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편

용감한 사람

3

 

이튿날 새벽녘이였다. 엷은 안개가 변전소를 포근하게 휘감았다.

정준하는 집으로 내려가는 경애를 마을앞 큰길까지 바래워주고 돌아섰다. 아버지걱정은 말고 어머니를 잘 돌봐주라고 루루이 일렀다.

딸은 생긋이 웃어보이며 집근심은 말라고 아버지를 다정히 위로했다.

얼마후 그가 다시 변전소정문을 통과하여 전투지휘부에 들어설 때였다. 전화종이 울었다. 누가 이렇게 일찌기 전화를 할가 하고 생각하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전화받습니다.》

《아버지예요? 저예요, 승호예요.》

《오, 어떻게 새벽부터 전활 하냐?》

《이렇게 해야 아버지를 조용히 만날수 있을것 같아서요. 건강은 일없어요?》

《응.… 그래 무슨 일이 있냐?》

《일이야 뭐…》

《건강해서 공부를 잘하냐?》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한다.

승호는 전기전문학교 졸업반 학생이였다. 서로 멀리 떨어져있어 아버지와 아들은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런 아들이 오늘 아침에는 아버지의 가슴을 몹시도 아프게 했다. 승호는 자기의 격한 감정을 누르느라고 애쓰는것 같았으나 저도 모르게 자꾸 어성이 높아지는것 같았다.

《아버진 저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았지요? 그런다고 제가 모를줄 알았겠지요.》

《그건 무슨 소리냐?》

《요전번에 제가 아버지한테 제기된 일을 물었을 때 두말도 못하게 전화를 끊어버리지 않았어요.》

며칠전에 승호가 전화로 물어왔다. 아버지가 일을 잘못하여 처벌을 받았다는데 그것이 사실인가고 했다. 소식이 어떻게 돌아가다 아들의 귀에까지 가닿은것 같았다.

정준하는 졸업반에서 한창 학업에 힘써야 할 아들한테 쓸데없는것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여 그따위 뜬소리는 믿지 말라며 전화를 끊어버리였다.

어제 밤 경애가 승호는 아직 아버지일을 모르는가고 물었을 때도 딸이 더 가슴아파할가봐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무엇을 알았는지 이렇게 아침일찍 전화를 걸어올줄이야.…

《아버지, 저도 이제는 다 압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겠는가 하는것도 알구요. 속상한건 제가 졸업반에 와서 아버지가 일을 잘하지 못한것입니다. 그것으로 해서 졸업후의 일도 좋을것이 없구요.》

정준하는 아래입술을 꾹 깨물었다 놓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가 다 안다니 그럼 말하자. 아버지가 일을 잘못해서 당분간 기사장사업을 내놓고 현장에서 일하고있다. 아버지로서 너희들앞에 볼낯이 없구나. 그럴수록 너는 본신임무인 공부를 더 잘해야 한다.》

《어떻게 잘하겠어요? 앉으나서나 아버지에 대한 생각뿐인데… 속상하기만 해요.》

《아버지를 원망하는 네 심정이 리해된다.》

《아버지, 제발 저만 저라고 우기면서 자꾸 외통길로만 나가지 말아주세요. 제가 학교가기 전에 시송배전소에서 일할 때도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기사장으로서 실력이 높다 해서 누구 말도 듣지 않고 제 배짱대로만 나간다는거예요. 그러다가 코를 박는대요.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순간 정준하는 분기가 울컥 솟구쳤다. 더 참을수가 없어 한손으로 책상을 탕 내리쳤다.

《닥쳐라, 이 쓸개빠진 녀석! 공부를 잘한다고 다들 춰주니 제가 제일인가 해서 이제는 못하는 수작이 없구나.》 그래도 아들은 제 말만 했다.

《이번 대형변압기대보수도 도의 힘으로는 못한다고 여럿이 말렸다면서요? 그런걸 아버지가 우기고 나섰다가 일을 저질렀다고 하더군요.》

《듣기 싫다! 네가 뭘 안다고 간참질이냐.》

정준하는 송수화기를 덜컥 놓아버리고말았다. 신경이 살아올라 담배갑부터 꺼냈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고 후유― 한숨처럼 긴 연기를 내뿜었다.

