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

 

날은 흘렀다.

무연한 들판에서는 벌써 벼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벼꽃이 피는 시절은 가슴조이는 시절이기도 했다.

하늘에 매지구름이 한덩이만 떠돌아도 저것이 일을 낼 징조가 아닌가 하고 우려들 했다. 오죽하면 처서에 비가 오면 독안의 곡식도 준다고 했겠는가.

다행히 올해 처서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서해안에서 처서계절에는 음력 7월 백중사리가 끼워 까딱하단 폭우를 퍼붓는다. 그러면 벼꽃에 물이 들어가 농사를 망쳐놓는다.

정준하기사장은 달리는 화물차의 적재함에 올라앉아 흘러가는 벌판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요즈음 벼꽃이 필 때 비가 오지 않는것은 좋으나 대신 무더위로 숨이 막혔다.

선기가 나서 아침저녁에는 어딘가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것 같다가도 낮에는 말복이랍시고 산 소뿔 뺄 지경으로 따가왔다.

정준하는 큼직한 농립모를 쓰고 내리지지는 해빛을 막았다. 운전칸안에 앉아있으니 더 답답하여 적재함우에 올라와앉은것이였다.

달리는 차여서 한결 시원했다. 지금 준하는 아침일찍 해창군의 명산포―가양도송전선공사를 위한 현지답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였다.

벌써 현지조사를 몇번째나 하는지 모른다.

자기네 화물차가 해창군에 갔다와야 할 일이 있어 그 차를 타고 나왔던것이다.

그가 이렇듯 명산포에 또 나와보는것은 설계도면이 완성되긴 했으나 자기 의도와 맞지 않기때문이였다.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는것은 아닌가 하여 또 확인검토하는것이였다.

이제 도면을 기술자들의 토의에 붙여봐야 알겠으나 틀림없이 그 협의회는 심각한 론쟁을 불러일으킬것이 뻔했다. 하여 준하는 입을 다물고 도면에 대한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며칠전에 평양전력설계연구소에서 명산포―가양도송전선공사에 대한 설계를 완성하여 내려보냈었다. 그것은 이미 전력공업성의 해당일군들도 검토하고 보낸것이였다.

직접 전투를 해야 할 당사자들이 빨리 보고 의견을 내라고 했다. 설계가 잘되여 현지에서도 별로 다른 의견이 없을것이라고들 장담했다.

내려온 도면을 정준하기사장이 자기 방에서 맨 먼저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설계는 수준있게 되였다.

그러나 하나만은, 그것도 기본문제에서 자기 생각과 완전 다르게 되여있었다. 륙지쪽인 명산포와 가양도해협을 건너 섬기슭에 두개의 철탑을 마주세우고 3상 6만볼트의 고압선을 물우로 넘기는데서 중간철탑을 놓게 돼있는것이였다.

정준하는 예리한 두눈에 등불을 켜달고 도면을 태워버릴듯 파보고 또 파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려놓은 도면이 달라질것은 없었다.

(가양도해협의 물가운데에 중간철탑을 세우잔 말이지?… 중간철탑이라…)

그는 머리를 저었다.

깊은 사색에 빠져 별별 생각을 다 굴려보는 그의 두릿한 철색얼굴이 더 컴컴해진듯싶고 이마의 실주름도 더욱 깊어지는가싶었다. 꾹 다물린 두툼한 입술은 며칠이고 열릴상싶지 않았다.

누구나 얼핏 생각컨대는 2 500메터나 되는 넓은 해협을 횡단하는 세줄의 고압선을 물우로 넘기는데서 그 길이가 너무 길어 물가운데에 중간철탑을 세워 선들을 받쳐주는것이 옳을듯싶게 여겨진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2 500메터나 되는 긴 고압선들이 늘어져 바다물에 닿을수도 있지 않는가. 설사 닿지는 않는다 해도 너무 늘어지면 배들이 어떻게 지나다니겠는가 그 생각은 다 옳다.

그렇지만 정준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며칠을 두고 생각을 거듭한 결과 바다가운데에 중간철탑을 둘수는 없다고 배심있게 자기 주장을 세웠다.

오늘 명산포에 나가 현지조사를 또 해보는 과정에 그 결심은 확고하게 굳어졌다.

설계도면을 기관안에서 볼 사람은 다 본 다음 곧 협의회를 열었다.

어느날 점심후 지배인실에 기술일군들과 직장장들이 다 모였다.

