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7

 

도순은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온 남편의 눈치를 보며 밥을 짓고있었다. 웬일인지 성욱의 낯빛은 별로 어두워보였고 지어 시름기까지 엿보였다.

그는 남편의 일에 어떤 말썽거리가 생겼다는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선뜻 그 사연을 물을수가 없었다. 성격이 거친 남편에게서 된벼락을 맞을수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성욱은 담배를 피워물고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어처구니가 없는지 《흥.》 하고 코웃음을 치기도 했다.

도순은 남편만 없다면 부엌에 가져다놓은 북을 치면서 굿거리장단을 완성할수 있으련만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남편의 인상을 보아서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모양이였다.

더는 참을수 없어 도순은 성욱에게 이렇게 묻고야말았다.

《무슨 일이 있었수?》

그러자 도순을 마깝지 않게 힐끗 쏘아보고난 성욱이가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도주했던 철수가 돌아왔소.》

《그럼 됐구려.》

안해의 이 말에 성욱은 버럭 성을 냈다.

《되긴 뭐가 돼. 흥, 그 주제에 제가 타던 굴착기에 다시 왔는데두?…》

《개심을 한 녀석인데 잘 이끌어주구려. 소문난 혁신자인 강만조선장의 아들인데 당신이 품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소?》

《신통히도 당비서처럼 말하는구만.》

성욱은 치미는 울화를 애써 누르며 철수를 어떻게 안착시켜야 할가 하고 궁리를 짜기 시작했다.

도순은 남편의 기분을 돌려세우자면 북장단이 제격일것 같았다.

슬며시 북을 찾아 어깨에 멘 도순은 가락에 맞추어 북장단을 쳤다.

뚱땅거리는 소리에 화가 동한 성욱이가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거 밥을 하는거요, 아니면 북을 치는거요?》

《에구, 가족지원대에서 나때문에 북제창이 걸렸수다. 당신을 부엌에 내다세우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슈.》

《원, 저런 드살이라구야. 쯧쯧…》

혀를 차고난 성욱은 장갑을 찾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놀란 도순이가 북을 벗어놓으며 다우쳐물었다.

《아니 여보, 식사는요?》

《현장에서 먹겠소.》

멀어져가면서 하는 성욱의 대꾸였다.

(에라, 맘먹은김에 순영동무네 집에나 간다.)

도순은 밥이 잦기 시작한 가마를 불판우에 올려놓고는 석탄불구멍을 막고나서 순영이네 집으로 건너갔다.

순영의 집에는 벌써 영녀며 금선이가 와서 북치는 법을 배우느라고 야단법석이였다.

순영은 도순이까지 나타나자 기겁을 했다.

《야참… 소조생들이 다 모였는데 도순동무까지 오니 발뺄 틈이 없군요.》

도순은 순영이 앞에 나서며 북채부터 잡아쥐였다.

《에구, 아무래두 난 국거리장단인지 굿거리장단인지 자신이 없어.》

《아, 굿거리장단만 하겠어요? 앞으로 안땅장단, 양산도장단, 휘모리장단, 중모리장단, 잦은모리장단, 바가지장단, 서정장단, 타령장단… 이런걸 다 배우자면 정말 끝이 없어요.》

도순은 두눈이 퀭해져서 입을 딱 벌렸다.

《에구머니나, 무슨 놈의 장단이 그렇게 많담.》

《됐어요. 이발도 안났는데 밥부터 먹겠어요? 자, 그럼 그간 배운 굿거리장단시험을 칠테니 한사람씩 해보자요.》

맨 처음 영녀가 나섰다. 젊었을적에 춤까지 춰본 영녀인지라 자세는 좋았다.

순영의 손벽에 맞추어 영녀가 북을 치는데 괜찮았다.

녀인들이 박수를 쳤다.

