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 회)
38. 모 흔 모흔은 몸을 뒤척이며 밤새껏 잠들수 없었다. 궁예, 대검과 늦도록 화해술을 마셨건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아무래도 억울하였다. 송아지적 친구인 대검, 그녀석보다 어쨌든 제가 우라고 여겨왔던 이때까지의 생각이 틀려졌기때문만이 아니다. 모흔은 분명 자기가 외토리로
돼가고있는것을 알았다. 그것은 변명할수 없다. 왜 그럴가? 무엇을 잘못했을가? 모흔은 이때껏 자기도 신라에 항거하는 사람으로 자부해왔다. 젊은이에게 반항아라는것만큼 매력은 없다. 크면 클수록 좋다. 누구나 꾸벅 죽는 나라법에 반항한다. 그건 영웅이다. 왜 반항하는가 하는 리치는 가리워진다. 무엇에 반항한다는 그자체가 매력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리득이 되는것이 없다 해도 젊은이라는 사나이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자랑거리다. 《나는 반항아다!》라고 모흔은 속으로 자부해왔다. 그것도 신라라는 나라에 반항하는 사나이다. 모흔이 이렇게 된데는 그자신이 신라통치에서 가난하기때문이라는데도 있지만 젊은이의 매력이라는데도 있었다. 모흔이 남달리 말을 잘 타고 재주가 능해서 같은또래들에게 호감을 사기도 하지만 크게는 그가 신라의 통치를 싫어하고 그에 드러내놓고 반항한다는데 있었다.
누구나 쉽게 할수 없는 일을 한다는 영웅심리는 젊은이에게 큰 매력이였다. 《어떤 녀석이야? 뭐, 기껏 그거야? 뭐, 출세한다고?》 하며 모흔은 벼슬아치자식들을 비웃어주군 하였다. 모흔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기의 매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매력의 기둥은 량길나으리이다. 다만 조금 다른것은 길나으리보다 내가 더
나라에 반항한다 하는것이였지만 어쨌든 모흔은 량길을 자기의 스승격으로 여기고있었다. (사나이라면 량길어른쯤 되여야지…) 하고 모흔은 생각했다. 그런 모흔에게 펑 구멍이 뚫렸다. 량길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그것은 모흔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량길어른은 옳게 처신하고있는것일가? 모흔은 처음으로 의심을 가졌다. 그자신이 그렇게 생각한것이 아니라 그의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모흔은 참을수 없었다. 무턱대고 량길을 의심하는것은 괴로운 일이였다. 그렇다고 눈가리고
아웅할수도 없었다. 《속시원히 해명해보자!》 벌떡 일어나며 모흔은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모흔은 아침에 슬그머니 량길을 찾아 떠났다. 정작 길을 떠나자 마음은 또다시 뒤숭숭했다. 걸음이 떠졌다. 모흔은 해가 한발 떴을 때야 이전 북원 소경청에 닿았다. 큰 대문앞에 두사람이 죽창을 들고 서있었다. 그들은 군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느 농민도 아닌 얼치기차림새였다. 모흔은 두사람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문득 길섶 풀잎에 잠자리 한마리가 눈에 띄웠다. 엷은 날개에 이슬이 맺힌 잠자리는 나른해보였다. 아마 다가가도 날지 못할것이다. 잠자리, 가을잠자리는 저렇게 처량하다. 그 잠자리를 보자 모흔의 귀에는
