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 회)
34. 가을밤송이는 벌이 쏘아 터진다더냐 진성녀왕 3년(889년)에 이어 이듬해에도 나라 여러 주와 군에서 납세를 하지 않아 국고가 비여있었다. 의례히 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독촉하였다. 대아찬(5등급벼슬) 김직은 왕의 사신의 한사람으로 북원으로 가게 되였다. 그는 성격이 대쪽같은 사람이라 소문났는데 대개 그런 사람은 너그럽지 못하고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웠다. 말하자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였다. 북원으로 가게 된 그는 어지러워진 나라형편이 녀왕을 비롯한 귀족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해서 그렇게 되였다고는 꼬물만큼도 생각지 않고 오로지 조세를 제때에 바치지 않는 《게으른》 백성들탓이라고 이를 갈았다. 임금에 대한 《충성 충》자 하나만을 신주처럼 여기는 그는 자기가 세상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언제한번 생각지 않았다. 내마(혹은 나마라고도 한다. 11등급벼슬) 령기라는 사람은 김직의 죽마고우였다. 그러나 령기가 사벌주에서 일어난 원종, 애노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했다고 왕의 참수를 받게 되자 직은 이때까지 우정을 깡그리 날려보내고 령기를 비겁하고 더러운 역적이라고 저주했다. 아연실색하는 사람이 많았다. 원효스님의 세속오계만 보더라도 사람이 행하는것이 임금에 대한 충성만 있는것도 아니고 친구에 대한 믿음도 있는데 직은 너무하군, 지랄병에 걸렸나 하고 입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만 봐도 직이 어떤 사람인지 비슷이 알만 하다. 소나 말, 자식과 녀편네는 오로지 채찍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진것과 마찬가지로 백성들도 오직 엄하게 다스려야만 한다고 보는것이 그의 치세의 골자였다. 《무자비하게 때려라! 그러면 복종할것이다.》 하고 직은 소리치군 하였다. 평시에는 입이 무거워 늘 장마하늘상통이 되여있다가도 술님이 행차시다 하면 때를 가리지 않고 고래고래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군 하여 그 소리에 고막이 터질 지경이여서 술좌석의 혀를 차게 한다는 소문이 있다. 《그 소리가…》 하고 한번 들은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그 소리가 에밀레종소리같소구려!》 하는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몽둥이로 김치독 박살내는 소리요.》 《아니요, 아니요. 꽹과리 두드리는 소리요.》 《무슨, <나가자!> 하고 관창이 북두드리는 소리요.》 《모르는 소리요. 잘 먹어서 기운센 돼지 멱따는 소리가 제일 적중하오.》 《쯧쯧, 알기는 잘 안다. 그게 과부가 오래간만에 남자맛보고 좋아서 지르는 소리요.》 나중에 한 소리는 지나친것 같다. 임금에 대한 충성이 지극하다 못해 지나친 직을 이상하게도 같은 족속의 진골귀족들도 은근히 멀리했다. 그의 처세술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이상한 성격이 어떤 후과를 미칠지 몰라 겁나서였다. 직자신은 아나? 모를거야. 그는 귀가 먹었다더군, 가엾게도… 하는 얄미운 사람도 있었다. 직은 단단히 벼르고 북원으로 갔다. 진골들만이 입게 된 자색옷자락이 서슬푸르게 펄럭펄럭 날렸다. 김직은 북원경에 당도하자 사신이 차린 잔치도 마다하고 조세정형부터 따졌다. 사에 앞서 공을 내세운다는 갸륵한 관리의 행실이였다. 김직이 조세독촉사신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받은 사신은 제때에 준비해두었던 장부를 내보였다. 그에 의하면 북원경은 바쳐야 할 조세를 이미