그러나 순영은 요구성을 높여 영녀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만하면 괜찮은데 박자를 맞춰야겠어요. 오른손 쿵짜짜, 왼손 쿵짜. 그렇지, 그렇지. 됐어요. 다음, 금선아주머니.》

금선은 처음부터 겁을 먹고 뒤걸음을 쳤다.

《에구, 난 아직 서툰데…》

도순이 곁에서 그를 고무했다.

《길고 짧은건 대보아야 알아요.》

금선은 하는수없이 북을 메고 한걸음 나섰다.

《잘 치지 못하는데 웃지들 말라구요.》

금선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북을 쳤는데 생각보다 괜찮게 쳤다.

순영이 장단에 맞추어 손벽을 치며 그를 격려했다.

《쿵짜짜 쿵짜짜짜짜…》

도중에 박자가 틀리자 순영이가 지적을 했다.

《오른손 쿵짜짜짜 이 대목은 쿵짜짜짜짜 이렇게 치세요. 틀렸어요. 왜 자꾸 틀릴가?》

《에구, 난 안되겠어…》

《그만하면 괜찮은데 왜 그러니? 다시 해보라요.》

도순이가 그들짬에 끼여들며 참견을 했다.

금선이 다시 굿거리장단을 치는데 순영이가 실망한듯 한손을 내저었다.

《야참, 박자가 틀린다니까요. 정말 고집이 불통같네.》

그 바람에 녀인들은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순영은 영녀에게 금선을 맡기며 이렇게 강조했다.

《같은 결함이 반복되는데 습관적인 버릇이예요. 좀 대주세요. 자, 이번엔 도순동무 차례예요.》

공연히 마음이 조급해진 도순은 《난 땅크처럼 냅다 달린다니까. 들어보라요.》 하며 북채를 잡아쥐였다. 정말 도순이는 박자와는 관계없이 냅다 굿거리장단을 쳤다.

녀인들은 배를 그러안고 돌아갔다.

순영이 웃음을 거두며 정색해서 말했다.

《어쩌면 내외가 그렇게 성격이랑 취미랑 꼭 같을가? 그래서 부부오누이란 말이 있는게지요.》

《그럼 내 우리 령감과 련애하던 소리나 할가?》

《어서 말해보시라요. 그 얘기나 듣고 또 해보자요.》

도순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기침을 하더니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내 지금은 뚱보가 됐지만 처녀땐 날씬했다우. 삭주군 방산에서 상점판매원으로 일했지요. 자동차들의 래왕이 심한 도로곁에 있는 상점이다보니 늘 손님들이 그치지 않았어요. 수풍쪽으로 들어가는 나그네, 신의주쪽으로 나가는 나그네, 정말 전국각지의 손님들은 다 대상했지요.

총각들의 성화는 또 얼마나 받았다구요.

지금은 이렇지만 그땐 뭇총각들의 애간장을 녹이는데가 있었던 모양이예요. 표현력은 없지만 처녀판매원이 마음에 들어 공연히 매장앞에서 어슬렁거리는 얼뜨기총각, 한마디 말만 걸쳐도 얼굴이 빨개지는 샌님총각, 다짜고짜 〈처녀동무, 더는 못 참겠소. 우리 결혼합시다.〉 이러는 싱검둥이총각, 길을 가는 나의 앞길을 떡 가로막고 〈동무네 집에 갑시다. 부모님들을 만날테요.〉 이러는 강짜군총각, 아휴 그 단련에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니까요.》

녀인들은 또다시 폭소를 터치며 대굴대굴 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순은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기의 사설을 계속했다.

《그러던 내가 저 성욱이라는 사람에게 걸려들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그때는 추운 겨울밤이였는데 시퍼렇게 언 한 운전사청년이 때없이 우리 상점에 뛰여든게 아니겠어요? 〈간석지에서 오는 운전삽니다. 두끼를 넘겼는데 먹을게 좀 없습니까? 우린 대관에 나무를 찍으러 갑니다.〉

간석지라는 바람에 어쩐지 동정심이 앞서더군요.

