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4 장

2

 

《부국장동무, 세멘트공장에서 세멘트 600톤을 받아와야겠소. 3호개고를 막은 다음 인차 보강공사를 맞물려야 하오.》

《벌써요?》

명도의 지시에 섬길이 묻는 말이였다.

명도는 섬길에게 그 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서둘러야 하오. 그것도 분초를 다툰단 말이요. 그새 도흥처장이 노력해서 세멘트차판을 해결한만큼 잡도리를 잘하오. 적어도 3일후에는 염주역에 도착해야겠소. 그렇게 알고 부리울 준비를 하겠소.》

《래일 떠나겠습니다.》

《온 건설장이 동물 기다린다는것을 잊지 마오.》

《알겠습니다.》

섬길은 3일이라는 날자까지 밝히며 다그어대는 국장의 요구가 너무한것 같았으나 가타부타 말이 없이 접수하였다. 차판이 세멘트공장현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다니 세멘트만 받아오면 그만일것이다.

하지만 세멘트공장에 가서 일이 어떻게 될지 알게 뭔가. 물론 건설일정이 있으니만치 국장은 그럴수가 있었다. 그러나 주객관적조건도 타산해야 하지 않는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자기 사무실에 들어선 섬길은 세멘트공장 판매과에 전화를 걸어 실태를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이미전부터 대면해본 공장판매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철도국의 지령을 받은 10량의 화물차판이 밤중으로 세멘트공장 인입선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판매과장은 전화를 받으면서 부탁을 했다.

《부국장동무, 여유가 있으면 동무네 차판을 하루이틀쯤 좀 돌려쓸수 없겠소?》

섬길은 대뜸 화를 내며 처음부터 딱 잘랐다.

《꿈같은 소리는 하지도 마오. 3일안에 무조건 세멘트를 가져다대야 한단 말이요.》

《우리 신셀 지지 않을것 같아 그러오?》

비위살좋은 판매과장은 순순히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여보, 마른 나무를 짠다고 물이 나올것 같소? 그 소린 그만합시다.》

그는 전화를 놓고 착잡한 생각에 잠긴채 방안에서 서성거렸다.

이때 문이 열리며 도흥처장이 방에 들어섰다.

섬길은 반색을 하며 그를 맞았다.

도흥은 섬길이 권하는 의자에 앉으며 《전화로 만나려 했는데 무슨 통화가 그리 긴지 종시 내려왔소.》라고 했다.

섬길은 도흥이가 담배를 꺼내 피워물자 그앞에 담배재털이를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도흥의 기분을 돋구어주는 말부터 꺼냈다.

《집사람의 건강은 좀 어떻습니까?》

《요샌 좀 낫소. 내 그래서 이렇게 나와있지 않소.》

섬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도흥은 자기가 찾아온 용건을 내비쳤다.

《세멘트공장엔 언제 떠나겠소?》

《래일 아침…》

《보리장마가 질것 같아 유개차판으로 받았으니 주인인 동무가 최선을 다해보오.》

섬길은 도흥의 이 말이 어쩐지 비위에 거슬렸다. 그것은 방금전에 세멘트문제를 독촉하던 국장의 말과 꼭같이 들렸기때문이였다.

사실 도흥은 새 공법 도입에 대한 신심이 부족하였지만 걸린 고리를 풀기 위해 애쓰는 일군이였다. 아마 그것이 자기의 약점을 가리우려는 본능인지 모른다. 강재가 걸렸을 때 섬길이 원만히 해결한것도 결국 처장의 도움이 컸기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자기들의 사이가 어쩐지 서먹해지는듯 한감이 드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지금까지는 호흡도 잘 맞고 누구보다도 자기를 잘 리해해준 그가 아닌가. 섬길은 그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자기들의 사이는 간격을 둘것도 없고 생색을 낼 처지도 아니지 않는가.

사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였다. 그때는 섬길이가 일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때였다.

지도국에 자재문제때문에 올라갔던 섬길은 부재중인 부국장사업까지 대리해보고있는 도흥의 안해가 심하게 앓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때 섬길은 마침 조국에 나와있던 형의 방조로 좋은 보약을 손에 넣을수 있었다. 그 보약에다 알쭌한 문안품을 장만한 섬길이가 도흥이네 집을 찾아갔을 때 그 효과는 정도이상으로 컸다.

물론 섬길은 계획했던 자재를 도흥의 방조로 해결받았다. 이렇게 되여 그들의 남다른 인과관계가 맺어지게 되였다.

도흥이네 집에서도 섬길이만 나타나면 생명의 은사가 온것처럼 극진히 환대해주었다. 하기는 섬길이가 가져온 그 보약의 덕으로 봄향의 어머니가 병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것은 사실이였던것이다.

