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41. 영안성에서

 

돛을 내린 배 한척이 영안성 건너편 강기슭에 머물러있었다. 그 배는 이틀전에 바다에서 들어와 처음에는 혈구진(강화도)을 지나 아리수(한강)쪽으로 거슬러올랐다. 그러다가 무슨 일인지 다시 배머리를 돌려 패강입구로 들어섰다. 강입구로 들어와 영안성을 바라보며 상류로 오르던 그 배는 첫 나루에서 얼마 되지 않는 벼섬을 부리고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강을 건너 지금의 자리에서 돛을 내리고 주저앉았다.

이따금 바다에서 들어온 배라든지 강을 내려온 배들이 물이 새는것이나 마사진 배의 부분을 수리하느라고 그러는적이 있군 했다. 그러나 영안성 건너편에 머무른 배는 수리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좀 이상하다. 하지만 패강에는 많은 배들이 오르내리고 해서 웬만한 배는 사람들의 눈길이 돌려지지 않는다. 배는 한가하게 잔물결에 흔들리고있었다. 배사람들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돛을 내리워 한 귀퉁이에 차일처럼 가리운 이물쪽에 한사람이 소경낚시질을 하고있었다. 아침부터 앉아 낚시질을 하는 그 사람은 이따금 영안성을 건너보다가 탐스럽게 하품을 하군 하였다. 그러던 낚시군은 쌍돛을 달고 다락까지 있는 큰 배가 바다에서 들어와 패강 영안성기슭에 닻을 내리자 무척 긴장해지는것이 알렸다.

낚시군은 낚시대를 팽개치고 영안성쪽을 뚫어지게 살폈다. 영안성기슭에 닻을 내린 배에서는 사람들이 오르내렸다. 낚시군은 한동안 그 큰 배를 살피다가 손바닥으로 갑판을 두드렸다. 배밑 선창문이 열리며 한사람이 머리를 내밀었다.

《뭐요, 시끄럽게…》 하고 그 사람은 잠기어린 소리로 투덜거렸다.

《저게 송악 사찬의 배가 아니요?》

낚시군이 영안성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배사람은 선하품을 하고나서 이마살을 찌프리며 강건너쪽을 바라보았다.

《그런것 같수다. 무슨…》 하고 다시 머리를 선창으로 쑥 내리우려 하였다.

《자, 이렇게 더운 때 두더지처럼 배겨 덥지도 않소? 어서 나와 좀 자세히 봐!》

낚시군이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선창문이 드르륵 열리며 배사람이 마침내 갑판으로 나왔다.

《쌍, 빌어먹을…》

누구에게라 없이 투덜거리며 건너편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틀림없소이다. 들리는 말에 송악 사찬에게 저런 배가 서나무척 된다던데…》

《그래? 됐네. 배가 들어왔으니 사찬이 영안성에 왔겠지?》

《글쎄, 그렇겠지요. 안 올수도 있구요.》

《오늘 밤 달뜰무렵 영안성기슭에 배를 대오.》

낚시군이 말하였다.

《왜 하필 달뜰무렵이요? 지금 건너가 알아보시유.》

《하라는대로 해. 그럴 일이 있어.》

《글쎄, 하라면 해얍죠. 도적으로 몰릴가봐 그러오이다. 그러지 않아도 송악의 배군들은 만만치 않다던데…》

낚시군은 그 소린 듣는둥마는둥 돛기둥을 부여안은채 영안성쪽만 살피고있었다.

그날 밤 만월로 차기 시작하는 달이 영안성을 환하게 비치였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고 강을 내려오는 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 영안성 맞은편에 머물러있던 배가 곧추 강을 건너왔다. 배가 왕륭의 쌍돛배에 접근하자 우에서 기다린듯 등불이 비쳤다.

머리수건 동인 사람이 소리쳤다.

《어디 배요?》

강을 건너온 배는 노질을 멈췄다. 손나팔을 해가지고 낚시군이 올리 소리쳤다.

《사찬어른을 만나러 오는 사람이요.》

다락배에서 등불이 서너개 더 생겼다.

《영안성에 들어가려는거요, 아니면 우리 배에 오는거요?》

다락배에서 물었다.

《우린 영안성에 들어가려고 하오.》

《약속이 있었소?》

《그렇소.》

배우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잠잠해졌다. 낚시군은 손짓으로 배를 기슭에 대게 하였다.

《여기서 기다리게!》 하고 낚시군은 기슭에 뛰여내리며 말했다.

그는 성문쪽으로 난 계단으로 올랐다. 성문은 굳게 닫겨져있었다. 낚시군이 성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성벽우에서 《누구야?》 하는 짜증섞인 소리가 내리꽂혔다.

《사찬어른을 만나러 왔소!》

《없어!》

가타부타없이 썩둑 베버리는 소리다.

