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4 장

3

 

봄향은 오늘 아침 뜻하지 않게 자기네 성 과장의 부름을 받았다. 과장도 여기 내려와있는 상태였다.

간석지건설장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난 봄향의 두눈은 금시 동그래졌다.

《그건 며칠동안입니까? 아니면…》

《3호개고개통이 박두했는데 며칠은 또 뭐요? 아주 짐을 싸오.》

그 말에 봄향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3호개고개통을 눈앞에 두고 철수하라는것은?…

(이제 올라가면 기사장동무와도 자주 만나지 못하겠구나.)

봄향의 가슴은 금시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주저하는 봄향을 바라보던 과장이 웃음을 짓고 말했다.

《개통식땐 꼭 부를테니 너무 섭섭해마오. 모레 아침엔 성에 출근해야 할거요.》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난 봄향은 허전한 마음으로 현장지휘부를 나섰다. 그는 갑작스러운 철수지시가 리해되지 않았다.

(내가 하던 일이래야 시간을 다투는것도 아닌데…)

봄향은 당장 건설장을 떠나야 하니만치 우선 용길기사장과 아버지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봄향은 아버지가 나가있는 3호개고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작업복차림으로 성민이와 함께 철근으로 쇠그물돌자루아구리를 마무리하고있었다.

봄향은 나직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도흥은 일손을 놓고 딸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저, 성에서 철수하라는군요.》

도흥은 무표정한 인상으로 《그래?》 하고 되묻고나서 엄하게 훈계를 했다.

《어쩌겠니, 여기 일은 거의 마무리가 되여가니만치 제 일이야 제일대로 봐야지.》

《전 갑작스러운 철수지령이 리해되지 않아요. 짐작에는 부상동지의 지시같은데…》

도흥은 반발심이 나서 토달거리는 딸을 억지로 눌러놓으려 했다.

《그럼 못써. 아무렴 그게 부상동무 개인의 결심이겠니? 가타부타하지 말고 시키는대로 해라.》

아버지의 립장이 절벽인 조건에서 봄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딸의 눈치를 보던 도흥은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불만을 터놓았다.

《난 네가 차마 아버지의 승인도 없이 자기 문제를 경솔하게 처리할줄은 몰랐구나. 생각을 해봐라, 여기 기사장에게 대체 뭘 볼게 있냐? 이제 대계도건설이나 끝나면 보따리를 싸가지고 딴 곳으로 갈판인데 한생 떠살이를 하다 말겠냐?》

《…》

《넌 철부지가 아니야. 그렇게 물덤벙술덤벙하다가는 일생을 망쳐.》

그제서야 아버지의 진짜속심을 눈치챈 봄향은 안타깝게 말했다.

《아버진 지금 간석지땅에 발을 붙였지만 생각은 다른데 가있어요. 어쩌면 그렇게 성실하고 진실한 기사장동물 욕되게 생각할수가 있어요?》

《그만하지 못하겠니? 이건 다 너를 생각해서 그러는거다.》

《싫어요. 난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철없이 그러지 말고 아버지의 말을 채심해 듣거라.》

《난 몰라요.》

눈물을 머금은 봄향은 달음박질쳐서 그곳을 벗어났다.

회의와 체념에 젖은 봄향의 마음은 지금 철퇴를 맞은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갑작스러운 철수지령은 그동안 그와 가까와졌던 정다운 간석지건설자들과 더우기는 용길이와 헤여져야 한다는것을 의미했다. 한치 또 한치 시련과 난관을 박차고 전진해온 제방길에는 봄향이의 남모르는 땀과 열정 그리고 진심도 깃들어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것과 헤여져야 하다니…

이제 와서 그는 간석지를 떠난 자기의 생활에 대하여 그리고 래일에 대하여 상상할수도 없었다. 봄향은 눈앞이 캄캄하였다.

아릿한 고독감을 안은채 봄향은 곧장 대계도로 건너가 용길이 일하고있는 3호개고 제방머리로 찾아갔다.

간석지제방은 시간을 다투며 앞으로 전진해나가고있었다. 그만큼 용길이도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갔다. 그런 바쁜 정황속에서도 용길은 타는듯 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고있는 봄향을 발견하였다. 용길은 애절한 그 눈빛을 통하여 그가 자기와 만나려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용길은 급히 봄향에게로 다가왔다.

