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9

 

밤늦게 퇴근하여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던 정준하는 요란한 전화종소리에 놀라 깨여났다.

밤에 울리는 소리는 작아도 크게 들린다더니 그래서인지 별로 더 크고 다급한것 같았다. 잠옷바람으로 송수화기를 들었다.

《정문에서 전화합니다. 방금 하삼포광산에서 급한 독촉전화가 왔습니다. 신설갱에 물이 자꾸 차올라 침수될 위험에 처했답니다. 이제 당장 나와 갱내 까벨선 전기공사를 하지 않으면 완전 침수된답니다.》

정준하는 벽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5분전이였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곳 광산 정문접수에 전화를 걸었다.

정문경비원은 상황을 자세히 말해주었다. 일은 눈섭밑에서 떨어지는 법이다. 전기부문일이란 다 그렇게 급한것뿐이다.

(맏매부가 또 일을 저질렀구만.)

정준하는 자리를 차고일어나 작업복을 입었다.

사무실로 달려나간 그는 비상소집을 일으켜 직장장이하 건설직장 사람들을 불러냈다.

먼저 나온 사람들이 뛰여다니며 창고들을 열어젖히고 까벨선가설에 필요한 작업공구들을 갖추었다. 탁수환은 목수연장들을 가방에 넣어 둘러멨다. 그는 자다가 나와서인지 낯빛이 좀 우울해보이는것 같았다.

작업준비를 하는데서도 태평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울리였다. 얼굴이 넙적하고 몸집만 좋은게 아니라 목소리도 천성으로 커서 그 혼자 떠드는것처럼 들렸다.

늘 봐야 한짝패가 되여 일을 제끼는 동갑이 용만이가 곁에서 씩둑거리였다.

《여― 이밤에 귀여운 토끼동무를 어떻게 떼놓고 나왔나?》

《말도 말라우. 토끼동무가 허리끈을 꼭 붙잡고 안 놔줘서 세시간이나 얼렸다구.》

친구들이 그의 꽝포에 재미가 나서 웃었다.

토끼동무란 자기의 안해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태평은 몇달전에 장가를 간 새서방이였다. 새색시는 차분하고 예쁘게 생겼다고 한다.

태평이처럼 툽상스럽게 생긴 사람한테 안해는 어떻게 물찬 제비같은 녀자가 태웠는지 모르겠다고들 한댔다. 그는 친구들한테 자기 안해를 말할 때는 귀엽다는 의미를 에둘러 토끼동무라고 익살스레 부르군 하여 이제는 그것이 그 녀자의 대명사가 되였다.

날은 활짝 밝았다.

자동차는 건설직장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달렸다.

연해군은 도소재지의 다음지경으로 붙어있어 그리 먼곳이 아니였다. 하지만 광산까지는 퍼그나 더 가야 했다.

연해군이 통채로 서해를 끼고있는 쌀고장, 벌방지대라고 하지만 하삼포광산은 거기서도 더 나가 바다가에 자리잡고있었다. 값비싼 유색금속광물을 캐내는 전도유망한 광산이였다.

자동차가 뽀뿌라나무들이 드문드문 서있는 언덕에 자리잡은 광산지휘부마당에 멈추어섰다. 다들 내려 도구들과 까벨선퉁구리들을 메고 마중나온 갱장을 따라 신설갱으로 들어갔다.

갱이 바다물밑으로 들어갔기때문에 산에 있는 광산들보다 침수위험이 더 크다고 했다.

다들 갱안에 들어서자 무엇이나 어수선하고 처음 보는것들이여서 기분이 서름서름했다. 정준하는 갱장과 작업대상을 토론하며 앞서 걸었다.

지상에서 30도경사지의 갱도를 따라 땅속으로 280메터를 걸어내려가야 했다. 거기서부터는 바다짠물이 갱도안에 차있었다.

무거운 까벨선퉁구리들을 나무몽둥이에 꿰여 둘이 하나씩 메고 가파로운 경사지를 따라 걸어가는 그자체가 힘든 일이였다.

이것은 또 약과다.

