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13
가양도에 파견했던 조사조가 돌아왔다.
그들은 현지에서 고생하며 많은 자료들을 얻어내기 위해 애를 쓴것이 알리였다.
정준하는 그 자료들을 가지고 지배인방으로 건너갔다.
(이 자료들을 보면 지배인이 뭐라고 할가. 자료들만 봐도 공사는 생각했던것보다 힘들것이 틀림없지 않는가.)
그가 지배인대기실에 들어설 때 최장근은 무슨 일로 왔다가 돌아가는 손님을 배웅해주러 나오고있었다. 지배인은 인차 돌아서 들어왔다.
그들은 앞상을 가운데에 놓고 마주앉았다.
정준하는 자료들을 내놓으며 가양도에 갔던 조사조가 돌아왔다고 했다.
《수고많았겠소.》
최장근은 곧 자료들을 하나하나 보아나갔다. 일반조사자료들도 보고 측량자료들도 주의깊이 보았다. 여기에 기초하여 전력설계에서 도면을 그릴것이다.
지배인은 한번 본 자료들을 다시 음미하듯 또 찬찬히 훑어보았다.
표정의 변화가 없이 그저 뜬뜬하기만 했다. 다본 다음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낯빛은 더 무거워진듯싶었다.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자료를 보니 어떻습니까?》
정준하는 최장근의 언덕이마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지배인은 무엇이 배기는듯 긴 허리를 굽히고 자리를 뭉그적거리더니 느릿이 입을 열었다.
《설계도면이 대략 어떻게 나오리라는걸 자료를 보고도 짐작할수 있소. 건설비용과 로력을 비롯한 투자액이 예상보다 훨씬 더 들것 같구만. 이걸 감당할수 있겠소? 우린 건설을 말로 하는게 아니라 실천해야 할 사람들이요.》
그의 생각이 실린 두눈의 시선은 창너머 어디엔가 가 헤매고있었다.
괴로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지배인의 얼굴에 저녁어스름이 비낀듯 컴컴했다.
그는 퍽 힘들게 입을 열었다.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시작했다가 예상치 않은 난관에 부닥쳐 중도반단하게 될수도 있지 않겠소?》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제라도 철회하는게 현명한 생각인것 같소. 물론 가양도공사는 해야 하오. 언제 하는가. 이제부터 한 3년동안 준비를 잘 갖췄다가 와닥닥 들이대잔 말이요. 그렇게 해야 성공하오.》
정준하는 최장근이 가양도공사계획을 포기하자는 소리에 절로 한숨이 나갔다. 조사조를 파견할 때부터 막아섰던 사람이니 물어온 자료들을 보고 속이 편할리 없었다.
정준하는 신경이 살아오르는것을 참았다.
《하자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큰것도 작아보이고 하지 말자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당콩알도 호박만 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하는 소리가 목너머에서 끓었다. 꿀꺽 삼키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큰 공사를 랑패없이 하자는 지배인동지의 의도는 좋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 당장 시작하면 랑패를 보고 조건이 마련되기를 몇년 기다렸다 하면 랑패하지 않는다는 말은 현실성이 없다고 봅니다.》
최장근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건 무슨 말인가. 준비를 착실히 갖췄다가 하는 일이 성공하지 아무러문 조급하게 서둘러서 무슨 잘되는 일이 있겠소.》
마침내 정준하는 흥분하여 목소리가 절절하게 울리였다.
《지금 가양도앞바다에 수천정보의 땅덩어리가 솟아오르고있습니다. 그걸 보고 가슴이 끓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몇년을 더 기다리자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간석지 새땅을 많이 얻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단 말입니까. 간석지건설사업소 사람들이 송전선공사가 안돼서 얼마나 안타까와하고있습니까.》
별안간 최장근이 기다란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쳤다. 서리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기사장, 혼자만 애국자연하지 말라구. 놀랍구만. 나는 뭐 그 땅을 보고 속이 편안한줄 아오? 준비없이 공사를 시작했다가 여러해 질질 끌기보다는 차라리 몇해 준비를 잘해가지고 짧은 시일에 해제끼는것이 더 좋겠기에 하는 소리요. 늙은 말이 길을 알아. 내 말을 들어 랑패없을거요.》
정준하는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서야 기사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지, 공사를 금년에 시작하면 왜 자꾸 실패할수 있다는 생각을 앞세웁니까. 지나친 로파심같습니다. 데리고 일하는 이 기사장이 그렇게도 미덥지 못합니까. 가양도공사를 더 미루어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올해중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정준하가 자기 립장을 명백히 표명하자 최장근은 두눈을 감았다가 뜨며 더운 숨을 내쉬였다.
《무슨 담보가 있나? 우리한테는 있는것보담 없는게 더 많소. 성에서도 아직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단 말이요. 그런 속에서 기사장이 막무가내로 내미는 그 배짱이 대담한 일군의 투지가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모험행위로만 보인단 말이요.》
《전력공업성에서도 우리 일을 지지합니다. 조형례국장동지도 가양도공사를 적극 밀어줄 준비가 돼있습니다. 성에서 아직 떠들지 않는것은 우리가 조사자료를 비롯하여 필요한 문건들을 갖추어 제출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그것을 지금 완성하고있는중입니다. 인차 성에 제출하겠습니다.
