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4

 

봄빛이 짙어가는 어느날 정말 조형례국장은 자기의 약속을 지켜 도송배전부에 내려왔다.

국장은 기사장실로 들어오며 지배인은 어데 갔는가고 물었다.

《방에 쇠가 걸렸더구만.》

《기관책임자들 회의에 갔습니다. 어떻게 내려온다는 통보도 없이 나타났습니까?》

《원래 나야 그런 사람이 아니요.》

사실 그랬다. 그는 부산스럽게 먼저 전화를 걸고 알리고 어찌고 하는 등 격식을 차리고 허식을 부리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데 가서나 볼일을 보고는 더 지체하는 일없이 훌쩍 떠나군 했다. 11시가 넘어 점심시간이 가까와와도 난 가겠소 하면 다였다. 밑의 일군들이 바빠맞아 점심식사야 하고 가야 하지 않는가고 하면 《그래, 그럼 이 자리에서 한술 주오. 난 강냉이국수 한그릇이면 되오.》라고 하군 하였다.

그는 이렇게 소탈한 사람이였다.

국장은 키가 크지 않았다. 그래도 그를 작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대머리는 언제보나 둔탁한 빛을 뿌렸고 정수리에 몇오리 남아있는 희읍스름한 머리칼은 늘 잔빗으로 단정히 빗겨져있었다.

둥그렇고 큰 머리에 맞게 몸집도 뚱뚱하고 큼직한 주먹코가 우뚝한데다가 입도 커서 모든것이 남아답고 대틀로 보여 키작은감을 주지 않는다. 행동거지도 크고 활달하고 청높은 목소리가 저릉저릉 울렸다.

조형례가 쏘파에 앉자 정준하는 담배를 권했다. 그가 자기 책상우에 있는 담배갑을 집어 한대 뽑아 권하자 국장은 뽐내듯 자기 담배를 꺼내여 보여주었다.

《기사장은 수준이 높구만. 이 국장은 곁에도 못 가겠소. 자― 난 이런걸 좋아하오. 한대 태워보오.》

《〈순풍〉이라… 어떤 사람들은 맛보다도 담배상표를 보고 고정한다던데…》

《난 담배를 하루 댓대정도밖에 피우지 않지만 더구나 그 질을 보고 피우지는 않소. 그 말처럼 이 글을 보고 피우는거요. 순풍! 얼마나 이름이 좋소. 나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힘들지 않는것이 없는것만큼 그 모진 역풍을 순풍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이 담배를 피우오.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는데서 그 거대한 힘의 원천이 어데 있겠소. 그것은 곧 대중의 힘이요. 대중에 의거할줄 알아야 자기 힘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질수 있소.》

조형례는 《순풍》을 한대 태우며 주근주근 이야기를 했다.

《변압기 대보수와 관련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소. 나도 동의하오. 내가 오늘 이렇게 불쑥 온건 동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요. 도와줄바에야 어깨를 바싹 들이밀고 도와줘야지. 내가 평양에서 그 거물님을 모시고 왔소.》

《예? 거물님이라니…》

《32톤기중기를 모시고 왔단 말이요.》

《그렇습니까?!》

정준하는 눈이 번쩍 틔워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안돼서 속을 얼마나 태웠다고…

《이젠 마음껏 전투를 벌려봅시다. 32톤기중기는 이곳 도에서 벌리고있는 물길공사에 동원되였소. 그래서 우리가 그쪽 일군들과 교섭해서 먼저 잠간 쓰기로 했소. 변압기뚜껑만 내려놔주면 되니까. 난 지금 ㄷ공업지구에 출장을 가는 길이요. 지도사업차로 가는 길에 기중기까지 같이 몰고가서 동무네한테 넘겨주자고 이렇게 들렸소. 방금 기중기를 먼저 변전소로 올려보내고 난 이리로 왔소.》

어쩌면! 국장이 그렇게까지 안한들… 아래사람을 시켜도 될 일을 제가 직접 하다니 정말 틀이 없고 소탈하고 소박한 일군이구나.

정준하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정말 수고많았습니다. 국장동지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풀어줬으니 망정이지 기중기가 없어 전투를 시작하지 못할번 했습니다.》

《일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한테는 막아섰던 큰 산도 길을 비켜준다오. 그래 변압기에서 미리 기름을 뽑아놨소?》

《기름도 뽑고 열도 식혔습니다. 방풍이영도 다 돌려쳤습니다.》

《됐구만.》

대형변압기안에 들어있는 기름만 해도 수십톤이나 된다. 그것을 다 뽑자 해도 사흘이 걸린다. 또 변압기안의 자체온도가 70~80도나 되여 이것만 식히자 해도 시간이 걸린다. 이 작업을 이미 다 끝냈던것이다.

