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8 회)
제 4 장
4
세멘트공장이 눈앞에 바라보이는 려관호실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있던 섬길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앉았다. 그의 귀전에는 분명 비방울이 창문유리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는게 아니야?! 이거 큰일났구나.)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제꼈다. 바람이 호실로 쓸어들면서 비방울이 사정없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얼이 나간 사람처럼 밤의 어둠이 깃든 시내쪽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는 섬광이 번뜩이더니 으르렁거리는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창살같은 비가 억수로 내리면서 락수물이 쏟아부은듯이 떨어져내렸다.
(빌어먹을, 보리장마가 진다더니 날씨가 왜 이렇게 갈개?)
창문을 닫고난 섬길은 난감한 기색으로 자기의 일을 궁리했다.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했다.
어제 저녁 매끄럽게 구는 세멘트공장 판매과장과 싸움질을 하다싶이 하여 겨우 세멘트출고조직을 해놓았는데 비가 내리는것이다.
(젠장, 일이 안되려면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아무리 궁리를 쥐여짜도 비가 오는 속에서는 세멘트운반이 불가능했다.
도흥처장은 보리장마를 예견하여 유개차판까지 받았다고 하지만 세멘트를 싣고 부릴 일이 한심했다.
(만일 국장의 주장대로 3일안에 세멘트를 끌고 염주역에 도착한다고 치자. 하지만 세멘트가 습기를 먹으면 그걸 누가 책임지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섬길은 비가 멎을 때까지 차판을 붙잡고있을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날은 밝았으나 비는 여전히 한본새로 내리고있었다.
려관식당에서 대충 아침식사를 한 섬길은 호실에 올라와 장거리전화로 관리국을 찾았다.
그러나 관리국교환에서는 국장과 당비서가 도당전원회의에 올라갔는데 올 시간이 되였으나 아직 도착 안했고 기사장은 전투현장에 나가있는데 일기관계로 전화가 련결되지 않는다고 하는것이였다.
(제길, 이런 땐 어쩌라는거야?)
그는 하는수없이 지령실에 전화를 련결하게 하였다.
《나 자재부국장이야. 세멘트공장에서 전화를 하는데 거기도 비가 내리나?》
《예, 장마비같이 쏟아지고있습니다.》
《관리국에선 세멘트 받을 준비를 하고있나?》
《래일 염주역에서 받는다는것 같습니다. 각 건설사업소들과 관리국에도 그렇게 포치했습니다.》
섬길은 미간을 찌프리며 장황하게 설명을 했다.
《동무도 알겠지만 비가 올 땐 세멘트를 못 받아, 알겠나? 그러니 비가 멎을 때까지 일시 중지해달라고 전해주게.》
《알았습니다.》
지령원의 목소리는 챙챙하였다.
섬길은 관리국에 자기의 의도가 전해졌다는 마음속 위안을 찾으며 침대에 벌렁 누웠다.
(이쯤 했으면 중지하겠지.)
이렇게 속궁리를 하고있는데 문이 열리며 세멘트공장 판매과장이 방에 들어섰다. 그의 입가에는 억지감이 느껴지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여기 있는걸 사방 찾아다녔구려. 세멘트 싣는건 포기했소?》
미간을 잔뜩 찌프리고있던 섬길은 마뜩지 않게 그에게 응수했다.
《갑자기 비가 오는 통에…》
《중기예보를 듣자니 3일후에야 개이겠다오. 차판들은 그냥 끼고있을 참이요?》
《그러지 않으면 별수가 있소?》
《부국장동무, 그게 본위주의가 아니고 뭐요. 아, 지금 차판들이 없어서 쩔쩔매는 판인데 3일씩이나 묵인다는게 말이나 되오?》
《아따, 비가 오는걸 낸들 어쩌겠소?》
《여보, 융통성은 뒀다 국끓여 먹겠소? 그러지 말구 딱 하루만 빌립시다.》
《그건 대체 어디게?》
《여기서 100리밖에 안되는 건설장이요.》
섬길은 차판을 빌려주는 대가로 세멘트를 더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동물 봐선 빌려주어야겠는데 결론을 받지 못해 이러지 않소.》
《서툰 요술은 싹 걷어치우오.》
《내가 요술을 부린다구?》
섬길은 요술이라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동해 맞받아 대꾸했다.