줄땀을 흘리며 물면까지 간 그들은 여기서부터는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야 했다. 간데라불을 사방 걸어놓아 대낮같이 밝은 갱도안에서 송전선건설자들은 옷들을 훌훌 벗어 한쪽에 뭉그려놓고 물속으로 발볌발볌 들어갔다.

빨리 전기공사를 해서 이 물을 다 퍼내야 했다. 물은 몹시 찼다. 앞장서서 들어간 태평이 그 실한 몸뚱이를 물속에 풍― 잠그었다.

《엑― 치거…》 하고 너스레를 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얼마 못 있어 맨먼저 뛰쳐나왔다. 다들 억― 억― 하며 비명을 지르다가 태평의 뒤를 쫓아 뛰여나왔다.

때는 5월초여서 바깥날씨는 훈훈했지만 아직 갱도안의 물은 얼음장같았다. 바다물이여서 그렇게 찼다. 짠 소금물은 일반물보다 스밈성이 높고 차기도 곱절이나 더 차 수천개의 바늘로 피부를 콕콕 찌르는것 같이 참기가 급했다.

태평은 구리몽둥이같은 팔, 다리를 어뜩비뜩 놀리고나서 주먹을 휘두르며 한소리 크게 웨쳤다.

《태평이 다시 뛰여나오면 비겁분자다!》

물속으로 첨벙 뛰여들자 청년들이 와― 하고 그의 뒤를 따라 첨벙첨벙 뛰쳐들었다. 물바래가 총알처럼 튀여나 갱도벽을 때리였다.

전투는 시작되였다.

정준하와 건설직장장도 뒤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물은 살을 에이는것처럼 차거웠다.

탁수환은 맨나중에 들어섰다. 그는 목수여서 먼저 나무쐐기들을 깎아야 했으므로 그 작업부터 했다. 갱도벽을 따라가며 정과 메질로 까벨선을 늘여야 할 구멍을 뚫어야 했다.

그 뚫어놓은 구멍에 탁수환이가 쐐기를 든든히 박아나갔다. 갱도안은 뚝딱거리는 메질소리로 가득차 소란스러웠다.

그중에서도 태평의 메질소리가 제일 힘차고 컸다. 역시 용만이와 한조가 되여 손을 맞추었다. 뚝심을 쓰는데서는 태평이를 당할 사람이 없을것 같았다. 무슨 일에서나 성실했다.

그는 동갑나이들이지만 키작은 용만이와 산줄반의 송강림은 총각들이여서 자기를 형님으로 대접하라고 곧잘 훈시했다.

지금도 무슨 소리를 했는지 태평이네조 주변에서 자주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지군 했다. 동무들은 그와 같이 일하면 힘든줄을 모르겠다며 다들 좋아했다.

정준하와 직장장은 까벨선을 늘여갈 위치와 올리굴, 내리굴에서 작업해야 할것들과 까다로운 지점들에서의 타개책들을 찾아나갔다.

일은 간단치 않았다. 갱도를 따라 물길을 헤치고 점점 깊이 들어가 이제는 옷을 벗어놓은 장소가 아득히 멀어졌다.

점심식사도 물속에 서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오가는데 시간을 다버려야 한다. 그래서 점심을 큰 나무함지에 담아 물우로 띄워들여왔다.

점심이라야 두부쪼각과 시금치나물, 젓갈을 조금씩 넣고 빚은 주먹밥이였다.

《야― 요것 한덩이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못하겠구나―》

몸이 좋아 대식가로 알려진 태평의 늘어진 소리에 용만이가 그것도 다행이라는듯 《굶는것보다야 낫겠지 뭐.》 하고 받아넘긴다.

주먹밥 한덩이씩과 물병에 담아온 맹물을 꿀꺽꿀꺽 마시고는 또 헹야― 헹야― 먹임소리에 맞추어 메질들을 했다.

물속이여서 담배 한대도 피울수가 없어 입안이 참을수 없게 근질거렸다.

그래도 건설자들은 내색하지 않고 노래를 불러가며 일했다. 그들을 보는 정준하의 가슴은 뜨거웠다.

그는 저녁녘에 전투원들보다 조금 먼저 지상으로 나왔다. 이곳 군송배전소 소장을 하삼포광산으로 오라고 호출했던것이다. 그가 도착했다는 기별이 왔다.

