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7

 

송강림은 일찌감치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은 차를 타고 멀리 나가 산줄작업을 해야 하므로 미리 준비할것이 있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아침부터 붙잡고 성화를 먹이는 바람에 예, 예, 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하고 얼렁뚱땅 얼려놓기 바쁘게 도망치듯 뛰쳐나온 그였다. 등뒤에서 어머니가 《잘 생각해봐라, 엉?》 하고 또 다짐을 놓는 소리에도 건성으로 대답해버리였다.

요즘 어머니는 어디서 처녀사진을 몇장씩이나 얻어가지고와서 들이대며 좋은 처녀들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강림은 청높은 소리로 웃었다.

《하하… 어머니수완이 보통이 아닌데요. 언제 이 많은 처녀들을 다 알고계셨어요. 이젠 한개 소대쯤은 되지 않아요.》

《남들은 너하고 같이 제대되여왔는데 벌써 아버지라는 소릴 듣는다. 그런데도 웃음이 나와?》

해군제대병사 송강림은 제대배낭을 집에 벗어놓은 후 공부에 열중했다. 그렇게 한 보람이 있어 시내 공업대학에 쉽사리 입학했다. 그때부터 성적이 높은 학생으로 지목되여 밤낮 공부만 파고들며 장가갈 생각조차 잊어버리다싶이 했다.

어머니가 조급하여 독촉하면 대학졸업을 하고서야 마련을 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아우성을 쳤다. 남들은 색시를 얻어놓고도 대학공부를 잘만 하더구나 하고.…

송강림은 어머니의 애타하는 심정이 리해되기도 했다. 젊어서부터 애오라지 나 하나를 보고 살아오는 어머니한테 어서 손자를 안겨줘야 생활에서 즐거움을 누릴게 아닌가. 그래, 그래, 그럼 이제는 가볼가? 누구한테?

갑자기 처녀가 어디 있나. 시내에 나서면 맨 처녀인데도 제 사람될 처녀는 어데 숨어있는지 알수가 없다.

문득 언젠가 부기사장이 얌전한 처녀를 소개하겠다던 말이 떠올랐다. 뭐 자기의 4촌누이동생이라던지. 그럼 부기사장과 처남매부가 된다? 인연이란 참 별나게도 맺어지누만.

송강림은 일이 다 되기라도 한듯 흥분하여 저혼자 웃었다. 그 얌전하다는 4촌누이동생을 한번 봤으면 싶었다. 어떻게 생겼을가.

어머니가 가져오는 사진의 처녀들처럼 그렇게 뚱보는 아니겠지. 뭐 떠오르는 달처럼 환해서 좋다나. 어머니 눈은 낡았어. 처녀는 뭐니뭐니해도 허리가 개미허리처럼 잘룩하고 날씬해야 돼. 난 가냘픈 미를 좋아하거던. 우리 어머니와는 반대야. 어머닌 제가 늘씬하니까 오히려 뚱뚱한 처녀들을 좋아해.

송강림은 얼마쯤 걸어가다가 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고 픽 웃었다.

그는 몸매가 날씬했고 방금이라도 날아오를것처럼 경쾌하게 보이였다. 팔, 다리들이 탄력있게 움직이고 처녀처럼 곱살한 얼굴에 작을사한 두눈이 영민하게 보이는게 여간내기가 아니겠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마디로 똑똑함이 얼굴에 푹 밴것 같았다. 미끈한 몸집이 나는 새처럼 가볍게 움직여 교예극장의 공중날기배우를 련상시켰다.

이런 타고난 체질로 하여 송강림이 도송배전부 송전선건설직장에 입직하자 단번에 산줄작업반 김평반장의 눈에 들었다.

김평이도 보통키에 몸집이 강철기둥처럼 딴딴하고 기상이 솟구치는듯 억세여 꼭 산매를 련상시키는 사람이였다. 아찔한 고압철탑을 타고 펄펄 날아다니는 사람이였다.

그런 사람이여서 고압이 흐르는 송전선을 타고 거기에 갖은 재주를 부리는 산줄공, 누구나 선발된 사람들답게 내노라 하는 산줄공들속에서도 뽑히여 제노라 하는것이였다.

김평은 송강림을 산줄작업반실에 데리고 들어와 직방내기로 들이댔다.

