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46. 군률을 세우는 궁예

 

궁예가 백기대장이 되였다는 소문은 날개돋친듯 퍼져갔다. 이전에는 모흔, 대검, 장귀평이라는 북원출신의 젊은이가 몇십명씩 무리를 거느리고있던것인데 이제는 그것이 통채로 궁예라는 젊은이에게 넘어간것이다.

《왜 그랬다나?》

《글쎄, 아마 그 애꾸가 난다긴다하는 사람인가봐.》

《그래? 하긴 재주만 있다면야…》 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반쯤 체념한 기분이 북원에 떠돌았다. 한편 젊은이들은 궁예의 부하가 된걸 좋아하였다.

모흔, 대검과 같은 한다하는 젊은이들은 그동안 궁예에 대해서 퍽 친근감을 가지고있었다. 그러고보면 궁예도 역시 허술히 볼 사람이 아니였다.

《궁예형, 아니 대장님, 기쁜 일이오이다. 우리 절 받으시오.》 하고 모흔과 대검은 좋아하였다.

《오늘 같은 날 그대로 지낼수 있겠나. 대장을 위해 술을 내야지?》

장귀평이 호기를 부렸다.

《좋아, 오늘은 한번 실컷 마셔보자!》 하고 궁예는 덩달아 소리쳤다.

궁예는 그때 자기의 생일을 차려주던 소꿉시절친구들이 떠올라 코살을 찡긋했다.

이제는 뭔가 해볼만 한 때가 되였다고 누구나 좋아하였다. 궁예는 큰숨을 들이쉬였다. 새길이 열린것이다. 남의 힘을 빌려서 시작하는 이 인생의 길이 어떻게 끝나겠는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젊은이답게 이제는 자기의 힘과 능력, 자기의 뜻을 실현해볼수 있게 된것이 기뻤을따름이였다.

궁예는 북원분지를 내려다보는 치악산을 바라보았다. 이십여리 되는 곳에 솟아있는 치악산은 궁예를 부르는듯 하였다.

(치악산아, 기다려라. 내 이제 가마!) 하고 궁예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마시고 떠들어대는 기분이 퍼져나가는 속에서도 궁예는 이런 분위기가 어딘가 모르게 무질서로 이어질수 있다는걸 놓치지 않았다. 재미난 곳에 범난다. 그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데 대한 께름한것이 아니라 이때까지 하는 일없이 놀며 보낸 북원의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데서 오는것이였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궁예는 다짐했다.

이틀이 지난 뒤 궁예는 량길과 몇몇 북원의 촌주들을 불러다놓고 자기 부하들을 사열하였다. 궁예가 왜 이런 놀음을 벌리는지 잘 모르는 량길은 그저 사람좋은 촌늙은이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앞으로 궁예대장에게 잘 복종해야 한다는 외마디소리만 하고 물러났다. 궁예에게는 그것이면 된다. 워낙 량길이 군사들앞에서 뭐라 할소리도 없거니와 시시껄렁한 소리를 늘어놓는다거나 멋모르는 군사들에게 못박히는 소리를 하는걸 바라지 않았다.

《군사들! 나는 몇달동안 그대들과 함께 살아왔다. 이제 량길어른께서는 내가 그대들을 지휘할 권한을 맡기셨다. 이것으로써 그대들과 나사이에는 다만 친구일뿐더러 군률에 몸이 매이게 되였다. 나는 언제나 그대들과 삶과 죽음을, 고생과 즐거움을 같이할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대들과 하는 첫 약속이며 대장으로서 공포하는 첫 명령이다. 이것을 어길 때 나는 마땅히 그대들앞에서 군률의 처벌을 받을것이다. 한편 그대들은 그대들대로 군률을 지켜야 한다. 군사란 군률이라는 엄격한 법에 매인 사람들이다. 군률이 없이는 군사가 있을수 없다. 군률이란 다름이 아니다. 목숨걸고 지키면 상을 받고 어기면 처벌을 받는것이다. 우리들, 그대들과 나사이에는 이제 군률이 있을뿐이다.

나는 이 북원의 군사를 맡은 사람으로서 명령한다. 군률을 지키라! 이것이 내가 하고싶은 말이다.》

궁예는 한껏 엄엄한 낯빛을 지었다. 별치않은 소리를 요란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좋다.

워낙 군사를 움직이는 북이라는것도 속이 텅 빈걸 두드려내는 소리니까. …

궁예의 말을 들으며 량길은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아무렴, 군률은 군사의 첫째가는 생명이야.》

량길은 제 소리에 스스로 만족해하였다.