〈저에게 점심때 남겨두었던 밥곽이 있는데 그거라두…〉

〈난 괜치않습니다. 적재함에 15명의 우리 동무들이 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나의 마음은 더없이 다급해지더군요. 그래서 상점곁집에 뛰여가서 밥을 시키는 한편 적재함에 타고있던 동무들을 더운 방으로 안내했어요. 이렇게 복닥소동을 일구며 뒤수습을 하고나니 밤 12시더군요. 그 운전사는 체격이 좋은데다 고동색이 도는 얼굴이였는데 첫인상에 무던해보이더군요.

〈판매원동무,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나에게 다른 말을 남긴건 없었지만 왜서인지 내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청춘의 푸른 꿈을 꽃피우며 조국땅을 넓혀나가고있는 그들이야말로 온 나라 청년들의 동경의 대상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글쎄 그렇게 떠나간 운전사에게서 편지가 온것이 아니겠어요.

〈온 간석지건설장이 도순동무의 소행을 두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을 지날것 같은데 꼭 들리겠습니다.〉

전 기다렸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편지가 왔겠지요.

〈도순동무, 한달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때 꼭 가겠습니다.〉

이렇게 한달 또 한달 넘기는 사이에 1년이 되였어요. 기다리기에 지친 저는 그만 그 사람을 단념하고말았어요.

그런데 글쎄 꼭 1년이 되던 추운 겨울날 은근히 기다리던 그 사람이 내앞에 불쑥 나타난것이 아니겠어요?

〈내 이름은 김성욱입니다. 혹시 내 몸에서 감탕내가 나는건 아닙니까? 감탕내가 싫다면 난 가겠습니다.〉

난 그만 그를 놓칠것만 같아 〈아니예요, 아니예요. 전 좋아요.〉라고 대답했어요.》

녀인들은 또다시 방바닥을 치며 웃어댔다.

도순은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나의 손을 잡아주었는데 정말 불처럼 뜨겁더군요.》

영녀가 도순이에게 한마디 했다.

《건 뭐 도순동무가 성욱지배인에게 반했댔구만.》

《반하긴요, 그가 반했지. 후에 듣자니까 그 사람은 수풍을 지나다니면서도 나의 애간장을 태우느라고 우정 들리지 않았다더군요.》

그 말에 녀인들은 또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

 

마감막이구간에서는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 전투원들의 자동투석기설치가 한창이였다.

이곳에 나와 그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고있는 명도의 마음은 은근히 긴장해졌다.

소형돌자루공법을 창안한것도 자기이고 자동투석기의 시험을 주장한것도 자기였기때문이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소형공법이 성공해야 할텐데…)

그의 긴장된 얼굴표정을 살피고있던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의 나이든 축조공이 한마디 했다.

《국장동지, 너무 근심마십시오. 이번엔 꼭 성공할겁니다.》

명도가 지배인으로 사업할 때 함께 일하면서 기술혁신을 많이 한 속대가 굳은 기능공이였다. 명도는 그가 더없이 고마왔다.

《그럴가요?》

《아따, 우리가 이기지 바다가 이기겠습니까?》

말마디들마다 속이 확 트이는지라 명도는 진심으로 사의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이것은 진실한 바다의 정복자들만이 줄수 있는 고무가 아니겠는가. 지금 용길은 성욱지배인과 함께 3호개고의 끝단에서 자동투석기의 조립상태를 살펴보고있었다. 자동투석기의 고리들에 쇠그물아구리가 걸리자 그안에 막돌을 밀어넣는 작업이 진행되였다. 대략 10립방메터정도 되는 량이였다. 그것이 다 찬 다음 아구리쪽을 마무리했다. 그때까지도 자동투석기의 걸턱은 끄떡없었다.

용길은 성욱에게 함마를 쥐여주며 당부를 했다.