《동무, 내 눈에 들어. 산줄공 안해보겠어? 아무리 봐두 동문 대전공감이야.》

《산줄공이 뭘하는거나요? 대전공은 뭐구?》

《음― 그거… 고압전기가 왕왕 흐르는 까마득한 철탑우에 올라가 송전선을 타고 훨훨 날면서 원숭이처럼 재주를 부리는 하늘의 교예사직업이야.》

송강림은 단박에 얼굴이 새파래져 뒤로 벌렁 자빠질 지경으로 놀랐다. 두손을 바짝 들었다.

《난 못해요. 못해요. 더는 말하지 말라요.》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떨듯 하더니 문밖으로 도망쳐나갔다. 하지만 웬걸, 김평이가 범처럼 날랜 사람이라는걸 몰랐지. 순간에 송강림의 손목을 홱 나꾸채여 정지시켰다.

다음은 무슨 도피분자라도 잡아놓은듯이 으르렁거리였다. 눈에서 불이 펄펄 이는것이 무서웠다.

《못하겠다? 생긴것이 꼭 적임잔데두?… 이거 비겁분자구만.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 노루 제 방귀에 놀란다더니 맹탕 깜짝깜짝 놀라면서… 동무같은 패배주의자는 첨보누만. 우리 혁명이 요구하는 일을 외면하구 도망치는건 변절자라는걸 몰라?》

김평이 우정 어마어마한 말마디들만 골라 그의 의기에 불을 지른다는것을 알리 없는 송강림은 억울한 감투를 몇개씩이나 쓰고는 부아가 오르고 약통이 터져 와락 대들었다. 제대병사를 어떻게 알고… 드디여 자존심에 불이 달린 송강림은 막 해댔다.

《뭐, 뭐라구요? 비겁분자? 패배주의자? 게다가 또 뭐 변절자? 야― 이거 세상에 나서 들으면 안될 말은 다 듣는구나. 나를 이렇게 모욕한 죄를 책임지겠어요?》

《책임지지. 그건 동무가 이름있는 산줄공,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대전공이 되는거야.》

《쳇― 그따위 산줄공, 대전공이 뭐야. 할려면 하자요. 내가 지금껏 마음먹어 못해낸 일은 하나도 없어요. 이건 나의 해군전대에서 배운 기질이예요.》

《좋아.》

김평은 히쭉 웃었다.

그는 그길로 건설직장장한테 가 떼질을 썼다.

《삼촌, 거 송강림이를 나한테 줘요.》

《흥, 그따위 흥정은 통하지 않아. 안돼.》

직장장은 아무리 친조카라 해도 두말도 못하게 잘랐다. 똑똑한 사람에 대한 욕심은 삼촌, 조카사이에도 양보가 없었다. 직장장은 벌써 송강림의 사람됨을 보고 건설직장의 기둥감으로 키울 생각을 하고있었다. 그런데 이 만만치 않은 조카가 벌써 눈독을 들이고 달라붙는다.

《삼촌, 정 이러겠어요. 우리 산줄반이 얼마나 중요한 곳이예요. 난 강림이를 꼭 대전공으로 키울 결심이예요. 그 사람은 타고난 대전공감이예요. 저런 대전공감이 흔한줄 알아요. 천에 하나, 만에 하나예요. 닭무리속에서 봉황을 고르듯 해야 한다는걸 삼촌이 몰라요?》

(흥, 이 사람이 보는 눈은 있군. 옳게 봤어.)

《삼촌도 젊어서는 펄펄나는 산줄공이 아니댔어요. 산줄작업반장까지 하지 않았어요. 옛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우릴 도와줘야 옳지요.》

(참, 이 녀석 든장질엔 못 견디겠군. 에라― 큰맘 쓴다.)

김평은 겨우 송강림이를 산줄반으로 데려왔다.

처음엔 그렇게 엄포를 놓고 별별 당치 않은 감투를 다 씌우며 위협하던 반장이 정작 제 사람이 되니 여간만 싹싹하고 다정하지 않았다.

한발한발 훈련을 근기있게 주었다. 매사에 친형과 같이 친절했다.

그의 손탁에서 송강림은 이젠 손꼽히는 산줄공, 그중에서도 핵과 같은 대전공으로 자라났다.

그런 강림이가 오늘 아침 작업반실에 나왔을 때 아직은 아무도 없었다. 실내는 아늑하고 깨끗했다. 안벽에 철궤가 있고 크지 않은 책상과 앞상이 ㄱ자형으로 놓여있었다.

