일엔 젊은이들과 같이 장기도 두고 탁구도 치고 노래도 불러야 심신이 젊어지오. 한본새로 뜬뜬히 앉아 젊은이들을 무시하는 표정을 지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산바위돌처럼 만들게 되오. 머리도 몸도 마음도 다 굳어져버리면 그것이 화석이지 별게 화석이겠소. 화석화되지 말기요. 내 말을 아프게만 듣지 말고 깊이 생각해보길 바라오.》

어금이를 깨물고 앉아있던 최장근은 김빠진 소리로 응수했다.

《국장동무 말은 옳소, 하지만 말처럼 실천하기는 어렵소.》

지배인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조형례는 좋아하지도 않는 담배를 또 한대 꺼내 천천히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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