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3
재빛서류가방을 든 장유상은 서둘러 역으로 나갔다.
그가 차표를 사들고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나들문을 통과한 뒤였다.
《좀 늦었군.》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렬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을 때 동녘에서 뻗어내린 첫 해살이 차창을 붉게 물들이였다.
장유상은 해창군당으로 출장을 가는 길이였다. 그곳 군은 그닥 먼거리가 아니였다. 아침에 갔다가 낮동안 일을 보고 저녁차에는 돌아와야 했다.
그는 제기된 자기 종업원에 대한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서둘러 떠난것이였다. 그 종업원이 해창군태생이여서 친척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있었다.
시간이 흘러 해창역에서 내린 장유상은 출근시간전에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있어 걸음발을 다그쳤다. 그가 나들문쪽을 내다보니 뒤모습이 낯익은 사람이 걸어가고있었다. 탁수환이였다. 그도 이곳 해창군에 볼일이 있는 모양이다.
장유상은 역전마당에 나와 탁수환을 만났다.
《비서동지와 한차를 타고오면서도 몰랐군요.》
《그러게나 말이요. 탁동문 무슨 일로 오오?》
《가양도에 가보자고 합니다.》
그때에야 어제 저녁 정준하기사장이 탁수환이에 대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준비건설을 위한 조사란 말이지요. 좋은 일이요. 생소한 섬이여서 직접 가보고와야 사전준비를 예견성있게 갖출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가우?》
《예, 기사장동진 한명 더 데리고가라 하는걸 제가 일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데리고올걸 그랬구만. 갔다 언제 오겠소?》
《이제 명산포에 가서 가양도까지 건너가보고 다시 이 역으로 오겠습니다. 저녁 8시차를 타고 집에 가겠습니다.》
《나도 그 차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다시 만납시다. 명산포까지는 무얼 타고 가겠소?》
《여기 공급소앞에 가면 명산포에 있는 도간석지건설 해창군 분사업소에 드나드는 차가 많다고 합니다. 가양도에 전기공사와 관련해서 가는 도송배전부사람이라면 우선적으로 태워준답니다.》
그들은 저녁에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헤여졌다.
그길로 장유상은 분주히 돌아다니며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군당에 들려 확인하는 사업까지 끝내자 어느덧 저녁녘이 되였다.
스적스적 걸어 역앞마당에 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탁수환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못 왔는가. 이제 오겠지.…)
몇걸음 걸어가던 그는 다시 멈춰섰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닐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며 그곳에 전화를 걸어보는게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길을 돌렸다. 군체신소에 가 도간석지건설 해창군분사업소에 전화를 걸었다. 경비원이 전화를 받았다. 도송배전부에서 목수로 일한다는 사람이 와서 배를 타고 가양도로 건너갔다고 했다. 다음말이 장유상을 놀라게 했다.
《그 발동선이 가양도에 건너가 기관고장이 생겼습니다. 오늘 밤중으로 명산포에 건너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길로 장유상은 화물자동차를 얻어타고 명산포로 내달렸다.
도간석지건설 분사업소에 들린 장유상은 락심하여 다리맥이 풀렸다. 누구 만나볼 사람도 없었다. 방마다 쇠가 걸리였다. 있다는건 아까 전화를 받은 삽삽한 경비원뿐이였다. 지휘성원들은 다 현장에 나가있다고 했다.
장유상은 긴 숨을 내쉬며 경비실의자에 주저앉았다. 담배를 꺼내 경비원에게 권하고 자기도 피웠다. 경비원은 자세한 말을 들려주었다.
오늘은 바다물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여서 배가 일찍 못 떠났다고 했다.
《도배전부 목수가 하마트면 오늘 가양도에 건너가지 못할번 했습니다.》
《그건 왜요?》
《발동선이 사람 한명을 태우고 건너갈수야 없지 않습니까. 마침 일이 되느라고 우리 분사업소 부업조성원들이 며칠전에 뭍으로 건너왔다가 오늘 또 섬으로 갔지요. 그들이 배에 가득 타는 바람에 떠나게 됐지요. 그 목수동무도 부업조원들과 같이 올랐습니다.》
《섬에 부업지가 큰가요?》
《상당히 크지요. 그 숱한 땅을 왜 놀리겠습니까. 부업조는 전문 강냉이농사를 합니다. 여름한철 섬주위에 긴 가설막들을 짓고 숙식을 하지요. 그런데 글쎄 그들을 태우고 섬으로 건너간 발동선이 기관고장이 났다고 련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무슨 중요한 부속이 나갔다면서 그걸 교체하기 전에는 배가 움직이지 못한답니다.》
《그럼 부업조성원들도 오늘 밤 건너오지 못하겠군요.》
《그 사람들은 오지 않습니다. 농사지으러 가있는 사람들이여서 여러날 있다가야 한번씩 왔다갑니다. 오늘 돌아와야 할 사람은 도배전부 목수밖에 없습니다.》
《참 야단났구만.》
장유상은 중얼거리였다.
《그런데 그 부속을 빨리 발동선에 가져다줘야 할게 아닙니까.》
그가 속상해하자 경비원도 큰숨을 내쉬였다.