《글쎄, 내 신세를 져서 그런다지 않소.》
《차판은 빌려주겠는데 대신 세멘트 한차판을 내오.》
《속심은 거기 있었구만, 뭐 에라, 하는수가 없지. 그렇게 하기요.》
《꼭 하루요. 생 괜히 꼴 먹이지 마오.》
《알겠소.》
타결이 이루어지자 판매과장은 만족한 인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때문에 세멘트하차를 미루어달라는 섬길이의 부탁을 전해들은 명도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의 방에는 지도국처장과 운섭이 그리고 용길이 와앉아있었다.
명도가 도흥을 바라보며 탄식조로 물었다.
《세멘트운반을 미루자는것은 처장동지와 토론한 문제입니까?》
《나와 토론했으면 내 왜 이러겠소? 그 사람 잡도리가 떠날 때부터 어정쩡하더니 종시…》
자기의 생각에 잠겨있던 용길이 한마디 했다.
《국장동지, 세멘트하차를 위해 염주역에 전개했던 수송기재들과 로력들은 어떻게 하잡니까?》
착잡한 생각에 골몰하던 명도가 머리를 들며 결심을 내렸다.
《아무래두 내 세멘트공장에 가봐야겠소. 그 수송기재들과 로력들은 철수했다 봅시다.》
혼란된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있는 명도를 바라보며 도흥이 입을 열었다.
《이 일을 주관한건 나요. 그런것만큼 거기는 내가 가겠소. 국장동문 여기 일이 바쁜만큼 자리를 떠선 안되오.》
운섭은 고마운 눈길로 도흥처장을 바라보았다.
최근 도흥의 변화가 자못 놀라왔다. 그에게서 가장 돋보이는것은 간석지일을 자기 일처럼 주인답게 생각하는것이였다.
《처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도흥이 ㅅ시의 려관에 도착해보니 섬길은 호실에서 낮잠을 청하고있었다.
《여보, 부국장동무!》
그제서야 얼굴을 들던 섬길은 꿈쩍 놀라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오셨습니까?》
《밖으로 좀 나오오.》
이렇게 말하고난 도흥은 분격을 금치 못하며 려관밖으로 나왔다.
밖에서는 가는비가 내리고있었다.
뒤미처 웃옷을 걸치며 섬길은 도흥의 뒤를 따라섰다.
도흥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앞서 걷고있었다. 섬길은 도흥의 거동으로 보아 일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발길을 멈춘 곳은 어느 한 공지였다.
도흥은 처음부터 격증된 자기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받아오라는 세멘트는 어떻게 하고 낮잠만 자고있소?》
섬길은 도흥의 눈길이 전에없이 차겁고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런 경우를 예견했던터라 재빨리 자기를 변명했다.
《갑자기 비가 오는걸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관리국에도 전활 했습니다.》
도흥은 섬길의 변명속에서 약삭바른 그의 심리를 읽고는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되여 간석지건설장에 저런 인간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흥은 격해지는 자기의 마음을 애써 누르며 추상같이 말했다.
《동문 간석지사람이 맞긴 맞소? 바다를 막는 간석지사람이 옳은가 말이요. 지금 동무때문에 염주역에 전개했던 숱한 수송기재들과 로력들을 철수하고있소. 귀중한 기름을 태우고 많은 로력이 랑비되였단 말이요. 간석지일을 떠메고나가야 할 사람이 그렇게까지 방해를 놀수가 있소? 난 여적 동무가 그렇게 너절하고 한심한 사람인줄은 몰랐소.》
도흥의 이 지탄은 마디마디가 섬길의 가슴을 찢어발기는것 같았다.
《그래, 차판은 어디 있소?》
《…》
섬길은 도흥의 물음에 흠칠 놀라며 두눈을 감고 신음소리를 냈다.