《어떻게 왔소?》

그의 입에서는 거친 말마디가 튀여나왔다. 이제는 남의 사람이 될 그가 아닌가.

봄향은 그런 눈치도 채지 못한채 자기의 각박한 처지를 실토정했다.

《전 래일 평양으로 아주 올라가게 됐어요. 그래서 작별인사를…》

용길은 처녀의 두눈을 적시는 물기를 보고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저런 처녀가 날 속일수가 있는가? 그리고 작별인사를 하러 올수 있는가? 그는 봄향의 얼굴색으로 보아 자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조금도 식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럼 아버지인 도흥처장의 조치?…

용길은 봄향이와 마주선 기회에 전후사연을 따져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저리로 좀 갑시다.》

용길은 봄향을 이끌고 도흥처장과 마주섰던 도래굽이로 나갔다. 그는 격앙되고 흥분된 어조로 봄향이에게 따지고들었다.

《어제 아버지가 나에게 왔댔소. 내게 하는 말이 이미 약속한 대상이 있다고 하더구만. 그럼 우리의 관계는 대체 뭐요? 진정으로 주고받은 사랑의 약속은 거짓이였소?》

억울한 눈물이 봄향의 두볼을 지지며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동무가 어쩜 날…》

《?!…》

용길의 동공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울음을 머금은 봄향이가 입술을 깨물며 토설했다.

《그건 거짓말이예요. 아니, 사실이라고 해도 난 절대로 그렇게는 못해요. 난… 난…》

귀중한 사람의 실토정을 듣는 순간 용길은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봄향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런걸 난…》

《무슨 사람이… 그렇게도 무정해요. 왜 절 믿지 못해요?》

《봄향이, 내가 잘못했소.》

봄향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었다.

《봄향이, 가면 안돼. 동무가 없이 내가 어떻게 지내. 모름지기 그 갑작소환은 아버지와 부상이 짜고 벌린 일일거요. 어떻게 하든 난 동무가 못 가게 하겠소. 그리고 봄향이, 3호개고나 막고는 우리 정식으로 부모의 승인을 받읍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아요. 래일까지는 성에 도착해야 하는데…》

《다른 길은 없소. 나와 함께 가차도로 넘어갑시다.》

용길의 얼굴에 단호한 결심이 비끼는것이 알렸다.

《여기 일은요?》

봄향은 용길이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알길이 없어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일없소. 그사이 내 일을 대신해주는 동무가 있소.》

그들은 기관선을 타고 가차도로 넘어갔다. 3호개고를 마감하는 그곳 전투현장에 마침 명도가 있었다. 용길은 명도앞에 나서며 자초지종 사유를 설명했다.

《국장동지, 성에서 봄향동무를 소환하려 하고있습니다. 봄향동문 가면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언약이 되여있습니다. 저희들을 도와주십시오.》

명도는 사연많은 용길이와 봄향의 사랑이 곡절을 겪고있다는것을 눈치챈것 같았다. 그는 잠시 생각을 더듬다가 그들을 전투현장지휘부로 이끌었다. 용길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묻고난 명도는 전화로 국가검열성을 찾았다. 마침 상이 전화를 받았다. 명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상동지, 안녕하십니까. 제 간석지건설관리국장 채명도입니다. 예, 간석지건설은 마감단계에서 진척되고있습니다. 성동무들이 현지에서 우리들을 적극 방조하고있습니다.

상동지, 그런데 한가지 제기되는 문제가 있어 이렇게 전화를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곳 부상동지가 여기 내려와있는 책임부원 류봄향동무를 긴급소환하는것 같은데 그 동문 여기를 떠나면 안됩니다. 리유는 그 동무가 공사의 중요공정을 맡아보았기때문입니다. 예, 예, 고맙습니다. 그럼 차후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놓고난 명도는 용길이와 봄향에게 담보를 주었다.

《상동지가 실태를 알아보고 대책하겠다고 했으니 마음들을 놓소.》

용길은 고마운 눈길로 명도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일이 바쁜 국장동지에게 부담을 끼쳐 미안합니다.》

《기사장동무 일이자 내 일인데 별소릴 다하는구만. 딴생각 말고 제방공사나 본때있게 내밀어주오.》

봄향이가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국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떠나가는 기사장과 봄향이를 바라보는 명도의 가슴속에서는 도흥처장의 그릇된 처사에 대한 분격이 치밀어올랐다.