자기가 일을 잘못한것으로 하여 자식한테서까지 수모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불시에 서글퍼졌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이제는 철들 나이도 됐는데 아버지한테 투정질을 해.… 저것이 아직 사람답게 익을려면 멀었구나. 당장 사회에 나와 한몫해야 할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그게 다란 말인가. 뭐 코를 박는다고?

보나마나 저게 이제 얼마나 아버지 속을 태우겠는지 돼먹은 자식같으면 경애처럼 아버지한테 힘을 줘야 옳을게 아닌가.

애를 태우는 자식으로 하여 가슴이 무거워진 정준하는 사무실안을 일없이 빙빙 돌며 애꿎은 담배만 자꾸 피웠다.

그는 얼마후에야 아침을 먹으러 식당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흔연스러운 낯색을 지었다.

그가 아침을 먹고 마당가에 나왔을 때 도송배전부 초급당비서 장유상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왔다. 짐틀에는 큼직한 부식물마대가 실렸다.

대형변압기대보수전투에서 후방사업을 맡은 당비서였다.

며칠전에 회의가 있어 도당위원회에 내려갔다가 또 무엇인가를 잔뜩 싣고 올라온것이다. 장유상은 들어서기 바쁘게 그동안의 대보수전투 진척정형을 정준하한테 물었다.

《계획 대 실적은 매일 150프로 이상입니다. 카봉용접공들이 더 성과를 올리지요. 철심조립도 마감단계에 들어섰구요. 그리구 제가 어제 간석지기사장과 함께 가양도 앞바다에 나갔다 왔습니다.》

정준하는 해창군 명산포에 나가보니 공사가 어렵겠다는것, 그렇지만 기어이 해야 한다는 결심이 더 굳어졌다는것을 이야기했다.

장유상은 빙그레 웃었다.

《그 각오가 중요한거지요. 지휘관이 어떻게 결심하는가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좌우됩니다.》

《태천발전소가 조업해서 전기를 생산하는데 가양도에 왜 전기를 못 넣겠습니까.》

《옳습니다. 송전선건설치고 힘들지 않은것이 있습니까. 그렇지만 하자고 결심한 사람의 의지를 꺾을수는 없습니다.》

정준하는 저력있게 뇌이였다.

《사상정신이 강해야 담력도 커집니다.》

선군시대에 살고있는 대중의 심장에 불을 달아주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이다. 그래서 당보에도 대중의 강한 정신력은 핵무기보다도 위력하다고 쓰지 않았던가.

장유상은 자전거바구니에 있는 비닐주머니안에서 담배 한갑을 꺼내 정준하에게 주었다.

《좋지 못해두 피워보우.》

《허― 이거 괜치않은거군요.》

당비서는 정준하와 동년배였다. 그런데도 정준하보다 댓살은 더 우인것처럼 보였다. 그는 워낙 젊어서부터도 퍽 숙성해보였다고 한다.

갓 스물에 났을 때 벌써 스물댓살쯤 된것처럼 보여 이것을 모르는 고개너머집 로파가 《젊은이래 눈딱감구 맘에 들어 늘쌍 봤대두.》 하며 자기 막내딸을 주겠다고 자꾸 사람많은데까지 쫓아다녀서 혼이 났다는 일화도 있어 젊은이들을 웃기였다.

장유상은 보통키에 몸은 보기 좋았고 건강했다. 어질어보이는 큰 눈이 너부죽한 얼굴과 조화되여서인지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였다.

옷차림도 늘쌍 수수했다. 젊어서 뻰찌를 차고 전공을 한 경력이 있어 지금도 전주대에 오르내리는 일을 식은죽먹기로 여겼다.

그는 도송배전부사람들이 다 기술일군들이여서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깊이 간참하지 않았다. 기본을 종업원들의 생활과 후방사업에 모를 박고 내밀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 또 하루 대보수전투가 시작되였다. 도송배전부안의 기능높은 변압기 고급수리공들이 작업조를 무어 달라붙었다.