《말을 해야 알지.》
《저… 실은 여기 판매과장동무의 부탁도 있구 해서 하루동안 좀 빌려주었습니다. 대신 한차판의 세멘트를 더 받기로 했습니다.》
《한심하오. 그 차판들이 지금 어디 가있소?》
《여기서 100리 떨어진 건설장에…》
도흥은 더 듣기가 역하여 비를 맞으며 씨엉씨엉 걸어갔다. 어안이 벙벙했던 섬길은 다급히 도흥을 따라섰다.
《어디 가시렵니까?》
《차판을 찾아오겠소.》
《저도 함께…》
《동문 빨리 세멘트 실을 준비나 해놓소.》
그날 건설장으로 간 도흥은 즉시 차판들을 돌려 세멘트공장으로 올리밀었다.
세멘트상차작업은 비가 오는 속에서 진행되였다. 섬길은 세멘트상차작업장에 나가 한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극성을 부렸다. 세멘트는 무난히 유개차판에 실렸다.
세멘트차판들이 염주역에 도착한것은 다음날이였다.
섬길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방수포들을 미리 준비해가지고 나와있던 간석지건설자들이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세멘트하차작업을 진행했던것이다.
섬길이도 온몸이 물주머니가 되여 열성스럽게 삽질을 했다.
전투원들은 웃동을 완전히 벗어제끼고 세멘트부림작업을 진행하였다. 말그대로 부림작업은 격전장을 방불케 했다.
명도와 운섭, 도흥 등 일군들도 전투원들과 함께 어울려 돌아갔다.
유개차판 꼭대기에 올라 방수포를 붙잡고있는 전투원들이나 자동차의 운전칸 꼭대기와 적재함끝에서 방수포를 쥐고있는 전투원들모두가 비를 흠뻑 맞아 물참봉이 되였으나 끄떡도 안했다. 세멘트차판안에서 세멘트를 퍼담는 건설자들과 그것을 날라다 적재함에 싣고있는 사람들모두가 한마음한뜻이 되여 일손을 놀리고있었다. 세멘트를 실은 자동차의 적재함들에 방수포가 씌워지면 차들은 비속을 뚫고 간석지건설장으로 떠나가군 하였다.
세멘트부림작업을 끝내고 돌아온 후 운섭은 섬길을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거기에는 명도국장과 용길기사장이 와앉아있었다.
운섭은 섬길을 바라보며 이렇게 따져물었다.
《부국장동무, 어째서 세멘트상차를 중지하고 차판들을 다른데로 넘겼소? 그래서 어떤 혼란이 일어났고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는가 말이요.》
섬길은 당비서가 오늘 문제를 단단히 세우려 한다는것을 눈치챘다.
목젖을 삼키고난 섬길은 자기가 겪은 일을 구구히 설명했다.
《비가 오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차라리 짐을 싣지 못할바에는 차판을 다른데 빌려주는 대신 세멘트 한차판을 더 받는게…》
섬길의 설명은 자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있었다.
발뺌의 능수인 그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운섭은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동무말을 들어보니 잘못은 하나도 없구만. 관리국에 전화까지 했으니 책임도 없는게구.》
섬길은 할 말을 못 찾고 머리를 떨구었다.
운섭은 분격을 애써 누르며 그를 무섭게 다불러댔다.
《도흥처장의 말을 들어보면 동무는 비를 핑게로 려관에서 낮잠을 잤다던데… 강재를 가져올 때 형네 집에서 뒹굴던것과 무엇이 다르오?》
섬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는 당비서의 추궁이 목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물론 강재를 가져올 때 형네 집에서 목욕을 하고 맥주를 마신것이라든가 이번에 려관방에서 낮잠을 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놀았는가. 어떻게 하나 일이 되게 하자고 아글타글하다가 그렇게 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당비서는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험턱을 잡고있지 않는가. 그렇게 공간이 없어서야 어떻게 자재사업을 할수 있겠는가. 섬길은 솟구치는 반발심을 애써 누르며 자기의 립장을 표명했다.
