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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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준하는 다시 자기 자리에 가앉으며 무심히 벽에 걸린 달력을 슬쩍 보았다. 아름답게 생긴 처녀와 총각이 서있는 그림이 오늘은 웬일인지 경애와 송강림이처럼 보여 저도 모르게 그 애들한테로 생각이 끌려갔다. 복잡하고 분주한 속에서도 그들의 관계에 대해 잊지 않고있는 기사장이였다.

그사이 여러달 그들의 관계를 지켜보는 과정에 서로의 리해와 감정들이 가까이 접근한것 같았다. 그래서 보름전 조용한 기회에 백순옥이한테 경애를 어데 시집보내겠는가고 물었다. 안해는 놀란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분명하긴 분명하군요. 그 바쁜 속에서도 딸의 장래에 대해 잊지 않고있는걸 보니.》

《허허. 그래서 당신한테 묻는게 아니요.》

《걱정말아요. 내 다 생각하고있으니까요.》

《좋구만. 그 생각을 나도 좀 알자는거요.》

《난 경애를 평양에 시집보내겠어요.》

《좋구만. 대상자는 잡았나?》

《아직은 못 잡았어요. 너도나도 달라니 어델 정해야 하겠는지 모르겠어요. 당신도 평양에 안면이 넓은데 좋은 대상을 좀 알아보라요.》

《꼭 평양에 보내야만 맛인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지 않아요. 우리 경애가 무엇이 모자라서 수도에 가 못살아요. 인물에서나 품성에서나 어디에 빠진데가 있어요?》

《하긴 그래… 여보, 내가 똑똑한 총각을 하나 붙잡아놨소. 꼼짝 못하게…》

《꼼짝 못하게요? 그게 그렇게 억지로 되는 일인가요?》

《왜 안돼. 우리도 오래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소.》

백순옥은 처녀시절이 불현듯 떠올라 허구프게 웃었다.

《하긴 당신은 그런데서만은 억지강다짐을 잘 쓰지요.》

총각시절에 정준하는 좀 갈개는 축이였다.

길가에서 우연히 얌전스럽고 맵시있게 생긴 처녀를 보고는 참을수 없어 뒤따라갔다. 도시설계사업소에 있다는걸 알고 여러날 따랐으나 도무지 곁을 주지 않아 어쩔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그 처녀의 산드러진 모습이 꽃처럼 아릿답게 떠올라 견딜수가 없었다. 꺾자! 드디여 결심을 내린 준하는 어느날 저녁 설계사업소 정문에서 나오는 처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때에야 처녀는 총각을 처음으로 마주보았다.

《난 동무한테 항의하러 왔소. 알겠소? 항의하러 왔단 말이요.》

준하는 일부러 눈을 지릅뜨고 쏘아보았다.

《녜? 무슨?!》

갑자기 찌르는 바람에 처녀는 순간 당황했다. 그의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이 질리기까지 했다.

《난 동무때문에 매일 밤 잠을 못 자고있소. 지금은 쓰러질 지경이요.》

《전 동무를 처음봅니다. 제가 무슨 가슴아픈 말이라도 했게 잠을 못 잔단 말입니까?》

《긴말 할것 없소. 나를 잠 좀 자게 해주시오.》

《아이참, 별일 다 보겠네. 수면제를 잡수면 될게 아닙니까.》

《그것도 소용없소. 오직 하나, 동무가 내 사람이 돼줘야 마음놓고 잘수 있소!》

《어마어마… 엉터리!…》

처녀는 기겁을 하여 달아나버리였다.

《그래보라구, 내 그물안에서 못 빠질걸.》

그후 달포가 지나 서로 리해가 된 다음부터는 죽자살자하는 사이가 되고말았다.

지금도 백순옥은 그때 일이 기억될 때면 혼자서 웃군 했다.

《여보, 바로 말해요. 당신이 진짜 총각을 정해놨어요?》

《정하기는 내가 정했지만 알고보니 이것들이 벌써 아는 사이더란 말이요.》

《안다구요? 언제부터?》

《작년에 묘향산탐승을 갔다가 알게 됐다는지… 뭐 경애가 꽃수건을 날려서 벼랑턱 소나무에 걸린걸 그 총각이 걷어다주었다두만. 그땐 서로 이름도 모르고 헤여진 모양이야.》

《그러니까 결국은 그 꽃수건이 인연을 맺어줬구만요. 지금은 그들의 관계가 어느 정도예요?》

《이제는 경애가 그 총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구 졸졸 쫓아다니고있소. 당신이 처녀때 나한테 찰찰 붙어다닌것처럼.》

《아이구, 웃깁니다. 말은 바른대루 당신이 나를 쫓아다니며 못나게 굴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구, 총각은 뭘 하는 사람이예요?》

《하늘의 수리개요, 우리 사업소의 산줄공… 내가 사람됨을 잘 알지…》

《산줄공? 난 경애를 평양에 시집보내려 했는데요.》

《당신이 설계연필을 놓구 집에 들어앉은지 몇해나 됐다고 평양소리만 하는거요. 더는 그런 소릴 내지 마오.》

백순옥은 랑패한 상을 짓고 앉아 혼자소리로 딸을 욕했다. 그만큼 이 도시 총각들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듣지 않고… 맹꽁이 같은것!