대형변압기는 크기가 꼭 집채만 하다. 밑에는 레루를 깔고 대차를 놓은 우에 변압기동체를 올려놓았다. 대차밑에 4개의 강철바퀴가 달려있어 그것으로 움직이게 했다.

변압기꼭대기에 굉장히 큰 관통애자 3개가 나란히 꽂혀 고압선을 물고있다. 그 애자 한개의 무게만도 1톤씩이다. 그아래 50톤짜리 기름탕크가 길게 누워있다.

변압기는 밑에서 꼭대기까지가 까맣게 높아 긴 사다리를 타고서야 올라갈수 있다. 희한하게 큰 놈이다. 이런 변압기를 해체해놓고 지금 대보수를 하고있다.

정준하는 철심조립에서 일했다. 대보수전투가 마감단계인 요즈음엔 처음 일을 벌려놓던 그때가 때없이 자꾸 떠오르군 했다.

 

…작년 2월 어느날.

도간석지건설사업소 기사장이 처음으로 정준하를 찾아왔었다. 목적은 계획토의였다. 자기네가 수행해야 할 방대한 간석지건설계획을 알려주고나서 그러려면 가양도에 전기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도간석지건설사업소의 위임에 의해서 제가 도송배전부에 계획토론을 오게 됐습니다. 국가적인 립장에 서서 우리를 적극 도와주기 바랍니다.》

정준하는 간석지기사장을 통하여 해창군 명산포 가양도의 앞바다에 거대하게 큰 수천정보의 땅덩이가 물밖으로 나오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말만 들어도 욕심이 나는 땅이였다. 멀지 않은 앞날에 그 바다가운데에 군이 생겨날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만큼 국토가 넓어진다.

벌써 중앙의 간석지건설총국에서는 그 땅을 얻기 위한 총설계도까지 완성했다니 얼마나 벅찬 일인가.

《그러니 도송배전부에서 가양도에 전기만 끌어넣어주십시오. 가양도에 휘황한 불빛이 넘치는 그날에 도간석지건설부대들은 광대한 새땅을 얻기 위한 총전투에 들어갈것입니다.》

간석지기사장은 흥분하여 어깨를 움씰움씰 솟구었다. 그는 가양도송전선공사를 당장 시작해달라고 했다. 정준하는 어이가 없어 허구프게 웃었다.

《우물에 가서 숭늉찾겠소. 성급하기란… 큰 공사를 하려면 우선 준비부터 해야 할게 아니요.

가양도에 송전선공사를 하려면 그 준비사업으로 변전소에 있는 대형변압기 1호, 2호부터 먼저 대보수해야 합니다. 이 대형변압기들의 대보수기일이 여러해나 지났지요. 대보수기일이 오래 지나면 변압기들이 폭발될수 있고 또 그런 극단한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효률이 점점 약해집니다.

거기다가 가양도에 또 6만볼트의 고압선을 늘이면 대보수를 못해서 가뜩이나 용량이 작아진 변압기가 견뎌낼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위한 준비로 우선 대형변압기 두대에 대한 대보수부터 먼저 해서 전기를 승압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선행작업이 없인 안됩니다.》

긴장한 낯빛으로 정준하의 말을 새겨들은 간석지기사장은 어깨를 푹 떨구었다. 이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깨도가 된 그는 상심하듯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군요. 저야 그런 문세를 압니까. 들어보니 참 제가 망탕 덤볐군요.》

얼마후 간석지기사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루루이 부탁했다. 그동안 자기네들은 간석지를 막을 전투준비를 더 잘 갖추겠으니 대형변압기들에 대한 대보수기일을 앞당겨달라고.…

간석지기사장이 돌아간 다음에도 정준하는 한동안이나 방안을 거닐었다. 재부, 재부 해야 큰 땅을 얻어 국토를 넓히는것보다 더 큰 재부가 어데 있을가.