조형례국장은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끄며 정준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무네가 반영한 자료를 내 신중히 보았소. 가양도송전선건설은 만만치 않은 공사겠다는것을 느꼈소. 물길 2 500메터의 날바다우로 고압선을 넘기려면 과학적으로 담보된 대담한 배심이 필요하오. 이런 공사는 처음 해보는게 아니요?》

《예, 송전선공사를 수없이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해협을 횡단하는 공사는 처음입니다.》

《사전준비를 빈틈없이 해야 하오. 물론 변압기들 대보수도 그 준비의 하나이지만 이것만이 아닌 크고작은 모든 준비를 놓침없이 짜고들어 해야 하오. 내 간석지건설총국에 알아보았소. 그랬더니 거기 책임일군들이 가양도앞바다에 거창한 간석지가 물밖으로 나온다고 말하더군. 욕심나는 농터요. 거기서 앞으로 흰쌀이 쏟아질테니 정말 마음이 흐뭇하오. 우리는 동무들의 결심을 지지하오.》

《잘해보겠습니다.》

정준하는 힘있게 대답했다.

국장은 최장근지배인을 만나 대보수작업을 원만히 하기 위한 대책안들을 더 세워주고 그길로 떠나갔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후 대형변압기 1호의 대보수를 여러달만에 원만히 끝냈다. 다들 신심에 넘쳤다. 성에서도 조형례국장이 기뻐하며 자재를 넉넉히 풀어주기 위해 애썼다.

날은 흘러 어느덧 2호의 대보수도 끝내게 되였다.

그날 점심녘, 두 고급기능공이 마지막 흑연봉용접을 다그칠 때였다. 어떻게 불꽃이 채 닦아지지 않은 구석짬사이의 기름찌끼에 튀여났는지 손쓸 사이없이 불길이 확― 솟구쳤다. 순간에 불길은 대형변압기를 휩쌌고 매연이 룡트림쳐올랐다.

소방차가 달려와서야 불을 끌수 있었다. 변압기는 엉망진창이 되였다.

정준하는 너무도 억이 막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다행스러운것은 불을 빨리 껐기때문에 부속들이 하나도 변형간것이 없이 정상인것이였다. 다만 숱한 절연지들이 다 타버리였다.

정준하는 사색이 되여 헤맸다.

즉시 전력공업성과 도당에 이 사실이 통보되였다.

조형례국장이 노발대발하며 전화로 최장근지배인을 몰아댔다.

조형례는 국장이기때문에 원래 이곳 도송배전부의 담당이 아니였다. 홍부국장이 담당이였다. 그가 병으로 장기치료를 받으러 부서를 떠나있으므로 국장이 직접 맡아보아주는것이였다.

더구나 조형례는 최장근과 오랜 벗이여서 아무 말이나 막 하기가 좋았고 욕을 해도 서슴지 않고 모욕적으로 퍼부었다.

《지배인이 떨떨해 앉아있으니까 다됐던 일을 망치지 않았소. 이 일을 누가 책임지겠소.》

《내가 책임지겠소.》

최장근도 부아가 돋아 불퉁스럽게 내쏘았다.

《입으로만 책임지겠다면 다요?》

《법적으로 책임지겠단 말이요. 법앞에 내가 나서겠소.》

조형례는 정준하와 전화를 바꾸어서는 욕을 하지 않았다. 수고많겠다면서 신심을 갖고 다시 달라붙으라고 의기를 북돋아주었다. 당장 필요한 자재가 무엇인가고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이어 대형변압기 대보수중간총화회의가 열리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2호변압기를 구워먹은 죄는 기사장의 소총명과 공명주의에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도의 기술기능을 가지고는 못한다고 막아섰던 사람들이였다.

정준하는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되새겨보았다. 과연 내가 공명주의적인 립장에 서서 대보수를 내밀었던가. 그는 머리를 저었다. 이건 모독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내가 그런 말을 듣게 일을 저질러놨으니 별수 없지 않는가.

하다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크지 않은 성과에 자만도취하여 마지막까지 책임성을 높이지 못한데 있다. 처음 1호에 대한 대보수를 시작했을 때는 얼마나 긴장하여 일을 주도세밀하게 짜고 물샐틈없이 내밀었던가. 그렇게 한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1호는 아무런 말썽도 없이 자신들도 놀랍고 믿어지지 않으리만큼 단번에 성공했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은연중 1호의 너무도 쉬운 성공에 자만도취했던것이 틀림없었다. 때문에 2호는 대보수시작과 함께 부분별작업을 1호때처럼 그렇게 철저히 하지 못했던것 같다.