원래 조형례국장도 참가하여 의견을 좀 같이 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협의회를 시작했다.

조형례는 이곳 도당에 볼일이 있어 아까 점심참에 도착했었다. 오후 첫시간에 책임비서를 만나러 들어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것이다.

넓은 방에 기술일군들이 빼곡이 들어앉았다. 창문들을 활짝 열고 두대의 선풍기가 소리없이 돌아갔다.

최장근지배인은 자기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도 설계에 밝은 사람이였다. 이 며칠간 도면을 몇번이나 다시 보고나서 설계는 아주 잘되였다고 말했다.

이윽고 담배불을 재털이에 끈 지배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웅글은 목소리가 진폭있게 울리였다.

그 소리는 낮으나 저력있어 사람들의 가슴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늘 기술협의회는 설계에 대한 토론입니다. 동무들도 다 보았지만 설계는 별로 수정할것이 없이 아주 잘되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때문에 오늘토론에서 중점을 어디에 두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문제는 무엇무엇을 크게 수정할것이 없는것만큼 현장에서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적인것을 많이 토론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전투를 짧은 기간에 와닥닥 끝낼수 있습니다.》

최장근이 큰 키를 꼿꼿이 하고 자리에 앉자 몸좋고 이마가 벗어진 기술과장이 먼저 일어났다.

그는 지배인의 말을 되받아외우며 설계가 잘되였다고 세부적인것들을 몇가지 렬거하고나서 철탑 두개를 바다가 량대안에 세우는데서 위치문제를 가지고 토론했다.

뒤이어 과장들, 책임부원들이 바다우로 고압선을 띄우고 끌어당기는 문제, 선을 철탑꼭대기까지 끌어올리는데서 나서는 문제 등 여러가지를 토론했다.

정준하는 도면토론방향이 중심을 찌르지 못하고 기슭으로만 맴도는데 속이 끓었다. 벌써 몇사람이 쪽지글을 기사장앞으로 전달해왔다. 다같이 《토론중심을 놓치고있음. 기본문제는 중간철탑.》 하고들 썼다.

보다 못해 건설직장장이 먼저 일어났다. 그는 저으기 가라앉은 어성으로 회의흐름방향을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한손으로 뿍― 올리 깎은 상고머리를 버릇처럼 쓸어넘기고나서 그답지 않게 느짓이 입을 열었다.

《제가 한마디 하고싶은게 있습니다. 먼저 하나 물어볼게 있수다. 원앙새사냥군이 사냥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이가 있소? 물론 없겠지요. 그럼 내가 알려주지요.》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이건 장사말 하는데 혼사말 한다더니 도면토론을 하는데서 중뿔나게 원앙새사냥군소리는 왜 하는거요?》

《동무같이 머리가 안 도는 사람과는 싱갱이질할것도 없소. 내 좀 깨우쳐주지. 원앙새사냥군이 암것을 먼저 쏜다는 말을 들어봤소? 이게 무슨 소리겠소. 어떤 일에서나 중심고리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틀림없지요. 하다면 오늘 우리들의 설계도면토론에서 기본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이 무엇이겠소. 그건 분명히 중간철탑문제라고 봅니다.》

무엇인가 적고있던 최장근이 놀라 언덕이마를 번쩍 들며 긴 턱을 떨었다.

《뭐라구? 중간철탑문제?!… 그건 무슨 소리요?》

부기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배인동지, 오늘 도면토론에서 기본은 중간철탑설정문제라고 봅니다.》

숙연하던 좌석에 별안간 돌멩이라도 떨어진듯 순간에 두 패가 갈라져 갑론을박하기 시작했다.

《그래, 중간철탑을 어쩌자는거요? 설계에 있는걸 없애자는거요?》

지배인이 따지듯 날카롭게 질문하자 과장 한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배인동지, 중간철탑을 없애면 안됩니다!》

그는 한손으로 무엇을 썩 자르듯 홱 내저으며 열이 올라 목에 피대를 세웠다.

《물너비가 2 500메터나 됩니다. 이건 강이 아니라 바다란 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중에 고압선들을 받들어주는 중간철탑을 세우지 않을수 있습니까. 선들이 물가에 낮추 늘어지면 배들의 항행에 지장을 주고 잘못하면 큰 사고를 낼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양도해협 송전선공사는 당당히 세계적인 공사입니다. 내 어떤 자료를 보니 여러해전에 어느 한 나라에서 바다너비 1 900메터를 중간철탑없이 송전선을 넘겼다고 크게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 500메터입니다. 거리상 5리가 훨씬 넘는 물너비에 어떻게 중간철탑없이 실현할수 있습니까.》

저쪽 구석에서 안경쟁이 책임부원이 일어섰다.

