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14

 

정준하는 늦어서야 퇴근했다.

집에는 안해 백순옥이 혼자 댕그라니 앉아있다가 남편을 맞아주었다. 그는 집에 들어설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건강해진 안해를 보는것이 얼마나 좋은가.

참으로 안해는 지난해에 언제 그런 병을 앓았던가싶게 깨끗이 털었다. 방안이 별로 호젓하여 안해에게 물었다.

《승호랑 어데 갔소?》

《저녁술을 놓자 나가는걸 보니 아마 동무들한테 간것 같아요. 경앤 뒤집 순옥이가 찾아서 나갔구요.》

정준하는 묵묵히 저녁을 먹었다.

그가 식사를 끝내자 백순옥은 상을 치우고 들어와앉아 남편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조용히 물었다.

《여보, 승호를 건설직장에 배치했어요?》

담배를 태우던 정준하는 안해를 돌아보며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승호가 뭐라고 하오?》

《뭐라고 하기야 뭐… 자긴 최우등졸업생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볼이 부었다는거겠지?》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면 이제라도 시송배전소로 갔으면 좋겠다고 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그렇게까지…》

백순옥은 남편이 외아들을 건설판에 막돌처럼 내굴리려 하는것 같아 속이 알알해했다.

정준하는 아무 말도 안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말머리를 뗐다.

《우리 승호만 건설직장에 보낸게 아니요. 승호와 같이 온 기찬이도 거기에 같이 배치했소. 당신은 아들이 고생할가봐 마음쓰는것 같구만. 그런게 어머니사랑이 아니요. 이제는 현장에서 단련시켜야 할 때가 됐소. 남들도 다 하는 일을 가지고 무슨 결전장에나 나가는것처럼 생각하지 마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승호가 그런 험한 일을 해봤어요? 무슨 주택건설장이라도 모르겠지만 세상 힘든것이 송전선건설이 아니예요. 게다가 건설직장장이 얼마나 감때사납구 엄해요.》

《그런 속에서 살아봐야 사람이 되오. 사실 우린 승호를 너무 응석받이로만 키웠소. 특히 당신이 그 애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늘 치마폭에 감싸고돌면서 근로정신을 키워주지 못했거던. 게다가 아이적부터 공부를 좀 잘한다고 더 귀여워하며 뜨락이라도 쓸라고 마당비 한번 쥐여주지 않았지.

내 그래서 중학교졸업후에 로동정신을 좀 키워서 상급학교에 보내려고 시송배전소 로동자로 몇년 일하게 했소. 하지만 거기서도 정준하의 아들이라고 땀흘리는 일을 시키지 않았거던. 남자는 자기가 흘린 땀이 얼마나 짠가를 알아야 사람질을 하오.》

백순옥이 속상해 앉아있을 때 승호가 불쑥 방안으로 들어왔다. 준하는 아들을 불러앉히였다. 승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버지앞에 와앉았다.

《너 건설직장에 간것이 싫으냐?》

《즐거울거야 뭐 있어요.》

《힘든 일 하기가 겁나서?》

《난 당당한 전기공학준기사예요. 게다가 최우등졸업생이구요. 그런데 왜 중학교졸업생들처럼 취급해요. 내가 왜 송전선건설로동자로 일해야 되는지 그 까닭을 알수 없어요.》

승호는 시꺼먼 눈섭을 치뜨며 항변했다.

정준하는 아들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덩지만 큰 녀석, 생기기야 끌밋하니 얼마나 잘생겼나, 하지만 속은 텅텅 비였구나. 키는 아버지보다도 더 크다.

《그 까닭을 알려주지. 아무리 전문교육을 받고왔다 해도 우리한테 오는 청년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송전선건설자로 한해쯤 일하면서 단련되고 검토된 다음에야 적재적소에 재배치한다. 이건 아버지가 기사장이 되면서 세워놓은 철칙이다. 철탑에 올라가 고도작업도 해보고 목뒤에 주먹같은 혹이 나오도록 목도작업도 해보고 산속에 들어가 천막을 치고 철탑기초도 파봐야 진짜 당에서 바라는 옳은 지도일군으로 성장할수 있는거다.

너같이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이 이제라도 단련을 거치지 않으면 늙어죽을 때까지도 응석이나 부리다 만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적지 않게 있다. 그러니 너는 건설직장에서 일하는것을 더없이 좋은 기회로 알고 열정에 넘쳐 일을 배우거라.

로동자들한테서 일을 배우고 그들한테 네 지식을 털어 배워주거라.》

승호는 눈두덩이 퍼래서 아무 대꾸도 안했다. 속이 뒤틀려 앉아있는 아들을 보노라니 정준하는 문득 전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볼이 부어 집에 들어선 승호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때 승호는 아버지때문에 자기의 배치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행티를 부리였다.

