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 회)
44. 북원에 나타난 고마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다!》하고 고마는 왕륭을 두고 생각하였다. 《북원으로 가주게.》하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인가, 아니 견훤과의 관계를 알게 되였을 때부터였을것이다. 고마는 세상이라는것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보게 되였다. 왕륭은 견훤, 기훤, 량길과 같은 사람들과 뒤손질하고있다. 신라조정에 반역하려는가. 아니였다. 왕륭은 타고난 장사군이요, 견훤 같은 사람은 영웅호걸이다. 이른바 진성녀왕시대에 와서 신라는 말세요, 란세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왕륭이나 견훤 같은 사람을 만들어냈다. 어지러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또 지금이야말로 살아볼만 한 세상이다. 이렇듯 세상이란 묘한것이다. 왕륭, 견훤에 대해서 생각할 때 고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란세가 돈벌이의 초기라고 하지만 또한 영웅호걸에게는 출세의 초기이다. 다른데가 있다면 장사군은 란세를 리용하지만 호걸들은 란세에 리용당할뿐이다. 고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견훤이 호통쳐도 그는 란세가 만들어낸 사람에 불과하였다. 성골, 진골 하는 골품제도가 빈틈없고 그래서 서슬이 푸르딩딩할 때에는 견훤 같은 사람이 나올수 없다. 하지만 그때에도 왕륭 같은 장사군들은 제볼장을 다 보았다. 재물과 돈을 먹고 살아가는데는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어쩔수 없는 일이요, 그러다나니 으르딱딱거리는것 같으면서도 재물과 돈을 끌어들이는것이다. 웃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왕이 그러는데 귀족들이라고 안 그러랴! 명분이요 뭐요 하는것은 재물과 돈을 먹고 살아가는것을 가리우기 위한 교활한 변명일따름이다. 왕이나 귀족들이라는게 앞에서는 큰소리를 쳐도 뒤로는 오히려 돈과 재물에 눈까풀 헤집고 달려드는 게걸쟁이들이니 어찌 장사군들을 가리켜 왕과 귀족들의 목구멍이요, 주둥이라고 할수 없겠는가.
아무리 미욱한 놈이라도 제 주둥이나 앞발, 뒤발을 찍어버리지 않는다. 《더 멋있는것으로!》, 이것이 권력자들이 요구하는 사치인데 바로 이런 갈증을 덜어주는것이 왕륭과 같은 장사군들이다. 누가 누구를 하는따위는 없다. 생성관계라는것이다. 그러니 장사군들은 란세든 평시든 상관없이 존재하는것이요, 수단껏 리득을 보는것이다. 목숨을 걸고 한다지만 큰 리득을 바라면서 목숨을 걸지 않는 어리석은 놈 어디 있으랴. 다만 란세에는 그 리득을 쉽사리 볼수 있는것이다. 아마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런쪽에서 보면 영웅호걸도 출세할수 있는 가능성이 평시보다 란세에 더 커지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배자들과 영웅호걸들은 지배자와 장사군들의 사이가 아니다. 공생공존할수 없다. 적대관계다. 어느쪽이 이기는가에 따라 지배권을 쥘수도 있고 잃을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니 장사군과 영웅호걸이 같을수는 없는것이다. 참으로 놀라운것은 왕륭이다. 왕륭은 특정한 고간이 없는 사람이였다. 몇백, 몇천섬의 큰 고간을 지어놓고 사는 사람이래야 부자란다면 왕륭은 부자가 아닌셈이다. 작은 부자가 아닐뿐이다. 왕륭은 이 세상이라는걸
자기의 고간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고마가 보건대 왕륭의 진짜 보물과 돈은 어느 한 구석에 있는것이 아니라 꿀벌들처럼 날아다니고있었다. 부득부득 끌어들여 부자가 되는것과 쓸모있게 뿌려서 부자가 되는것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왕륭은 자기의 재물과 돈을 어느때 뿌려야 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돌 하나로 새 두마리를 잡는다고나 할가. 왕륭은 뿌리는 재간으로 돈을 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사람이다. 견훤 또 누구누구와의 관계에서 그것을 잘 알수 있다. 아무나 그렇게 하는건 아니다. 왕륭은 어딘가 예언자적인 장사군이다. 그쯤하면 난 사람이다. 고마는 운각스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하였다. 한가한 틈이 생겨 한가한 생각을 하였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운각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나서 잠에서 깨여난듯 하였다. 달콤한 잠에서 기지개를 하며 깨여난것이 아니라 찬물벼락 맞고 깨여난셈이다. 세상이 변한다! 이때까지 그런 생각을 안한건 아니다. 그러나 신라라는 이 좁은 땅에서만 생각해왔다. 세상이, 넓은 세상이 변하고있었다. 그것도 늘 바라던 그렇게 큰 곬으로 말이다. 빨리! 하는 조바심이 고마를 사로잡았다. 어물어물하다가는 때를 놓친다고 고마는
부르짖었다. 고마는 이번 기회에 궁예와 관계가 있었다던 강 뭐라고 하는 녀자도 만나보려고 했지만 부랴부랴 지워버렸다. 후에 보자! 하고 고마는 길을 떠났다. 북원으로 갔다. 북원에 고마가 나타난것은 량길에게 있어서 길조였다. 아침에 까치가 울었다고 량길은 말했다. 량길이 물론 고마가 눈에 들어서가 아니고 왕륭이 자기에게 사람을 보냈다는 그자체때문이다. 량길도 송악의 거부
왕륭에 대해서는 이미전부터 알고있었던것이다. 량길은 기훤과는 좀 다른 사람이여서 왕륭이 선의를 표시한것도 좋지만 북원의 소식이 이미 다른 곳으로 퍼져갔으며 그것도 썩 좋게 퍼져가고있는것을 기뻐하였다. 눈치를 보던 량길에게는 이제는 행동해야겠다는 신호였다. 고마는 그런 량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그는 제 생각에서 곧장 궁예에 대해서 물었다. 《궁예, 그 사람을 알고있소?》 하고 량길이 놀라 물었다. 《기훤에게 함께 있은적이 있었지요. 그때…》 고마운 궁예가 자기를 살려주었다는 소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량길이 궁예에 대해서 뭔가 미타해한다는것을 눈치챘기때문이였다. 《에, 우리에게 와있소. 불행하게 한쪽눈이… 하지만 사람은 괜찮은것 같더구만. 당신은 어떻게 보오?》 《무슨 일을 하오이까?》 《일은 무슨… 그저 말타기를 하면서 있지.》 《그는 능력있는 사람이오이다. 일을 맡겨주면 량길어른의 명성을 떨칠것이오이다.》 《그럴가?》 고마는 그때 량길이 궁예를 의심하고있다는것을 감촉했다. 어째서 궁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는것인가? 그가 너무 뛰여났기때문인가, 아니면 궁예형에게 남을 위압하는 무엇이 있단 말인가?
어쨌든 지금은 좋지 않다. 《한번 살펴보시지요?》하고 고마는 말했다. 《왕륭사찬 사람이 부탁한다면야… 그러지 않아도 그를 부르려고 하던 참이였소.》 량길은 알쑹달쑹하게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