《중간철탑이 없이 량쪽기슭의 철탑들만이 고압선을 물고있다면 그건 외기둥에 기와집짓기입니다. 견고성과 믿음성에 담보가 적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철탑이 없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목대를 세우고 배심있게 맞섰다.

지배인이 부르튼 목소리로 회의질서가 없다고 꾸짖었다. 풍랑만난 표류선처럼 떠들썩하던 지배인실이 갑자기 저기압에 눌리워 가쁜숨을 쉬는듯 했다.

최장근이 굳어진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는 정준하기사장을 돌아보았다. 무거운 어성으로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가 좀 말해보오.》

책임적인 발언이였다. 기사장의 립장여하에 따라 편이 갈라질판이다.

정준하는 앞상을 짚고 무겁게 일어났다. 그는 입술을 떼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찍었다.

《중간철탑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협의회장이 웅성웅성 끓었다.

기사장은 장내를 돌아보며 뒤말을 이었다.

《중간철탑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리해할만 합니다. 그 중간철탑이 있어야 안전하고 마음놓이니까요. 설계자체로서는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지금도면에는 2 500메터 물가운데에 중간철탑을 세우기 위해 거기에 섬을 만들고 철탑을 세우게 돼있습니다.

리론적근거는 무엇인가. 가양도해협 물밑이 암반이여서 철탑을 세울 자리를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겁니다. 옳습니다. 도면에는 중간철탑을 세우는데 물깊이, 파도높이, 초당흐름속도 등 필요한것이 다 명기돼있지만 이 세상에 바다처럼 광포한 힘과 변화무쌍한 변덕으로 매 시각 파괴를 일삼는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과학적예견성과 견고한 특수자재로 철탑자리를 바다가운데 만든다 해도 예측할수 없이 무지한 힘과 파괴력을 가진 대해일이 들이치면 견딜수 없습니다.

중간철탑이 무너지거나 꺾어지는 날에는 량좌우의 철탑들도 동시에 꺼꾸러질것입니다. 때문에 중간철탑이 없이 량좌우의 철탑들만으로 3상고압선을 잡아주어도 끄떡없게 설계가 되고 시공이 돼야 만년대계의 창조물로, 나라의 재부로 될수 있습니다. 파도높은 바다가운데에 초대같이 서있는 중간철탑을 어떻게 20년이고 30년이고 믿을수가 있겠습니까. 돌벼랑도 순간에 무너뜨리는 파도가 그 초대를 곱다고 늘 쓰다듬어주기만 할것 같습니까.

또 중간철탑을 세우는 바다가운데서의 기초치기와 인공섬을 만들기도 난공사이고 건설비가 어방없이 듭니다. 아이보다 배꼽이 큰 격입니다. 중간철탑을 없애려면 량좌우의 철탑들을 보다 견고한 특수강철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크기와 세기, 무게에서 일반철탑의 열배쯤 돼야 합니다. 높이도 현재설계에 62메터로 돼있는것을 5메터 더 높여서 67메터로 해야 합니다. 중간철탑을 주는 경우는 좌우철탑들이 그리 높지 않아도 되지만 없애면 더 높여줘야 합니다.

고압선강질도 세기가 높아야 합니다. 일반고압선으로는 안됩니다. 당길 때 끊어집니다.》

정준하는 중간철탑을 없애는데서 나서는 공사의 과학기술적인 문제들을 명명백백히 밝혀냈다.

그의 사리정연한 언변에 협의회장의 분위기는 일변되였다. 기사장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목이 된듯 중간철탑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헐헐 하는 숨소리만 높였다.

최장근지배인의 긴 얼굴도 여기가 질린듯 빛바래져 수척해진것처럼 보였다. 설계가 잘됐다고 별로 수정할것이 없다고 추어올리던 말들은 모래불에 물잦듯 했다.

이어 다른 한사람이 일어나 중간철탑을 없애면 아무래도 견고성을 믿을수 없다면서 수중까벨로써 물밑으로 송전선을 뽑자고 했다.

정준하는 열물을 마신듯 쓰겁게 웃었다.

