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35. 북원에 나타난 궁예

 

모흔과 김대검은 말을 타고 고개길마다 배치된 자기 사람들을 돌아보고있었다. 북원 량길의 봉기군은 곤두뿔 세우고 관군이 쳐들어오지 않나 지키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군은 잠잠하다. 쳐들어온다는 소리는 희미해졌다. 차츰 긴장이 풀렸다.

백도 아니고 열도 아니요, 기껏 다섯곳의 하나인 북원경이 들고일어났는데도 한다하는 관군이 까딱 안하는걸 어떻게 보아야 할것인가? 죽었나 살았나? 모르고있나? 그럴수 없다.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나? 임금이 너그러워서인가?

그러루한 추측이 장마철 버섯처럼 무수히 생겨났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한것 같애.》하는 얼빠진 추측까지 나타났다. 백성은 참으로 아량있다. 그저 무슨 일에서건 좋게만 흐르려고 한다. 《그 <좋게>라는것이 바로 얼빠진것이다.》라고 꼬집고 때리는 퍅하는 사람도 있다.

북원이 들고일어났는데 어째서 관군이 진압하지 못하는가 하는걸 백성들은 알수 없었다. 그걸 알자면 북원보다 먼저 들고일어난 사벌주의 경우만 놓고보면 쉽게 알수 있다. 진성녀왕 3년(889년) 사벌주에서 원종과 애노에 의하여 반란이 일어났다. 왕이 나마 령기를 시켜서 토벌하게 하였다. 하지만 원종, 애노의 농민군은 보루에 튼튼히 의거하고있었으며 그 무력이 강하고 사기가 왕성하여 감히 관군이 접어들 엄두를 못 냈다. 결국 정부군은 완전히 패하고말았다. 그후 촌주 우련이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워 겨우 수습했다.

왕이 죽은 우련을 가엾게 여겨 여라문살 나는 우련의 아들이 아비의 뒤를 이어 촌주로 되게 하였다.

이걸 통해서 알수 있는것은 무엇인가. 그때 신라는 정부군의 힘을 가지고도 주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힘들었다는것이다. 오히려 촌주가 그 반란군을 진압했다.

림해전에서 술놀이나 잘하는 왕의 신하들에게 묘한 구실이 생겼다.

《뭐, 북원에서?! 거 시끄럽군. 직이 끝내 버르집어놨어!》

《우수, 하서정을 파견하여 토벌해야 하지 않나?》

《그랬댔자 안되오. 령기를 못 봤소?》

《그럼 어쩔가?》

《놔두지. 제풀에 무너지지 않으리. 놔두면 철없는 백성들에게 임금의 아량을 보여주어서 좋아, 우련 같은게 생겨 저희들끼리 싸우게 하니 좋아, 다 좋은것뿐이 아니요.》

《그럼 놔두자오?》

《놔두오. 자, 술이나 마십시다.》

여러 중앙관청들을 통제하며 국왕의 명령을 직접 받아 집행하는 집사성의 시중 준흥과 관리들의 인사문제를 담당한 위하부의 금하신(장관, 후에 령으로 되였다.) 아노가 주고받은 말이다.

모르는척 한다는것은 아량이 있어서가 아니라 겁이 나거나 힘이 없어서이다. 북원에 대해서 속수무책이면서도 입으로는 아량을 뱉아놓는것은 진골들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처사였다.

북원에서는 이걸 모르고있었다.

오늘도 모흔과 대검은 말우에서 건들건들하며 산등성이로 가고있었다. 말들도 이제는 어지간히 길이 익어 고삐를 당기지 않아도 잘 찾아갔다.

《장군은 어쩔셈인가, 도대체…》

하품을 하며 대검이 하는 말이였다.

《어련히 생각이 있지 않을라구…》

모흔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북원이 들고일어나고 량길은 《장군》이 되였다. 그것뿐이였다. 처음 기세같아서는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울것 같더니 기껏 북원의 분지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예로부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어. 북원을 먼저 튼튼히 하고서야 밖으로 나갈수 있다 그 말이라니. 그러니 굳게 지키기만 하되 꿈쩍말아.》

《장군》량길의 전략이다.

