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 회)
43. 운각스님이 만났다는 사나이 면악산 미륵사로 가는 길은 나무와 풀덤불에 묻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오래동안 미륵사에 가보지 못한 고마는 한참씩 방향을 잡아 걷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걱정되는것은 이번 길에도 운각스님을 못 만나면 어떻게 할가 하는것이였다. 전번에 미륵사에 갔을 때 고마는 운각스님이 사찰을 비운지 퍼그나 오랬다는것을 알고 실망하여 돌아왔었다. 운각스님이 사찰을 비우는것은 드문히 있는 일이였다. 스님이 언제 어디로 가군 하는지 누구도 몰랐다. 워낙 운각스님이 사람들을 만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이렇게 어디론가 떠나군 하여서 그를 만나는것은 어려웠다. 고마가 운각스님을 만나려고 하는것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그사이 어떻게
지내고계시는지 알고싶었을따름이였다. 이번까지 만나지 못하면 언제 다시 만나랴. 고마는 자기가 서울에 번살이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는것을 예감하였다. 왜서인지 그렇게 생각되였다. 미륵사가 가까워올수록 고마의 마음은 야릇하게 설레이였다. 스님을 만날수 있을가 없을가? 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 고마의 일은 제대로 되지 못할것이다. 만나면… 사람이란 잘되는 일은 별로
대비하지 않는 모양이다. 운각스님을 만나면 앞으로 일이 잘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잘된다는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되기를 바란다는것인지는 아리숭하다. 한주일대의 이 땅은 원래 고구려땅, 그러니 옛 고구려를 되살려야 한다. 이 땅이 옛 고구려를 이은 발해의 땅으로 되는것은 어떤가? 그래도 좋은가? 그러기를 운각스님은 바라고계시는가? 그 물음에 운각스님은 인차 답변하지 않았다. 그럼 고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구려를 다시 일떠세우자!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뚜렷한것은 이 땅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고구려뿐이
아닌 동족의 나라들을 멸망시킨 신라의 땅으로 되여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왜 꼭 그래야만 하는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마당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한다는건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는 리치다. 이 리치앞에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것이 무슨 죄로 되는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만 그랬다면 안타까운대로 스쳐지날수도 있다. 그러나 신라의 용서할수 없는 악질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나라들을 멸망시켰다는데 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용서할수 없는 비렬하고도 수치스러운 죄악이다.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이는것이 그들의 리치일지라도 외세를 빌어 자기의 형제, 겨레를 잡아먹는것은 형제와 겨레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도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할짓이다. 외세를 빌어 형제를 물어메치고 한때 살아남을지 몰라도 저도 꼭 망하고만다. 그것은 천추에 한을 남기는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형제를, 겨레붙이를 잡아먹을것이 아니라 거꾸로 살려야 하는것이 큰뜻이다. 고구려가 그랬다. 그래서 고구려를 다시 살려야 하지 않는가! 고구려를 다시 일떠세우자!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보람있는 일이다. 떡갈나무사이로 미륵사가 바라보이는데까지 오며 고마는 그런 생각에 파묻혀있었다. 물이끼가 파랗게 낀 작은 실개울을 건너서면서 고마는 후두둑 기쁨이 피여나는것을 느꼈다. 개울가의 작은 돌이 알릴듯말듯