《비서동지, 사실 평양에 갔을 때 제가 발편잠을 잔줄 압니까? 이번에도 같지요. 공사보장을 위해 소갈데 말갈데를 다 갔는데 도적질이나 하다가 들킨것처럼 그러면…》
가만히 앉아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명도가 한마디 했다.
《부국장동무, 그런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오? 숱한 로력과 기름을 랑비하구서두 말이요. 동문 간석지땅에 발을 붙였지만 정신은 다른데 가있는 사람이요. 주인이 아니라 손님같단 말이요.》
섬길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대꾸를 못했다.
운섭은 다시 섬길이에게 따지고들었다.
《동문 혹시 우리의 이 충고를 부당하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요?》
섬길은 자기의 일이 억울했다. 그래도 자기는 어려운 속에서도 일을 하려고 뛰지 않았는가? 그런데…
운섭이 섬길에게 독촉했다.
《말해보오, 동무립장이 뭔지.》
《사실 전 힘자라는껏 뛰였습니다. 주관적인 욕망과는 달리 일이 잘 안되는 때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명도가 분격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섬길을 다불러세웠다.
《동문 도대체 비판에 대한 태도가 왜 그렇소? 당의 신임을 받고 그에 보답하기 위하여 뛰는 사람같지 않소. 동문 교만해졌소. 말이 난김에 툭 빠개놓읍시다. 어째서 동문 작업복을 입고 전투장에 나오기를 꺼려하오? 왜 동무에게서 감탕냄새가 나지 않는가?》
섬길은 명도의 그 말마디들이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것 같았다.
잠자코있던 용길이도 한마디 했다.
《동문 어째서 관리국의 지시를 자의로 변경합니까? 왜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가 말입니다.》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의 땀을 씻고난 섬길은 떨리는 어조로 대꾸했다.
《전 폭우속에서 세멘트를 부릴줄은…》
《물우에 뜬 기름방울이니… 그런걸 알게 뭐요.》
명도가 분격을 터뜨리며 추궁했다.
《그래 우리가 여직껏 어떻게 일해왔소? 어느 한순간도 조건이 갖추어진적이 있었소? 결사의 각오와 의지가 없으니 동무는 오늘과 같은 오유를 범하지 않았는가?》
운섭이 자기의 견해를 세워 말했다.
《자기의 결함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니 우리와 운명을 같이하기는 코집이 글렀소.》
이 말에 섬길은 놀라운 시선으로 당비서를 바라보았다.
명도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섬길에게 일렀다.
《부국장동무, 말을 좀 해보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절 로동현장에 보내주십시오.》
운섭은 격분을 금치 못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엇드레질을 하는건가? 이젠 안온한 길을 걷자는건가? 왜 분발하여 자기 죄를 씻겠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결함을 씻는데서도 바다의 용사다워야지. 틀렸소, 섭섭하단 말이야.》
섬길은 눈물이 글썽하여 어깨를 떨었다.
그날 밤 섬길은 자기네 집에서 줄담배질을 하며 상념에 잠긴채 잠들지 못했다.
그는 자기의 지난날을 아픈 마음으로 돌이켜보았다. 사실 섬길은 간석지와는 인연이 없는 어느 한 체육단에서 후방경리사업을 맡아보던 사람이였다.
어느해인가 그는 동해안의 한 수산사업소에 가서 물고기를 접수해오게 되였다. 체육경기를 앞둔 때이다보니 체육단에서는 빨리 물고기를 받아오라고 불같이 독촉했다. 하지만 수산사업소에 간 그는 이내 신선한 물고기를 받아 실었지만 돌아오던중 개인용무를 보느라고 이틀이나 늦다보니 물고기에 변질이 간것을 모르고있었다.
그 물고기가 종시 일을 치고야말았다. 그것을 먹은 선수들속에서 식중독이 발생했던것이다. 결국 그 사고가 섬길의 무책임성에 있다는것이 밝혀지고 섬길은 종시 해임철직되여 지방의 로동현장으로 내려가게 되였다. 섬길이 가게 된 곳은 간석지건설장이였다.