《따로 더 지적할 말씀이 없으시오이까?》 하고 궁예가 량길을 보며 물었다.

《아주 말 잘했어. 이제야 대장감을 골랐군. 소리가 아주…》

더 떠벌이려다가 그만두었다. 이 판에 무슨 생뚱같은 소리냐.

《모두 궁예대장의 명령을 명심하게. 군률을 잘 지켜야 하네.》 하고 객적은 훈시를 놓치지 않았다.

궁예는 말을 타고 한사람한사람 앞으로 다가가 매 군사들의 모습을 새겨넣을듯 살폈다. 궁예는 제가 지른 소리에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래 엄숙해졌다.

눈앞에 보이는 군사들이라는게 형편이 보잘것없어도 좋았다. 아는척 히죽 웃는 사람, 으쓱하는 사람, 어리벙벙해하는 사람… 괜히 제멋들을 부려보인다. 무리의식이란 이런것이다. 내 이제 이걸 쟁쟁하니 소리나는 싸움군들로 만들테다 하고 궁예는 속다짐했다.

자신이 있었다. 지루할 정도로 사열하고난 궁예는 첫날훈련을 명령했다.

훈련은 단순한것이였다. 무리를 갑과 을 두 대로 나누고 북과 기발로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것이였다. 갑대는 모흔을, 을대는 대검을 임명하고 그들을 불러 명령을 주었다.

《명령이다. 갑대는 대북소리 두번과 붉은 기발에 따라나오며 을대는 대북소리 세번과 푸른 기발에 따라나올것이다. 신호를 받으면 힘껏 달려 제때에 지정된 곳까지 달려야 한다. 첫 공을 세운자에게 비단 한필 상으로 줄것이다. 만약 자기 대를 어기고 신호에 따르지 못하여 뒤떨어진자는 벌을 받을것이다. 벌은 싸리나무회초리로 50대 맞는다!》

궁예는 령을 거듭 반복하게 하여 매 군사들이 모른다는 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계속했다.

이것이 군사훈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내기경기같았다. 상까지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벌받는것은 조금 색달랐다. 구경하는 량길과 촌주들도 재미나 하였다.

갑대와 을대가 무질서하게 갈라섰다.

궁예는 령을 내렸다.

대북이 둥둥 울리고 붉은 기발이 장대에 걸렸다.

갑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쏟아져나와 골짜기를 휩쓸어갔다. 갑대에서는 궁예도 잘 모르는 젊은이가 제일 앞장에 섰다. 한다하는 모흔도 뒤에서 독려하느라 그랬는지 뒤떨어졌다. 을대에서는 대검이 앞장서고 뜻밖에도 장귀평이 뒤떨어졌다. 첫 훈련이 끝난 뒤 궁예는 다시 군사들을 모아놓고 그 자리에서 상과 벌을 주었다.

갑대의 1등 한 젊은이에게 비단이 차례지고 장귀평에게는 회초리를 치게 되였다.

장귀평은 설마해서 궁예를 바라보며 히죽이 웃고있었다.

《쳐라!》 하고 궁예가 엄격히 명령하자 장귀평은 우쭐 놀랐다. 비단받은 군사를 보고 웅성이던 대렬이 삽시에 얼어붙었다.

궁예는 장귀평이 매를 맞는것을 보면서도 눈섭 하나 깜박 안했다.

《궁예가 너를 치는것이 아니라 군률이 치는것이다.》 하고 궁예는 말했다.

《훈련 그만!》 했을 때 싱거워들 하였다.

그러나 궁예는 달리 생각했다. 상과 벌, 훈련의 강도가 기본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군사들이 알게만 하면 되는것이다. 맹물 한사발이라도 된다.

《훈련 그만!》 하고 손을 내리며 궁예는 이 백명의 군사가 이제부터 전혀 달라진다고 확신하였다. 갈데 없다. 눈길이며 표정은 아직도 얼음처럼 차겁게 보이였지만 속으로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시작해서 앞으로 작게 잡아 열흘만 닥달질해도 워낙 날파람있고 갈개는 젊은이들인지라 말그대로 정예기병이 될것이다. 정예기병 백이면 무엇을 못하랴.

한편 량길과 촌주들은 처음으로 구경한 군사훈련을 보고 아주 재미있어하였다. 장귀평이 매를 맞게 되였을 때 량길은 《첫 훈련인데 그만 보아주지 않겠나?》 하고 서뿔리 끼여들었다가 궁예에게 코를 떼운것으로 하여 속이 알찌근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허허 했다.

훈련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얼핏 보건대 단순한 훈련이였지만 상은 상대로, 벌은 벌대로 내렸다.

