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29. 고 마

 

결국 삶과 죽음의 차이는 눈깜빡할 사이요, 머리칼 한오리 차이였다. 그것은 새로운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는것과 체험하는것은 엄청나게 다르다.

시퍼런 작두날밑에 목을 들이밀었던 고마의 생각이였다.

물론 고마는 삶과 죽음의 차이에 대한 그러루한 감상에만 사로잡혀있는것은 아니였다.

 

이 세상은 태평만 하지 않은것이다

란리때를 생각하고 사는 준비하여라

인간일은 마음대로만 되는것만 아니다

뜻밖의 일을 생각하고 사는 준비하여라

 

고마는 삶과 죽음에 미치는 요인 특히는 분명 모든 세상과 인간의 삶가운데 근본문제인 사람의 목숨에 미치는 여러 요인들가운데서 가장 하치않은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였다.

한 인간의 변덕이 삶에, 죽음에 미치는 영향.

고마는 그것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비관하게 되는것이다. 아무리 사람의 생명이 파리목숨같다고 할지라도 그럴수가 있는가. 기훤이라는 한 무지한 인간, 그러면서도 보잘것없는 권력을 가지고있는 이런 인간의 변덕으로 고마는 하마트면 목이 잘릴번 하였다. 사람의 목숨이 세상만물중에 근본문제임에도 그런 인간의 변덕때문에 좌지우지될수 있단 말인가. 놀라운 일이다. 세상살이가 그렇게도 어설프게 얽혀져있단 말인가. 세상은 너무나 어둡지 않는가. 도무지 알수 없는 일처럼 되였다.

흔히 미친놈에게 칼을 주지 말며 무식한 놈에게 권력을 주지 말며 어리석은 녀인에게 아기를 주지 말라는 소리는 떠돈다.

이전에 고마는 그것이 자기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듯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있을법 한 문제인듯이 생각하여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고마는 리치를 따지기 좋아하는 버릇대로 그것을 별스럽게 깊이 생각하는것이다.

변덕쟁이, 그는 감정에 지배되여 세상일을 제멋대로 처리한다. 사람의 느낌, 흥분, 감동이 삶에서 가장 기초적이며 중요한것은 사실이다. 모든 일은 바로 그것에서 싹트고 자라나고 맺어지는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것이 모든걸 쥐락펴락하게 해서는 안된다. 제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좋다. 이른바 자유다. 그런데 때로는 그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을 저지르는가. 고마는 죽음이 눈앞을 찌르르 스쳐지나간걸 당하고서야 깨달은듯 하다.

감정에 따르는 행동의 우선은 남자보다 녀자에게, 나이든 사람보다 나이어린 사람, 아이들에게 다분히 많은것이다. 그런 감정은 많이 삶을 약동하게 하고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내는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리익과 함께 해로운것도 가져오군 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변덕쟁이에게 권력을 주어서는 안된다.》

고마는 세상을 굴리는 부처님이나 되는듯이 굳게 결심하였다.

변덕쟁이에게는 무슨 일을 꾸미거나 사람들을 웃겨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일을 맡겨야지 사람들의 운명과 관련된 일은 절대로 맡겨서는 안된다. 만일 변덕쟁이에게 숱한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중대한 임무, 권력이라든지 하는걸 맡긴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과 구슬픈 죽음을 당할것인가.

혼쌀났다. 하마트면…

기훤이라는 도적의 우두머리, 변덕쟁이에게 걸려들어 아주 애매하고 하찮은 죽음을 당할번 한 고마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그는 아직까지 자기의 운명, 자기의 목숨이 그렇게 보잘것없이 끝나리라고 한번도 생각지 못한것이다.

《변덕쟁이, 무식쟁이는 조심해야 하겠다.》 하고 생각할수록 기훤이 더욱 미워났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어쩌면 그런 속물이 버젓이 활개친단 말인가. 내 운명은 그런것이다. 나는 언제나 바보같은 놈을 조심해야 할가보다. 아니, 그래야 한다. 목숨이 그런 변덕쟁이, 바보에게 날아날수 있다. 그건 너무나 서러운 일이다. 죽는것자체가 무서운것이 아니라 값없이 죽는것이 두려운것이다.

고마의 생각은 기훤이라는 한 어두운 괴물로부터 궁예라는 사람에게 이어져갔다.