섬길은 문득 도흥에게 봄향의 문제를 말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참, 소문을 들었습니까?》

《소문이라니?》

《챠, 이런. 봄향이가 기사장네 집일까지 해준다는데 그걸 모르다니요. 아, 시집도 가지 않은 처녀가… 허참, 이게 글쎄 무슨 망신입니까?》

《그… 그게 사실이요?》

《사실아니문 제가 꾸며서 말하겠습니까.》

《음…》

도흥의 얼굴은 보기에도 험상하게 이그러졌고 참을수 없는 분격으로 하여 숨결도 거칠어졌다. 분노와 모멸감을 애써 누르며 도흥은 밑도끝도없이 이렇게 물었다.

《동문 어떻게 생각하오?》

《뭘 말입니까?》

《기사장 말이요.》

섬길은 주견이 센 용길의 모습을 그려보고는 따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글쎄, 좀 거센 편이라고 할지…》

도흥은 머리가 아팠다.

섬길이가 보는 견해나 자기의 견해가 일맥상통한데가 있기때문이였다. 그대로 앉아있기 딱했던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입문앞에 이른 도흥은 갑자기 현기증이 오는지 중심을 못 잡고 비칠거렸다.

《처장동지.》

섬길이가 황급히 그를 부축해주었다.

《일없소.》

도흥은 자기의것 같지 않은 걸음으로 섬길의 방을 나섰다.

그는 오늘 그처럼 사랑하던 딸에게서 배신을 당한듯 한 기분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인물곱고 품성좋아 한아빠트는 물론 성이나 지도국에서도 뻔질나게 소개자들이 찾아오군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무엇이 원인이 되여 그처럼 주견이 있고 대바르던 딸이 용길기사장에게 반해버렸는지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그는 처음 자기 딸과 용길을 두고 말이 있을 때 그것을 청춘남녀에게 있을수 있는 뒤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평양에서 별의별 대상들을 다 마다해온 딸이 차마 기사장에게 자기의 운명을 얹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도흥이였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무역성에 있는 총각네 집과의 사전약속은 어떻게 하겠는가?

외국출장을 간 총각이 돌아오면 맞선을 보이고 약혼식을 하자던노릇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었다.

그가 마음의 안정을 잃은것은 그처럼 자존심이 강한 봄향이가 기사장네 집을 찾아다니고있는것이였다. 그것은 벌써 리성의 한계를 넘어섰다는것을 의미했다.

도흥은 일이 왜 이렇게 번져지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가차도에 전개된 현장지휘부로 향해졌다. 지휘부에 들어서보니 거기에는 명도와 성민, 봄향이가 마주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명도는 도흥을 보자 반가운 기색으로 자리를 권했다.

《오늘 3메터를 밀었습니다. 최고실적입니다.》

그는 밝은 표정을 짓고있는 딸을 마뜩지 않은 눈길로 쏘아보고는 《수고들 했겠소.》 하고 마지못해 응수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지도 않은채 딸에게 일렀다.

《얘야, 좀 나가자꾸나.》

봄향은 아버지를 따라 지휘부에서 나왔다.

딸을 이끌고 밖으로 나온 도흥은 피빛노을이 스러지고있는 바다기슭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흥은 지금 격한 감정으로 하여 자기를 억제하지 못하고있었다.

도래굽이며 바위들에는 벌써 어둠의 그림자들이 무겁게 비꼈다. 봄날치고는 쌀쌀한 바다바람이 불어오고있었다. 검푸른 파도가 밀려와 《철썩, 철썩.》 하고 너럭바위를 때렸다.

도흥은 될수록 감정을 억제하려고 애쓰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아버지가 널 왜 불렀는지 알겠느냐?》

봄향은 사이를 두었다가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알고있어요. 전 여기 와서 일하면서야 비로소 생활의 참뜻을 깨닫게 되였어요. 그리고 제가 그토록 찾고있던 좋은 사람도 만났구요. 그는 진실하고 뜨거운 인간이예요. 이런 그에게 끌린다고 하여 죄가 될수야 없지 않아요. 제발 빌어요. 그를 리해해주세요.》

《그래서 그의 집을 찾아다니느냐?》

《그 집엔 앓고있는 어머니가 홀로 계셔요.》

《그래 너에겐 자존심도 없니? 어째서 그런 못난짓을 하느냐? 사람들속에서 소문이 났다.》

《기사장동물 인간적으로 도운건데 무엇이 어쨌다구 뒤말을 한단 말이예요?》

《싹 관둬라. 아버진 무역성에 있는 총각네 집과 이미 약속까지 했다. 그러니 그 관계를 단절해라.》

《우린 이미 약속했어요.》

《안돼!》

《아버진 정말… 정말 너무해요.》

봄향은 얼굴을 싸쥐고 흐느껴울며 어디론가 달려갔다.

《봄향아!》

도흥이 소리쳐 불렀으나 봄향은 어디로 갔는지 대답이 없었다. 도흥은 소태를 씹은것처럼 입이 썼다.

대계도쪽에서는 용길기사장의 지휘밑에 완강한 공격전으로 제방을 계속 앞으로 내밀고있었다. 대계도채석장을 떠난 청강기계화사업소의 대형자동차들이 련일 3호개고 마감막이구간으로 달려오고있었다.