《그동안 제일 고생을 했는데 멋지게 때려보십시오.》

그러자 성욱은 펄쩍 놀라며 두손을 내저었다.

《무슨 소린가? 자동투석기는 기사장이 없었다면 꿈도 못 꿔. 그러지 말고 임자가 하게.》

지금 3호개고 자동투석기주변에는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 석화간석지건설사업소, 주택보수사업소 전투원들과 현장지휘성원들이 어깨성을 쌓고있었다.

명도가 성욱이에게 한마디 했다.

《지배인동무가 때리는게 좋을것 같소.》

하는수없이 성욱은 손바닥에 침을 뱉더니 함마를 잡고 자동투석기 앞으로 다가갔다. 긴장한 시선들이 그에게로 집중되고있었다.

이윽하여 함마를 추켜든 성욱은 걸턱쪽으로 그것을 휘둘렀다. 세번째 함마질만에 소형돌자루는 자동투석기에서 떨어져나가며 바다물속에 처박혔다.

《성공이다!》

《만세!》

건설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 어쩔줄을 몰라했다. 명도가 기사장과 성욱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동무들, 정말 수고했소. 돌파구가 열렸단 말이요.》

전투현장에서 건설자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소형돌자루공법과 자동투석기의 성공이 이런 장관을 펼치게 한것이다. 건설자들에게 이끌리여 춤판에 들어선 명도는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용길이와 성욱이도 여기에 뛰여들었다.

성욱이의 곱새춤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춤가락의 흥취에 젖었던 명도가 소리쳤다.

《동무들,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와 다사기계화사업소의 무릎싸움 승부를 겨룹시다!》

그러자 춤판은 멎고 사업소들에서는 제가끔 선수들을 뽑느라고 변이였다. 제방공사에서는 짝패가 되여 호흡을 잘 맞추지만 배구경기와 무릎싸움에서는 늘 승벽내기인 두 사업소였다.

당위원회 부비서가 호각을 들고 심판으로 나섰다.

《국장동지는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의 1번선수이고 성욱지배인동진 다사기계화사업소의 1번선수입니다.》

그새 허리를 앓은지라 명도는 한손을 내저으며 아닌보살을 했다.

《아, 난 못하오.》

이 모양을 바라보던 성욱이가 한마디 했다.

《그러단 다사건설이 이 땅크한테 다 녹습니다.》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요?》

매번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의 선수로 편입되군 하던 명도인지라 밸이 울컥하여 경기장으로 정해진 제방우로 나섰다.

두편에서는 각각 10명의 선수들이 나섰다. 어디서 났는지 시작부터 꽹과리소리와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며 선수들의 승벽심을 자극했다.

허우대가 크고 틀이 진 성욱은 성미그대로 맞다드는 상대들을 단번에 거꾸러뜨리더니 이번에는 명도에게로 달려들었다. 매번 두 사업소의 무릎싸움은 이 두사람의 승부로 결판이 나군 했다. 성욱이의 특기를 잘 알고있는 명도는 날쌔게 옆으로 비켜섰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선수 잘한다!》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의 응원자들은 얼굴이 달아가지고 응원에 열을 올렸다. 북소리, 꽹과리소리, 박수소리, 웃음소리, 고함소리로 온 바다가 떠나갈듯 했다. 어떻게 된 판인지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 선수들은 다 넘어지고 명도 혼자만이 남았다. 성욱이네는 아직 네명씩이나 되였다. 그러니 1 대 4인셈이였다.

성욱이가 명도에게 셈평좋게 소리쳤다.

《국장동지, 인젠 손을 드십시오.》

그러나 명도의 기세는 아직도 자신만만했다.

《어림도 없소. 자, 달려드오.》

그러자 기계화선수들이 일시에 명도에게 달려들었다. 가운데 섰던 명도가 날쌔게 몸을 빼는 바람에 두 선수가 제김에 나동그라졌다. 약이 오른 성욱이 명도를 덮치는 순간 이번에도 그는 날쌔게 몸을 빼며 나머지선수마저 넘어뜨렸다.