《없다니? 난 원추리꽃을 가져왔소.》

《제기랄, 없으면 없는것으로 알게지, 원추리꽃은 또 뭐 말라빠진거야?》

《여보시오, 사찬어른에게 알리시오.》

《없어, 없어. 제기랄, 시끄럽군…》

그리고는 사라졌다.

낚시군은 맹랑해졌다. 몇번 더 성문을 맥없이 두드렸으나 고막뚫린 귀에 문안인사다. 한동안 우두커니 성문을 바라보던 그는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강물은 분지기름처럼 검게 번쩍이고있었다. 잠시 강을 내려다보던 낚시군은 별수없는지 돌계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중간쯤 내려왔을 때였다.

뒤에서 성문열리는 소리가 났다.

《여보시오, 거기 서시오!》

뒤돌아섰다.

《어디서 왔소?》

《남쪽에서 왔소.》

《무슨 일로 왔다구?》

《사찬을 만나러 왔소. 원추리꽃을 가져왔소.》

《원추리꽃? 원추리꽃이라… 아, 알만 하오. 하, 이거 안됐소이다. 하마트면… 우리 사람들이 그만 귀가 어두워놔서… 안됐소이다. 그러지 않아도 사찬어른의 분부가 있었지. 어서 올라오시오이다.》

서로 지껄이는 소리다. 낚시군은 성문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맞이한 성문지기는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였다. 성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큰집들이 자리잡고있는데 거기서는 떠들썩한 소리가 났다.

《오늘 낮에 들어온 배사람들이 술마시는 소리지요. 참, 잘들 놀아요.》

문지기는 묻지도 않는데 쑹얼거렸다. 소란스러운 배군들의 술먹는 방을 지나자 조용한 구석이 나졌다. 그것을 지나자 아담한 기와집이 나졌다. 문지기가 문앞에 이르러 뭐라뭐라 수군거리자 조금 기다리라고 하였다. 성문지기는 돌아가고 한동안 서성거리고있노라니 문이 열렸다. 낚시군은 초불이 환히 켜진 방으로 안내되였다. 백저포를 입고 부들부채를 쥔 사람이 주인인듯 하다. 손님은 한무릎 꿇어 절하고 물었다.

《저… 송악 왕륭사찬이시오이까?》

《아…》 하고 주인은 대답인지 뭔지 알지 못하게 묘하게 감탄조를 뽑아내였다.

《원추리꽃을… 가져왔다지요, 팔건가요?》 하고 백저포는 물었다.

그것 참 인사가 묘하다.

《아니오이다. 그저 사례로…》

《아, 그래요?》

《저는 견훤장군의 심부름군 원회라고 하오이다.》 하고 구리도장이 찍힌 서찰을 꺼내보였다.

《신라 서면 도통 지휘 병마 제치, 지절 도독 전무공 등 주군사, 행전주자사 겸 어사중승 상주국 한남군 개국공…》이라는 빨래줄처럼 긴 벼슬이름이 붙은 서찰이였다.

백저포는 천천히 서찰을 받아 읽어내려갔다. 원회는 서찰을 읽는 상대의 얼굴을 조심히 지켜보고있었다. 견훤의 알쑹달쑹한 긴 서명에 이르러 주인의 입가에 알릴듯말듯 웃음이 떠올랐다. 서찰을 다 읽고난 백저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였다.

《송악 사찬 왕륭이라 하오.》

《명성을 익히 들었소이다. 이렇게 만나뵈오니 기쁘오이다.》

《피차 같소이다.》

《견장군께서 저를 보내실적에 사찬어른에 대해서 칭찬을 많이 하셨소이다. 동란에 길을 바로 보시는 드문분이시라고…》

원회가 하는 말에 왕륭은 부채를 들어 가리웠다.

《지나친 말씀.》

그것으로 자기는 칭찬하는걸 좋아 안한다는것인지, 좋다는 소리인지 알수 없다.

《그래 장군은 무고하시오?》 하고 왕륭이 말꼬리를 틀었다.

《예, 지금 무진주에 계시온데 새로 동남쪽의 여러 군, 현을 또 얻으셨소이다.》

원회는 될수록 짧게 대답하려 하면서 왕륭의 낯빛을 살폈다.

《허, 그 참 기쁜 일이오이다.》 하며 왕륭은 훨훨 부채질했다.

(묘한 사람이다.)