《난 처음에 과학원 전기공학연구소로 가게 내정돼있었어요. 최우등졸업생이기때문이예요.》

《그래서?》

《갑자기 벼락이 떨어질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천만뜻밖에도 아버지가 처벌을 받는 바람에 틀어지고말았지요.》

정준하는 뒤통수를 맞은듯 눈앞이 아찔함을 느꼈다. 아들이 너무도 당치않은 소리로 아버지를 원망하고있어 숨이 막히는듯 했던것이다.

무슨 그런 일로 하여 연구소로 못 갔다는 말은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아버지가 그만한것쯤 모를 사람인가.

《앞으로도 아버진 자기 주견만 냅다 우기면서 이번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마세요. 전기부문 기사장이 무슨 힘이 있다고 남들이 못한다고 하는것도 한다고 우기다가 그런 과오를 범하는가 말이예요. 아버지실력이 아무리 높으면 뭘해요,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순간 정준하의 두눈에서 불꽃이 튀였다.

《이 덜된 녀석 뭐가 어째?》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던 손으로 승호의 뺨을 호되게 갈기였다. 곁에 있던 백순옥이 아우성을 치며 남편의 팔을 붙잡았다.

정준하는 격노하여 아들을 쏘아보았다.

《너는 두말할것 없이 틀려먹었다. 그런 이지러진 마음을 가지고는 오늘의 벅찬 선군시대와 발을 맞추지 못한다. 최우등을 했다고? 하지만 네가 아무리 실력을 높이 배양했다 해도 머리가 옳바르지 못하면 그 실력은 은을 내지 못해. 나라의 쓸모있는 인재가 되려거든 똑바로 정신을 차려라.》

이런 일이 있어 그후 정준하는 우정 아들을 자기가 있는 도송배전부로 끌어왔던것이다. 곁에 바싹 끼고 처음부터 신발을 단단히 신겨줄 잡도리였다.

이윽고 승호가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이제라도 저를 시송배전소로 돌려놔주세요.》

《왜?》

《거긴 제가 학교가기 전에도 있던 곳이여서 정이 더 있어요. 거기가서 일을 잘하겠어요.》

《안돼!》

《?!》

《도송배전부에는 아버지가 있어서 숨이 차다는거냐?》

《그래요. 베차요.》

《베차야 한다. 지금 나라의 도처에서 너와 같은 청년들이 강성대국을 일떠세우자고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투쟁하고있다. 너도 신문, 방송을 통해 느끼는게 많겠지.

마음의 신들메를 단단히 조여라. 네가 씩씩하고 억센 청년이 돼야 배워가지고온 학식도 높은 실력으로 은을 낼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땐 네 학식이라는것도 쓸모가 없어진다.》

승호는 더운 숨을 후― 내쉬였다. 아무말없이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가버리였다.

아들이 대문밖으로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를 귀강구어 들으며 백순옥은 겁에 질린 커다란 눈을 올리떴다.

그의 목소리는 경겁스럽게 울리였다.

《여보, 저애가 꽤 철탑에 오를가요?》

《못 오르면 사나이가 아니지. 당신의 맹목적인 사랑이 승호를 움속의 파처럼 만들었소. 저애한테 어디 대담한 기질이 있소, 때문에 강한 단련을 통해서만 이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이 될수 있소. 철탑에 오르는게 뭐 신기한줄 아오? 난 대학때 실습나가서 열흘동안에 다 배웠소. 지금도 젊은 사람들은 빠르면 한주일, 보통은 열흘이상, 제일 떠서 한달이면 다 배우오. 문제는 각오에 달려있소.》

정준하는 또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안해는 안해대로 아들걱정에 가슴이 한줌만 해졌다.

《여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당신성미에 지내 다궂진 말아요. 승호는 연구사직업이 맞을것 같은데요.…》

《연구사들일수록 현실에 더 깊이 침투하오. 연구소가 뭐 량반들만 앉아있는 곳인줄 아오? 처녀지만 응석 한번 못 부리고 자란 경애를 보우. 얼마나 소박하고 진취적이요. 동네늙은이들도 경애를 보고는 누구네 며느리가 되겠는지 복이 절로 굴러들어가겠다고 칭찬하는걸 못 듣소? 그런데 그녀석만은 등나무처럼 점점 비뚤하니 꾀여만가니…》

정준하는 자리에 누워서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과연 승호가 제구실을 해낼가 하는 걱정이 새삼스레 물멀기처럼 가슴을 때렸다.

어려서는 그저 귀엽고 재롱스럽다는것으로 해서 갖은 응석을 다 받아주며 키웠다. 큰 다음에 보니 아니라는 때늦은 후회가 들어 이제라도 바로잡자니 곱절 더 힘들다.