움직인것은 다름아닌 누군가의 자취가 닿았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운각스님이 돌아오셨구나. 고마만이 아는 스님의 체취는 열려진 산문에도 알렸다. 고마는 저도 모르게 성급해져 사찰의 뜰로 들어섰다. 미륵사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적막하였다. 새들의 우짖는 소리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도사님!》하고 고마는 입속으로 불렀다. 고마는 법당에서 운각스님을 보았다. 그러나 스님은 고마가 들어오는것도 알지 못한채 염주알을 굴리며 명상에 잠겨있었다. 고마는 밖으로 나왔다. 한동안 우두커니 아래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스님이 평시에도 생각에 깊이 잠겨져있는 모습이지만 지금처럼 있는 때는 드물었다. 먼 려행길을 메꾸려고 좌선에 드셨는가. 하여튼 그런 때는 스님을 방해하지 않는것이 좋다. 스님은 한식경이 지나서야 나왔다. 인기척을 느낀 고마가 뒤로 돌아섰을 때 스님은 눈이 부신지 한동안 이마에 손채양을 하고있었다. 《도사님, 그동안 편안하셨소이까?》 《아, 고마인가. 온지 오랜가?》 《예.》 《그래? 정말 오래간만일세.》 운각스님의 그 모습과 음성을 대하고보니 고마는 속으로 뜨거운것이 솟구쳐올랐다. 《선생님, 열흘전에 왔다 못 만나고 갔소이다.》 《그래? 사흘전에 돌아왔네.》 《그런데 어디가 편치않소이까? 안색이 좋지 않소이다.》 《자네 그사이 퍽 다심해졌군.》 스님은 빙그레 웃었다. 고마를 만날 때 스님은 별로 산문의 례를 차리지 않았다. 《아마 사바세계의 욕망을 아직 버리지 못해서이겠지. 나는 끝내 석가모니의 제자가 못될것 같아.》 스님은 고마에게 산죽차를 내놓았다. 《날도 좋은데 거닐기나 하지.》 《그게 좋겠소이다.》 스님과 고마는 산죽차를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 법당뒤로는 넙적한 돌을 깐 길이 나있었다. 그것은 운각스님이 하나하나 직접 날라다 깔아놓은것이였다. 고마는 스님의 뒤를 따라갔다. 스님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 일이 잘되였느냐 물을것 같아 두루 생각을 굴렸다. 하지만 웬 일인지 스님은 그런걸 묻지 않았다. 다행이다 하면서도
의아스러웠다. 틀림없이 스님이 이번 길에 무슨 일이 있는가보다. 운각스님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번에 서경 압록부에 다녀왔네.》 운각스님의 말에 고마는 얼굴을 들었다. 《발해에 말이오이까?!》 《그래, 왜 놀라나?》 《아니 그저…》 《허, 내가 발해사람이라는걸 잊은게지?》 《그런게 아니라 천리 먼길이여서…》 《마음에 가까우면 천리를 멀다 할수 없지.》 고마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운각스님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가 멈추어서서 나무잎사귀를 만졌다. 《이번에 사람 하나 만났네.》 새삼스러운 말이다. 구태여 누구를 만나셨소이까 따져묻지 않았다. 그런건 버릇없는짓이라고 언제인가 꾸중들은 일이 있기때문이다. 스님은 하늘을 바라보며 큰숨을 들이켰다. 스님은 생각에 잠겨 만났던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서경 압록부는 발해의 5경15부의 하나이다. 옛 고구려가 두번째로 서울을 옮겼던 곳이다. 오늘의 압록강기슭 집안이다. 운각스님은 이곳에 오면 꼭 광개토왕의 릉비를 찾군 하였다. 아직 젊었던 그 나이때부터 그랬다. 일찌감치 그곳을 찾아간 운각 고계수는 자기보다 먼저 한사람이 그앞에 서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 사람은 다만 거대한 릉비를 구경하고있는것만 같지 않았다. 릉비에 씌여진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겨있는것이였다. 고계수가 다가간것도
몰랐다. 고계수는 호기심 나 그를 조심히 훔쳐보았다. 체격이 우람찬 사나이였다. 특이한것은 눈빛이 무쇠처럼 재빛으로 날카롭게 빛나고있는것이였다. 퍼그나 속이 넉넉해보이는 사나이였다. 누가 뭐라든 누가 오든말든 두발을 벋디디고 허리에 두손을 얹은채 고개를 젖히고 릉비를 오래도록 바라보던 사나이는 이윽해서야 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갖신을 신은 발로 땅을 밟는 첫걸음이 무겁게 들렸다. 사나이는
운각 고계수를 아랑곳않고 걸어갔다. 《거참.》 고계수는 그 사나이의 뒤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따라갔다. 따라오는걸 눈치챘는지 사나이는 우뚝 멎어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왜 남의 뒤를 따라다녀, 개처럼? …》 하고 그 사나이는 눈을 흘겼다. 고계수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기르던 돼지를 찾아다니고있네.》 운각의 대답에 그 사나이는 눈을 끔벅거렸다. 말밑천이 그게 단 모양이다. 혼자 무어라 알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렸다. 《어디 사람이요?》 하고 고계수가 묻자 사나이는 뻔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나는 료하 서쪽에서 왔다.》 