어느날 저녁 정준하는 퇴근길에 송강림을 정문밖으로 불렀다.

《집에 안 가나?》

《나오던 길입니다.》

《같이 가자구.》

《예? 어델?》

《우리 집에… 할일이 좀 있어서 그래.》

송강림은 기사장이 집으로 가자고 할 때 좀 얼떨떨했다가 무슨 일할것이 있다는 소리에 군말없이 따라섰다.

얼마간 걸어 집에 다달은 송강림은 기사장을 따라 안마당에 들어서며 마중나오는 백순옥에게 꾸뻑 절을 했다.

정준하는 안해에게 눈짓으로 사위될 사람이라는것을 알렸다. 백순옥은 강림이의 아래우를 찬찬히 여겨보았다. 두번, 세번… 안 보는척 하면서도 앞뒤를 살피살피 파보았다.

그의 얼굴에 절로 호함진 웃음발이 피여올랐다.

(음― 첫낯에도 눈에 드는 모양이군.)

정준하는 혼자 속으로 웃었다.

《저― 기사장동지, 할일이 무엇인지 어둡기 전에 어서 합시다.》

송강림의 독촉에 정준하는 웃으며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때 집에 돌아온 경애가 방안에 들어서며 《아버지, 벌써 퇴근했어요? 오늘은 어떻게 제시간에 오셨군요.》했다.

그때에야 웃목에 송강림이 앉아있는것을 보고 《어마…》 하고 놀라운 소리를 냈다. 놀라기는 송강림이 더했다.

(아버지?!… 그럼 경애동무가 기사장동지 딸이란 말인가?)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부엌에서 백순옥이도 방으로 들어왔다. 정준하는 좌우에 앉은 강림이와 경애를 대견하게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이렇게 모여앉으니 기쁘구나. 승호가 며칠간 이동작업을 가서 이 자리에 없는게 좀 섭섭하긴 하다만 그 애도 오면 알게 될거고, 너희들이 그동안 여러달 지내보고 감정이 가까와진것 같애서 정식 가정을 이루게 해주자는거다.

지금껏 강림이한테 경애가 기사장 딸이란걸 숨겨온건 누구의 구애를 받는것 없이 처녀와의 교제를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길 바라서였다.

내가 래일 강림이 어머니도 만나보겠다.

그렇게 해서 이달 말에 소박하게 가족잔치를 차리자. 기사장네 집에서 잔치를 한다고 소문이 나면 온 기업소사람들이 다 오자고 할게다. 그러면 결혼식이 어방없이 커진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너희들도 다른 의견이 없겠지?》

《없습니다.》

송강림이와 경애는 약속이나 한듯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눈길이 마주친 그들은 즐겁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였다.

정준하는 따뜻한 정이 어린 눈길로 딸, 사위를 바라보며 웅글은 목소리로 뒤말을 이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한가정이 되면 생활을 잘해야겠다. 가정살림살이를 알뜰히 하고 서로 도우면서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당면한 가양도공사를 위한 전투에서 강림이는 보다 큰 몫을 맡아하는 선구자가 돼야 한다.》

《어렵고 힘든 일일수록 드세게 해제끼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송강림의 목소리는 조용히 울렸으나 바위돌처럼 굳세고 드놀지 않은 모습을 볼수록 의젓하고 대견스러웠다. 정준하는 미더운 눈길로 사위를 마주보며 큰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고맙네, 그렇게 해주게. 경애는 앞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을 잘 받들어 가정화목에 힘쓰면서 맡은 일에 더 책임성을 높여라.》

《네―》

경애는 고개를 숙이고 혀아래소리로 대답했다.

《이 벅찬 선군시대에 사는 너희들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려면 첫째도 둘째도 실력을 키워야 한다. 실력은 저절로 나오는게 아니다. 실력의 원천은 피타는 노력이다. 이걸 잊지 말아라. 항상 나라에 큰 기여를 하겠다는 높은 각오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아버지의 말을 침착하게 새겨들었다.

저녁을 먹고 강림이와 경애가 밖으로 놀러나간 다음 정준하는 안해에게 물었다.

《어떻소, 강림이가?》

《부부오누이라더니… 꼭 오누이같애요. 둘다 곱게 생기구 키들이 날씬한게, 무슨 남자가 그리 곱게 생겼나. 겉보기에는 나무랄데가 없는것 같은데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속통이 쬐쬐한 쫌보가 아닐는지…》

《허허, 겉보기가 속보기라지 않소. 산줄공들의 용감성과 의리심은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오. 산줄공 한사람, 한사람은 여느 사람 열사람과도 바꾸지 못해.》

《에이구, 처음부터 너무 사위칭찬하지 마시우. 남들이 들으면 웃어요.》

《난 우리 강림이 하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요, 산줄공들의 인간됨을 말하는거지. 그들한텐 그 무엇도 아깝지 않거던.》

그들은 밤깊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경애는 강림이한테 아예 녹아붙었는지 어머니가 기다리는것도 모르고 온밤 들어오지 않았다.

백순옥은 무언가 모르게 허전한 생각이 들어 혼자속으로 딸을 욕했다.

(철딱서니없는것, 간간한 재미에 아예 미쳐버렸군.… 하긴 나도 저 나이때 경애 아버지한테 미쳤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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