간석지건설장에서 피여난 사랑이 아닌가. 그 사랑에는 자그마한 티도 없다. 그런데 일군인 그가 어떻게 강압적인 차단방법을 선택할수가 있는가. 들끓는 현실에 내려온 봄향이가 열정의 인간인 용길을 일생의 반려자로 선택한것은 지극히 찬양할 일이다. 물론 아버지로서 딸의 장래를 걱정하고 바로잡아주며 행복한 래일을 마련해줄 의무와 권리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순결한 그들의 사랑에 차단봉을 내릴수 있단 말인가.

그날 저녁 명도는 자기 방에서 도흥처장을 만났다. 도흥처장은 명도가 자기를 만나자는 바람에 생각없이 찾아온터였다.

명도는 사람좋게 웃으며 스스럼없이 말꼭지를 뗐다.

《봄향이가 갑자기 성에 소환된다면서요?》

《아마 그런가보오.》

명도는 속심을 감추고 딴전을 부리는 도흥에게 시치미를 떼고 제 할소리를 했다.

《현장동무들이 봄향동무가 떠나면 안된다고 하길래 내 상동지에게 중지시켜달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

도흥은 깜짝 놀라 두눈을 흡뜨며 명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명도는 제 생각을 꾸밈없이 펼쳐나갔다.

《리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여직껏 중요공정은 봄향동무가 맡아보았는데 마감을 앞두고 철수시킨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그래서 중지시킨겁니다.》

도흥은 명도의 말속에 자기에 대한 비난의 뜻이 담겨져있다는것을 눈치챘다.

이 사람이?… 남의 집일에까지 코를 들이밀다니?… 고까운 감정이 도흥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 도흥은 풀이 죽은 어조로 의견을 말했다.

《깨진 사발이니 툭 털어놓기요. 사실 난 우리 애가 기사장동무와 가까이하는게 마음에 없소. 그 리유는 이미 성기관에 있는 총각네 집과 약속이 있었기때문이요. 이거야 어쩔수 없는 아버지의 권리가 아니겠소.》

명도는 도흥이 발뺌하려고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그를 믿어온 명도에게는 도흥의 태도가 정말 리해되지 않았다.

《그 총각과 딸은 얼굴이나 익힌 사이였는가요?》

《그럴새가 없었소. 그 청년은 지금 다른 나라에 출장을 가있으니까.》

《그럼 만나보지도 못한 상태구만요.》

《두집 부모들끼리 약속은 했소.》

《무슨 봉건이라고 당사자들은 알지도 못하는데 부모들끼리 합의한단 말입니까?》

명도는 어이가 없어 이렇게 직방 찔렀다. 도흥은 할 말을 못 찾고 시선을 떨구었다. 도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억지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명도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말이 난김에 도흥의 속생각을 타진하기로 하였다.

《처장동진 어째서 우리 기사장동물 그렇게 싫어합니까?》

정통을 찔리운 도흥은 마치 자기가 명도에게서 심문을 받는듯 한 구속감을 느끼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워물고나서 뜨직뜨직 속생각을 터놓았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의 코대가 지나치게 높소. 흔히 자기 과신을 뽐내는 사람들이 생활에서 실수가 많지 않소.》

어정쩡한 도흥의 견해를 들으며 명도는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비슷하게 보신것 같은데… 그게 리유의 전부입니까?》

《코대가 높고 자기 과신이 많으면 그게 나쁜거지 좋은거요?》

명도는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는 달리 생각합니다. 기사장동문 높은 지적능력과 책임성으로 하여 온 건설장의 사랑과 믿음을 받고있습니다. 불의와 타협할줄 모르는 그 성격이 차겁게 보인 때도 있겠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인간입니다. 그는 지금 간석지건설전투를 제1선에서 능숙하게 지휘하고있습니다. 끓는 국맛 모른다지 않습니까? 사위감으로 말한다면 나무랄데 없는 대상이지요. 봄향동무가 왜 기사장동무에게 반했겠습니까? 그건 기사장동무가 당이 바라는 일군이기때문입니다. 우리야 나이가 들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해줍시다.》

도흥은 말이 없었다.