《잘한다, 잘한다. 우리 선수 잘한다!》

다사간석지건설사업소의 응원자들은 사기가 났다.

서로 마주선 명도와 성욱은 숨을 헐썩거리며 기회만 노렸다. 응원은 더욱 고조되였다.

드디여 성욱은 광포한 힘으로 명도를 덮쳤다.

순간 명도는 날쌔게 몸을 피하며 성욱을 슬쩍 옆으로 떠올렸다. 성욱은 밑둥이 잘리운 통나무처럼 허양 나동그라졌다. 사람들의 환성소리, 꽹과리소리, 북소리가 전투장을 진감했다.

성욱이는 분한듯 심판을 선 부비서에게 매달리며 간청을 했다.

《부비서동무, 다시 합시다. 이건 개판이요.》

부비서는 벙글벙글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는데 아주 걸작이였다.

《다시 해도 승산은 뻔합니다. 좀 더 련습해야겠습니다.》

《에, 내 그 갑작수에 넘지 않는다는노릇이 또…》

성욱은 랑패라는듯 한손으로 뒤더수기를 긁적거렸다.

경기가 끝난 후 명도는 용길기사장을 끌고 생산지휘용승용차에로 다가갔다. 승용차문을 여니 다과구럭이 준비되여있었다.

용길은 그것을 보고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이건?…》

《기사장동무, 자동투석기도 멋지게 성공했는데 봄향동무한테 가봐야지.》

《?!…》

《자, 내 차로 어서 갔다오오.》

명도는 두눈을 슴벅하며 기사장에게 눈짓을 했다.

용길은 국장의 그 마음이 더없이 고마왔다.

자기와 봄향이사이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얼마나 왼심을 썼으면 면회준비까지 했으랴.

《국장동지, 고맙습니다.》

용길은 국장의 차에 올라 간석지병원을 향해 달렸다. 생각할수록 자기 문제를 두고 마음을 쓰고있는 국장의 진정이 뜨겁게 생각되였다.

어린시절부터 친혈육의 정으로 자기를 보살펴준 국장이 아닌가. 인제는 관리국의 기사장이 됐는데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왼심을 쓰고있는것이다.

그는 일이 바쁘다고 하여 병원에 입원하고있는 봄향이에게 찾아가보지 못한 자기의 처사가 불만스러웠다. 간석지일을 위해 그처럼 아글타글하다가 쓰러진 처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를 찾아갈 시간도 못내다니…

이제 가면 봄향이가 나를 어떻게 대해줄가. 다사기계화사업소의 전투현장에서 그처럼 애를 먹이던 자동투석기의 걸턱문제를 설명하고나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시름이 풀린다고 하던 봄향이의 말이 귀전에 쟁쟁했다.

어제날의 허영심에 뜬것 같던 처녀가 오늘은 간석지의 주인으로 보였다.

용길은 그사이 봄향이와의 관계에서 자기가 너무나도 무심하고 거칠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런 착잡한 생각을 안고 간석지병원에 도착한 용길은 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봄향이가 입원하고있는 호실에 들어섰다.

봄향은 혼곤히 잠에 들어있었다.

원장은 제김에 미안한듯 봄향을 깨우려고 서둘렀다. 용길은 손을 뻗쳐 원장의 손을 잡으며 두눈을 겁석했다. 아쉬운듯 환자를 바라보던 원장은 조용히 호실에서 나가버렸다.

다과구럭을 원탁에 올려놓은 용길은 봄향이가 깨여날가 저어하며 조심히 의자에 앉았다. 그는 처녀가 잠든 모습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처녀의 잠든 모습은 더욱 청수하고 아름다왔다.