우선 변압기안에 수십년간 쩌들어붙은 기름때를 구석구석까지 닦아냈어야 했지만 그렇게 못했다. 여기서부터 빈틈이 생긴것 같았다.

마지막작업이라 하여 다 먹은 떡처럼 생각하며 소화기재들마저 일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새망스럽게 치워버린것을 모르고있었으니 얼마나 해이되여있었는가.

법기관에서 사고심의가 진행됐다. 최장근지배인은 자기가 벌을 받겠다고 나섰으나 정준하는 그럴수 없다고 했다. 대보수전투책임자는 자기므로 어떤 벌이든지 제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해도 저물어가는 어느날.

해당 기관에서는 신중한 토의끝에 정준하기사장을 당분간 송전선건설직장에서 일하게 하여 과오의 근원에 대해서도 심각히 뉘우치고 또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로동계급속에서 정신적수양을 더 높이 쌓도록 하기로 결정하였다.

정준하는 놀랐다. 아니, 뜨거움의 눈물을 흘리였다.

이밤따라 늦도록 꺼질줄 모르는 창가의 불빛, 어릴적에 아버지가 초달을 한 밤이면 상처난 장딴지를 부드러운 손으로 약손마냥 쓸어주며 지금은 아파도 래일은 큰사람 되는 약이 된다고 속삭여주던 어머니, 온밤 이 아들을 지켜주는 어머니의 눈빛인양 그날도 불빛은 꺼질줄 몰랐었다.

오래도록 당위원회창가를 바라보던 정준하는 비로소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가자, 나를 단련시켜주고 억세게 키워주던 그 품으로, 뼈가 휘도록 일하고 구슬땀으로 이 몸을 적시자, 더 굳센 강철로 벼려지리라.

정준하의 발걸음은 점점 더 커졌고 등뒤에서 그의 앞길을 밝히듯 불빛이 유난히도 빛났다.

한동안 길을 걷던 정준하는 시병원에 입원한 안해생각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안해의 간장이 나빠졌다는 진단을 받은것이 마음에 걸리였다. 그는 병원으로 걸음을 돌리였다. 경애가 어머니때문에 애가 타서 뛰여다니던데…

얼마쯤 걸어 병원에 다달은 그는 입원실을 찾아 3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는 아버지를 경애가 먼저 보고 반겨맞았다. 구석쪽 침대에 누워있던 백순옥이 빙긋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긴 뭘… 가만있으라구.》

정준하는 얼굴에 느슨한 미소를 띄우며 안해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다시 자리에 눕혀주었다.

그는 지금 여간만 심경이 복잡하지 않았다. 몹시 괴로왔다. 이제부터 자기는 여러달동안 웃을 일이 별로 없을것 같다. 무슨 마음이 편해서 웃겠는가. 어떻게 해서든 제2호의 대보수를 하루빨리 성과적으로 끝내야 한다. 그래야만 편히 웃을것 같다.

하지만 생활은 괴로와도 쓰리여도 웃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바로 그래서 안해와 딸앞에서는 어차피 웃어야 하는것이 아닌가.

내가 여러달동안 배우와 같이 연기를 할수 있을가. 경애가 눈치가 얼마나 말짱하다구. 그래도 연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걱정에 저 사람의 병세는 악화될것이며 경애는 근심을 안고 살아야 할게 아닌가. 그렇게 할수는 없다. 어떻게 하든 안해와 딸은 모르게 하자.

정준하는 침대가에 걸터앉아 새삼스럽게 안해의 손을 잡고 웅글은 어성으로 위로했다.

《내가 당신을 너무 돌봐주지 못해서 그런 병에 걸렸구만.》

백순옥은 별소릴 다 한다며 웃었다. 남편이 찾아온것이 기분좋은 모양이였다.

《무슨 어린애라고 돌봐주고말고 하겠어요. 살아가느라면 더러 앓기도 하는거지요.》

《그래두 세대주라는게 너무 무정하다나니 당신에 대한 관심이 적었소. 늘 일만 바쁘다고…》

경애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옳아요. 아버진 오늘 처음으로 어머니앞에 옳은 비판을 했어요. 이젠 시정하겠지요? 시정하는건 간단해요. 매일 집에 꼭꼭 들어와 우리와 식사도 같이하고 즐겁게 이야기도 하는거예요.》

경애는 습습한 성미대로 우정 티없이 밝게 웃었다.