그의 마음을 제일 아프게 한것은 형이 소개한 분옥이라는 처녀와 갈라져야 하는것이였다.
분옥은 어느 편직공장에서 일하고있는 보름달같이 환한 처녀였다.
처녀는 내성적이고 례의도덕에서도 흠할데가 없었다. 둘은 여러번 접촉도 있었고 사랑이 한껏 무르익은 상태였다. 섬길은 처녀가 이제 자기의 처지를 알게 되면 단박에 돌아서고말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쓰려왔다.
섬길은 시내의 공중전화로 분옥이가 일하고있는 직장을 찾아 저녁 8시경에 자기들이 늘 만나군 하던 대동강유보도로 나와달라고 하였다.
분옥은 약속을 지켜주었다.
처녀는 수집은 미소를 짓더니 무슨 일로 불렀는가고 물었다.
섬길은 대해볼수록 마음에 흠뻑 드는 분옥이와 갈라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제 손으로 제 눈을 찔렀는데야.…
섬길은 솟구쳐오르는 비감을 애써 누르며 말했다.
《분옥동무, 놀라지 마오. 난 과오를 범하고 간석지건설장으로 가게 됐소. 우리의 관계가 아깝기는 하지만… 어쩌겠소. 오늘로 인연을 끊읍시다.》
섬길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를 지켜보던 분옥은 그가 갈라지자는 바람에 두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뭐라구요?》
분옥은 보동보동한 주먹을 이발로 깨물며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는 억이 막힌듯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섧게 어깨를 떨었다.
섬길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분옥이, 앞으로 행복하오. 이만 헤여집시다.》
분옥은 어깨를 털어 섬길의 손을 뿌리쳤다.
섬길은 대범해지려 애쓰며 발길을 돌렸다.
달도 없고 별도 없고 구름이 무겁게 드리운 밤이였다. 섬길은 자기 걸음같지 않은 걸음으로 경황없이 걸었다.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고있는지 자기로서도 잘 알수 없었다.
이때였다.
누군가 다급하게 자기를 따라오는듯 한 예감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분옥이가 자기에게로 달려오는것이 아닌가?
분옥은 걸음을 멈추더니 노엽고도 불만에 찬 시선으로 섬길이를 쳐다보며 이렇게 콩콩 내쏘았다.
《비렬해요. 그렇게 돌아설걸 뭣때문에 상종했어요?》
《비렬하다구? 누가…》
섬길은 어정쩡한 기색으로 처녀의 말을 되뇌였다.
처녀는 불빛으로 환한 거리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갈린 어조로 말했다.
《동문 날 어떻게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동무의 일을 다 알고있었어요. 그렇지만 마음이 흔들린것은 조금도 없어요. 그런데 동문…》
《뭐요? 동무가 내 일을 알고있었단 말이요? 그럼…》
《그래요! 사람이 과오를 범하면 그를 씻을 생각을 해야지 초소를 탓해서 되겠어요. 간석지건설장은 뭐 과오범한 사람들만 가는 곳인가요? 전 어렵고 힘든 초소가 우리 청년들이 갈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하여 섬길은 가벼운 걸음으로 간석지건설장으로 오게 되였고 이내 분옥이와 가정을 이루게 되였다.
간석지건설장으로 내려온 섬길은 자기의 과오를 씻기 위해 처음부터 억척같이 일하였다. 후방물자나 다루던 그가 날바다를 막아 제방을 쌓는 험한 일에 몸을 잠그게 된것은 분옥이의 후원이 많이 작용했기때문이였다.
처음 섬길은 건설사업소에서 축조공일을 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그들부부에게 집도 한채 마련해주었다.
로동현장에서 단련된 분옥은 이를 악물고 남편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는 습관되지 않은 조개잡이는 물론 심지어는 매생이를 타고 돌게잡이도 했다. 그리고 돼지도 한해에 몇마리씩 길러냈고 닭, 오리, 게사니들도 쳤다. 분옥은 늘 남편의 옷차림에 관심했고 몸이 축갈세라 영양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아글타글했다.