집에서 응석만 받고 자란 자식은 사회에 나와 어른이 돼서도 응석받이노릇을 하고있다.

조금만 힘들어도 투정질, 뒤소리, 시비질이나 했지 맞받아 뚫고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들이 앞서가며 개척해놓은 길로 뒤따라갈 생각이나 하고있다.

우리 승호와 같이 응석꾸러기로 강한 정신육체적단련이 없이 고스란히 성장하여 일군이 되면 그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앉아뭉개는 지도일군으로밖에는 더 될것이 없다.

내밀고나가는 투지가 없이 자그마한 난관앞에서 겁을 먹고 자리지킴이나 하고있는 간부가 백이면 뭘하고 천이면 뭘하는가.

투신력은 사상육체적으로 단련되고 준비된 사람들의 튼튼한 정신적뿌리에서 나와야 확고부동한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뭐니뭐니해도 다 내 잘못이다.

젊어서부터 늘 바쁘다고 아들교양은 안해한테만 맡겨둔 탓이다.

건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설계사업소에서 주택설계를 전문한 백순옥은 승호를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라고 감싸고돌며 눈먼사랑으로만 키웠다.

그것이 도를 넘어 자식의 성장발전에 저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경애는 응석 한번 부리지 못하고 자랐다. 집안의 맏이여서 별별 심부름을 다 맡아하고 여라문살부터는 직장일에 바쁜 어머니를 도와 저녁밥은 맡아놓고 지었다.

빨래질도 잘하고 다림질, 재봉일도 잘하고 눈썰미가 있어 못하는 일이 없었다. 애교가 있어 무슨 일을 시켜도 싫건좋건 새물새물 웃으면서 했다.

정준하는 승호가 로동을 싫어하고 무엇이나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자어자하며 받들어줄것만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된데는 자기가 자식교양을 등한히 한데 있으며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범을 망각한데 있다고 심심히 뉘우쳤다.

아버지는 자식교양에서 모범이였다.

…준하는 어려서 장난이 세찬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좋아 공부는 늘 학교적으로 일등이였다. 그런 그가 점점 실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때에야 아버지는 이것을 알았다. 아버진 화물차운전사여서 늘 차를 몰고 나가살았다.

준하는 아이들과 함께 탁구에 정신이 팔렸다. 얼마나 재미에 빠졌댔는지 숙제고 뭐고 다 집어던지였다. 다른 아이들을 하나하나 지워놓는 기쁨과 승벽심에 미칠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이것을 알고 초달을 들었다.

당시만 해도 준하가 살던 자그마한 읍에는 소년회관도, 탁구소조도, 배워주는 선생도 없었다. 때문에 준하가 앞으로 국가선수로 될 가망은 없었다.

아버지가 초달을 하면 준하는 공부를 잘하겠다고 헛맹세를 했다. 또 초달을 하면 다시는 탁구를 안 치겠다고 했다.

준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그렇게 초달한다고 아버지한테 울고불고 했다. 다음부터 어머니는 웃방구석에 있는 회초리를 몰래 밖에 내다 꺾어버리군 했다.

준하는 그러는 어머니가 더없이 고마왔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너무 모질다고만 생각됐다. 아버지는 언제 봐야 턱과 코언저리가 면도칼로 박박 밀어 푸릿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털보아버지라고 했다.

어느 봄날 아버지는 화물차를 몰고 멀리 갔다가 여러날만에 돌아왔다. 오면서 손가락굵기의 물버들회초리를 아름이 넘게 한단 해가지고 와 안마당 저쪽구석에 내려놓았다. 그걸 보고 어머니는 기절하도록 놀랐다.

저 회초리가 다 없어질 때까지 아이를 때리겠다는건가. 어머니는 아버지가 방에 들어간 사이 그 회초리단을 얼른 들었다. 어찌나 단이 큰지 무거워 겨우 들었다.

그것을 들고 대문밖으로 나간 어머니는 담장곁에 있는 복숭아나무의 짝지발처럼 된 가지우에 올려놓았다. 얼핏 눈에 띄우지 않았다.

돌아서던 어머니는 다시 생각했다. 말짱 치워놓으면 또 꺾어올것 같아 회초리단에서 제일 작고 배리배리하니 가는것 하나만 뽑아 제자리에 가져다놓았다.

사실 이 회초리단은 아버지가 봄남새밭에 둘러칠 개바자감으로 베여온것이였다.

아닐세라 방에 들어가 아들의 학습장을 검열해본 아버지는 불호령을 내렸다. 어머니더러 당장 가서 준하를 데려오라고 했다.