그 애꾸눈은 누구인가? 그는 나의 목숨을 건져주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적어도 그렇게 보아야 할것이다. 그것이 단가?

고마는 궁예라는 사람을 이전에 만나보지도 못했고 또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것조차 몰랐다. 그런데 바로 그가 목숨을 건져주었다. 기훤이라는 괴물이 자기에게 죽음의 작두날을 가져다 대는가 하면 또 한편 궁예라는 낯선 사람이 그 목숨을 건져준다.

《목숨의 희롱!》

고마의 운명이란 그다지도 보잘것없이 하찮은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벙벙해지기도 한다. 왔다갔다한다.

어쨌든 궁예란 어떤 사람인가? 외눈 그리고 곰의 어깨에 범의 허리를 가진 체격의 사나이. 여기에는 어떻게 나타났을가? 그 사람이 무슨 재물로 한사람의 목숨을 구원해주었는가. 보매 왕륭같은 호족도 아니고 보통 비구같은데…

고마는 알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것은 그가 자기의 목숨을 구원해준 이를테면 생명의 은인이라는것이다.

혹시 그는 내가 찾는 영웅인가?

고마는 다시한번 부르르 몸을 떨었다.

궁예, 궁예…

고마는 한숨을 쉬며 지나간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고마는 운각스님에게서 겨레의 얼을 깨우쳤다. 그것은 행인가 불행인가? 배운다는 목적이 출세를 위한것이라면 응당 불교나 유교, 당나라문물따위였을것이다. 그것은 권력 그자체가 아니라도 그의 비호를 받거나 도움을 받는 학문이고 실천이기도 하다. 신라라는 나라는 자기의 고유한 얼이 없다. 있었는지도 모른다. 있었다면 버렸다. 그리고 남의것을 제것으로 만들었다. 늦게야 부처님의 얼을 받아들이고 공자, 맹자의 가르침을 국가의 학문, 나라의 얼로 만들어버렸다. 열심히 흉내내며 살고있다. 나중에는 입는 옷까지 바다건너 나라의것을 가져다 걸친다. 지독하게도 자기의 뿌리, 자기의 얼을 버리고 남의 얼을 접했다. 그러니 나무에 비하면 전혀 다른 나무가 돼버렸다. 그 열매는 꼭 남의것을 닮아버렸다. 대대손손 남의 얼로 살아가버리고말것이다. 《내 얼은 어디로 갔나?》 하고 조금이라도 찾아보려는 사람은 없다.

이런 판에 고마는 겨레의 얼 한얼을 배웠다. 찾았고 깨우치고 새기였다.

《한얼은 다른 누구에게 아닌 나에게, 우리에게 힘이다.》

권력이 아니라도 그것은 힘이라고 고마는 생각했다.

옛 박달임금때에 응어리진 겨레의 얼 한얼, 고구려가 그 얼로 숨쉬였고 진(발해)이 그랬다. 수천년 내려오며 이 땅의 사람들에게 심어진 한얼. 《천부경》, 《삼일신고》, 《여덟 리치의 가르침》의 한얼은 분명 힘이다. 권력의 힘이 아니라 겨레의 힘이다. 저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공맹의 도, 당나라의 문물과는 뿌리가 다른, 불함산자락 만리강토에 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새파랗게 살아있는 겨레의 얼 한얼! 그것은 힘, 힘이다.

이 힘의 한얼을 깨달아 어지러워진 세상을 건지라.

운각스님은 그렇게 가르치고 고마 또한 그렇게 배웠다.

분명 진(발해)사람인 운각스님과 고마의 아버지가 이었고 그래서 운각스님으로부터 한얼을 깨우친것은 행운이였다고 고마는 의심하지 않았다.

고마는 한편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았다. 운각스님이 그렇게 배워주고 그렇게 수련하도록 요구하였다.

고마는 마침내 한얼을 깨우쳤다. 그 얼이 꽃처럼 피여나게 될 래일도 알게 되였다.

고마는 세상에 뛰쳐나가고싶어 꿈틀거렸다.

그러나 운각스님은 승낙하지 않았다.

《한얼이 살아있고 그 터가 있고 바야흐로 한얼이 다시 움트는 대세에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스님은 고마가 세상에 나가는것을 허락하지 않소이까?》

그러나 더 배워야 한다고 운각스님은 말했다.

