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2
(1)
(중간철탑을 없애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과연 독선적인가. 대중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주장만 옳다고 내밀었는가.)
정준하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생각에 시달려 모대기였다.
(아니다. 기술협의회때 많은 사람들이 중간철탑을 세우면 안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혼자서만 속을 앓을것이 없다. 대중이 선생이다. 실지 공사를 맡아해야 할 건설직장 로동계급과 좀더 진지하게 의논해보자. 그들의 견해를 듣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가 기사장실을 나서려 할 때 건설직장장이 한발 먼저 들어왔다.
《어델 가려댔는가요?》
직장장이 먼저 물었다.
《그 직장에 가서 로동자들과 좀더 토론하고싶었댔소.》
《내 그럴것 같더라니 이렇게 왔수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간철탑을 세웠다가 오히려 화를 당한다는것이 우리 사람들의 일치한 의견이지요. 다들 기사장의 의견을 지지하우다.》
(엄밀히 따지면 그 설계는 형식상은 그럴듯 하게 된것 같지만 현지의 구체적인 형편을 깊이 모르고 조사자료만을 놓고 만든것이여서 내용이 빈약하다. 내용이 기본이 아닌가. 어떻게 하든 예측할수 없는 자연의 온갖 횡포에도 견딜수 있게 가장 견고하고 안전한 송전선을 건설해야 하지 않는가.)
직장장은 담배갑을 꺼내며 뒤말을 이었다.
《설계도면을 우리 직장 책임기사, 반장들은 물론 로동자들한테도 다 보여주고 직장기술협의회를 먼저 했댔수다. 한결같이 기사장동지의 의견과 같수다. 아까 협의회를 하고 나오니까 당비서동지가 우리 직장에 와서 중간철탑문제를 가지고 건설자들의 의견을 묻더군요. 직접 건설을 맡아 주인이 돼서 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아니요. 그러니 기사장동진 동요하지 말구 주장대로 내밀어주.》
직장장은 가타부타 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대신 무엇이나 간단명료하게 맺고 끊고 돌아서면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투지있는 일군이였다. 그래서 늘 정준하와 배짱이 맞았다.
이튿날 조형례국장은 떠나기에 앞서 정준하기사장을 또 만났다. 여전히 결심이 확고한가고 물었다.
《그래, 꼭 도면수정을 해야만 되겠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공사에 들어가겠습니까. 더구나 보조철탑들 설계는 새로 해야 하지 않습니까.》
《실천으로 증명하지 못한 이상 기사장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할수는 없지 않을가.… 중간철탑을 세우지 않았다가 공사를 다 해놓은 다음에 그것을 세우지 않은것이 잘못됐다고 증명될 땐 어떻게 하겠소?》
《책임을 제가 져야지요. 전 각오가 돼있습니다.》
곁에 앉아있던 최장근이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장, 자기를 자중할만 한 수양이 그렇게도 적소? 내 어제 뭐라고 했소?》
어제 저녁 퇴근무렵 조형례국장이 밖에 나간 다음 최장근은 이렇게 뇌였다.
《기사장동무, 우에서 하라는대로 해서 랑패볼건 아무것도 없소. 무엇때문에 기어코 제 주장만 고집하려는거요. 그것때문에 예상밖의 일이 생길수도 있다는걸 알아야지. 큰 공사를 편안히 안전하게 해야지 우와 등져가지고 얻어먹을게 무엇있겠소. 참 답답하오.》
그런데 지금에 와서까지 여전히 한본새로 제 주장을 고집하니 울화가 터진것이다.
조형례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는 정준하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기사장동무, 나도 어제 밤 깊이 생각해봤소. 납득이 가오. 곰곰히 음미해보니 인공섬을 만들어가지고 그우에 중간철탑을 세운다는게 여간만 난공사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드오. 내 성에 올라가 토론해서 설계수정에 대한 지시를 주겠소. 기다리오. 내가 오늘 첫마디에 도면수정을 꼭 해야겠는가고 물은건 동무가 혹시 밤사이에 생각이 또 달라지지 않았는가 해서였소. 이젠 의도를 잘 알았소.》
조형례국장은 그길로 떠나갔다.
며칠후에 그한테서 전화가 왔다. 설계수정을 기사장의 주장대로 도에서 추진하라는 지시였다.
그날부터 정준하는 설계실에서 살다싶이 하며 수정대안토론을 진지하게 했다. 여럿이 지혜를 모을수록 수정방도가 명확하게 잡히기 시작했다. 신심이 생겼다. 보조철탑설계도 동시에 내밀었다.