《허허.》

《벌써 아버지가 김빠진 소리로 웃는걸 보니 시정하지 못하겠단거군요, 맞지요?》

《리해해라. 아버진 또 전투에 들어가야 한다. 집채같이 큰 변압기를 대보수해야 하니까. 아버지는 기사장이 아니냐.》

《기한은 언제까지예요?》

《한 반년쯤…》

《아이유― 그렇게 오래?…》

경애는 정말 놀라 두눈이 동그래졌다. 백순옥이 은근한 어성으로 남편을 위로했다.

《여보, 아무 걱정말구 당신 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만 하시우.》

《당신이 이렇게 병원침대에 누워있는걸 보니 발이 돌아서지 않누만.》

《원 참, 걱정말래두요. 그런 잔걱정이 많으면 맡은 일을 제끼지 못해요. 당신이야 원래 제끼는 일군으로 인정돼있지 않아요.》

《당신은 늘 나한테 걱정말라구만 했지, 언제한번 제몸 생각해본적이 없었지.》

경애가 따뜻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속타하는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다.

《집안 일은 근심하지 마세요. 제가 있지 않나요. 어머니병도 차츰 나을거예요. 아버진 거뜬하고 든든한 마음을 가지구 전투지휘를 잘하세요. 우린 아버질 리해하고도 남아요.》

《고맙다, 가정의 부담을 너한테 다 짊어지우는구나.》

이튿날 정준하는 건설직장으로 나갔다. 이 직장이 하는 일은 시내는 물론 도내에서 벌리는 크고작은 송전선건설이였다. 신설하는것도 철페하는것도 다 이 직장에서 맡아했다.

작업복차림에 로동화를 박아신고 목에 수건을 건 정준하가 작업지시를 받으러 나오자 직장장은 난처하여 조용히 일렀다.

《기사장동지, 진짜 우리가 하는 일을 같이하려우? 그저 좀 거들어나주면서 구경삼아 따라다니구려.》

《무슨 그런 말을 하우. 내가 또 과오를 범하는걸 볼려고 그러오? 이제부턴 말투도 고치우. 기사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준하동무, 이렇게 부르오.》

《챠, 그것참… 알다싶이 우리가 하는 일이란게 다 높은 전주나 철탑에 오르지 않으면 전주들을 메나르는 일인데 이걸 꽤 하겠소?》

《하― 이거 직장장이 나를 숙보누만. 기사장을 하던 사람이라고 해서 무슨 귀족처럼 여기는게 아니요?》

직장장은 정준하보다 나이도 퍽 우고 고도작업, 산줄작업 등 못하는 일이 없는 고급기능공이고 오랜 송전선건설의 원로였다.

일반건설에서도 막히는것이 없었다. 송전선건설에서 원로다운 무게와 로동계급다운 호방한 성미로 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었다.

첫날은 기초식품공장에 들어가는 송전선신설작업을 했다. 자동차로 실어다 부리운 길고 무거운 콩크리트전주들을 소운반으로 날랐다.

정준하는 나이가 좀 있긴 해도 아직은 체격이 단단하여 모든 일을 힘들지 않게 잘했다.

며칠후에는 콩크리트전주에 올라가 작업해야 할 일들이 제기됐다. 정준하는 말없이 나섰다. 직장장은 꽤 올라가겠는가고 물었다. 준하는 두손에 침을 바르고 묵묵히 콩크리트전주앞에 다가섰다. 직장장은 또 놀라서 눈이 커졌다.

《아니? 승주기(전주에 오를 때 발에 신는 기구)도 신지 않구요?》

《요까짓 키낮은 콩주(콩크리트전주)나 목주(나무전주)에 오르면서 무슨 승주기까지 신겠소.》

그리고는 두손으로 안전바를 감아쥐더니 팔에 힘을 주면서 가볍게 엉뎅이를 살짝 들어올리며 두발을 동시에 올려붙였다.

순간 날파람있게 두팔과 두발을 기계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살살 기여올라갔다. 눈깜빡하는 순간에 꼭대기까지 올라가 꽁무니에 찬 바줄을 내려보냈다. 전선을 달아올리라는것이였다.

다들 깜짝 놀랐다. 기사장이 무슨 고도작업을 해봤으랴 했다가 눈들이 뒤집어졌다. 소문이 삽시에 퍼졌다. 정준하를 공명주의자라고 하던 사람들도 기사장이 건설직장에서 막히는 일이 없이 제낀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들을 끄덕거렸다.