아버지없는 며칠사이는 제왕처럼 자유롭게 마음내키는대로 놀다가 아버지가 왔다는 소리에 준하는 기가 죽어 어머니의 뒤를 쫓아왔다. 털보아버지는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아직도 공부는 안하고 탁구에만 미쳐돌아간다고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는 밖에 나가 회초리단을 찾았다. 없어졌다. 그 자리에 하나있는 가는것을 손에 들며 뒤에 쫓아온 어머니를 흘겨보았다.

《감춘다고 못 찾을줄 알아?》

꽥― 하고는 방문을 열기 바쁘게 《나와.》 하고 소리쳤다. 준하는 아버지의 호령대로 비실비실 토방으로 나왔다.

오늘은 여기서 회초리를 치려는가, 말없이 바지가랭이를 올리고 두눈을 딱 감았다. 이제 종아리를 사정없이 칠게다. 오늘은 비명을 안지를테다.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 아버진 더 때리니까.

남의 아버지들은 안그런다는데 우리 털보아버지만 나를 못살게 군다. 꽁남이가 놀려준 말이 옳지 않을가. 너희 아버진 이붓아버지야, 그랬지. 엄마한테 물어볼가.

《따라와.》

아버지가 또 소리쳤다.

눈을 떴다. 이게 웬일일가. 회초리를 한손에 든 아버지가 때리지는 않고 대문밖으로 나간다. 영문을 몰라 어머니얼굴을 돌아보았다.

어머니도 놀란 얼굴로 쳐다만 본다.

할수없이 아버지를 따라갔다. 뒤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해는 서쪽산마루에 올라앉아 다른 집들의 굴뚝들에서는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있었다.

도대체 아버지가 나를 어데로 데리고가는거야. 산에 가서 나를 더 되게 때리려고 그러나… 오늘은 죽었구나. 어머니도 없어 말려줄 사람도 없지 않아… 준하는 털보아버지의 떡판같은 잔등을 겁에 질린 눈길로 바라보며 두다리를 우들우들 떨었다.

얼마쯤 풀밭을 밟으며 산기슭으로 올라간 아버지는 어느 한 묘지앞에서 멈추어섰다.

준하는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이건 할아버지묘가 아닌가. 아버지는 채찍을 옆에 놓고 묘소앞에 끓어엎디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할아버지한테 사죄했다.

《아버지, 불효자식 우선이가 왔습니다. 제가 아비구실을 못해서 어린 자식이 노는것밖에 모르는 건달망종이 돼가고있습니다. 자식을 옳게 키우지 못하는 죄로 이 아들이 아버지앞에서 자식한테 매를 맞겠습니다. 아버지 손자가 제 아비한테 초달하는것을 잘 보아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버지의 두눈에 눈물이 그렁하니 어리였다. 준하는 너무도 깜짝 놀라 온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묘앞에서 울다니, 나때문에 속이 타서 아버지가 우는구나.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어 준하의 손에 쥐여주고 묘앞에 서서 두다리의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였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조용히 울리였다.

《준하야, 할아버지앞에서 구실 못하는 이 애비의 종아리를 쳐라! 힘껏, 힘껏 쳐야 한다. 이런걸 조상매라고 한단다.》

준하는 그만 까무라칠번 했다. 내가 아버지의 종아리를 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내가 잘못했는데도 죄는 아버지가 지다니. 아버지가 오죽 속상했으면 나를 할아버지앞으로 데려왔을가.

그는 회초리를 와락 꺾어버리고 아버지의 두다리를 끌어안으며 엉엉 울었다.

《아버지, 용서해줘요. 다신 아버지의 속을 태우지 않을래요!》

그후부터 준하는 탁구채를 놓고 다시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타고난 수재의 머리에다 낮이나밤이나 정열적으로 공부하니 그의 실력은 뛰는 범에게 날개를 달아준것처럼 치달아올랐다.

그는 먼 후날 어른이 되고 지도일군이 된 후에도 어렸을적을 돌이켜보며 그때 자기에게 엄한 초달을 한 아버지의 그 마음이 이 세상 가장 뜨거운 사랑이였다는것을 종종 느끼군 했다.

이밤도 정준하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돌이켜보며 자기는 그런 사랑으로 승호를 키우지 못한 자책을 가슴저리도록 안고 잠들지 못했다.

늦은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승호를 성실하고 똑똑한 인간으로 키우자고 하니 제 밥 먹고 컸다고 뿔질을 한다.

내가 승호를 우리 아버지가 나를 키우듯 어려서부터 신발을 옳게 신겨줬더라면 얼마나 대견하고 믿음직한 청년으로 자랐을것인가. 앞날의 전기공업부문을 억세게 떠받들고나갈 유망한 일군으로 촉망될게 아닌가.

아래목에 누운 안해도 자주 몸을 뒤채는것으로 보아 잠 못들고있는것 같았다. 하긴 어머니이니 어머니다운 근심이 어찌 한두가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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