《그럼 거란사람?》 고계수의 놀란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거란이라면 서료하의 시라무렌강부근의 사람들이다. 서경 압록부에서 서쪽으로 천리 먼길이다. 《멀리서 왔구만. 광개토왕릉비에는 어떻게?》 《왜, 오면 안되는가?》 《글쎄, 안되기야 뭘. 하도 놀라워서…》 그 사나이는 비웃었다. 《우리, 정확히 우리 가문을 포함한 거란족 일부도 옛날에는 고구려에 속하였었다. 그리고 영락대왕은 그 고구려의 영웅이다.》 들을수록 놀라운 소리이다. 고계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영웅은 하늘의 별이 된다. 하늘의 별은 땅에 있는 누구나 바라볼수 있다. 틀리나, 내 말?》 거칠긴 해도 솔직하고 또 뼈대있는 말이라고 고계수는 생각했다. 재미있다. 그저 떠돌아다니는 사나이는 아니다. 무엇인가 속에 품은것이 있는 사람이다. 《몇살이요?》하고 고계수는 물었다. 그 사나이는 열아홉이라고 손으로 시늉했다. 나이에 비해 퍼그나 듬직해보였다. 두사람은 주막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발해사람이요?》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사나이가 물었다. 고계수는 뭐라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사나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발해사람이라? 흥, 발해것들…》 사나이는 제멋대로 시까슬렀다. 《그래, 발해사람이라면 어쩔셈이요?》라고 고계수가 물었다. 《어쩌긴 뭐 어쩌겠소? 발해사람이라는게 시시하다는 소리지.》 그것은 억지도 아니고 놀리는것도 아니였다. 고계수는 사나이의 무례하고 거침없는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왜 발해가 시시하다고 그러오?》 《왜냐? 음, 그건 발해라는게 큰꿈도 없고 용기도 없고…》 《꿈과 용기라… 그건 당신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요.》 고계수는 어쩌는가 보자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발해는 고구려의 뒤를 이은 나라요. 그건 세상이 다 아는바요.》 그 말에 사나이는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그거야 옛날이지. 그것도 우리 사람들이 아니라면 될번이나 한가. 고왕이 진나라를 세울 때 우리 사람들도 돕지 않았다면 흥, 어디다 대고…》 고계수는 놀랐다. 이 거치른 사나이는 발해의 고왕 대조영의 일도 잘 알고있었다. 이 사나이의 말에도 그럴듯한데가 있었다. 고왕 대조영이 말갈사람 걸사비우와 함께 영주에서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동쪽 고국의 땅으로 오게 된것은 거란사람들이 당나라에 항거하여 당나라를 궁지에 몰아넣은 틈을 탄것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큰 계기로 되였다면 되였다. 그렇다면 이 사나이는 누구인가? 《그렇다고 발해를 숫볼수 있겠소? 내 알기에는 그때 고왕 대조영을 쫓아온것 또한 당신네 사람들이라던데, 당나라군사의 선봉장말이요.》 사나이는 고기뜯던 뼈다귀를 상에 탕 던졌다. 《무엇이?》 사나이가 성이 나서 얼굴이 뻘개지는걸 보며 고계수는 껄껄 웃었다. 《닥쳐라!》하고 사나이는 소리쳤다. 고계수는 사나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사나이는 술잔에 손을 뻗쳤다. 《이제 두고봐! 발해가 망하지 않나, 썩은것들…》 《어째서 그렇게 보오?》 《어째서냐? 당나라가 망하면 발해도 망하는거야. 발해 고왕이 고구려를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너희들 발해는 고구려의 얼이 없다. 당나라것을 그대로 닮아가고있지. 그러니 저희들끼리 싸움질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지. 너희들 발해에 비하면 우리 거란은 한참 혈기오르는 말과 같다. 고구려는 너희들것만이 아니야. 내 말이 틀리나 맞나 두고보자!》 고계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저녁무렵. 말을 탄 사람들 한무리가 사나이를 데리러 왔다. 사나이는 말에 오르며 호기있게 소리쳤다. 《너도 꽤나 안다는것 같은데 나는 그런 사람 좋다. 후날 우리에게 올 기회가 있으면 날 찾아라. 나는 아률아보기다.》 아률아보기! 그는 거란 여러 부가운데 하나인 질라부의 귀족이였다. 고구려가 무너진 다음 거란사람들은 추장 리진충, 손만영의 지휘밑에 당나라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려 자기들의 오랜 터전이였던 서료하의 상류 로합하, 시라무렌강류역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을 계속 유지하면서 거기서 종족을 보존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거란사람들은 한인, 돌궐인 등으로부터 강한 타격을 받고 그들에게 예속되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자기 세력을 수습하여 그들에게 타격을 주고 독립을 회복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강화되여갔다. 