오른쪽벽에는 출입문들이 있고 그우에 《절연공구실》과 《금속공구실》이라는 표쪽이 붙어있었다. 작업반실은 분통처럼 깨끗이 꾸려졌다. 이안에서는 담배도 피우지 못하게 돼있어 재털이도 없었다. 송강림은 대전복을 꺼내려고 《절연공구실》로 들어갔다. 출입문을 열자 더운 공기가 얼굴에 후끈하니 끼쳐왔다. 대전복을 비롯하여 절연에 필요한 도구들에 습기가 전혀 없어야 하므로 항시 온도를 40도로 보장하고있었다.

그는 웃옷과 바지가 함께 달린 대전복을 책상우에 펴놓고 깐깐히 검토했다. 산줄작업전에 잘 손질해놔야 하는것이 대전복이다. 대전복을 입지 않고서는 대전작업을 할수 없다.

이 옷은 모직천밑에 촘촘히 짠 가는 쇠그물망으로 덮여있었다. 이것이 한오리라도 끊어진것이 없는가를 보고 잘 이어놓아야 고압전기가 흘러도 안전하게 산줄작업을 할수 있다.

대전복에 습기가 있으면 큰일난다. 대전복과 갈구리모양의 구리로 된 대전봉에 련결된 전선에도 이상이 없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가 대전복검토를 다하고 착착 포개여놓을 때 출입문이 방싯 열리더니 한사람이 쑥 들어왔다. 머리도 크고 목도 굵고 몸집이 뚱뚱한 참으로 둔중해보이는 청년이였다.

송강림은 반들반들한 얼굴에 웃음을 짓고 짐짓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가까운 친구들이였다.

《이거 웬일인가? 태동무의 새벽방문이 별로 이상하다?》

들어온 청년은 크고 넙적한 얼굴에 이지러진 웃음을 띄우고 싱검둥이처럼 빈정거렸다.

《그래 이 태평이가 10리밖의것도 다 냄새맡는다는걸 몰랐지. 나를 슬쩍 떼버리고 달아나려구 새벽부터 수선을 떠누만.》

태평은 한쪽 의자에 큰 엉뎅이를 붙이고 주저앉았다.

《아직 김평반장은 안 나왔어?》

《흥, 아무리 우리 반장을 찾아야 안돼. 될걸 하겠다고 해야지. 그건 황소가 바늘구멍으로 빠지겠다는거나 같은거야.》

《내가 그렇게 미욱하고 우둔하다는거지? 여―강림이, 정말 사람을 그렇게 숙보겠어?》

그는 불퉁스럽게 내쏘고 눈을 흘겼다.

태평은 건설직장 청년이였다. 기운도 세고 우직스러운데다 성실하기도 한 좋은 품성이 있어 일을 아주 잘했다. 게다가 공부도 괜찮게 하여 지식도 들었고 상식도 많았다. 성격이 개방적이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등 사귐성이 있어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참 별난 성미도 있었다.

그 누가 태평이더러 무엇을 절대 못한다고 하면 기를 쓰고 한다며 무모하게 고집을 부리는것이였다. 자존심이 장대기같아 무작정 자기가 옳다며 굽히기를 싫어했다.

그중의 하나가 이 산줄작업이였다.

산줄공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용감한 사람들이였다. 하여 산줄작업은 그런 사람들의 집단이였다. 재간있고 지혜있고 이악한 기질을 가진 청년전기기술자들이 도안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기적적인 일들을 해제꼈다. 어데 가나 위훈으로 빛을 내는 사람들이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태평은 산줄공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남자로서 무조건 해볼만 한 영웅적인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도 너희들만큼 용감한 사람이다!》 하고 스스로 뽐내며 기어이 산줄공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사실 그는 기질적으로도 드센 청년이였다.

그것이 도를 넘어 까딱하단 쓸데없는 모험적인데로 기울어질가봐 우려되였다.

그가 산줄공이 되겠다는 말을 듣고 건설직장장은 실성한것처럼 웃었다.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군. 김평반장이 너를 산줄공으로 받겠다면 내가 등에 업어서 보내주마. 태평이, 산줄공은 생김부터가 하늘을 날수 있게 타고나야 되는거야. 사람이면 다 산줄공을 하는줄 알아? 산줄공감은 벌써 어머니배속에서부터 타고나오는거야. 송강림이처럼… 태평이, 넌 곰이야, 곰… 곰처럼 생겨가지고 허공을 날아, 하하하.》

《두고봅시다. 내가 이제 직장장동지 뺨을 치지 않나 보시우.》

그때부터 태평은 김평반장을 뻔질나게 찾아다녔다. 남들이 다 못한다고 할수록 기어이 한다, 다들 내앞에 무릎을 꿇게 하겠다 하고 지릅뜬 황소처럼 무모한 배심을 부렸다.

