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10

 

전력공급과사무실은 청사의 아래층에 있었다.

방처옥은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안을 알심있게 밀고 닦아냈다. 방바닥이 반짝반짝하고 책상들이 번들번들 빛을 냈다.

전화기도 구석구석 닦은 다음 자기 장안에서 향수병을 꺼내 송화기에 살짝 뿌려넣었다. 그길로 바깥마당에 나가 물을 길어다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난 화단에 뿌려주었다.

안팎이 청신하여 기분이 버쩍 들었다. 청소도구들을 제자리에 건사한 다음 자기 책상에 가앉아 장부책들과 문서용지들을 꺼내놓았다.

처녀는 방거두매에서만 알뜰한것이 아니였다. 복잡한 통계들을 처리하는데서도 매사에 정확하고 깐깐했다. 늘 봐야 머리단장, 옷차림이 깔밋하여 그의 맺고끊는 성품이 그대로 엿보이게 했다.

이때에야 늙수그레한 부원이 들어오며 미안한듯 너스레를 피웠다.

《처옥인 언제한번 내 손에 밀대를 쥐여주는적이 없구나. 래일은 더 빨리 나와야겠구만.》

처옥은 방그레 웃었다.

《그럼 제가 더 일찍 나오지요.》

《요렇게 알뜰하고 고운 체네를 우리 며느리 삼으면 좋겠다―》

그의 늘어진 소리에 맞추어 처옥은 롱담도 곧잘 받았다.

《어서 그렇게 하세요.》

《네가 우리 집에 아들이 없는줄 아는게구나.》

그들이 이러고있을 때 과장도 나오고 부서성원들이 나와 간단히 아침모임을 끝냈다.

하루일이 시작되였다.

방처옥은 의자등받이에 몸을 바싹 붙이고 지배인, 기사장한테 결재받아야 할것들을 익숙한 솜씨로 써나갔다.

단정하고 깔끔한 자세로 앉아 일을 순차성있게 착착 밀고나가는 그의 단아한 모습을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은 홀린듯이 바라보군 했다.

매달 전기계약을 맺으려 공장, 기업소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는 전달에 쓴 전기소비량을 통계내여 이미 과장, 기사장, 지배인의 결재를 받은것을 책상우에 있는 콤퓨터로 전력공업성에 보고한 다음 곧 문건발송준비를 했다.

이어 이달 보름동안에 쓴 전력소비통계인 순보를 냈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건반우에서 경쾌하게 뛰놀았다.

다음은 송수화기를 들고 시, 군송배전소들의 담당부원들을 찾았다.

《옥천군송배전소입니까.… 녜, 녜, 그 군에서 올려보낸 전력료금수입실적이 맞지 않습니다. 왜 한두번도 아니고 매달 맞지 않습니까. 전력공급실적과 료금수입이 맞아야 되지 않습니까. 이달에도 료금수입이 96%밖에 안되는데요. 나머지 4%는 어데 갔습니까. 찾아야 합니다. 국가전기를 무료로 소비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성미가 쌀고 삽삽하다가도 옳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었다.

방처옥은 분기보를 낸 전력소비통계표를 과장한테 주어 수표를 받은 후 그것을 들고 기사장실로 올라갔다.

처녀는 쭉 뽑힌 키가 호리호리하고 코날은 상큼했다. 동무들은 그한테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고들 말한다. 체육대학 예술체조학과를 다녔으면 잘 맞았을걸 뚱딴지같은 전기전문학교를 나올건 뭔가고들 했다.

그러니 말이지 한번은 아주 우스운 일을 당한적도 있었다. 어느 타기관에 동무를 만날 일이 있어 찾아갔더니 늙은 정문수위령감이 별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누굴가? 자기는 전혀 모르는 아바이여서 처옥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체네를 잘 알아. 평양에서 왔지?》

《아니, 전…》

《내가 이래뵈두 체육애호가야. 그중에서두 예술체조구경이라문 종일이라도 텔레비앞에서 안 떠나. 체네가 그 댕기종목에 나오는 주인공선수라는걸 내가 알아. 귀엽구 걀름한 얼굴을 잘 기억하구있다니.》

이때에야 방처옥은 아바이가 자기를 잘못 봤다는걸 알고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었다.