다음날에는 장귀평이 오히려 상을 받았다. 장귀평은 그제야 궁예가 흐지부지 않는다는걸 알고 기뻐하였다.

《대장은 말한대로 한다.》

군사들은 누구나 무엇이 상을 받으며 무엇이 벌을 받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다. 처음에는 뭘 그러랴 해서 뜨직하게 여기던 군사들은 하루이틀 가면서 승벽을 내기 시작하였다. 자기를 버리고 대장 궁예의 손발로 되여가고있는것이다. 범은 하나라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건 이리떼가 하나의 목적으로 움직이는것이다. 사흘이 지나서부터 훈련은 보다 힘들고 복잡하게 하였다. 말을 타고 산을 톺아오르고 골짜기에 매복하기, 마을을 습격하기 등을 가상한 훈련들이 진행되였다. 그때마다 훈련의 경중을 따져 상벌을 적용하였다. 엄격한 상벌에 의한 훈련, 그것으로 궁예는 백명의 군사들을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정예기병으로 만들어갔다.

훈련이 벌어지는 사흘동안 궁예는 직접 령을 내리고 군사들과 어울려 말을 달리고 쉬기도 하였다. 그것은 군사들의 사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우리 대장이 진짜다!》 하고 기병들은 좋아하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궁예는 속이 우쭐하였다.

궁예는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기병들을 보며 품속에서 깊숙이 감추었던 물건을 꺼냈다. 비단천에 꼬기꼬기 싼것은 보물도 아니고 돈도 아니였다. 그것은 무슨 짐승의 뼈인지 모를 하얀 뼈였다.

궁예는 손바닥에 놓인 그 뼈를 오래동안 내려다보았다. 두마디뼈, 궁예가 세달사에 있을 때 얻은것이다. 바리대를 들고 동냥에서 돌아오던 궁예는 까마귀 한마리가 불길하게 날아가는것을 보고 퉤 침을 뱉았다.

《재수없다!》

하늘을 쳐다보던 궁예는 무엇인가 떨어지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까마귀가 물고 가다 떨어뜨린것이다.

《까욱- 까욱-》

까마귀는 동쪽으로 날아갔다.

궁예는 사라지는 까마귀를 바라보다가 자기앞에 떨어진걸 집어보았다. 뼈였다.

《난 또…》 하고 뼈를 버리려던 궁예는 문득 짚이는데가 있어 다시 뼈를 보았다. 그 순간 궁예의 한눈이 번쩍 빛났다. 두마디의 뼈, 그것은 궁예의 눈에 마치 《임금 왕》자가 새겨져있는듯이 보였다.

자연현상의 해석은 때로 우기는 사람에 따른다. 궁예는 그것이 틀림없이 길할 징조라고 확신하고있었다. 그렇게 고집스레 믿는것이 있어 궁예가 력사에 남은 그런 인물로 된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다가 고마에게 보였다.

《날 비웃겠지?》 하며 궁예는 버리려고 하였다.

《아니오이다.》

고마의 말에 궁예는 눈이 떼꾼해졌다.

《고구려사람들은 태양가운데 세발가진 새가 있다고 보았다고 하오이다. 이를테면 태양에 의해 까맣게 된 그 새는 신조라는것이지요. 그게 어떻게 뒤날에 와서 까마귀가 된 모양이오이다. 까마귀가 떨군 뼈라… 건사해두시오이다.》

쓸모가 있을지 알겠는가고 고마는 웃으며 말했다. 궁예는 그래서 뼈를 싸서 품에 넣었다. 그후 고마는 궁예가 세력을 얻게 되자 뼈이야기를 꺼내 궁예가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여론을 퍼뜨렸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복종시키는데 황당한 이야기보다 더 좋은것은 없다. 황당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더 잘 속는 법이다.

그런 뼈를 다시 꺼내보는 궁예의 진속은 무엇인가.

이제는 일어설 때가 되였다. 제때에 일어날줄 아는것이야말로 행운아의 천운이요, 기질이다. 궁예는 자기의 기마대를 이끌고 세상에 나가야 한다는걸 느꼈다. 속에서 젊은 피가 펄떡펄떡 끓었다. 궁예는 세상에 대고 한번 본때를 보여주고싶었다. 고마가 알면 뭐라고 할가, 초조감에 사로잡혔다고 할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안다. 그래.》 하며 궁예는 치악산을 바라보았다.

치악산너머로 가자.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치악산 동쪽의 고을들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 눈으로 고을들을 돌아보자, 몰래. 그런 다음 싸워보자!》 하고 궁예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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