이 광산이 이런 난관을 겪게 된것은 전기사정으로 인한것이였다.

연해군송배전소는 무얼하고있었는가. 더구나 그 소장이 다름아닌 자기의 손우매부였다. 맏누이의 남편인 황소장은 나이 60이 다된 오랜 군송배전소 소장이였다.

그들은 광산지휘부가 가까운 바다가 둔덕에서 만났다. 황소장은 다부진 몸집에 머리가 벗어진 록록치 않은 령감이였다.

소장은 타고온 자전거를 끌고 정준하앞으로 다가오며 먼저 나무라는 소리부터 했다.

《아니, 우리 군에 왔으면 누이네 집에 들려 하루밤 자고 가는 일이 옳지 이렇게 나이많은 매부를 오라가라 해야 옳은가.》

《셈평좋게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고있소. 그래 광산 신설갱에 전기를 못 줘서 물이 차게 해놓고도 할 소리가 있소?》

정준하는 참을수가 없어 내쏘았다.

첫마디부터 격한 어성을 터뜨리는 손아래처남을 황소장은 이상스럽다는듯 쳐다보았다.

《그저 잡아먹을건 돼지라더니 만나자마자 나한테 역정을 써야만 속이 편한가.》

《그럼 책임을 누구한테 따지라우. 매부가 연해군송배전소 소장이 아니요? 이곳 광산엔 순간도 전기를 끄면 안되는 곳이란걸 모르우. 한시간도 전기를 꺼서는 안되는 곳이 아니요?》

화가 난 황소장은 노르끼레한 눈알이 살아오르며 이마가 댕댕해서 마주 소리를 질렀다.

《그걸 누가 모르나. 전압주파수가 낮아서 양수기들이 돌아가긴 해두 속도가 떨어지는걸 낸들 어떡허라나. 손으로 잡아돌리라나?》

《주파수가 떨어져서 물을 못 푼적은 많지 않아요. 문제는 변압기관리를 등한시하다나니 그렇게 되지 않았소. 사전에 미리미리 접지저항을 낮춰주고 제때에 점검보수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게 아니요.》

《글쎄 그건 우리 군송배전부가 잘못했다 하세.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우리 군엔 아직도 낡은 송전설비가 적지 않게 있어. 그것들이 코코마다 애를 먹이네. 이것때문에 내 머리털이 다 빠졌어.》

《그 송전설비들때문에 골탕을 먹는다는건 알아요. 그렇지만 그것도 관리를 잘못해서 자꾸 접지사고, 단락사고가 나는게 아니예요.》

《도송배전부는 뭘하구있나? 왜 낡은것들을 싹 페기하지 못하나.》

《지금 계속 페기하는 중이지요. 단번에 다할순 없지 않소.》

《에―이, 소장노릇을 더 못해먹겠네. 토리개짬에 손가락을 넣고 견디면 견뎠지 자네 등쌀엔 못 견디겠어.》

《그럼 다음해에 환갑이나 지나선 그만두겠다는거예요?》

《당장이라두 관두면 좋겠네. 소장노릇 15년에 호물때기령감이 됐어.》

《호물때긴 무슨 호물때기예요. 그따위 소릴 한번 더 했다간 혼쌀날줄 알라요.》

《지금보다 더 혼내우겠나. 자네야 날 맨날 혼내우지 않나, 기사장이면 기사장이지.》

《나약한 소린 그만두고 광산변압기들과 전기설비들을 다 돌아보자요. 사실은 내 그래서 이리로 오라고 했수다.》

황소장은 담배 한대를 꼬나물며 자전거를 끌고 따라섰다. 그들이 얼마쯤 걸어갔을 때 저쪽에서 한 사나이가 마주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소장의 손을 붙잡기 바쁘게 지청구부터 했다.

《소장동무, 약속을 그렇게 헌신짝 차버리듯 할테요. 우리 관리위원회 소재지마을 변압기를 좀더 큰 용량으로 바꿔주겠다고 한 약속은 왜 아직도 꿩구어먹은 자리요?》

별안간 황소장이 두눈을 치뜨며 역증을 냈다.