분옥이가 애쓴 보람이 있어 섬길은 2년째만에 자재과 인수원으로 등용되였으며 3년째만에 부원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5년후에는 자재과장으로 승급하였으며 지금은 자재부국장으로 사업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섬길에게는 체육단 후방경리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약삭바른 기질이 다분히 남아있었으며 발을 털며 물을 건너가는 고양이처럼 타산을 앞세우는 습관도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최근에 섬길은 집을 크게 짓고 거기로 이사를 하였다. 그만큼 그들의 생활에서는 여유가 생긴것이다.…
피곤하여 잠자리에 들었던 분옥이가 일어나앉았다.
《언제 들어오셨어요?》
《둬시간 됐소.》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이, 담배는 좀 그만 피워요.》
분옥은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방안의 담배연기를 뽑았다.
섬길은 안해에게 물었다.
《그래 당신보기에도 내가 그렇게 몹쓸 인간으로 보이오?》
《?…》
《난 그래두 간석지제방을 완성하자고 소갈데 말갈데 다 갔는데… 비오는 날 세멘트를 싣지 않았다고 아무 감투나 막 씌우는 판이요!》
섬길의 푸념을 통해 남편의 일을 대강 짐작한 분옥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부엌에 나가 저녁상을 차려가지고 들어왔다. 분옥은 남편에게 술을 부어주었다.
《당신이 일처리를 잘못했지 뭘 그래요? 비서동지랑 국장동지랑 얼마나 안타까왔으면 그러겠어요.》
그러자 섬길은 버럭 어성을 높이며 자기를 정당화했다.
《내 그래서 전화를 했단 말이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됐어요. 어서 식사나 하세요. 쓰지 않으면 그게 약이겠어요? 여보, 당신이 체육단에서 여기 간석지로 내려오던 때를 생각해보라요. 그때 당신 처지가 어땠어요? 정말 당의 품이 아니였다면 당신의 존재가 뭐겠어요. 당신은 입버릇처럼 말했지요. 〈옥에도 티는 있다.〉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신이 잘못돼가고있다고 생각했어요. 자기의 치명적인 결함을 옥의 티에 비겨서야 되겠어요?》
그렇지만 섬길은 안해의 말이 고깝게 들렸던지 언성을 더욱 높였다.
《이거 그만하지 못하겠소? 나도 간석지공사를 위해 뛰여다닌 사람이란 말이야.》
《당신에게 부족한건 죽으나사나 해내겠다는 의지가 부족한거예요. 간석지건설자들과 보조를 못 맞춘다고 봐요.》
《의지의 부족? 허참.》
정통을 찔리운 섬길은 쓰거운듯 또다시 담배를 피워물었다. 국장도 방금전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여보, 됐어요.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마세요. 자, 어서 식사를 하자요.》
분옥은 섬길의 손에 수저를 들려주었다.
분옥이가 남편에게 자기의 심중을 나직이 털어놓았다.
《여보, 당신이나 나나 간석지를 떠나선 살수 없지 않나요. 간석지를 잊으면 그런 일이 생기는 법이예요. 사실 난 그새 가족지원대에 돼지 3마리를 지원하겠다고 하고서도 당신의 기분상태가 좋지 않기에 말도 못했어요.》
섬길은 할 말을 못 찾고있다가 분옥에게 일렀다.
《말을 냈으면 지원을 해야지 주춤거릴게 있소?》
분옥의 얼굴은 대번에 밝아졌다.
《그럼 래일 당장 내겠어요.》
《작업복이나 꺼내놓소. 나도 래일부터 3호개고에 나가겠소.》
분옥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남편앞에 음식그릇을 더 가져다놓았다.
《난 당신이 그렇게 결심할줄 알았어요.》
《고맙소. 당신은 예나 지금이나 한본새구만.》
《별말씀을 다… 우리 간석지를 잊지 말자요. 우리에게 새삶을 안겨준 곳이 아니예요.》
섬길은 새삼스럽게 안해를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밤하늘에서는 별들이 류달리 반짝이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