지배인동지, 저는 우리 로동계급의 힘, 집단의 힘을 믿습니다. 대중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발동하는것처럼 거대한 힘은 없습니다. 이 힘을 못 믿으면 누구든 백전백패합니다. 승리의 비결은 자기 힘을 믿는데 있습니다. 사상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부족한것은 찾아내고 없는것은 만들어냅니다.》
《사상으로 필승한다는것은 나도 알고있소. 기사장, 우리가 송전선공사를 적게 해봤나? 가양도공사는 자료만 봐도 벌써 난공사요. 송전선건설력사에 없는 공사란 말이요.》
《아무리 그런 공사라 해도 우리가 마음만 합치면 가능할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배인동지, 우리가 대형고압변압기들을 대보수할 때도 우리 힘과 기술로 할수 있다고 장담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래도 어쨌든 우리 힘으로 해내지 않았습니까.
지배인동지는 누구보다도 신심을 갖고 해보자고 저의 등을 밀어주었지요. 지금도 지난해처럼 힘껏 밀어주십시오. 아무래도 돌격대대장노릇은 제가 해야 할게 아닙니까. 과감한 공격정신만이 이깁니다.》
정준하의 목소리는 열정에 넘쳐 마디마디 기백있게 울리였다.
《물론 그런 대형변압기를 우리 힘으로 대보수한건 놀랍지만 가양도공사는 또 그것대로 다른 형태의 곤난을 수없이 안고있소. 가양도해협을 어떻게 극복하겠나.》
《너무 지나치게 난감해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나 생각할탓입니다. 두억시니는 볼수록 커진다고 무섭구나 하고 보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우린 일단 결심한 이상에는 말보다도 행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 그래서 이 조사자료들과 측량자료들을 성에 올려보내자고 합니다.》
지금 환경과 조건만 옴니암니 따져보다가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지휘성원들인 우리 일군들이 가양도공사의 앞장에서 나를 따라 앞으로 하고 구령을 칠 때는 왔다.
우리들이 마음을 합쳐 대중의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화약이 되고 불길이 돼야 승리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정신적으로 무기력하면 시대의 락오자가 된다. 시대의 퇴물이 된다면 그것이 금수와 무엇이 다른가.
국토를 넓히고 광대한 농토를 얻는것처럼 긴절한 과업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강성대국건설에서 큰 몫을 수행하는것으로 된다.
내가 외국에 가서 일해야 할 중대한 과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양한 리유가 어데 있는가. 바로 가양도송전선공사를 버리고갈수가 없어 이 자리를 뜨지 못한것이 아닌가.
얼마후 정준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장근은 출입문가로 걸어가는 기사장의 뚝 찍은것 같이 탄탄한 몸집을 시샘하는듯 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건강한 몸집에 끓는 정열이 넘쳐서인가, 저 사람한테서는 늘쌍 어데서 저런 어마어마한 힘과 신심이 나올가.
대형변압기사건으로 그만치 고초를 겪고도 통 자중할줄 모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것이 아닌가.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자는건 좋지만 누군들 그걸 몰라서 못하는가, 뒤일이 우려돼서이지…
내 지금껏 적지 않게 지내보니 배짱은 서뿔리 내대는게 아니였다.
꼭 후환이 오기마련이다.
대체로 왁왁 일을 내미는 사람보다 앞뒤를 봐가며 용의주도하게 조용히 사는 사람들, 눈치있게 사는 사람들이 제자리를 오래오래 지키고있지 않는가.
비록 자리지킴이나 한다는 소리는 들어도 그편이 훨씬 안전하다는것이다.
《가양도해협… 물너비 2 500메터!》
최장근은 큰 키를 조금 굽히고 방안을 거닐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앞에 검푸른 파도가 흰갈기를 곤두세우고 달려드는듯만싶어 머리를 저었다.
다시금 기사장에 대해 생각했다.
정준하는 어떤 사람인가. 아무리 봐도 배짱있는 일군이 틀림없다. 지성으로 다져진 자신만만한 투지와 대담성, 하다면 그 대담성이 어데서 오는것인가. 저 사람이 이제는 거취가 달싹해서 흥분을 앞세울 나이도 아니지 않는가.
학창시절부터 전기공학은 맨 앞자리에 서야 하므로 더없이 힘들지만 굳이 그 길을 택했노라고 한 정준하가 아니였던가. 그때로부터 자기가 택한 인생의 길을 드팀없이 걸어오는 정준하가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값있는 인생길을 걸어가도록 오래전에 교단에서 가르친 사람이지, 하지만 이 마당에 와서는 왜 그가 하는 일이 위태롭게만 보이는가, 그 격차가 어데서 오는것인가, 그것을 메울만 한 힘이 나에게 있는가.
최장근은 긴 숨을 후유― 내쉬며 혼자 개탄했다.
기사장실로 돌아온 정준하는 지배인에 대해 줄곧 생각했다.
그렇게도 신심이 없어하는 무거운 표정, 이제라도 공사계획을 철회하고 몇년 준비를 갖춘 다음 하자고 말하는 지배인, 거기에는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 깔려있는가.
걸음걸음 두려워하는 마음, 왜 그리 겁부터 앞세우는가.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럴가.
정준하의 가슴은 돌을 안은듯 무거웠다.
얼마후에야 그는 다시 자신을 다잡았다. 파도높은 해협을 횡단해야 하는 전기공사가 물먹듯 쉽다면 무슨 걱정 할것이 있는가. 만난을 웃으며 맞받아나가는 사람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수 있을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송전선건설자들은 남모르는 수고를 많이 하는 애국자들이라고 그토록 높은 평가와 신임을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가 하는 일이 힘든것이라고 몸소 직승기까지 보내주신 그 사랑을 잊을수 있는가. 그 사랑을 자나깨나 가슴에 안고사는 사람은 어데서나 천백배의 힘과 지혜의 샘이 용솟음치는 법이다.
정준하는 다시 새로운 흥분이 솟구쳐올라 피줄이 툭툭 높뛰는것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