《그렇게 할수 있다면야 뭘 걱정할게 있겠나요. 그 부속이 지금 우리 분사업소 창고엔 없답니다. 그래서 아까 소장이 급해서 도에다 전화를 걸더군요. 거기 있다고 해서 도상사에 사람을 띄웠지요. 그게 이밤으로 웬걸 오겠나요. 래일 오전중에나 오면 잘 올겁니다.》
《발동선선장과 기관장은 어데서 식사를 합니까?》
《그 사람들은 걱정할게 없지요. 부업조 가설막식당에 가 먹고 배에서 자면 됩니다. 다 같은 분사업소 사람들이니까요. 너무 걱정마시우. 아마 선장이 도배전부 목수도 부업조식당에 데리구 갈거웨다.》
경비원은 장유상을 위로했다. 하지만 가슴이 무거워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에는 점심밥곽 하나를 넣은듯싶은 손바닥만 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있던 탁수환의 모습만이 살아올랐다. 잠은 배에서 같이 끼워잔다쳐도 무엇을 먹고있단 말인가. 지금 그가 바다를 내다보며 얼마나 속상해할가. 바다기슭에 퍼더앉아 어깨를 쳐뜨리고있겠지.
이날 밤 장유상은 경비원과 함께 뜬눈으로 새웠다. 저녁도 먹고싶지 않아 그대로 앉아 밤을 밝혔다. 경비원의 말과 같이 정말 기관부속은 다음날 오전 여라문시 돼서야 도착했다. 하지만 배는 인차 뜨지 못했다. 밀물시간이 되지 않아서였다.
오후 2시가 돼서야 물이 차올라 배가 떴다. 그 배에 장유상도 올랐다. 한손에는 빵과 단물병이 든 큼직한 비닐구럭을 들었다.
얼마후 해협을 건너간 배가 발동선곁에 닿자 기관부속을 받아든 선장이 기뻐했다. 한시간 있으면 고친다고 했다. 탁수환은 보이지 않았다, 수림속에 들어가 누워있는지.
장유상은 선장에게 도송배전부 목수가 어데 있는가고 물었다. 선장은 얼굴에 감동어린 표정을 지으며 산기슭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백메터쯤 올라가보라고 했다. 선장은 흥분하여 말했다.
《내 그 목수를 보면서 고개를 몇번이나 숙였습니다. 틀림없이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점심까지 세끼를 빈속으로 넘긴것 같은데도 우리 식당에 가자는 청을 거절했습니다. 손목을 잡아끄는데도 응하지 않더군요. 가지고온 빵으로 요기를 했다면서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더군요. 그렇게 하고도 가만 앉아있는게 아니라 어제 종일 그리고 오늘도 지금껏 쉼없이 돌을 져나르고있습니다. 내 그렇게 대가 굳고 용력이 센 사람은 처음봅니다.》
놀란 장유상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도… 돌을 날라요? 무슨 돌을?》
《망짝보다도 더 큰 구들장들이지요. 앞으로 이곳에 나와 돌격대숙소들을 짓고 거기에다 구들을 놓겠다는겁니다.》
장유상은 산기슭을 따라 급히 갔다. 울창한 나무숲이 하늘을 가리운 어느 한 곳에서 탁수환이 구들장들을 져나르고있는것이 보였다. 맥살이 빠져 그늘밑에 앉아있을줄 알았는데 저렇게 강직하고 억센 모습을 볼줄은 몰랐다.
저것이 바로 탁수환의 제 모습이구나. 기사장이 탁동무는 말없이 담찬 사람이라고 하더니 옳은 소리였구나. 그는 격정에 넘쳐 웨쳤다.
《탁수환동무!》
《아니?!》
탁수환은 우뚝 굳어져 이쪽을 바라보더니 돌을 내려놓고 마주 달려왔다.
《비서동지!》
그들은 굳게 손을 부여잡았다. 오래간만에 만나기라도 한듯 탁수환은 반가와 어쩔줄을 몰랐다.
《비서동지가 여기까지 건너올줄은 몰랐는데요. 난 어제 밤 발동선선실에 누워서 지금쯤은 비서동지가 집에 다 갔겠구나 했댔지요. 그런데 이렇게 찾아온걸 보니 저때문에 숱한 애를 태웠겠습니다.》
《내가 속상해했던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탁동문 지금껏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놀랍도록 많은 구들장을 모아놨구만요. 이렇게 하기가 어디 쉽소.》
《배가 돌아갈 때까지 그저 놀고있으면 뭘하겠습니까. 명산포에서도 그렇고 섬에 건너와서도 숙소자리를 잡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섬을 돌아보노라니 구들장감들이 많이 눈에 띄우더군요. 그래서 모아놓기 시작했더니 마음도 흐뭇해집디다.》
(탁수환동무는 어떤 어려운 곳에 가져다놔도 자기 길을 찾아 드팀없이 걸어가는 억센 사람이구나!)
장유상은 이번 기회에 탁수환을 새로 더잘 알게 되는것이 기뻤다.
그는 탁수환의 왼발 엄지발가락을 헝겊으로 싸맨것을 보며 가슴아파했다.
《발가락까지 상했는데도 그냥 돌짐을 진단 말이요?… 원참, 자― 여기 앉자구요. 얼마나 시장하겠소.》
그는 들고온 비닐구럭을 헤쳐놓고 빵과 단물을 꺼내놓았다. 많이 들라고 했다.
《탁동무, 선장이 노여워합디다. 남의 성의도 받을줄 알아야지… 그렇게 같이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하는데도 끝끝내 사양했다더군요.》
《허― 글쎄 너무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까짓 몇끼쯤 못 참아서 그들의 식당에 가 마주앉기가 미안도 하고 쑥스러웠습니다.》
《허허, 참 고정하기란…》
두사람은 시름을 잊고 즐겁게 웃었다.
붕― 출발을 예고하는 배고동소리가 길게 울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