오늘 오후 계획과에서 올라온 문건검토를 하던 정준하는 기사장실로 들어오는 탁수환을 반가이 맞았다.
《요샌 무슨 일을 하우? 여러날째 보이지 않더구만.》
탁수환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으며 한주일동안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창고가 낡아서 헐어버리구 그 자리에 새로 크게 지었지요. 어제까지 말끔히 끝냈습니다.》
《그래서 안 보였구만.》
탁수환은 담배갑을 꺼내 기사장에게 권하며 자기도 한대 뽑아물었다. 그는 정준하에게 자기때문에 마음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얼굴을 붉히였다.
《가뜩이나 바쁜 기사장동지한테 우리 집의 가정일까지 안고 신경쓰게 했으니… 내 그래서 집사람한테 싫은 소릴 좀 했습니다.》
정준하는 웃었다.
《아주머니는 왜 욕하우. 탁동무가 끝내 가정에서 있은 일을 말 안하길래 내가 아주머니한테 물어봤지요.》
《실은 그날 기사장동지한테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습니다. 나이 오십이 되도록 구실도 못하고 사는 내가 창피해서 입이 열리지 않더군요. 기사장동지한테서 말을 들었다면서 당비서동지가 저를 불러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당비서동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나니 속이 후련해집디다. 기사장동지랑 저를 이렇게 생각해주어 고맙습니다.》
《뭘 고마울게 있겠소. 탁동무가 자기 할바를 똑바로 하기에 누구한테서나 지지를 받는거지요.》
탁수환은 어줍은 표정을 지으며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띄웠다.
《실은 내 기사장동지와 한가지 의논할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가양도공사 설계도면까지 나왔으니 인차 전투에 들어가겠지요?》
《지금 수정설계도면을 만들고있지요. 그것이 승인되면 즉시 공사에 착수합니다. 왜 그럽니까?》
《내가 아직 휴가기일이 이틀 더 있습니다. 이 기간에 바람도 쏘이는 겸 가양도에 한번 갔다올가 해서요.》
《그래요? 거긴 무슨 일루?》
정준하는 의아한 눈길로 탁수환을 마주보았다.
《기사장동지, 이제 공사가 시작되면 숱한 사람들이 나가 여러달 살수 있는 거처지부터 먼저 마련해야 하겠지요? 이 일을 잘해놓지 않으면 공사에서 성과를 올릴수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공사장에서 겨울까지 나려면… 아무래도 그 많은 숙소들과 전투지휘부는 물론 식당, 창고, 위생실 등 숱한 건물들을 세우려면 이 탁수환의 손이 다 가야 할게 아닙니까. 가양도는 물론 명산포지구도 무인지경이여서 도움을 받을데도 없지요. 그래서 제가 미리 나가서 그곳 지형을 먼저 밟아보자는겁니다. 될수록 전투장들과 가까운 거리에 숙소들을 지어야 할텐데 목재실태는 물론 각종 공구와 작업도구들까지 자세히 타산해야 랑패가 없습니다. 가보지도 않고 앉은 자리에서 주먹구구로 했다가는 골탕을 먹기 쉽습니다.》
정준하는 감심한 얼굴로 탁수환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정말 책임성이 높은 사람이구나. 기업소의 목수로서 벌써 제가 해야 할 일을 예견성있게 내다보지 않는가. 얼마나 착실한가.)
기사장은 기꺼운 목소리로 동의했다.
《미리 현지를 밟아보고 오는거야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럼 래일 나가겠습니다. 새벽차에 떠나면 저녁 어두워서 집에 들어설겁니다.》
《누구 한사람 데리고가오.》
《로력도 바른데 뭘 둘씩 가겠습니까.》
《명산포 바다가에 나가면 도간석지건설사업소 해창군 분사업소가 있습니다. 거기 가서 도송배전부에서 나온 가양도조사조 성원이라고 하면 군말없이 기관선에 태워 섬에 실어다줍니다.》
탁수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준하는 그를 문밖까지 바래주며 잘갔다오라고 했다.
바로놔도 엎어놔도 언제나 한모습으로만 살 탁수환이, 그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기 하는 일에 대한 신심이 더욱 우쩍 솟구침을 느끼군 했다. 무언가 가슴이 그득해지며 삶의 희열을 느끼였다. 좋은 사람을 알고있는데서 오는 기쁨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