《뭐라구? 관리위원장동무, 무슨 정신나간 소릴 하는거요?》

《전력공급부원이 그러던데요. 소장과 토론했으니 될거라구.》

《언젠가 부원이 그런 얼빠진 소릴 하더라니 싹 잘랐소. 약속은 무슨 말라죽은 약속이야.》 황소장은 꽥 소리를 질렀다. 정준하의 뒤에 따라서면서도 그냥 욕질했다.

《부아돋은 날 이붓아비 온다더니… 그저 저들만 전기를 더 많이 쓰겠다니, 송배전소가 주머니에서 전기를 척척 꺼내주는데인가 하는게지.》

정준하는 못 들은척 하고 걸었다.

그들은 퍽 오랜 시간 광산변압기들과 전기설비들을 돌아보고 전기공급을 잘할데 대해 의논했다.

맏매부는 이번과 같은 일은 다시 없을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는 읍으로 돌아가면서 집에 갔다 가라고 처남을 이끌었다.

정준하는 아무때건 한번 들리겠노라고 하며 매부를 바래주었다.

그는 돌아서서 다시 낡은 송전선설비들을 어떻게 하면 다 철페할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이 지구는 우리 나라에서 그중 전기가 먼저 들어온 곳이였다. 왜놈들이 우리의 지하자원을 략탈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송전선들을 세웠던것이다.

놈들은 동양경금속공장이요, 하삼포에 큰 군항을 세울 잡도리로 전기설비들을 되는대로 끌어들였었다.

돌이켜보면 왜놈들이나 미국놈들이 우리의 지하자원을 략탈하기 위한 첫 마수를 전기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던가. 유색금속이 나는 우리 도안의 일여덟개나 되는 군들만 봐도 매장지들만 쫓아가며 기형적인 송전선들을 차려놓았다. 그리고는 우리 나라의 금을 서로 경쟁적으로 빼앗아갔다.

이렇게 놈들이 오직 지하자원을 략탈하는데만 리용하기 위해 세웠던 전력공급계통망이여서 전후에 그 잔재들마저 깨끗이 쓸어버렸다.

인민경제의 기초공업부문에서도 첫번째로 꼽는것이 전기여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 군복차림그대로 전력공업부문 일군들부터 먼저 찾아주시였다.

해방된 그해 9월 24일 북조선전기총국을 찾아주신 그이께서는 왜놈들이 망하면서 파괴하고간 발전소들과 송전망시설들을 빨리 복구하여 전기를 더 많이 공장, 광산들에 보내줘야 한다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우리의 전력공업은 얼마나 빛나는 발전의 길을 걸어왔던가.

이 나날에 나자신도 전력공업부문의 한 일군으로 성장했다. 하여 전기공업발전에 큰 몫을 바칠 리상을 안고 뛰여다녔다. 하지만 아직 크게 한 일이 없어 부끄럽다.

그렇지만 온 나라가 전기를 풍족하게 쓰는데 이바지하려는 나의 리상은 변함이 없다. 나라에 전기풍년이 들면 우리의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가. 기뻐하실 그 모습을 그려볼 때마다 피가 뛰고 심장이 높뛰였다.

잊을수 없는 그날 밤이 어제런듯 떠오르며 끝없는 영광으로 가슴벅차오르군 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가도 오히려 더 또렷한 영상으로 방불히 떠올라 흥분이 앞서군 했다.

어느해 겨울밤이였다. 당시 정준하는 부기사장으로서 새로운 송전선건설을 책임지고 현지에 나와살고있었다.

이날도 종일 무거운 콩크리트전주들을 대형화물자동차에 실어 큰길가의 밭기슭에 부리워놓았다.

저녁부터 함박눈이 쏟아졌다. 노루꼬리만 한 겨울해라더니 정말 빨리도 어두웠다. 정준하는 아침부터 늦도록 힘든 일을 한 로동자들과 함께 일찌기 천막에 들어가 누웠다.

그도 피곤하여 어느새 잠들었는지 몰랐다. 추워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내리는 눈때문에 여간만 걱정이 아니였다. 래일 아침부터 그 길고 무거운 콩크리트전주들을 산등판까지 올려가야 했다.