《아버님, 전 예술체조선수가 아닙니다.》

《허허, 이렇다니. 뛰여난 재간이 있을수록 자기를 더 낮추구 숨기거던. 잘난체를 안한단 말이야.》

이런 일이 있어 처옥은 그때 일이 생각날 때마다 혼자 웃군 했다.

기사장실앞에 이른 처녀는 잠간 서서 옷매무새를 다시한번 더 살펴보았다. 몸에 착 붙은 연한 하늘색 양복을 구김살없이 맵시나게 조여입은 그 매츨한 자태가 양금채같이 녹신녹신해보였다.

그는 정준하기사장앞에 나설 때마다 몹시 부끄러워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것을 눈치채지 않게 일부러 태연하려니 별로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얼굴이 달아오르군 했다.

물론 장차 무엇이 되리라고까지 생각해본적은 없으나 어쨌든 정승호의 아버지라는것으로 하여 가까이 느껴지는 감정은 어쩔수가 없었다.

결재용지를 받아든 정준하는 깐깐히 따져보고나서야 결재를 해주었다.

《언제보나 처옥동문 문건정리를 깨끗이 하고 수자들이 정확하구만. 일하는 본새가 손끝이 여물었소.》

기사장한테 칭찬을 받기란 헐치 않았다. 그만큼 요구성이 높았던것이다.

방처옥이 지배인실로 갔을 때 최장근은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앞에는 한 청년이 찌뿌둥해서 서있었다. 그 청년은 도내 철탑, 전주대, 전기선들을 담당한 과의 부원이였다.

그는 이미전부터 자기 과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달라고 떼를 쓰던 사람이였다. 과에 몇해 있어봤댔자 궁색하고 재미가 적다고 했다.

옆부서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그곳 부서장이 동무처럼 손탁이 세고 성미가 세찬 사람이 자기네한테 필요하다고 하여 더 등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지배인한테 들이댔더니 집단주의정신이 없이 개인의 리기적목적에만 신경을 쓰는 그런 사람은 필요없다고 엄하게 닥달질을 했다.

《사람들이 자기 리해관계만 먼저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직장일, 공장일은 무어가 되겠소. 동무야말로 이붓아버지 떡치는데는 가도 친아버지 도끼질하는데는 안 갈 사람이요. 그렇게 먹을알 있는 구멍수만 찾는 사람은 어디에 가도 혁명과업수행을 위해 몸바쳐 일하지 못해.》

지배인은 방처옥이 나타나자 말없이 문건에 수표를 해주었다. 그는 녀학생처럼 허리굽혀 인사하고 대기실로 나왔다.

그는 여라문시 넘어 시내에 나섰다. 과장이 어느 기관에 갔다올 과업을 주었기때문이였다.

거리는 사람들의 물결로 활기로왔다.

처옥이 과장으로부터 받은 임무를 다하고 팔목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였다. 곧 집쪽으로 걸어갔다. 이런저런 종작없는 생각에 잠겨 걷던 그가 청년공원앞으로 지나갈 때였다.

저기 들여다보이는 넓다란 공지에서 정구를 치는 사람이 정승호같아보여 걸음을 딱 멈추었다. 잘못 보지 않았는가 하여 다시 보았다.

틀림이 없었다.

어쩔가? 가까이 갈가? 정구를 같이 치는 동무들이 있어 가기가 서슴어졌다. 그가 오도가도 못하고 바잴 때 승호도 처옥이를 알아보았는지 정구채를 다른 동무한테 넘겨주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방처옥은 공원안의 은행나무밑을 지나 몇걸음 마주가며 활짝 웃었다.