궁예가 하던 말이 웅웅 들려왔다. 작지 않고 크고 약하지 않고 강하며 가난하지 않고 부유하며 서로 다투며 갈라지지 않고 뭉치는 나라, 그것이 우리들의 참된 조상의 나라 고구려다. 모흔은 숨을 들이그었다. 문으로 다가갔다. 문지기들은 모흔을 알아보았다. 《모흔 아닌가?! 어인 일로 왔나?》 《량길장군을 만나려고…》 《공적인 일인가 아니면 사적인 일인가?》 《그저…》 《사적인 일이라면 만나기 힘들걸세. 벌써 한마당 가득찬걸 보게.》 하면서 문지기는 대문을 찌꾹 열어보였다. 아닌게아니라 넓은 청의 뜨락에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여있었다. 《무슨 사람들인가?》 하고 모흔이 물었다. 《별의별 일이 다 있지. 량길어른에게 여사여사한 일을 바로잡아달라는거네. 이를테면 이전 소경 사신나으리가 하던 일이지. 그런데 요즈음 더 사람들이 많아졌네. 어른이 시시콜콜 다 들어주시니까 별치않은 일까지 상소하러 오네. 그러니 어른이… 한번 만나기가 쉽지 않네.》 모흔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과연 량길은 바빴다. 아무개네 소가 콩밭에 들어와 돌아쳤으니 변상하게 해달라는 등의 일로 시작해서 하치않은 도적사건, 싸움질(싸움질도 싸움질할걸 그런게 아니고 아낙네들이 내가에서 빨래하다가 그 집 아이가 어쩌고저쩌고하다가 마침내는 머리끄뎅이를 잡고 싸웠다던지 그러루한것이였다.) 나아가서는 북원본토배기들과 이주해온 사람들사이에 벌어지는 소송 같은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모흔은 들을수록 입안이 떫떫해졌다. 나라에 반역하여 들고일어난 북원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건 비상시국같은감은 없고 그렇다고 그런 일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내버릴수도 없는것 아닌가. 자질구레한 일로 소경청이 붐비는 자체가 마음에 없었다. 대검녀석은 이걸 알고 그랬냐. 모흔은 아직까지 모르고있었다. 이것이 들고일어난 목적이란 말인가. 일이 제대로 돼가는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무엇이 제대로 돼가지 않는지 딱히 찍을수 없다. 모흔은 생도토리를 씹은 낯이였다. 소경청은 서로 다투는 소리, 쿨쩍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한낮이 지나서야 모흔은 량길을 만날수 있었다. 그런데 량길은 선뜻 모흔을 알아보지 못했다. 또 무슨 소송질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있는 량길의 얼굴에는 피로가 겹쳐있었다. 《정 급한 일이 아니라면 점심이나 지난 다음에 만나지. 허어, 이건 끼니도 모르시는구려…》 하고 량길은 중얼거렸다. 모흔은 량길의 얼굴을 아연해서 바라보았다. 그사이에 아래목늙은이로 되여버렸다. 그것도 그것이려니와 자기를 몰라보는데 더욱 놀랐다. 그러고보니 모흔이 량길을 본지도 퍼그나 됐다. 그사이에 북원의 수비를 맡고서도 량길어른을 만나보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이럴수가 있나? 별일없이 지나간 그 나날이 의심스럽고 그런 무사태평한 날에 습관되여가던 자기가 놀라웠다. 신라조정에 들고일어난 북원땅에서 이것이 과연 정상이란 말인가? 놀랍고 께름하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북원방비를 맡은 모흔을 량길이 모른다는것자체가 비정상이다. 모흔은 그제서야 대검이 어째서 불평을 부리는지 알게 되는듯싶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모흔은 량길이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촌주님, 저는 모흔이라 하옵니다.》 하고 모흔이 다소 언짢은듯 말했다. 량길의 얼굴에는 다른 빛이 나타났다. 《모흔, 모흔이라? …》 량길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한심하다 하고 생각하며 모흔은 말했다. 《촌주님을 받들어 진을 보는…》 모흔이 찔러주어서야 량길은 제 머리를 툭- 쳤다. 《아, 알만 해. 이 정신 보지, 허허… 모흔을 몰라보다니. 그래, 요즈음 어떤가?》 무엇이 어떻단 말인가? 모흔은 기분이 잡쳤다. 《어떤가 말씀이오이까? 그야 촌주님이 와서 보시오면 알수 있을텐데요.》 겉은 부드러우나 속이 삐뚤어진 모흔의 대답이였다. 《하, 그렇지 그래… 그러고보니 내가 정사에 파묻혀서…》 모흔은 량길의 웃음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사라고? 