오늘도 태평은 산줄반에서 멀리 이동작업을 간다는것을 알고 기어이 따라가겠다고 나선것이다, 직장장한테 승인을 받았다면서. 김평반장만 고개를 끄떡하면 된다. 가서 보조공부터 하며 배우겠다나, 자긴 이젠 철탑도 씽씽 잘 오른댔다.

송강림은 비웃듯 새물새물 웃었다.

《소원이 정 그렇다면 우리 반장한테 잘 보이라구.》

《잘 보이자구 해도 받아주질 않누만. 반장과 나는 같은 평평할 평자를 써서 이름도 같은데 도무지 먹어들지 않거던. 하지만 두고봐라. 이곳에서 송강림이 춤을 추고 김평이 춤을 추는데 태평이라고 왜 못 출가. 못 출줄 알아? 흥, 시누이, 동서 춤추는데 가운데동서 못 출가하는 격이다.》

《하하하. 그래, 그래.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 놀가. 실컷 와서 놀아봐. 놀아봐…》

송강림은 유쾌하게 웃으며 약을 올려주었다.

이날 김평은 현지를 향해 일찌감치 작업반실을 떠났다. 태평이 아무리 떼를 써도 김평반장은 단마디로 거절했다.

《우리 산줄반에 태동무같이 툽상스럽게 생긴 사람이 있나 보라구. 자기도 산줄공들만큼 용감하다구 뽐낸다면서? 그렇게 한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돌아가면 아무 일도 못해.》

태평은 자신이 무시당하는것만 같아 분해서 어디 보자고 별렀다. 혼자만 잘난척 하지 말라고 내쏘았다.

산줄반원들을 태운 반짐차는 시내를 벗어나 운성군방향으로 줄달음쳤다. 산골지방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외진 골안으로 깊이 들어와 차는 멈춰섰다. 여기서 내린 그들은 각기 산줄도구들인 바줄, 사다리, 대전공그네, 금차, 애자, 볼트, 포박선 등 갖가지것들을 나누어지고 산등으로 올라갔다.

가파로운 오솔길이였다. 차가 높은 산 철탑밑에까지는 못 올라가므로 어쩌는수없이 지고다녀야 했다. 그래도 그들은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안했다.

한대씩 피우며 땀을 들이고나서 김평반장이 작업조직을 했다.

반원들이 산중의 풀밭에 일렬횡대로 나란히 섰다. 김평은 여라문명 되는 인원들의 얼굴을 묵묵히 살펴보았다.

(석민동무얼굴색이 밝지 못하구만. 아이가 앓는다고 하더니… 일천동무웃음은 무엇인가 자기를 가리우기 위한것 같고… 혹시 안해와 다투기라도 했는가.)

그의 음성이 부드러우면서도 친절하게 울리였다.

《어제 밤 안해곁에 갔던 동무들은 나서시오.》

두사람이 뒤로 한발씩 물러섰다. 여기서는 솔직해야 했다.

산줄공들은 반장이하 다들 집안식구들처럼 마음이 맞아야 한다. 정신력이 일치해야 하는것이다. 때문에 산줄공의 마음은 안해보다도 동지가 더 가까운 법이다. 그래야 어려운 작업을 손색없이 해낼수 있기때문이다.

반장은 매 반원들의 기분과 감정이 산줄작업에 결정적영향을 미치는것을 잘 알아 아침에 나오면 그들의 얼굴빛부터 살피며 지어 밤에 안해를 사랑해준것까지 다 고려한다. 이런 사소한 생활적인 일도 다 알고있어야 제기된 과제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기때문이다.

이윽고 김평반장은 곧 작업지시를 했다.

《오늘작업은 고압선의 애자교환, 선보강작업, 고압선접촉부점검입니다. 송강림동무.》

《옛.》

《대전공.》

《알았습니다.》

《1호병 리성룡동무, 2호병 하영만동무, 3호병 표기호동무, 기타는 밑에서 보조할것. 이상.》

지명된 사람들과 김평반장까지 다섯명이 고압철탑에 오른다. 오늘 올라야 할 철탑의 높이는 75메터이다.