《언제 왔어요?》

처녀가 먼저 두눈에 남실남실 넘치는 기쁨을 반짝 빛내이며 물었다.

《여러날 됐소.》

그들은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여러날 됐다는 소리에 방처옥은 정차게 웃으면서도 크고 고운 눈을 살짝 할겨주었다.

《저한테 찾아올 시간까지 바쳐서 정구를 치느라고 수고가 많구만요.》

처녀가 노여운 어조로 비꼬아주자 승호는 시무룩이 웃으며 변명조로 뇌이였다.

《실은 오늘 저녁 찾아갈려댔소.》

《고마와요. 졸업은 했어요?》

《다 끝내고 왔소.》

《정말 수고했어요. 졸업시험을 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배치는요?》

《도송배전부라던지… 차라리 전에 일하던 시송배전소로 갔을걸…》

시답지 않다는 소리다.

《왜요? 오, 아버지와 같이 있게 돼서 부자연스러워요?》

《이모저모로 자유롭지 못할것 같소. 난 구속을 받는게 제일 싫소.》

《기사장동지 같은 훌륭한 일군밑에서 배우는게 더 좋을것 같은데요.》

승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쩐지 심드렁한 표정이다. 쭉 뽑은 키와 주먹코, 숯덩이로 그어놓은것 같은 꺼먼 눈섭 등 어느모로 보나 남자답게 생긴 승호지만 왜 그런지 골기가 없어보여 처옥은 가슴이 허전해지는것 같았다.

승호는 짝패가 정구를 치자고 부르는것을 좋은 기회로 여긴듯 처녀에게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곧 그쪽으로 뛰쳐갔다.

처녀는 다시 혼자 걸었다. 자기는 그토록 열렬히 반가와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승호는 썩 내키지 않아 하며 심드렁해하는듯 한 기색이였다. 무슨 뜻대로 안된 일이라도 있었는가. 아니… 처옥은 고개를 저었다.

언제부터 승호의 마음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던가. 그렇다. 분명히 이상이 생겼다고 처옥은 단정했다. 지난해 겨울방학에 왔을 때부터 승호의 표정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는것을 처녀는 아프게 기억하고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고 기다렸지만 여전하다는것이 헨둥해졌다.

틀림없이 아버지문제로부터 야기된것 같았다.

처옥의 아버지는 도출하도매소의 창고장이였었다.

얼마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창고장일을 그만두고 부업지에서 일하겠다고 자진해나섰다.

도매소에서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만두라고 만류했으나 자기는 원체 농사군이였다고 땅냄새를 맡아야 거뜬해진다며 한사코 우겨서 부업지책임자가 되였다.

그런데 이것이 승호의 비위를 거슬리게 될줄이야.…

《동무의 아버지도 현실을 알자면 멀었어. 그 좋은 자릴 내놓다니. 손에 쥔게 있어야 사람들도 낮추 붙고 안면도 넓어지지 않겠어. 그렇게 고지식해서 자식들이 손해라는걸 왜 우리 아버지나 동무 아버진 모를가.…》

이쯤되니 처옥이도 가만있을리 만무했다.

《긴말을 안하겠어요. 더는 우리 아버지도 그리고 동무의 아버지도 모욕하지 마세요. 그래 동문 부모덕에 그렇게도 호강하고싶어요?》

《호강하자는게 아니야. 처옥이, 우린 현시대에 살고있어. 눈을 뜨고 잘봐. 우리가 뭐가 모자라서 남들처럼 못살아. 우리보다 못한 애들도 부모덕에 제 잘난듯이 으시대는걸.… 난 이게 분해서 그래.》

《눈은 동무나 바로 뜨라요, 청맹과니.》

이때부터 그들의 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얼마나 열렬하던 그였던가. 밤마다 처옥이가 그리워 잠 못들던 승호였다.

…방처옥과 승호는 별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였다.