명도는 도흥의 얼굴에서 동요하는 빛을 읽을수 있었다. 그는 신심을 가지고 자기의 주장을 계속 피력했다.

《처장동지, 눈은 귀보다 밝다지 않습니까. 우리 기사장동물 새로운 눈으로 보아주십시오. 그래도 마음에 없다면 내 두손을 들겠습니다.》

명도의 진심어린 권고에 도흥은 멋적은듯 이렇게 대꾸했다.

《생각해보겠소.》

《그러지 말고 3호개고나 끝난 다음 축하연겸 국수나 먹읍시다. 그땐 술 석잔을 내야 합니다.》

그날 밤 도흥은 뒤늦게 현장지휘부의 자기 방으로 돌아왔으나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명도가 한 말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을 얼얼하게 했기때문이였다.

제일 내려가지 않는것은 딸의 태도였다. 애초에 봄향이가 일생의 길동무를 선택하는 그 마당에서 아버지인 자기를 제껴놓은것자체가 나무랍고 내려가지 않았다.

(이젠 다 컸다고 제 애비도 모른다는거지.)

도흥은 딸의 행동이 괘씸했다. 문제는 집안의 외딸이라고 하여 배짱을 길러주고 어자어자한데 그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딸을 간석지건설장에 데리고나온것자체가 잘못이였다.

도흥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며 명도앞에서 창피를 당하던 일을 곰곰히 생각했다. 그럴수록 울화만이 가슴속에 차올랐다.

부상과 짜고 몰래 빼돌리려던 봄향의 문제가 명도에게 걸려들어 풍지박산이 날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제 딸이면서도 마음대로 할수없는 자기의 처지가 가긍스럽기도 했다.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봄향이가 방안에 들어섰다. 이마에 땀이 흥건한것을 보아 현장에서 곧장 들어온 모양이였다.

도흥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왜 왔느냐?》

봄향은 아버지에 대한 의견이 있어 오기는 했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말을 떼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것 같았다.

《말을 해라.》

도흥은 또다시 담배를 갈아대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봄향은 주저하다가 자기의 심중을 터놓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건 제 문제때문만이 아니예요. 처음 간석지건설장에 올 때만 해도 전 아버지를 더없이 존경하고 따랐어요. 불가능을 모르는 그 성격이 이곳 사람들의 배짱과 꼭 맞는다고도 생각했구요. 그런데 시련과 난관이 겹치자 아버지는 동요하고 뒤걸음쳤어요. 나중에는 이곳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되고 자재보장이나 하는것으로 자기의 궁색한 립장을 굼때게 되였어요.》

도흥은 뜻하지 않은 딸의 신랄한 비판에 또 한방망이 얻어맞은것만 같았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난 애초 인정이나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니야.》

봄향은 아버지의 그 태도가 자기의 약점이 드러나는데서 오는 허세라는것을 알았다. 봄향은 말을 이었다.

《아버진 변했어요. 수도건설장을 놀래우던 어제날의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예요. 일군다운 배짱과 신심이 아버지에게는 부족해요. 보는 눈이 흐리다보니 국장동지는 무분별한 인간으로, 기사장동문 햇내기로 생각했지요. 난 아버지가 간석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 체면유지에 더 신경을 쓴다는 뒤소리가 듣기 싫어요.》

도흥은 놀라운듯 눈물을 머금고 설분을 토하는 딸을 바라보았다.

《아버진 진실한 사람들속에서 살면서도 그들의 진속을 몰라요. 생활의 진실을 외면하고있단 말이예요.》

여기까지 말하고난 봄향은 얼굴을 싸쥐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얘, 봄향아!》

그러나 봄향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흥은 답답한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어 종시 작업복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3호개고는 이밤도 불도가니마냥 부글부글 끓어번지고있었다. 막돌을 실은 화물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3호개고의 마감막이구간으로 달려오고있었다. 휘황한 불빛밑에서 건설자들은 법석 고아대며 제방을 한치한치 앞으로 내밀고있었다. 잠들줄 모르는 전투장의 모습이 파도에 비껴 끝없이 설레이고있었다.

도흥은 제방길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결국 내가 들끓는 현실에 몸을 잠그지 못하고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행세했단 말인가?)

갈마드는 가슴저미는 회오의 감정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든장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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