그따위 시시한 소송질이나 처리하는게 무슨 정사란 말인가, 지금이 북원이 바람앞에 선 등잔신세인데… 모흔의 속은 끓었다. 곧고 불끈하기 잘하는 젊은이의 혈기가 솟구쳤다. 《허허, 성이 났군그래. 모흔, 그것때문에 나를 탓하러 왔나?》 하고 량길이 모흔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모흔은 고개를 들었다. 《자,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우리 집에 가세!》 량길이 모흔의 팔을 잡았다. 《아니오이다. 사실은 촌주님에게 묻고싶은것이 있어서 왔소이다.》 《무언데?》 《앞으로 어떻게 되오이까?》 《무엇이 어떻게 돼?》 《우리가 말이오이다.》 《허, 그것때문에?》 《예, 우리 친구들이 이제는 이런 물에 물탄것 같은 놀음에 지쳤소이다.》 《젊은이들이 좋긴 좋군.》 량길은 애매하게 말했다. 《그래 모흔, 임자네들은 어쨌으면 좋겠다는건가?》 모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촌주님은 평소에 늘 우리가 고구려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렇다면 신라에 들고일어난 이때 와서 마땅히…》 모흔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끝까지 말해보게. 그래서, 마땅히 어쨌다는건가?》 《군사를 무어 옛 고구려를 회복해야 하지 않소이까.》 《군사를 뭇는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소리야. 하지만 모흔, 생각해보게. 지금은 신라조정의 거동을 보는것이 상책이야. 저 사벌주의 일을 모르지 않을테지. 무턱대고 창칼들고 일어난다고 될 일인가. 울뚝밸이 살인쳐…》 그래서 이렇게 게으른 녀편네 낮잠자듯이 하오이까 하고 내쏘고 싶은것을 모흔은 겨우 참았다. 《세상일이라는게 너희들 젊은이가 보는것처럼 단순하지 않아…》 코린내나는 소리다. 량길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였다. 맥빠졌다기보다 어딘가 처량한감이 드는 한숨소리였다. 모흔의 눈앞에는 맥빠진 가을잠자리가 떠올랐다. 그뒤로 인차 궁예가 나타났다. 그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머룩하니 앉아서 말만 하는게 고구려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기있게 앞으로 나가는것이 고구려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는 그 열정이 고구려다 하던 궁예의 말이 귀를 윙윙 울렸다. 《그러지 않아도 자네와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네. 하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네. 급한 일이나 메꾸고나서는…》 모흔은 량길이 주름살많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앙상한 주먹을 부르쥐는것을 보고있었다. 마음속 한귀때기로 혹시 량길어른은… 내가 너무 투덜거리는게 아닌가 하는 위구심도 들었다. 《모흔! 난 자네와 같은 젊은이들을 믿네. 이제 일을 크게 벌릴 때가 되면 자네는 마땅히 장군이 돼야 해. 내 말 알겠나?》 모흔은 한숨을 풀었다. 《저보다 궁예형을 내세우는것이 좋겠소이다.》 하고 모흔은 말했다. 《궁예? 궁예라니… 오, 그 외눈깔땡중말인가?》 량길이 웃으며 물었다. 모흔은 찌뿌둥해서 내뱉았다. 《궁예형은 기훤에게서 검술교관으로 초청받았는데 그런 재주라면 장군감이 되지 않겠소이까.》 《그럼 자네는?》 《나야…》 《그게 진정인가?》 《그렇소이다.》 《궁예의 부하가 되라고 해도 좋아?》 《궁예형은 나 같은것 하고는 뭔가 다르오이다.》 《무엇이 다르다는건가?》 《글쎄 말이오이다. 하여튼 사람이…》 《이 쓸개빠진 놈.》 하고 가볍게 량길은 모흔을 나무랐다. 《음 그래, 궁예라…》 량길은 얼굴을 쳐들어 하늘을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