처옥이 전기전문학교를 졸업했을 때였다. 집에 와있던 그는 무슨 일이 있어 다시 모교에 한번 다녀오려고 밤차에 올랐었다.

그가 앉은 옆좌석에 한 끼끗한 청년이 앉아 무슨 전기공학같은 책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손님들과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니 그는 처옥이 졸업한 바로 그 전기전문학교에 입학통지서를 받고 첫 등교를 가는 길이였다.

후에 알고보니 승호는 처옥이보다 나이가 3년우지만 학교는 후배가 되여 들어갔다. 승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송배전소 로동자로 몇년 일하고 학교에 가는 바람에 좀 늦어졌던것이다.

차가 절반쯤 넘어 달렸을 때 갑자기 승호가 괴로와하기 시작했다.

배가 몹시 아프다고 했다. 처옥이 손님들한테서 약을 얻어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 그 차칸에 어느 군병원 외과의사가 타고있어 그가 진찰해보았다. 충수염이라고 했다.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맹장이 터져 큰일난다고 했다. 그런데 달리는 차에서 수술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더 지체할수 없는 일에 손님들은 다들 난감해했다.

그때 곁에서 환자를 지켜보고있던 방처옥이 조용히 일어섰다. 처녀는 기차가 군소재지 역에 멎어서자 제잡담 환자를 둘쳐업다싶이 부축하고 승강대를 내렸다.

캄캄한 밤, 낯설은 타군 읍에서 군병원을 물어가며 힘겹게 찾아갔다. 처녀도 환자도 다 비오듯 줄땀을 흘렸다.

병원에서는 즉시 수술해주었다. 경과는 좋았다.

이렇게 알게 되여 방처옥은 그후부터 선배답게 후배인 승호에게 자기가 보던 교과서, 참고서는 물론 학업에 필요한것을 포장하여 자주 소포로 부쳐주었다. 부칠 때는 누이인 경애의 이름으로 보냈다.

이렇게 접촉이 잦아지면서 견인력이라 할가 서로서로 정을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하여 날이 갈수록 가슴이 뜨거워졌다.

방학때마다 고향도시로 오면 승호는 맨먼저 처옥의 집부터 찾아갔다. 처옥은 물론 부모들도 그를 반가이 맞아주군 했다.

이렇게 3년을 지내왔다. 그런데 아버지가 부업지로 내려간 이후부터 승호의 걸음이 차차 떠지기 시작하는것이 알려 처옥은 남모르는 가슴을 앓고있었다. 정에서 노여움이 난다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뼈속까지 저리게 했다.

하지만 승호가 이러는것은 단지 아버지문제뿐이 아닌 또 다른 고민도 있어 그런다는것을 아직은 처옥이도 알지 못했다.

어깨를 처뜨리고 걸어가는 방처옥은 호― 더운 숨을 내쉬였다.

 

×

 

이 시각 정준하는 초급당비서방에 앉아있었다.

장유상당비서와 몇가지 사업토론을 하고나서 탁수환이에 대한 말을 꺼냈다.

《요즘 탁동무한테 한가지 일이 생겨 생각이 많아진것 같습니다.》

《그래요?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당비서는 얼굴에 의아한 표정을 띄웠다.

정준하는 탁수환의 시집간 딸이 차마 아버지가 당원이 아니라는 말이 입밖에 나가지 않아 본의아니게 시아버지한테 숨기고는 속상하여 본가에 와 울었다는 말을 했다.

순간 장유상의 얼굴이 신중하게 굳어졌다.