용길은 처음 간석지론문을 들고 자기를 찾아왔던 귀엽고 사랑스럽던 봄향이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때 자존심과 들뜬 열망에 도취되였던 수도의 처녀가 오늘은 간석지건설에서 목이 메였던 자동투석기를 해결하기 위해 진눈까비 쏟아지는 밤 령길을 넘는 담찬 행동을 한것이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못할짓을 하는 때처럼 멋적은감도 있었지만 잠든 처녀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버들잎같은 눈섭밑에서 호수와 같이 그윽하게 빛나던 눈이 살풋이 물기를 머금은채 조용히 감겨져있었다. 처녀의 하얀 얼굴은 피여오르는 홍조로 하여 그리고 앵두알같이 빨간 입술로 하여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단조로운 숨소리가 들리는 오똑한 코며 인상적이고 고집스러운 모습은 용길이로 하여금 잠재되였던 아름다운 성정에 대한 표상을 더욱 굳게 하여주고있었다. 오늘은 그를 만나 진정의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던 용길이였다.

아쉽게도 생활은 그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깨여날 때까지 그를 기다릴수 없었고 그렇다고 잠든 그를 깨울수도 없었다.

용길은 봄향이와 자기의 마음속 대화를 나누고있었다.

《봄향동무, 자동투석기가 드디여 성공했소. 정말 고맙소.》

《고맙긴요. 저야 응당 할일을 했는걸요.》

《그새 내가 너무 무심했소. 생활에서 덜퉁한게 내 결함이요.》

《아니예요, 아니예요. 오히려 그것이 기사장동무의 장점이예요.》

용길은 자기의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는 거기에 원주필로 이렇게 썼다.

《봄향동무, 면회가 늦어서 미안합니다. 자동투석기는 성공했습니다. 치료를 잘 받으십시오.

                                                            용길 씀.》

수첩장을 째내여 원탁우에 놓고난 용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한번 봄향이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용길은 발끝으로 살금살금 호실을 벗어났다.

문득 복도에서 그와 마주친 담당간호원처녀가 말했다.

《어마나, 왜 벌써 가세요?》

《쉬!》

한손가락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고난 용길은 조용히 병원현관을 나섰다. 모처럼 시간을 내여 왔던 걸음이 이렇게 끝나고보니 어쩐지 서운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봄향이 자기를 충분히 리해하리라고 생각했다.

 

봄향이 퇴원하는 날이 왔다.

그가 환자복을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데 귀염성스러운 담당간호원처녀가 웃음을 짓고 다가와 나직한 어조로 알려주었다.

《밖에 누가 왔어요.》

《누구게?》

《몰라요. 키가 크고 잘생긴… 아, 전번에 면회왔던 사람이예요.》

의문을 안은 봄향이가 병원현관을 나서는데 거기에는 뜻밖에도 용길이가 서있었다.

봄향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살짝 붉히며 인사를 했다. 용길은 이렇게 찾아온것이 멋적은듯 설명을 했다.

《볼일이 있어 관리국에 왔다가 동무가 퇴원한다기에 들렸소. 마침 3호개고로 가는 길인데 함께 갑시다.》

사실 봄향은 합숙에 들려 현장에 가지고나갈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함께 가고싶어하는 용길이의 청탁을 뿌리치기가 싫었다.

그들은 어깨나란히 귀염산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걸었다.

추위가 한결 가시고 해볕이 재글재글 끓으며 따뜻하고 청신한 봄날의 기류를 안아오고있었다.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미풍은 한결 부드럽고 정가로왔다.

귀염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를 둘러싼 잣나무림에도 봄기운이 한껏 깃들고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잣나무주변에는 진달래들이 망울을 터치려는듯 방긋 웃고있었다.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높았다.

봄향은 봄날의 맑은 청취에 취한 눈길로 용길이를 정겹게 바라보았다.

《면회를 오셨다가 그냥 가셨더군요. 그동안 철없이 행동한 절 욕했지요? 호…》

봄향은 오래간만에 밝게 웃으며 빙그레 웃고있는 용길의 반응을 기다렸다. 채색되는 삶의 희열로 하여 처녀의 입가에는 노상 밝은 웃음이 찰랑거렸다.