《나가야지! 들어박혀서야 어디…》

모흔과 대검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들이 자기들의 이 생각을 제법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병가의 말로 표현하게 되는것은 후날의 일이다.

《이러다가 독안에 든 생쥐신세되지 않겠나.》하고 대검이 말했다. 량길의 전략에 불만이다.

모흔은 못 들은척 했다. 량길《장군》에 대해서 아무리 친한 대검이라 해도 그앞에서 내놓고 불평하고싶지 않았다.

갑자기 말이 멎어서는 바람에 모흔은 고개를 들었다.

《뭐야?》

풀숲에서 재빛메토끼 한마리가 나왔다.

《이것 봐라! 대검!》

《응, 봤어!》

대검이 고삐를 채여 말을 돌리는데 모흔은 벌써 박차를 가했다.

《어쩌자는거야, 모흔?》

《따라오라. 오늘은 토끼나 잡아 구워먹자!》

대검은 씩- 웃었다.

《자식…》

모흔은 말을 타고 숲속에서 토끼몰이하는걸 아주 좋아하였다. 웬만하게 말을 탈줄 몰라가지고서는 시끄러운것이다. 모흔은 강기슭 풀덤불에서 고기를 잡듯이 숲속에서 긴 장대로 토끼를 쫓아 잡아내기를 잘했다. 별 녀석이라고 모흔의 그 재주에 대검은 혀를 찼다.

모흔은 한손으로 고삐를 채며 한손엔 죽창을 쥐고 토끼를 쫓아 숲속으로 뛰여들었다. 숲이 와스락거리고 놀란 새가 날아났다. 대검은 모흔이 토끼를 몰아내기를 기다렸다. 숲속에서 말울음소리와 함께 모흔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났다.

재미좋군 자식.

《모흔, 어떻게 됐어? 이쪽으로 몰라구, 이쪽으로!》하고 대검이 소리쳤다.

그러는데 갑자기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엉? 이 친구 말에서 떨어진게 아니야? 혹시 범?!

대검은 모흔이 들어간 숲속으로 말을 몰았다. 나무가지가 무성하게 뻗어 낯을 때린다. 이래서 대검은 숲속에서 말타는걸 싫어한다.

쌍, 빌어먹을! 그런데 모흔녀석은 사슴처럼 잘도 싸다니는걸. 별로 상하지도 않고. 참 별난 녀석이야.

《모흔, 어디 있어?》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흔의 뒤잔등이 나무사이로 보였다.

그런데 모흔의 앞에는 토끼가 아니라 웬 사람이 우뚝 서있었다.

《무슨 일인가, 모흔?》 하며 대검은 모흔에게 다가갔다.

모흔은 앞에 나타난 사람을 쏘아보고있었다.

《당신 누구요?》 하고 모흔이 버릇처럼 이마살을 찌프리며 물었다.

《난 궁예라는 사람이요.》

《궁예? 왜 여기 숨어있소?》

《숨어있는게 아니라 지쳐서 쓰러졌댔소.》

《어디서 어디까지 가는 사람이요?》

《오기는 개산에서 왔고 여기까지 왔소.》

《개산? 개산 어디 있었소?》

《칠장사에 있었소.》

《거긴 누가 있소?》

《누구겠소? 내가 있었지.》

《이것 봐라. 너 두더지가 아니야?》

《두더지라니?》

《시침떼지 말아. 우리 북원을 렴탐하러 왔지, 이 관군의 끄나불아?》

《여보시오, 초면에 생트집걸지 마시오. 두더지라니, 끄나불이라니?》

모흔과 대검은 서로 마주보았다.

《나는…》하며 궁예는 옷섶에 붙은 락엽을 털었다.

《북원의 량길어른을 만나러 오는 길이요.》

《왜?》

《왜긴 왜겠소? 만나려니 만나는거지.…》

《이것 봐라. 틀림없이 개다!》

모흔이 다짜고짜 죽창을 꼬나들고 달려들었다.

《네가 우리 량길장군을 어찌려는구나. 어디 죽어봐라!》

궁예는 들고있던 석장으로 자기 목을 곧바로 겨누고 다가오는 죽창을 쳐버리고 껑충 비켜선다.