가양도앞바다의 거대한 간석지 새땅, 이 크나큰 농토를 얻어내는 거창한 사업에 한몸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선군시대의 일군이라고 말할수 있으랴. 전망적으로 군이 들어앉을수 있는 수천정보의 새땅을 얻는다. 생각만 해도 흥분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르고 피가 끓고 심장이 높뛴다.

흰쌀이 폭포처럼 쏟아질 기름진 옥토, 강성대국건설에서 첫째로 많아야 할것은 쌀이 아닌가.

이런것을 생각할수록 정준하는 도처에서 요구하는 전기를 척척 보내줄수 있게 준비돼있는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마음든든했다. 가양도에 6만볼트의 전기를 서슴없이 뚝 떼여줄수 있는것도 태천발전소건설을 끝낸 덕이 아닌가.

하다면 지금 우리 힘으로 가양도공사를 당장 시작할수 있을가. 물질적으로 충분히 갖추어진 조건에서만 할수 있다고 타산을 세운다면 안이 서지 않는다.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정신, 때문에 선군시대의 사상정신은 강성대국건설에서 천하지대본으로 되는것이 아닌가. 대중을 사상으로 각성시키고 사상으로 발동하는데 승리의 담보가 있다. 래일을 위해 한몸 내대야 할 때는 왔다.

인간은 사상으로 강해지고 그것으로 하여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금수와 같고 이것이 약하면 마련돼있는 조건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는것을 체험을 통해 심장에 새기고있는 우리들이다.

정준하는 곧 지배인실로 건너갔다.

최장근지배인은 전화를 받으며 기사장더러 앉으라고 손짓으로 쏘파를 가리켰다. 지배인은 금년에 예순다섯살이지만 예전처럼 몸가짐이 단정하고 침착했고 두눈은 사색적이며 폭넓은 목소리는 위엄스러웠다.

긴 언덕이마에 키도 크고 턱도 길어 모든것이 길어보인다. 반대로 몸집이 없어 웃옷이 후렁해보였다. 나이에 비해 머리칼이 너무 일찍 세여진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들이 머리물감을 들이라고 권해도 들은척 안했다. 백수풍신이라더니 흰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설비점검을 위한 간부순회때 현장순회를 끈끈히 하는 그 위신있는 풍채로 하여 전력공업부문에서 한생을 바쳐오는 로장의 풍격이 새삼스레 느껴지군 했다.

전화로 전기를 랑비하고있는 어느 공장 지배인을 몰아댄 최장근은 기분이 언짢아 더운 숨을 내쉬였다. 그는 송수화기를 놓고 정준하가 앉아있는 옆쏘파에 와서 앉았다. 담배갑을 꺼내 한대 뽑아물었다.

이어 정준하는 가양도송전선건설문제를 제기했다.

최장근은 대뜸 간석지기사장이 그 방에 갔던가고 물었다.

《예, 저한테 왔다가 방금 돌아갔습니다.》

정준하의 대답을 들은 지배인은 흠― 하고 의미를 알수 없는 코소리를 냈다.

《좌우간 간석지기사장이 정열적인 사람이요. 일을 많이 하겠다는 그 일욕심은 정동무한테 짝지지 않을것 같아.》

정준하는 지배인이 간석지기사장을 칭찬하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띄웠다.

《간석지기사장은 물론 그곳 지배인도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댔소. 내 그래서 두사람한테 꼭 찍어 말해줬소. 가양도송전선공사는 시기상조라고 말이요.

물론 우리는 고난의 행군도 겪었고 강행군도 겪었소. 새 세기에 들어와 경제가 부흥하고있소. 하지만 가양도공사를 하려면 아직 힘을 좀더 길러야 해. 마구 덤비다가는 실패하오. 안되오!》

딱 잘랐다. 침묵이 흘렀다. 한참후에야 최장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기사장은 간석지건설사업소에 어떤 대답을 줬소?》

《나라의 국토를 넓히는 중대한 일을 놓고 흥정할게 있습니까. 전 당장 가양도송전선공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정준하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모르쇠를 하고 앉아 지배인의 낯색을 살폈다. 하지만 지배인은 뜬뜬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오히려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사장의 배짱이 부럽구만. 가능성을 납득시켜주겠소?》