신라와 당나라가 마지막숨을 몰아쉬고있던 때에 이르러 거란사람들은 사냥과 물고기잡이, 유목을 기본으로 하던 생산 및 생활풍습에서 벗어나 점차 여러 지방에 정착하여 농경과 목축을 발전시키고 자체로 철과 동 등 쇠붙이를 제련하는 기술도 발전시키면서 급속히 자라났다. 거란사람들은 여러 부족들로 갈라져 살고있었는데 이 부족은 같은 혈통을 가진 씨족의 집단들과 그렇지 않은 많은 부락집단들로 구성된 큰 집합체였다. 이들은 평시에 생활과 생산활동은 부족별로 하였지만 전쟁은 모든 종족들이 동원되여 하는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 부족들은 그 수가 늘거나 줄기도 하였는데 부에는 그를 통괄하는 어른 이리근이 있었고 모든 부들을 통합하는 종족에는 어른 극한이 있었다. 아률아보기는 질라부의 귀족으로서 고계수 즉 운각스님을 만났을 때는 스무살전의 사나이였다. 그는 10년후(901년)에 거란의 일체 군사에 대한 지휘권을 차지하게 된다. 거란군사는 아률아보기의 지휘밑에 북방의 실위, 우궐 등 종족들과 서방의 해족들을 련이어 정복하였다. 거란은 902년에는 벌써 40만의 대군을 가지고 당나라의 하동(오늘의 산서성 남부일대), 대북(오늘의 산서성 북부일대) 등
지방을 공격하여 9군을 탈취하고 9만 5천의 포로와 많은 집짐승들을 빼앗았다. 그들은 전쟁을 통하여 령역을 계속 확장하면서 포로들을 본토의 인구가 희박한 지대에 정착시켜 생산을 계속하게 하거나 그들로 군사를 편성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벌렸다. 거란의 벼락같은 공격의 화살은 당나라에 돌려졌다. 당나라 주, 군들에 대한 거란의 공격이 심해지면서 당나라 북방에 있던 절도사들가운데는 거란과 동맹하여 당나라의 주, 군들을 공격하거나 자기의 적수인 다른 절도사들을 공격하는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게 되였다. 이런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리하여 당나라에 대한 거란의 공격은 뜻밖에 순조롭게 되였다. 906년 12월 흔덕근극한이 죽은 다음 극한으로 된 아률아보기는 이듬해 1월에 대거란의 황제로 되였다. 그런데 이해 4월에 원래 당나라의 한개 절도사였던 변주(지금의 개봉)의 군벌 주전충이 당나라를 뒤집어엎고 후량을 세운다. 후량이 일어선 뒤 거란은 이전 당나라의 다른 주, 군들에 대한 공격을 일시 완화하고 그대신 서쪽에 있는 나라들에 대한 공격에로 나아간다. 이리하여 대체로 916년경까지는 이전 당의 북쪽과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들 즉 돌궐, 토흔(지금의 청해성 및 그 서쪽일대에 있던 종족),
당항(지금의 청해, 감숙성일대에 있던 종족), 소번(지금의 청해 서쪽일대에 있던 종족), 사태(지금의 신강성 일부 지역에 살던 서돌궐종족) 등이 다 거란에 의해 정복되였다. 북방에 대한 정복을 매듭지은 거란사람들은 다시 정복의 예봉을 후량의 북부 여러 주들에 돌렸다. 이리하여 거란의 령역은 음신산줄기를 넘어 멀리 하곡(지금의 산서성의 서남쪽)에까지 이르게 되였다. 그때에 이르러 거란의 세력범위는 10세기초에 이미 동쪽으로는 신라의 서해바다, 서쪽으로는 류사(지금의 거연해 서쪽의 사막지대)와 청해, 북쪽으로는 대막(고비사막), 남쪽으로는 지금의 중국 하북과 산서의 많은 주들을 경계로 방대한 지역에 미치게 되였다. 운각 고계수는 물론 거란이 이렇게 되리라고 내다보지는 못했으나 짐작은 하고있었다. 아률아보기가 무엇때문에 발해의 서경 압록부에 왔댔는지 알고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에는 누구도 거란사람이 발해에 와서 돌아치는것에 대해서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 운각이 아률아보기를 만나고 온 뒤에 여느때와 달리 낯빛이 어두운것은 앞으로 발해가 이 거란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리라는 예감때문이였다. 《선생님께서는 거란사람들이 발해를 공격하리라 생각하시오이까?》하고 고마가 물었다. 운각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설마…》 《아니야. 자고로 료하 동쪽과 서쪽은 누가 일어나 힘이 커지는가에 따라 꼭 그쪽에 힘이 쏠리게 되여버렸어. 거란이 앞으로 큰 힘을 가지게 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뻔한데 발해는 어떤가? 아률아보기, 그 사람이 보기는 바로 보고있네. 고구려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한 발해도 멀지 않아 거란의 발밑에 놓이게 될거네.》 운각과 고마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