모흔이 어느새 몸을 비틀며 다시 죽창을 내질렀다.

궁예도 뒤로 돌아서며 피했다. 살을 피하는 범같았다.

토끼몰이하던 모흔으로서는 처음 본다. 성이 난 모흔이 다시 말을 돌려 궁예를 덮쳤다. 어느새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들었다. 궁예는 얼굴을 돌려 코앞으로 칼이 스치게 하고 날래게 석장끝으로 모흔의 어깨를 쳤다.

《억-!》소리를 내며 모흔이 말에서 떨어졌다.

《이거 왜 이러시오?》 하며 궁예는 석장을 짚고 말했다.

《당신 누구요?》

대검이 한편으로는 모흔을 막아서고 한편으로는 궁예를 겨누며 물었다.

《궁예라고 하지 않았소, 량길어른을 찾아오는… 그런데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우린 량길장군의 부하들이요!》

《량길장군의 부하? 요새는 장군철인가, 저마다 장군, 장군하니…》

궁예가 코방귀를 뀌고 말을 이었다.

《부하들이라니 마침이요. 날 그 어른에게 안내해주오.》

모흔이 일어나 옷을 털었다.

《뭣때문에 그러오?》

《그 어른아래서 싸우려고 그러오!》

《그게 정말이요?!》

《정말 아니면… 우리 알고 지냅시다!》

《좋소. 난 모흔이요. 이 사람은 대검.》

《아, 그래? 초면에 실례가 많았소.》

《나도 그렇소.》

《말을 아주 잘 타던데?》

《그쪽에선 석장을 귀신같이 쓰더군요.》

《뭘, 좀… 나에게 말타는걸 배워주지 않겠소?》

《창쓰는걸 배워주면 얼마든지…》

그리고는 껄껄 웃었다. 사내들이란건 참 별 종자들이다.

모흔과 대검은 궁예를 량길에게 데리고 갔다.

량길은 궁예를 선뜻 만나주었다. 인상도 좋았다. 기훤과 달리 의심하는 빛도 없었다. 궁예는 그것이 좋았다.

량길이 궁예를 까닭없이 만나준것은 궁예라는 이 사나이가 좋아서보다 그가 죽주의 기훤에게서 왔다는것으로 해서였다.

그때 량길은 사방에 북원하고 련합하자는 글을 띄웠는데 그가운데서도 특별히 눈길가는 곳은 개산의 기훤이였다.

아직 북원린접 군, 현에는 기훤의 세력만 한것이 없었다. 일이 잘되여 기훤이 오면 틀림없이 다른 군, 현에서 반응이 있을것이다. 량길은 이미 사벌주반란이 실패한것이 다른 주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기때문이라는걸 간파했다.

《늙으면 멀리는 보지만 가까이는 못 보거던. 그게 로안이야.》하고 량길은 묘한 말을 했다. 생리적인 로화를 빌어 자기의 장점을 널어놓는것이다. 량길은 궁예에게 개산의 형편을 자세히 물었다.

궁예가 자기는 기훤과 사이가 나빠 여기로 왔다 하는 소리에 량길은 히죽이 웃었다. 그제야 량길의 눈이 궁예를 훑었다.

쓸모있는 사나이다 하고 길은 속으로 웨쳤다.

《그래, 대사는 어디 태생이시오. 정주, 개산?》 하고 길이 물었다.

《고구려사람이오이다.》

궁예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은 고마가 일러준 말이였다.

량길의 흐리멍텅하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러는 길을 보며 궁예는 거참, 고마가 신통한데 하였다.

《무얼 바라오? 기훤장군이 그대를 검술교관으로 쓰려고 했을적에야…》

모흔이 길의 귀에 대고 뭐라 수군거리자 길의 주름잡힌 얼굴이 더욱 펴졌다.

《어디, 우리 군사들을 다스려보지 않으려우?》

궁예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량길어른에게서 배우려고 온 사람이오이다. 그저 보통군사로 있게 해주시오이다.》

《그렇게야 어떻게…》

《정 보아주시려거든 저를 모흔에게 보내주시오이다.》

《그러지, 응.》

량길은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궁예는 모흔, 대검의 부대로 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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