장송간석지건설사업소와 보산간석지건설사업소 전투원들을 비롯한 간석지건설자들은 한쪽으로 자동투석기들에 쇠그물돌자루들을 설치하는가 하면 다른쪽에서는 실어온 막돌을 쇠그물에 밀어넣고있었다. 막돌이 쇠그물에 차면 돌자루아구리를 철근으로 묶어 바다물에 떨구고있었다. 채석장에서 막돌을 쇠그물돌자루에 통채로 담아가지고온 화물자동차들은 싣고온것을 그대로 바다물에 쏟아넣었다. 전등빛으로 환한 간석지제방전투장은 말그대로 활화산처럼 끓어번지고있었다. 용길은 호각과 기발을 들고 앞장에서 전투를 지휘하였다. 고동색이 도는 그의 얼굴은 두말할것도 없고 작업복을 걸친 잔등은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다.

용길은 누구에겐가 소리를 쳤다.

《직장장동무, 돌자루아구리를 건성건성 마무리하고있소. 요구성을 높여야겠소.》

《알겠습니다.》

지적을 받은 일군은 허심하게 기사장의 추궁을 접수했다.

도흥은 견인불발의 의지로 전투를 지휘하고있는 기사장에게 딸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가르기가 멋했다. 그러나 내친 걸음에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는 용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수고하누만.》

《언제 건너오셨습니까?》

《지금 오는 길이요. 바쁜것 같은데 시간을 좀 낼수 있겠소?》

《?…》

얼굴의 땀을 손으로 훔치고난 용길은 호각과 신호기를 다른 일군에게 넘겨주고나서 도흥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은 파도소리가 드높은 도래굽이의 바위터까지 나란히 걸었다.

그곳은 제방과 너럭바위들이 잇달린 곳이였다.

도흥이 제방을 벗어나 도래굽이의 바위터끝까지 걸어나가는것으로 보아 용길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알았다.

(무슨 일일가, 혹시 봄향동무때문에?…)

이미 이런 일을 각오하고있던 용길이였다.

한발 먼저 도래굽이에 가 선 도흥은 용길이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담배곽부터 꺼내여 내밀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얘기하기요.》

《전 피우지 않습니다.》

《응, 그렇던가?》

도흥은 한대 꺼내여 라이타로 불을 달았다. 담배를 깊숙이 들이빨았다가 한숨을 짓듯 연기를 내뱉고난 도흥은 단도직입적으로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 난 오늘 지도국처장이 아니라 봄향이의 아버지로서 말하려고 하오. 우리 봄향이는 이미 어느 성기관에 있는 총각과 약속을 한 처지요. 그러니 봄향이를 단념하는게 좋겠소.》

용길에게는 도흥의 말마디들이 자기의 심장을 비수로 찌르는것 같이 들렸다. 용길은 구름속을 헤매고있는 쪼각달을 바라보며 도흥의 말이 계속되기를 기다렸다.

도흥은 용길의 이 침묵에 다소 당황해하면서도 자기의 말을 계속 내리엮었다.

《우리 봄향이가 아버지의 승인도 없이 기사장동무네 집을 찾아다닌다는데 거기에는 동무의 책임도 있소.》

용길은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격렬한 수치감과 경멸당한듯 한 오욕이 그의 가슴을 사정없이 에이였다.

환기된 쓰라린 아픔은 소외감과 모멸감을 불러오고있었다.

늙으신 자기 어머님을 위해준 봄향이의 진정이 갈기갈기 찢기는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다.

용길은 자기에 대하여 도흥이 이렇게까지 몰리해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자기들의 사랑을 아껴주고 위해줄줄 알았던 도흥의 이 태도는 그를 끝없이 실망케 했다.

서로 리해한다는것은 상대방과 같은 높이에 올라설 때만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도흥은 용길의 침묵이 달갑지 않은듯 이렇게 재촉했다.

《기사장동무, 자기 생각을 말해보오.》

용길은 수치와 자책으로 하여 갈린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일이 그렇다면… 단념하겠습니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도흥이쪽이 당황해났다.

《이거 안됐소.》

《전 그럼…》

용길은 또다시 불도가니처럼 끓어번지고있는 전투장으로 달려갔다.

전투장에 이른 용길은 한 전투원에게서 함마를 뺏어들고는 커다란 막돌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뒤로 물러섰다.

그는 지금 봄향이와 마음속 대화를 나누며 이발을 사려문채 함마를 휘둘렀다.

(봄향동무,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의 관계는 과연 무엇이였소? 오락? 아니면 가식?… 사람의 진심을 이렇게까지 우롱할수가 있는가. 대답해보오.)

한편 용길이와 헤여진 도흥은 자기가 너무 야박하지 않았는가를 돌이켜보며 바다기슭을 거닐었다. 하는수가 없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무분별한 딸의 행동을 저지시킬수 없을것이다. 그는 하루속히 봄향이를 평양으로 소환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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