《아니, 난 생활을 가꾸는데서는 락제생이였소.》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여기에 와서 정말 많은것을 배웠어요. 생활을 진실하고 열정적으로 대하는 정신적힘이라고 할가.…》

《참, 론문은 어떻게 됐소? 내가 도와주면 안될가?》

봄향은 머리를 저었다.

《여기 간석지건설자들은 자기들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교과서에도 없는 대론문을 집필하고있어요. 이건 어느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예요.

전 지금에야 비로소 저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질없는것인가를 깨달았어요.》

용길은 봄향의 사상적비약이 자못 놀라왔다.

그는 지금 이 시각이야말로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봄향이에게 터놓아야 할 순간이라는것을 깨달았다.

봄향은 용길의 얼굴에 비낀 착잡한 표정을 띠여보고나서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세요?》

용길의 발길은 멎었다. 그의 입에서는 불쑥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봄향동무, 동무의 승인도 없이… 난 이상하게도… 동무생각만 하게 되오. 내가 불손했다면 용서하오.》

이것은 용길의 가슴속에 잠재되여있던 유별한 감정과 넋이 심연의 분화구에서 터져나오는듯 한 사심없는 토설이였다.

봄향은 물기를 머금은 그윽한 눈길로 용길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어인 일인지 꼭 다문 그의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건… 저 역시… 같아요.》

처녀의 이 고백은 용길에게 형언할수 없는 기쁨과 희열의 감정을 안겨주었다. 심장의 흉벽을 때리는 뜨거운 피의 격류가 용길을 끝없이 환희의 세계에로 이끄는듯싶었다.

《봄향이!》

진정을 담아, 격정에 넘쳐 용길은 봄향의 얼굴을 정답게 바라보았다.

역시 행복의 무아경에 잠긴듯 한 봄향이에게 그는 말했다.

《봄향동무, 우리 함께 가볼데가 있소.》

봄향은 용길의 심리적파동을 읽으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가 선 곳은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사적비였다.

《우리 간석지건설자들이 어려울 때나 행복의 순간을 간직할 때나 찾군 하는 곳이요!》

봄향은 숭엄해지는 마음을 안고 현지지도사적비의 글발을 마음속에 새겼다.

전후 그처럼 어렵던 1958년 6월 22일 압록강하구와 서해안일대를 돌아보시며 간석지건설의 휘황한 전망을 펼쳐주신 어버이수령님,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간석지건설장으로 가는것을 후날로 미루실것을 결정하였으나 인민들의 행복을 위한 길인데 날씨를 가려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몸소 어뢰정을 타시고 비바람 사나운 간석지건설장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억수로 쏟아지는 찬비를 맞으시며 몸소 감탕길을 걸으시여 개간된 간석지건설장을 찾으시지 않으셨던가.

기름내 풍기는 수수한 양수장에서 간석지건설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시고 간석지건설에서 나서는 문제와 농사문제를 의논해주시던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영상이 용길이와 봄향의 눈앞에 안겨왔다.

자신이 써야 할 우산을 한 일군에게 씌워주시며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정확히 적으라고 뜨겁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장군님,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다사도항의 옛모습도 찾아주시고 다사땅에 청년양어장과 오리목장을 건설하여 인민들이 덕을 보게 해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던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가르치심이 그들의 가슴속에 새겨졌다.

《봄향이, 우리 언제나 수령님과 장군님의 뜻대로 살며 일하기요!》

《알겠어요!》

《자, 그럼 난 3호개고로 가겠소.》

《안녕히 가세요.》

봄향이의 손을 억세게 잡아주고난 용길은 대계도쪽을 향해 걸음을 내짚었다.

봄향은 그 자리에 굳어진채 멀어져가는 용길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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