《그건 참 처음듣는 말인데요. 기사장동문 탁동무한테서 직접 들었습니까?》

《아주머니한테서요. 탁수환동무는 말이 적은 사람입니다. 딸이 본가에 와 울면서 아버진 남들보다 무엇을 못해서 당원이 못됐는가 하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더 말이 없어졌지요.》

《탁동무는 언제봐도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말없이 앞장서군 하던데…》

《뿐만아니라 대담하게 일을 제끼는 청년들이 위훈을 세우도록 큰소리없이 밑받침해주는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들 탁수환동무를 두고 말은 크게 없어도 담대한 사람이라고 한답니다. 어떤 어려운 작업장에 가도 거기에 탁수환이만 있으면 마음이 놓이군 하지요.》

정준하는 언제인가 역전공원에서 부모를 대신하여 신입병사의 배낭을 꾸려주고 바래준 탁수환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때 크게 감동됐습니다. 별치 않은 일같지만 실상은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인간의 고상한 인간미가 그대로 보였으니까요.》

장유상이 무거운 표정속에 끄덕끄덕하더니 나직이 입을 열었다.

《탁동무에 대해서야 나보다 기사장동무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예, 그래서 비서동지를 찾아온겁니다.》

탁수환은 어렸을 때 중병에 걸렸었다. 낳아준 부모조차 눈물속에 도리머리를 젓는 그를 온 병원이 떨쳐나 살려냈다.

탁수환은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제도의 참뜻을 말로써가 아니라 실체험으로 절감하게 되였다.

부모들과 이웃들의 극진한 보살핌에 건강은 회복했지만 원체 약한 체질을 추켜세우는데는 많은 시일이 걸리였다.

그러다나니 그는 동창들과 동무들이 인민군대에 입대한다, 대건설장으로 진출한다 하며 떠들썩할 때면 병약한 몸을 탓하며 괴로움으로 가슴을 치군 하였다.

청춘시절도 다 흘러가고 40대에 들어서서야 육체가 점차 건장해지기 시작했다.

탁수환은 지난날을 봉창하듯 직심스럽게 일했다.

그의 성실성에 감복된 많은 사람들이 입당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난 나라의 은혜로 살아난 사람이다, 거기에 천의 일, 만의 일도 보답 못한 내가 감히 어떻게 입당에 대해서 생각한단 말인가, 정말 내가 그런 자격이 있다고 생각될 때 입당을 청원하겠다 하며 제켠에서 두말 못하게 하군 했다.

일단 한번 아니 하면 돌려세우기 어렵다는걸 잘 아는 사람들은 더이상 권고하지 않았다.

한해, 두해 시일이 흐르고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탁수환의 입당문제도 희박해졌다.

《그는 지금껏 오랜 나날 진심을 바쳐 일해왔습니다. 이번에 딸의 원망을 사면서 아버지구실을 못했다는 죄책감에 잠겼던것 같습니다.》

《듣고보니 제 잘못이 큽니다. 당일군이라는 사람이 속을 볼줄 몰랐단 말입니다, 겉만 보았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뒤에 선 장유상은 자신을 질책하듯 의자등받이를 두손으로 세괃게 틀어쥐였다.

《기사장동무가 오늘 탁동무의 가슴속 고충을 이야기해주어 고맙습니다. 본인의 요구라고만 생각하고 기다리다나니 놓친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이번공사를 통해 탁동무의 고충을 가셔주는게.》

정준하는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그래서 내 이 방에 들어올 멋이 있다니까요, 하하.》

《하하…》

(내가 사람들과의 사업을 경시했구나.)

사람들이 안고있는 기쁨과 괴로움은 다 제나름대로가 아닌가. 그걸 깊이 볼줄 모르면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줄수 없고 결국 그것은 우리 집단의 화목과 단합에 저해를 주게 된다.

더구나 가양도송전선공사와 같은 큰일을 앞두고 가슴속에 그늘을 안고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한마음으로 뭉치게 할수 있겠는가. 집단의 힘은 다같이 마음을 합치는데 있는것이 아닌가.

힘든 일이라면 늘 앞장에 서는 사람으로 대중의 인정을 받는 탁수환동무, 내가 중요한 한고리를 놓치고있었구나.…

장유상당비서의 생각은 곬을 탄 내물마냥 흐르고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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