무엇을 더 배운단 말인가 하고 고마는 속으로 불만스러웠다.

바로 그것이다. 너는 조바심났다. 한얼은 그래가지고는 꽃피우지 못한다. 너의 조바심은 이 터, 이 겨레를 위한 한얼의 되살림이 아니라 너자신의 공명을 위한것이란다.

고마는 인정할수 없었다.

겨레의 얼 한얼은 언제나 살아있는것, 중요한것은 이 얼이 살아나는 때에 있지 않을가. 마치 씨앗이 봄을 맞아 꽃을 피우듯이… 바로 그렇다. 때다. 지금이 때가 아닌가. 고마는 생각했다.

《너는 후회하게 될게다.》

운각스님은 아쉬워하며 고마를 나무랬다.

그러던 때에 《거마리》사건이 터졌다.

뜻밖이였다.

《이것으로 알겠다. 너는 너의 조바심때문에 너는 물론 한얼까지도 욕되게 할것이다. 너는 여덟 리치의 으뜸이 정성이란걸 잊었느냐? 그저 외우고있는것과는 다르다. 너에게는 정성이 모자라는구나. 아쉽다. 하지만 또 모른다. 한얼이 널 부르는지…》

해서 고마는 왕륭을 찾아갔었다. 썩 달가운 대접을 못 받았다. 왕륭을 위해 삼캐는 일을 맡았댔는데 기훤에게 잡혀 죽게 된걸 궁예가 살려주었다.

궁예, 그는 괴짜인가, 아니면 그저 란세의 필부인가. 이 고마가 그토록 찾는 영웅일수 있지 않는가. 그를 알아보자! 아니라면 버리는것이다. 헌데, 어떻게 알아본다?

저녁에 신훤이 고마에게 왔다.

《깨여났소?》 하고 신훤은 물었다.

고마는 잠자코 있었다. 이 사람, 뭘 깨났다는건가?

신훤이 고마에게 말했다.

《고마, 나하고 함께 갑시다.》

《어딜?》

《궁예형이 한상 차렸소. 그래 데리러 왔소.》

《안 가겠소.》 하고 고마는 잘라맸다.

《그게 무슨 소리요?!》

《싫소.》

《아니할 소리요. 그렇게 보지 않았더니 퇴매한데가 있구려. 사람이 목숨을 구원받았으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할게 아니요. 오히려 궁예형이 당신을 찾는데 안 가겠다는게 뭐요?》

신훤은 혀를 찼다.

《내가 궁예 그 사람더러 고맙다 하라고?》

《그럼.》

《아니요. 그럴수 없소.》

《뭐?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너무할게 뭐 있소?》

《살려주었는데도?》

《그게 어쨌단 말이요? 그래서 톡톡히 값을 받지 않았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기훤, 그 쓰레기의 변덕으로 하여 죽게 된 나를 그 사람이 살려주었으니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소? 궁예라는 사람은 너그럽고 자비롭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 재물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나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소. 바로 신훤, 당신이나 원회는 물론 이 산채의 도적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할거란 말이요.》

《그건 옳소. 당신은 마치 우리 속내를 들여다본듯이 알고있구려.》

《그러니 내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거지요?》

《그렇소.》

《그것 보오. 그러니 누가 더 리득을 보았소? 언제든 한번 죽을 목숨을 건진 내가 리득을 보았소, 아니면 궁예 그 사람이 더 리득을 보았소?》

《그건 괴상한 론리요. 자, 그러지 말고 함께 갑시다. 궁예형이 당신과 이야기하고싶은것이 있는 모양이요.》

《사실 난 아직 정신이 얼떨떨해서 가지 못하겠소.》

《그건 구실이요. 당신은 절대로 그만한 일에 놀랄 사람이 아니요. 다만 그런체 했을거요.》

《허허,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소. 하여튼 나는 못 가겠소.》

신훤은 고마를 언짢게 노려보다가 할수없이 그대로 돌아갔다.

그는 툴툴거리며 궁예에게 고마가 하던 소리를 했다.

궁예는 잠자코 말을 듣다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가겠소!》

원회와 신훤이 말렸다.

《그런 은혜모르는 놈 만나서 뭘 하려우. 그만두시오이다.》

《아니요. 그 사람 큰일칠 사람이 분명하오.》

궁예는 벌써 문밖으로 나섰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