《그러자면 해저까벨 1만메터를 사와야 하오. 그 값이 얼마인지 아오? 동무 몸무게만 한 황금토막을 줘야 하오.》

중간철탑을 주장하던 과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사장동지가 중간철탑이 없어야 한다는 근거를 사리정연하게 내놓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리론적인것으로만 들립니다. 현실적인 가능성에서 납득이 덜 갑니다.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2 500메터나 되는 바다를 횡단해야 할 고압선을 중간에서 받쳐주는 지지대가 없이 과연 몇날이나 지탱할수 있겠습니까. 또 고압선의 무게가 얼마입니까. 고압선 한퉁구리가 몇톤씩 나갑니다. 이런 퉁구리를 수없이 늘여야 하는데 그 수직으로 내려누르는 력학적힘이 얼마나 크겠는가를 상상해보십시오. 과연 중간철탑이 잡아주지 않고도 견뎌낼수 있겠습니까.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과장이 또 벌떡 일어났다.

《그렇습니다. 중간철탑이 없이 가양도송전선공사를 하는것은 허공에 루각을 짓겠다는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론거를 들어보면 해협의 량대안에 보통철탑의 10배에 해당한 그런 어마어마한 거물형의 특수철탑을 세우고 고압선을 불도젤로 그것도 한대의 힘으로도 모자라 두대씩이나 붙여서 끌겠다고 합니다. 그 끄는 힘이 엄청날진대 과연 철탑의 꼭대기가 부러지거나 휘여드는 사고가 안 날줄 압니까. 가운데에 중간철탑이 있으면 고압선들을 그렇게까지 무지한 힘으로 끌어서 당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또 그토록 강한 힘을 가해 잡아당기면 아무리 고강도로 꼬아낸 고압선이라 해도 썩은 바오래기처럼 툭툭 끊어져나갈것입니다. 때문에 설계도면수정을 조금도 하지 말고 원안 그대로 시공해야 한다는걸 주장합니다.》

《옳소, 옳소.…》

기사장이 중간철탑이 없어야 한다고 력설할 때 어깨가 처졌던 사람들이 승이 나서 설계대로 하자고 열을 올렸다.

다시 옥신각신하며 자기들의 론거가 옳다고들 목에 피대를 세웠다.

기사장이 일어나 중간철탑을 앉힐 인공섬을 만드는 일이 시공에서 어느만큼 난문제인가 하는것을 납득시켜서야 사람들의 흥분을 가라앉힐수 있었다. 정준하는 계속해서 말했다.

《중간철탑이 없이 고압선을 불도젤로 끌어당기면 량좌우철탑들이 휘여지거나 부러질수 있다고 하는데 옳은 우려입니다. 그래서 기본철탑들의 뒤쪽에 보조철탑들을 각각 3개씩 세워주고 석줄의 고압선을 하나씩 물고 잡아주게 하자는것입니다. 그러면 기본철탑들에 이상이 없을것입니다. 명산포와 가양도에 세우는 6개의 보조철탑들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높이가 12메터정도면 될것입니다.》

도면토론을 위한 협의회의는 결국 아무런 결실도 없이 끝나고말았다.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우실우실 일어나 나갔다.

지배인실엔 두사람만 남았다. 정준하기사장의 반대로 난감한 처지에 빠진 최장근의 얼굴은 분기로 질려있었다. 그는 매우 기분이 저락되였지만 정준하앞에서는 태연한척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노엽게 울리였다.

《기사장은 점점 안하무인이 돼가는것 같구만.》

《예? 그건 무슨 말입니까?》

《우에서 도면을 성근히 만들어 내려보냈으면 그 방향에서 토론이 돼야지 자기 견해만 일방적으로 앞세우면 되겠소. 나를 모욕하는건 참겠지만 그렇게 독선적으로 나가는게 일군의 태도가 아니요.》

《아니? 내가 지배인동지를 모욕했다구요?》

《됐소, 됐소. 그만하기요. 이제 조형례국장이 이리로 올거요. 도면토론결과를 묻겠는데 잘 이야기하오.》

그들이 좋지 않은 낯빛들로 잠간 앉아있을 때 조형례국장이 지배인실로 들어왔다.

《협의회가 끝난 모양이구만. 도당에서도 가양도공사에 대한 기대가 이만저만 크지 않소. 적극 도와주겠다고 하누만. 신심을 가지고 내밀어야겠소.》

《도당책임비서동지가 여간 관심이 높지 않습니다.》

정준하가 대답했다. 조형례는 의자에 가앉았다.