《수천정보의 새땅을 빨리 얻고싶은 욕심뿐입니다. 그런 욕심이 곧 추동력이 되고 대담성으로 불타게 될겁니다.》

《좋은거요. 그런 욕심이 누구에겐들 없겠나. 나도 떡상을 받아놓고도 먹지 못하는 심정이요. 하지만 욕심은 가슴속에만 있을뿐이지 가양도송전선공사를 할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니요.》

《지배인동지, 우린 언제까지나 적절한 시기가 오기를 앉아서만 기다릴수는 없다고 봅니다.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위한 준비사업부터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형변압기 두대를 금년안으로 대보수하자는겁니다. 그래야 래년에 가양도송전선공사를 벌릴수 있습니다.》

《대형변압기 1호, 2호의 대보수를 먼저 선행하자는것이지?》

최장근은 혼자소리처럼 외우고나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보수 그자체가 큰일이기때문이였다. 그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 손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배인동지, 우리 변전소는 도내에서 제일 큰 변전소가 아닙니까. 여기서 기본핵인 대형변압기 두대의 대보수기일이 여러해 지났습니다. 금년에 대보수를 하지 않으면 래년에 가양도송전선공사를 할수 없습니다.》

최장근은 큰머리를 끄덕이며 음― 하고 자기도 알수 없는 신음소리 비슷한 탄식을 뽑고는 긴 허리를 쏘파등받이에 기댔다.

정준하는 뒤말을 이었다.

《우리가 자체의 힘으로 대형변압기들 대보수를 한다면 다들 믿지 않을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대보수를 통해 우리 도송배전부사람들에게 결심하고 달라붙으면 못할것이 없다는 신심과 공격정신을 심어주자고 합니다. 대형변압기들 대보수전투에서 우리들의 실력과 배심을 키우면 신심을 안고 보다 더 큰 가양도송전선건설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최장근지배인은 말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기사장이 대형변압기들부터 먼저 대보수하자는건 옳다. 가양도공사를 당장 하는가 마는가는 래년에 가서 볼셈치고 도내에 전력공급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도 대형변압기들 대보수는 해야 한다.)

《변압기대보수는 미룰수 없소. 더는 흡진갑진하며 흥정할 형편이 못돼.》

지배인은 다시 생각해볼것도 없다는듯 동의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준하가 전국적으로도 전기기술에서는 몇손가락안에 꼽히는 수재로 공인되고있지만 지배인 최장근도 기사장 못지 않은 실력가여서 그 대형변압기 두대를 빨리 대보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데 대해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가양도송전선공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변압기들 대보수에 대해서는 선뜻 나서는구나. 대형변압기들을 대보수하는것이 사업에서 기본을 이루며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때문일테지. 아무튼 한가지라도 지지해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지배인은 대보수작업이 더없이 아름찬것이여서 말문이 막혔다. 무조건 해야 할 일이지만 막아선 고개길이 아득히 높아 앞이 내다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껏 그래서 못하지 않았는가. 래년에는 형편이 좀 펴이겠지, 래년에는… 하고 이붓아비 제사날 물리듯 만날 래일, 모레 동동 벼르기만 하다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 덮쳐드는 바람에 어쩌지를 못했지. 이제는 그 시련의 고비도 넘겼으니 조건없이 해야 한다.)

최장근은 넌지시 물었다.

《대형변압기대보수를 우리 힘과 기술로 꽤 할수 있을가? 이것이 몹시 우려되오. 우리가 지금껏 소보수는 많이 했지만 대보수는 처음이지.》

정준하는 이튿날로 대형변압기들을 설계하고 제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ㄷ전기공장으로 떠나갔다. 가보니 그 사람들은 이미 나이가 많아 다들 돌아가고 없었다. 할수없이 거기서 설계도면을 빌려 도면 연구를 하고 숱한것을 스케치해가지고 돌아왔다. 자신심이 생겼다.

즉시 기업소적인 기술협의회를 열고 이제부터 대형변압기들을 우리 힘으로 대보수한다는것을 선포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연하여 기사장이 제정신인가고 반문했다.