철탑애자가 옆으로 뻗어나간것은 내장형철탑이라 하고 애자가 고드름처럼 곧추 내리드리운것은 중간형철탑이라고 했다.

오늘 작업할 철탑은 내장형이였다. 대전공으로 뽑힌 송강림은 동무들과 함께 작업준비를 갖추었다. 아침에 손질한 대전복을 입고 안전바를 맨 다음 안전띠를 두 어깨로 걸어넘겨 허리에 가뜬히 조여매고 갈구리모양의 구리로 된 대전봉을 앞가슴에 찼다.

다섯사람이 아찔하게 높은 철탑우를 향해 날파람있게 오른다. 누가 보아주거나 말거나 외진 산꼭대기와 깊은 골안에서 랑만에 넘쳐 고공작업을 말없이 하는 장한 사람들…

공중날기를 하는 교예배우들은 화려한 무대에서 관중들의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동작을 수행하지만 산줄공들은 고압전기가 흐르는 자기마당속에서 일해도 누구한테서 박수 한번, 꽃다발 한번 받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산줄작업이란 전기를 끄지 않고 전기작업을 하는것을 말한다. 이런 고압선들에는 숱한 공장, 기업소, 철도, 항만들이 달려있으므로 전기를 10분만 꺼도 나라에 엄청난 액수의 물질적손실을 준다.

또 전기를 순간만 꺼도 안되는 공장들도 많다. 때문에 산줄공들이 나라에 주는 리익금은 매해 수십억단위를 넘는다고 했다.

다섯명이 철탑에 오르자 밑에서 보조공들이 사다리와 애자들, 포박선(선자투리), 금차와 대전공그네를 비롯한 작업공구들을 바줄에 매서 올려보내준다.

반장은 지휘하고 1, 2, 3호병들이 사재들과 애자들사이를 련결하여 공중사다리들을 움직이지 않게 단단히 매준다. 그들의 작업은 최대의 긴장속에서 말없이 기계처럼 착착 맞물고 돌아간다.

준비가 다 되자 송강림은 곧 동작을 시작했다. 1, 2, 3호병들은 대전공 송강림이 원활하게 일할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보조해주는 조력공들이다.

송강림은 높은 철탑꼭대기에서 휘친휘친 흔들리는 공중사다리우에 올라섰다. 몇오리 끊어진 고압선에 조임선으로 보강해주기 위한 작업구간으로 가는 길이였다.

그는 공중사다리를 타고 다람쥐처럼 가볍게 작업대상인 고압선으로 나갔다. 근감하게 휘늘어진 3상고압선으로 전기 흐르는 소리가 들리였다. 밑에 있는 보조공들이 조마구만 하게 내려다보였다. 랑만과 희열에 넘친 그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강림은 금차(좀 작은 형의 로라)를 고압선에 걸고 갈구리에 대전공 그네를 맸다. 거기에 가볍게 올라앉았다.

준비가 됐음을 지켜보던 1호병이 련결된 바줄을 조금씩 놓아주었다. 강림이가 올라앉은 금차는 고압선을 타고 표주박처럼 하늘에 대릉대릉 매달려 미끄러져나갔다. 하늘을 나는 수리개들의 용맹한 모습이였다.

송강림은 22만선의 자기마당속에 들어서자 온몸의 솜털이 곤두 일어서고 얼굴에는 수만 벌레들이 기여가는것 같음을 느꼈다.

자기마당구역에 들어서면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때문에 자기가 모든 일을 판단해서 수행해야 한다.

가슴에 꽂고 올라간 대전봉을 뽑아 고압선에 걸었다. 순간 짝― 하는 퍼런 불꽃방전이 일었다. 그의 몸으로는 대전복을 통해 고압의 전기가 흐르고있다.

고압이 흐르는 몸에서는 미세한 바늘이 피부를 콕콕콕콕 찌르는듯만 싶었다. 대전공의 일손은 그야말로 책임적이면서도 번개같이 빠르다.

송강림은 끊어져가는 고압선에 포박선을 능숙한 솜씨로 이어놓았다. 이어 벼락을 맞아 깨여진 애자들을 교체했다.

김평반장과 철탑밑에 있는 보조공들은 기발신호로 말을 주고받았다. 공중에 높이 올라가면 아무 소리도 전달되지 않기때문이다.