원회는 속으로 웃었다. 기쁜 일이라고 입에 담으면서도 얼굴에는 그런 빛이 한점도 없다. 이 사람의 속심은 도대체 무엇일가? 이 사람은 진정으로 견훤과 통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어떤 리해타산이 있어서일가? 왕륭이 견훤에게 남몰래 재물을 대주며 그와 거래를 트고있다는것을 세상은 모른다. 그것자체가 벌써 왕륭이라는 사람이 남다르다는걸 보여주는것이 아닐가. 견훤이 누구인가. 일찌기 군사가 되여 왕경에 갔다가 서남해변 방위군으로 가서 그 지방군사의 비장이 된 사람, 그러다가 왕경 서남의 여러 주, 현을 치고 신라에 반역한 사람이다. 벌써 100여년전부터 신라는 숱한 반역에 시달리며 쇠약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는 나라인데 그에 반기를 든 사람, 나라에서 보면 어쨌든 그는 역적이다. 그런 견훤과 배꼽을 맞추는걸 보면 왕륭도 결코 숫볼수 없다. 세상이 어수선할 때 거부라고 뜨르르 소문난 사람이 역적과 줄을 잇는다? 그럴법도 한 일이다. 자고로 역적과 줄을 잇지 않는 거부가 어디 있는가. 장사란 결국 어지러울 때 낟가리를 쌓는것이 아닌가. 왕륭은 견훤에게 무엇을 바라고있는걸가? 호걸다운 그것, 아니면 장사길을 위해 미리 길을 터놓는건가? 왕륭은 견훤의 세력이 무진주일대를 덮고있는걸 좋아하나, 나빠하나?

《오는 길이 참 어려웠겠소이다.》 하고 왕륭이 생각에 잠겨있는 원회를 념려하였다.

《뭐 별로…》

《이런 일이 처음이시오?》

《예.》

《응, 오는 길에 물것들이 성하지 않습디까?》

《물것이라니요?》

《요즘 외사정이 떴다던데…》

《저는 배길로 왔소이다.》

《그렇소? 하긴 배길이 요즘은 편안하지…》

왕륭은 너부죽한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피웠다.

《며칠 쉬여가시오이다.》

왕륭이 부채질을 멈추며 하는 말이였다.

원회는 고개를 저었다.

《고맙긴 하오나 인차 떠날가 하오이다. 배가 성밖에서 기다리고있소이다.》

《견장군의 배가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만…》

《그럼 됐소이다. 이제 우리 사람들을 내보내서 배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지. 어쨌든 어려운 길 왔을텐데 선자리에서 보내면 견장군이 나를 욕할것이오이다. 마음놓고 푹 쉬시오.》

원회가 듣건대 왕륭은 거부답게 씀씀이도 넉넉하다. 그런 씀씀이는 또 왕륭이라는 사람을 둥둥 태우기마련이다. 먹는 소가 어쩐다고 왕륭에게 이렇게 대접받는 놈팽이는 또 그대로 왕륭이는 훌륭합데다, 어쨌다 하는 칭찬의 떡쪼각을 붙여놓기마련이다.

원회는 영안성에 머물러있게 되였다. 원회는 성안을 돌아보려고 나갔다. 성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바다에서 패강으로 접어드는 대목에 있는데다가 바로 물가에 바투 붙어있어 닭알노란자위였다. 배를 타고 장사를 해도 그래, 일단 급한 일이 있으면 피하자 해도 그래 영안성만큼 좋을것이 없을듯 하였다. 이런 영안성이 다름아닌 왕륭의 개인성이라는것은 참으로 야릇하다.

성이란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다스리는게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왕륭이 이런 성을 가지고있는가? 그가 무슨 주의 도독이나 나라님이라도 된단 말인가. 군의 태수가 요해처의 성을 다스린다고 보아도 송악 사찬이면 송악에 성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는 송악땅도 아닌것이다.

신라라는 나라에 그저 그러루한 벼슬아치가 자기의 성을 가지고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따지고보면 온통 수상한것뿐인데 세상은 어떻게 돼먹었는지 그저 그렇고 그런것으로 떨떨거리며 굴러간다. 재미있다 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지…

영안성은 다른 고장보다 물산이 아주 많고 고급하였다. 원회로서는 난생처음 보는 물건들이 많았다. 값도 다른것보다 퍽 싸다.

또 그가운데서도 당나라물건들이 버젓이 팔리고있는데 영안성에만 있는 풍경같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영안성을 돌아보는것이 심심치는 않았다. 흔들흔들 성안을 돌아다니던 원회는 방립쓰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무심히 스쳐지나가던 원회는 눈길이 꼿꼿해졌다. 방립쓰고 오고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으나 원회가 알만 한 사람이 있을수 있나, 잘못 보지 않았는가? 원회는 의혹을 털지 못한채 방립을 슬금슬금 따라갔다. 마침 방립은 원회가 든 집쪽으로 가고있었다. 문득 방립이 멈춰섰다. 그도 무슨 낌새를 챈 모양이다.

《저… 실례지만 말 좀 물읍시다.》

《아니?! …》

원회의 입에서는 외마디소리가 터졌다. 방립쓴 사람은 고마였다. 고마도 원회를 보고 놀랐다. 남쪽 어딘가에 있을 그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가?

《원회!》

《고마형!》

두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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