바친것으로 되여있었다. 《무슨 소릴 하시오, 사신! 다 바쳤으면 이 직이 어명을 받잡고 나왔겠소?》 《글쎄올시다. 어인 영문인지… 이 장부대로 우리 북원은 이미…》 김직이 제아무리 충성스럽다 해도 꾀부리는 사신을 당할수 없었다. 보는 앞에서 아래것들을 불러 따지게 했다. 마찬가지이다. 사실 직은 북원경이 얼마의 조세를 미달하였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있지 못하였다. 어명을 받았으면 그 실무에 대해서 골을 짜야겠으나 직은 충성심이 높다나니 엉뚱하게 자기를 믿고 파견해주는 임금과 그런 거룩한 임금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죄책으로 하여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치락거린것이다. 그가 아는것은 북원경도 조세미달이라는것뿐이였다. 그런데 내려와보니 사신이라는 경의 장관이 개구리눈깔하고 딱 바라본다. 《나를 속일 생각일랑 마시오!》 하고 김직은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하, 딱하오이다. 글쎄 나로선 할수 있는껏 다했는데…》 사신의 여우웃음에서 이 몽둥이같은 놈아 하는 속심이 내비치는걸 직은 똑똑히 보았다. 울컥 밸이 났다. 《그게 도대체 나라의 록을 타먹는 사신이 할 소리요? 아무리 소임을 다했다 하더라도 나라의 고간이 비여 임금께서 근심하시거늘 신하는 마땅히 뛰여야 할게 아니겠소.》 《글쎄, 목숨이 속곳끈이라면 가위로 잘라보이겠소만 그럴수도 없고… 그러니 어찌하란 말씀이시오?》 《북원경이 바쳐야 할 조세를 국고에 틀림없이 들였는지 안했는지는 서캐잡듯 따져볼 일이고 에, 당장은 백성들에게서 덧조세를 받아야 하겠소!》 하고 직은 으름장을 놓았다. 《그건 곤난한 일이오이다. 워낙 이 북원이라는 곳이…》 김직은 사신을 보며 비웃었다. 《그대에게 하라고 하지 않을테니 구경이나 하시오. 당장 촌주들을 모아주시오. 내 본때를 보이겠소.》 이리하여 량길도 김직앞에 서게 되였다. 직은 아래것들 시켜 량길에게 추가로 바쳐야 할 조세품목과 량을 이르게 하였다. 《낼테냐, 안 낼테냐?》 김직은 손등으로 눈섭을 씻어올리며 따졌다. 량길은 김직이 부르는 조세, 아니 강탈의 량이 하도 엄청나서 이게 무슨 고래아가리냐 하고 바라보고있었다. 《묶어라!》 김직이 호령쳤다. 량길은 꼼짝 못하고 형틀우에 묶였다. 《이건 너무하오이다. 벼락치듯 이러시면 어찌하오이까? 하정도 살피고 백성들과 의논을 해서…》 량길이 하는 소리에 김직의 코살이 소파리에 쏘인듯 쭝긋쭝긋 거렸다. 《하정은 무슨 하정이고 백성은 또 무슨 백성이냐? 네놈이 소문이 자자한 그 량길이란 촌주겠다? 네놈의 수단을 세상이 다 알고있는데 백성이 어쩌구저쩌구 요령을 부리려느냐?》 김직은 벌떡 일어나 발을 굴렀다. 《쳐라!》 량길은 난생처음 매를 맞았다. 쉰에 나서 맞는 매에 량길은 곧장 기절했다. 그것도 모자라 량길의 집은 김직에 의해 도륙이 나고 다음날에도 또 매를 맞았다. 《하겠다!》 하고 빌 때까지 치라는것이 김직의 호령이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수군수군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였다. 량길의 일을 두고 깨고소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물론 소경의 벼슬아치들이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량길의 일을 두고 분해하였다. 특히 농민들과 노예들이 더했다. 어쨌든 덧조세를 내고 안 내고 하는건 그들의 몫이였기때문이였다. 북원경의 수비군에 모흔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의 아들인데 량길의 도움을 받아 죽게 된 아버지가 살아난 때부터 량길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젊은이였다. 그는 김직에 의해 량길나으리가 매를 맞고 침해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격분하였다. 김직은 왕이 파견한 칙사가 아니라 돼지같은 놈이다, 길어른만 미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모두를 죽이려 한다, 이제 곧 김직이 달려들것이다, 앉아서 비겁하게 죽기를 바라지 말고 포악한 김직을 쫓아내자,
사신도 김직을 나빠하니 우리를 탓하지 않을것이다 하고 동료들에게 큰소리로 떠들었다. 삽시에 불이 확 당겼다. 격분한 군사와 촌놈들이 김직을 습격하여 묶어버렸다. 량길은 놓여나왔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신을 비롯한 벼슬아치들은 모두 달아났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량길앞에
모흔이 묶은 김직을 끌고 왔다. 직은 개고기먹고 졸다가 잡힌 범처럼 날뛰였다. 모흔이 구뎅이에 빠진 메돼지처럼 푸들쩍푸들쩍 뛰는 김직에게 《칙사나리! 임금의 어명을 받은 칙사라면 응당 임금의 자손들인 백성을 살려야
하지 않겠소. 진골나리들은 그런걸 다 배웠을텐데 오히려 백성을 잡아먹으려 덤비니 그게 칙사요, 아니면 역적질하는 이리새끼요?》 하고 시까슬렀다.