그런데 눈이 와서 가파로운 산길이 미끄러워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였다.

몇시간쯤 잤을가 절로 깨여나 천막밖으로 나가보니 눈은 발목이 푹 잠기도록 내렸다. 다행히도 그사이 하늘은 맑아지고 반달이 반기듯 웃고있었다.

정준하는 곧 눈가래와 싸리비를 들고 콩크리트전주들을 부리워놓은 밭기슭으로 올라갔다. 래일 아침 눈을 치려면 얼어서 더 힘들게다. 저리 이제 얼기 전에 쳐놓자고 생각했다.

그는 곤하게 자는 사람들을 깨울것없이 혼자서 치자고 마음먹었다.

콩크리트전주들에 내린 눈을 쓸고나서 신작로를 가로잘라 길을 내며 눈을 쳐올라갔다.

그가 한참 땀을 흘리며 눈을 치고있을 때 웬 사람이 전지불을 비치며 다가와 누군가고 물었다.

정준하가 자기를 밝히고 콩크리트전주를 산꼭대기로 올려갈 길을 낸다고 말하자 수고한다며 손목을 이끌었다.

《어서 내려갑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부르십니다!》

《예?!》

정준하는 너무도 놀라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신작로쪽을 내려다보았다. 콩크리트전주들을 운반해다놓은 그 큰길옆에 몇대의 승용차들이 환한 전조등을 켜놓고 서있었다. 그는 그 일군을 따라 어떻게 그곳까지 따라내려갔는지 알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차에서 내리시여 몇몇 수행원들과 같이 무슨 말씀을 하고계시였다. 정준하는 코허리가 저려듦을 느꼈다.

(나는 벌써 한잠 자고 나왔는데 우리의 장군님께서는 이 추운 겨울밤 아직도 로상에 계시는구나.)

그는 장군님앞으로 달려가 어떻게 인사를 올렸는지 몰랐다.

그이께서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정준하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데리러 올라왔던 수행원이 그이께 말씀드렸다. 정준하는 이곳 도송배전부 부기사장이라며 콩크리트전주들을 운반해올려갈 길을 낸다고 했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로동자들은 다들 어데서 쉬는가고 물으시였다.

《저 아래골안에 천막을 치고 거기서 잡니다.》

《고생들 하누만, 이 추운 겨울에… 그러니 부기사장은 로동자들을 재워놓고 나와서 눈을 치누만. 혼자서 길을 다 낼수 있겠소?》

《눈이 얼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 송전선공사는 어데서 시작하여 어데까지 가는것인가, 또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운성변전소에서 시작하여 정림시를 지나 영천군까지 나갑니다. 300리가 넘습니다.》

《먼거리구만. 거기까지 이런 콩크리트전주를 몇대나 세워야 하오?》

정준하가 수자를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그렇겠다고 하시며 전주운반을 어떻게 하는가고 하시였다.

《자동차로 산밑에까지 실어다놓고 다음은 목도로 메여서 산꼭대기로 날라올려갑니다.》

《그 무겁고 긴 콩크리트전주들을 전부 목도로 메여올린다? 그토록 많은 량을 다?…》

장군님의 안색이 어두워지는것을 보고 정준하는 당황하여 얼른 한걸음 나섰다.

《장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목도를 하는건 늘 하는 일이여서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숫눈우에 자국을 찍으시며 수원들을 둘러보시였다. 다음은 방금 정준하가 눈을 쳐놓은 불빛에 비친 산비탈길을 올려다보시였다.

《저 가파로운 길 아닌 길로 무거운 콩크리트전주들을 목도로 메고 올라간단 말이지.… 안되겠소. 동무들, 보시오. 송전선건설자들은 다 애국자들입니다. 인민들을 보다 잘살게 하려는 당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토록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여서 이런 추운 밤에도 외진 산골짜기에서 천막을 치고 한지잠을 자며 새로운 송전선들을 건설하고있습니다.