주관적욕망만 앞세우다가는 큰 랑패를 본다느니… 여론은 구구하고 힐난하는 목소리들이 높았다. 기사장이 공명주의를 부린다고도 했다.

최장근지배인의 보고를 받은 전력공업성에서도 론의가 분분했다. 그렇게 큰 대형변압기들을 도송배전부의 기술로 대보수할수 있는가고 물었다.

32톤기중기도 해결해달라고 제기했다. 대형변압기 웃뚜껑 하나만도 25톤이나 되므로 32톤기중기가 없으면 대보수공사를 시작도 할수 없다.

조형례국장의 전화가 내려왔다.

《지배인동무, 정준하기사장이 직접 대보수를 지휘한다던데 옳소? 정말 자신있게 할수 있소?》

《난 우리 기사장을 믿소.》

《그렇단 말이지… 물론 정준하동무가 박식한 사람이라는건 우리도 아오. 기사장이 뭐 여러 나라 말을 자유롭게 한다면서? 그렇지만 일반전기리론과 이 대보수작업과는 방법과 실무적인 기능에서 차이가 있소.》

《어찌겠소. 우린 이젠 막다른 골목에 들었소. 올해까지 대보수를 넘겼다간 무슨 일이 나오. 우릴 도와줄 사람은 없소. 막다른 골목에 들었으니 우리 힘으로 대담하게 하는수밖에… 강아지도 막다른 골목에 들면 범을 문다고 했소. 우리도 범을 물어보자는게요.》

최장근지배인과 조형례국장은 가까운 친구들이였다. 젊은 시절에 그들은 수력발전소에서 첫 낯을 익혔었다. 한때 전기전문학교에서 교원을 하던 최장근이 수력발전소의 기술과장으로 갔을 때 조형례는 거기서 생산과장을 하고있었다.

그도 몇달전에 그곳으로 왔다고 했다. 나이도 비슷한 두 과장은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내며 발전소에서 성과를 올렸다.

세월이 흘러 조형례는 전력공업성의 부국장으로 올라가고 최장근은 도송배전부의 기사장으로 들어왔다. 이런 연고가 있어 그들은 나이가 많아도 여전히 친분이 두터웠다.

조형례국장은 최장근에게 가양도송전선공사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고 물었다.

《난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경황이 없소. 공사야 여간만 중요하지 않지요. 수천정보의 간석지를 얻기 위한것인데… 그렇긴 하지만 공사를 할만 한 조건을 제대로 갖추었는가… 그러니 내가 어떻게 견해를 세우겠소.》

《할수 없다는 대를 확고히 세우누만.》

《어느때 가서든 해야 할 공사인것만은 틀림없소. 하지만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못되오. 시기상조요.》

《그렇게 못하겠다는 사람이 성에다 반영은 왜 했소?》

《내가 했소? 정준하동무가 앞질러 쐈지. 기사장의 든장질에 골이 아프오.》

《그러니까 정준하동무의 옳은 주장을 정면반대할수는 없어서 성에 반영하는걸 모르는척 했다는거요? 가양도공사가 시기상조라면 적합한 시기는 어느때라는거요?》

《그렇게 따지면 난들 어떻게 대답하라는거요?》

《여보여보, 자신이 보신주의자가 돼가고있다는걸 생각해보지 않았소.》

《너무 몰아대지 마오. 보신주의는 크나적으나간에 누구에겐들 없겠소.》

《지배인동무, 기사장과 발을 맞출것을 권고하오. 지배인동무의 담력을 가지고는 가양도공사를 못할거요. 정준하동무의 실력이 발휘되지 않는 한 그 공사는 못할거란 말이요. 좌우간 가양도공사를 위한 준비로 대형변압기들 대보수부터 먼저 하겠다는건 좋소. 어쨌든 변압기대보수는 해야 하니까. 32톤기중기를 우리가 해결해보겠소. 내 곧 내려갈테니 기다리오.》

송수화기를 놓은 다음에도 최장근은 신경이 올라 한동안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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