《설계를 보고 어떤 의견들이 제기됐소?》

정준하기사장은 숨김없이 도면의 우결함을 분석했다.

《중간철탑을 없애야 한다?》

조형례는 자기로서도 생각지 못했던것이여서 큰 입을 반쯤 벌리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지배인동무도 같은 생각이요?》

《난 아직 견해가 없소.》

지배인의 표정은 뜬뜬했다.

《그렇다―》

조형례의 낯빛이 신중하게 굳어졌다. 그렇지만 목소리는 부드럽게 울리였다.

《기사장동무 말을 들어보니 거기에도 일리가 있구만. 그렇지만 평양에 있는 전력설계집단에 로숙한 설계가들이 앉아있소. 그 사람들이 준하동무만큼 생각을 못해서 중간철탑을 설정했을가? 어떻소? 중간철탑을 없애면 그것을 무얼로 대신하겠소? 방도가 있소?》

《량좌우 철탑을 특수철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6만선의 일반철탑에 강재가 대략 여섯톤쯤 드는것으로 봅니다. 가양도 두개의 특수철탑은 강재가 적어도 60톤씩은 들어야 할것입니다. 일반철탑의 열배입니다. 보조철탑도 각각 3개씩 세우자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한쪽에서 고압선을 세차게 당겨도 철탑이 부러지거나 휘여지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중간철탑이 없이도 가능합니다.

제 아까 회의장에서도 말했지만 중간철탑을 세운다면 제일 난문제가 인공섬을 만드는것입니다. 도면에 기입된 수자를 보십시오. 게다가 물가운데에서 시공해야 하는 난공사여서 로력도 헤아릴수 없지요. 이 막대한 자재와 로력은 어떻게 충당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중간철탑을 없애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방도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설계도면은 어쩔수없이 수정하는수밖에 없습니다.》

《설계를 수정한다?…》

조형례의 연한 눈섭이 꿈틀했다. 그는 어지간히 난처해했다.

《하긴 중간철탑을 없애려면 도면도 고쳐야지.…》

《국장동지, 이제는 도면을 다시 평양에 올려갔다 내려왔다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설계수정은 우리가 하자고 합니다. 우리 도송배전부 설계실에 실력있는 설계가들이 있습니다.》

《수정작업을 도에서 하겠다? 그러면 평양에 있는 설계실동무들이 기분나빠하지 않을가.》

《이 일에 어떤 자존심을 앞세우면 안된다고 봅니다. 가양도송전선건설은 우리가 해야 하지 않습니까. 때문에 설계가 우리의 의도에 맞아야 합니다. 우리의 의도에 맞게 하려면 설계수정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 말은 옳은데…》

조형례는 무엇이 난감한듯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곁에서 보다 못해 더 참을수 없었던지 최장근이 역증을 냈다.

《기사장동무, 평양의 설계실에서 나온 설계를 그렇게까지 불신하면 어떻게 하자는거요? 그러면 성에서 동무의 그 수정설계안을 믿자고 하겠소? 그저 제 배짱, 제 주장만 내흔드니 그게 곧 우에 대고 하는 삿대질이라는걸 생각해봤소? 그럴내기를 하면 성에서 우릴 적극적으로 도와주자고 하겠는가. 저만 저라고 하는 사람은 괘씸해서도 도와주지 않소.》

정준하는 아연한 눈길로 최장근의 서슬푸른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배인동지, 설계에 대한 의견을 분석했는데 그걸 상급에 대한 도전행위로 보면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 국장동지도 우리의 의도를 자세히 알아야 할게 아닙니까.》

《어쨌든 동문 목대가 너무 세서 다들 상대하기가 힘들다고 하오. 태도가 그렇게 불경스러워가지고 어떻게 성의 도움을 바라겠소.》

조형례가 얼른 한손을 들어 제지시켰다.

《아 아, 지배인동무, 그러지 마오. 공사에서 중요한 문제를 론의하는데 당치 않은 인간관계문제를 섞지 마오. 기사장이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서 기분나빠하거나 도와줄것도 안 도와주는 그런 옹졸한 일군이 성에는 없소. 나도 충분히 알아야 견해를 세울게 아니요. 자― 그럼 오늘은 이만합시다. 각기 생각들을 더 깊이 했다가 래일 다시 의논해봅시다.》

조형례국장은 대범하면서도 리해력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지배인실의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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