누가 보아주는 사람도 없고 꽃다발을 안겨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애국자들을 위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우리 이 동무들한테 직승기를 보내줍시다! 비행기로 무거운 전주들을 다 날라주게 합시다.》

《아니… 장군님!》

정준하는 끓어오르는 격동으로 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이 감격과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이렇듯 그날 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크나큰 은정과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떠나가시였다.

다음날 사랑의 직승기가 날아와 전주들을 비롯한 무거운 물동들을 날라주어 공사기일을 훨씬 앞당겨끝낼수 있었다.

정준하는 지금도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며 경제의 생명선과도 같은 동력부문의 일군된 사명감을 다할 결심속에 씨엉씨엉 걸어갔다.

신설갱 송전선건설자들을 태운 화물자동차는 어슬어슬해졌을 때야 도송배전부앞에 들어와섰다.

정준하기사장은 자기 방에 올라가 볼일을 더 보고서야 퇴근길에 올랐다.

시내에 나선 그가 무심히 걸어가며 보니 앞서가는 사람이 탁수환이였다. 왜 이렇게 늦었을가? 문득 그가 오늘 종일 일을 하면서도 말 한마디 없었던 생각이 났다.

요즘 그의 기분이 아무리 봐도 저락돼있는것이 분명했다. 그는 걸음발을 다그쳐 탁수환이와 나란히 섰다. 기사장이 다가오자 그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데 들렸다 가는 길이요? 늦었구만.》

《그저 두루두루 좀…》

정준하는 직방 물었다.

《탁동무한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왜 낯색이 좋지 않소?》

《일이야 뭐… 그저 그렇지요.》

《아무리 봐두 생각이 많아진것 같은 표정이여서 내 묻는거요.》

탁수환은 허허 웃었다.

《참, 기사장동지두. 제가 요사이 몸살을 좀 합니다. 오륙이 지긋지긋해서 절로 기분이 무거워졌지요.》

《정말이요?》

《그럼요.》

(모를 소리다. 무엇인가 숨기는것 같은데.)

탁수환은 일부러 태연한 몸가짐을 지으며 슬며시 말꼬리를 돌렸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을가.

정준하는 탁수환이에 대해 자꾸 마음이 씌여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탁수환은 정준하가 관심하고있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였던것이다. 큰 전기공사가 있을 때마다 탁수환은 한몫씩 맡아 일을 제끼는 담찬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이 마음속에 자그마한 괴로움이라도 안고산다면 안될것이였다. 풀어주고싶었다. 하지만 탁수환이 속을 터놓지 않으니 별수가 없지 않는가.

정준하는 며칠후에야 그 내막을 알게 되였다.

어느날 제약공장 앞길로 걸어가다가 우연히 탁수환의 안해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기사장이 자기 주인과 가까운 사이라는것을 알고있어 언제보나 반가와했다. 정준하는 마침 잘 만났다며 요사이 집에서 무슨 일이 있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기사장의 진심을 듣고난 아주머니는 자기 세대주를 생각해서 그러는데 뭘 더 숨기겠는가고 했다.

《우리 세대주는 기사장동지가 못 미더워서 말을 안한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못했을거예요.》

아주머니말은 이러했다. 달포전에 자기 딸이 시집을 갔다고 했다.

며칠전에 시아버지가 무슨 말끝엔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 물론 본가집아버지도 당원일거고… 하고 혼자소리처럼 뇌였다고 한다.

그 순간 딸은 아니란 말이 차마 입밖으로 나가지지 않아 그저 못 들은척 하고 가만있었다 한다. 하지만 가슴은 방망이질하듯 했다. 새며느리라는것이 시아버지를 속이고있다는 죄책감에 등골으로 땀이 흘렀다고 했다.

딸은 속상하여 본가에 와서 울며 아버진 남들만큼 무엇을 못해서 당원이 못됐는가고 설분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날 밤 주인은 잠을 못 들었습니다. 담배만 자꾸 피우더군요.》

정준하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끔해져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려운 일일수록 늘 말없이 남먼저 나서는 사람, 무슨 일에서나 책임성이 높은 사람, 사람들 호상관계에서도 깨끗하고 고지식한 그가 그 괴로움을 홀로 썩이자니 속인들 얼마나 아팠겠는가.…

정준하기사장은 오히려 자기가 더 우울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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