제법 사리에 맞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김직을 격분케 하였다. 상놈이 감히 귀족을 야료하다니, 네 이놈! 이놈! 목대에 피줄이 동아줄처럼 살아오르고 낯빛이 잰내비궁둥이처럼 빨갛게 되였다. 둘러섰던 사람들이 그 꼴을 보고 하하 웃어댔다. 너무했다.
가엾은 김직의 눈이 사발만큼 커지고 풀어진 머리카락이 뿌직뿌직 뿔돋고 입에서는 게가 들어앉아 부지런히 밥을 해대듯 거품이 버글거렸다. 《이… 이…놈들!》 김직은 묶이운 몸을 솟구치며 소리 한번 장하게 지르더니 아뿔싸 풀썩 물먹은 흙담처럼 무너져버렸다. 김직은 너무나 성이 나서 그만 염통이 터져서 죽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량길은 매맞던 원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걱정이 앞섰다. 임금의 칙사를 죽였다. 보통일이 아니다. 칙사가 잘했든 못했든 그건 다음일이다. 량길은 재빨리 주천으로 달아난 사신에게 편지를 보냈다. 《칙사가 죽은것은 첫째로 촌놈 량길의 잘못이요, 둘째로 칙사의 잘못이요, 셋째로 무지한 백성의 잘못이오이다. 보건대 이번 일에 북원경사신의 잘못은 없소이다. 촌놈 량길이 엎드려 빌건대 사신께서 다시 북원경으로 돌아와 사태를 바로잡기 바라나이다. 그렇지 않다가는 또 무슨 일이 터져 임금과 나라에 근심을 끼치겠는지 예측할수 없나이다.》 하는 내용이였다. 사신은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한편으로는 돼지같이 미욱한 김직을 욕하고 한편으로는 백성을 욕하며 전전긍긍하고있었다. 그러던차에 량길의 글을 받고 엉뚱한 용기가 생겼다. 그리하여 《촌주의 행실은 나라앞에 솔직히 죄를 비는것이라 마땅히 임금의 용서를 받을줄 안다. 그러나 칙사가 설사 제풀에 죽었다고 하나 죄는 죄인고로 원컨대 주모자의 목을 베여 주천으로 보내면 그것을 서울로 보내고 나는 북원경으로 돌아가겠노라.》 하는 답을 보냈다. 모흔이 자기 목을 쳐 백성들을 편안케 하라고 하였다. 량길은 망설였다. 말도 되지 않는다. 모흔이 자기를 살려주었다고 해서가 아니였다. 거기에다 《그럴것 없소. 어찌 모흔의 목만 치겠소. 우리모두의 목을 치시오!》 하며 젊은이들까지 들고일어났기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흘이 지나갔다. 사신이 독촉해왔다. 위협까지 했다. 만일 이 사실이 관의 급보로 서울까지 가면 북원경은 쑥대밭이 될것이다. 등등…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사벌주사람들처럼 들고일어나자!》 하고 모흔이 웨쳤다. 량길은 또 주저했다.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우수정(춘천), 하서정(강릉), 동당(군대)이 왕의 명령으로 북원을 토벌하련다.》 누구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는 몰랐다. 얼핏 겁주기 위해 꾸며낸것 같다. 그런데 거꾸로다. 《좋다! 왕과 싸워보자!》 하고 떠드는 젊은이들이 한둘이 아니였다. 치떨리는 일이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썩었단 말인가 하고 량길은 놀라운 눈길로 둘러보았다. 북원경이 거세게 일떠섰다. 마을마다 들고일어나 스스로 무기를 잡았다. 불과 열흘안팎이였다. 어찌되려나 남아서 굴속의 쥐님처럼 기회를 엿보던 벼슬아치까지 싹 달아났다. 량길은 일이 이렇게 번지자 북원경내에 글을 돌렸다. 우리들이 오늘 일어난것은 포악한 칙사와 사신 같은 무리때문이다. 고구려의 후손들아, 우리들이 언제까지나 신라의 포악을 받고있을수만 없다. 이제 북원은 우리들의 세상이다. 일체 조세를 면하고 촌마다 장정들을 뽑아 군사를 무으며 북원으로 들어오는 요로를 막아 신라에 대항하자. 량길이 직접 썼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썼는지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 글은 섶단에 불지르기요, 붙는 불에 키질하기였다. 이리하여 북원일대는 신라조정에 반대하는 량길의 봉기군으로 들끓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