밑에서 철탑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사람들의 형체가 꼭 조롱박만 한 원숭이들이 사재들을 훌훌 건너뛰고 흔들흔들 하는 공중사다리를 타고 펄펄 날아다니는것 같았다. 산중의 뛰여난 수리개들의 자연교예였다.

참으로 영웅남아들이 젊어 한때 해볼만 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건설직장의 태평이처럼 영웅심리에 불타는 사람들은 자기를 써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저녁녘에 산줄반원들은 맡겨진 산줄과제들을 넘쳐수행하고 기분좋게 자동차에 앉아 귀로에 올랐다.

송강림이 도송배전부의 수도가에서 세수를 한 다음 작업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앞마당으로 나왔을 때였다. 저쪽에서 부기사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오늘 수고많았겠구만, 퇴근길인가?》

《예.》

《왔네.》

《예? 오다니?》

《아, 그 처녀. 우리 4촌누이동생 양춘화… 언젠가 내 말하지 않던가.》

《아니?… 정말 불러왔어요?》

《우정 불러온건 아니구, 오늘 시내에 볼일이 있어 들어왔던 길에 춘화가 우리 집에 들렸더구만. 그래서 마침 잘됐다고 했지. 저녁에 송강림이가 올테니 만나보라고 했네.》

《그럼 이제 같이 가자는거예요?》

《어떡하겠나? 맞선을 봐야 하지 않겠나?》

《하하, 너무 갑작스럽군요.》

송강림은 당장 가서 낯모를 처녀와 마주앉는다고 생각하니 별로 부끄러운 생각이 앞서 몸이 굳어지는듯 했다. 괜히 흥분하여 가슴이 설레였다.

(아, 이거 내가 왜 이러니. 제대병사답지 않게.)

산더미같은 창파를 헤가르던 영용한 해군제대병사가 조그마한 처녀를 만난다니 이렇게 주눅이 드는가.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이리 몸풀이가 잘 안될가.

송강림은 태연한척 하며 의젓한 몸가짐을 하려 애썼다. 부기사장은 처녀네 집에 대해 간단히 말해주었다.

《우리 큰아버지네는 시교외의 축산전문농장에서 사네. 큰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갔구 큰어머니가 작은딸인 양춘화와 함께 살고있어. 맏딸은 이웃마을에 시집가 살고 큰어머니는 축산농장 사료작업반에서 일하네.》

양춘화는 작업반 탁아소에서 보육원을 한댔다. 아리잠직하게 생겼다면서 성미가 차분하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해서인지 외모도 단정하다고 덧붙였다.

말을 들어보니 강림은 은근히 호기심이 동해올라 처녀를 만나보고싶었다. 어머니가 가져오군 하던 그 사진속의 처녀들처럼 볼이 늘어진 뚱보는 아닌것 같았다.

부기사장은 언제부터인가 송강림의 어머니를 잘 알게 되였다. 시편의봉사관리소에서 오랜 구두수리공으로 일해오는 강림의 어머니는 며느리감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부기사장은 두루 생각하다가 자기 4촌누이동생이 눈에 들것 같아 춘화를 짚었었다. 그도 송강림이가 가까이에서 지내볼수록 똑똑한 청년이여서 차라리 4촌매부를 만드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자, 그럼 나와 같이 우리 집으로 가자구.》

부기사장이 먼저 앞서며 강림을 이끌었다.

한발 따라서던 강림은 다시 우뚝 서버렸다.

《아차, 오늘은 안되겠군요.》

《왜?》

《이제 대학에 강의를 받으러 가야 해요.》

《후에 보충하면 안될가.》

《아니, 안돼요. 오늘은 영어와 전기리론 등 두과목씩이나 시험을 치거던요. 더구나 빠질수 없는건 집단과 한 약속을 어길수 없어서 그래요.》

《무슨 약속인데?》

송강림은 제대군인으로서 대학적으로 뽑히게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오늘 몇개 학급이 모인 앞에서 경험발표를 하게 돼있었다. 이런 모임이 조직돼있는것만큼 출연자인 강림이가 빠지면 모임이 튀게 되며 그가 대중을 무시한 교만스러운 행동으로 될수 있었다.

《처녀를 만나볼 기회는 후에도 있겠지요. 그게 당장 급한건 아니니까.》

《허―어, 그런 일이 있는가.》

송강림은 팔목시계를 보며 시간이 늦었다고 대학쪽으로 뻗은 큰길을 따라 급히 달려갔다. 부기사장은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두 똑똑한 사람이야, 주견있구…》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