《좌우간 정준하가 보통사람이 아닌것만은 사실이요. 그 대쪽같은 량심에 머리가 숙어지오.》

누구나 인정하는 소리였다.

사실 정준하는 어려서부터 체육신경이 남달리 발달한 사람이였다.

소학교때부터 대학시절까지 탁구선수, 기계체조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낮에는 건설직장에서 송전선건설로동을 했고 밤에는 또 자전거를 타고 변전소에 올라가 2호 재생작업에 몸바쳤다.

변압기조립이 완성돼감에 따라 기술지도를 더 잘해야 될 일이 제기되여 요즈음은 낮이나 밤이나 변압기에만 붙어 전투를 했다.

 

…철심조립조에서 일하던 정준하는 누군가가 점심시간이 됐다고 알려줘서야 생각에서 깨여났다. 그는 오전작업정형을 자세히 살펴보고나서 작업장을 떠났다.

그때에야 이른새벽에 아들 승호와 언짢은 전화가 있었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어제 밤 여기 왔다가 내려간 경애가 고민이나 하지 않는가 하는 근심이 젖어들어 가슴은 돌을 안은듯 했다.

 

×

 

이날 저녁녘.

자그마한 손가방을 들고 시소년회관 출입문을 나선 경애는 저기 앞마당끝의 행길로 지나가는 날씬한 몸매의 한 처녀를 불러세웠다.

《처옥이― 처옥이 아니야?》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처녀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순간 처옥이는 경애를 바라보며 반색을 지었다. 그는 깨끗이 씻은 호미를 넣은 구럭을 이쪽 손에 바꾸어쥐고 마주 다가갔다. 작업복을 단정히 입고 머리에는 창이 넓은 흰색모자를 가볍게 살짝 올려놓았다.

경애가 계단을 내려오며 물었다.

《농촌지원 갔댔니?》

《아니요. 오늘 하루 우리 기관 부업밭에 남새모 옮기러 갔댔어요.》

처옥이는 도송배전부의 직원이였다. 무슨 일이나 침착하게 물샐틈없이 잘한다고 언젠가 아버지가 칭찬했던 처녀였다.

경애는 오늘 새벽 아버지와 헤여져 내려오면서 아무래도 남동생 승호와 아버지사이에 무슨 일이 있은것 같아 우정이라도 한번 처옥이를 만나려 했었다.

승호가 아버지의 일을 알면 보나마나 참고있었을것 같지 않아 마음이 늘 불안했었다.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해야 할지 공연히 뿔질하기를 좋아하고 참을성이 없이 보면 본대로 말하는 승호가 제 생각대로 아무 말이나 망탕해서 아버지를 노엽히지 않았을가 걱정스러웠다. 만약 승호가 아버지 일을 안다면 그 가장 빠른 통로가 처옥일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경애는 승호와 처옥이가 가까운 사이라는것을 이미 눈치채고있었던것이다.

두 처녀는 마당가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밑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경애는 담담한 어성으로 입을 열었다.

《처옥이, 난 우리 아버지가 하고있는 일을 요즘에야 알게 됐다.》

처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언닌 지금껏 모르고있었어요?》

《아버지가 아무런 내색도 한게 없었어. 너라도 좀 알려주지 않구.》

《좋지 못한 일을 가지고 제가 어떻게 먼저 말하겠어요. 전 그저 언니가 알겠거니 했지요 뭐. 기사장동지가 고생하는걸 보면 막 가슴아파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우리 승호가 너한테 자주 전화하니?》

처옥은 잠간 입을 다물고있었다. 갸름한 얼굴이 발그스름해졌다. 그것은 얼핏 보기엔 부끄러워서 타오른 노을같지만 처녀의 가슴속 말 못할 괴로움이 연소되여 그리도 타는듯 하다는것을 경애는 알수 없었다.

《왜? 무슨 일이 있니?》

《아니요.》

처옥은 당황하여 얼른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애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네 얼굴에 수심이 비낀것 같구나.》

《아이, 아니란데두요. 얼마전에 승호동무한테서 전화가 한번 왔댔어요. 승호동무도 요즘에야 아버지의 일을 누구한테서 얻어들은것 같애요. 사실을 자세히 알고있어요. 저한텐 그게 진짠가고 확인하더군요. 다 알고 물어보는데 거짓말을 할수 없어서… 제가 그런것에 신경쓰지 말고 졸업시험을 잘 치라고 당부했어요. 귀담아듣는것 같지 않아요.》

《그랬댔구나.》

《혹시 승호동무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승호가 아버지의 가슴을 긁었을게 틀림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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