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3 장

4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불시에 명도를 찾아온 용길은 불만에 젖은 어조로 이렇게 내뱉는것이였다.

《도흥처장이 어쩌면 그럴수가 있습니까?》

명도는 자리에 누운채 흥분되고 격앙된 용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요?》

《공법시험을 중지하고 등곶을 따라 제방이 에돌아야 한다고 생억지를 쓰지 않습니까. 오늘 저녁 협의회에서는 결판을 본다는겁니다.》

《?!…》

그제서야 요전날 도흥이 무엇을 암시했는가를 깨달은 명도는 심각해졌다. 그러니 그는 여직껏 그 안을 포기하지 않고있은것이다.

어쩌면 지도국의 일군인 그가 이럴수 있는가.

그는 어느 사이에 변했어. 이것은 단순히 3호개고를 마감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명도는 더는 지체할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사장동무, 날 좀…》

명도는 허리의 동통을 참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용길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국장동지,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류도흥처장을 만나야겠소.》

《이 몸으론 안됩니다.》

《아니, 가야 하오. 이건 우리의 신념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요.》

잠시후 명도는 지팽이를 짚고 승용차에 올랐다.

3호개고에서는 도흥의 지시에 의해 측량작업이 진행되고있었다. 등곶에 대한 측량작업을 도흥이 직접 주관하고있었다.

용길의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에서 내리는 명도를 발견한 도흥은 몹시 놀란 표정이였다.

《아니, 다친 허리로 어쩌자구…》

말은 그렇지만 그의 얼굴에는 초조하면서도 불안스러운 빛이 떠돌았다.

《처장동지, 나 좀…》

명도는 지팽이에 의지한채 현장지휘부천막으로 다가갔다.

용길이 미타한듯 그를 부축하며 걱정했다.

《국장동지…》

명도의 이마에는 비지땀이 내돋고있었다. 그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의 동통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군 했다.

《괜찮소. 어서 가서 자기 일을 보오.》

도흥이 천막문을 제끼며 뒤따라 들어왔다.

명도는 될수록 자기의 흥분된 감정을 누르려고 애쓰며 낮은 어조로 물었다.

《처장동진 아직도 제방이 등곶을 따라 에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도흥은 그 질문에 좀 당황한듯 했으나 자기 립장을 밝혔다.

《국장동무, 현실이 그렇지 않소. 그래 숱한 로력과 자재가 든 특대형철방틀공법이 어떻게 됐소? 이게 벌써 몇번째인가 말이요. 동문 말끝마다 법선, 법선 하는데 아, 법선이라는것두 3호개고만 막으면 되는거지 딴거요?》

그제서야 도흥의 진속을 가늠한 명도는 피가 거꾸로 솟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결국 이 사람은 신념도 없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자기보신을 위해 살고있다. 날바다와 싸우는 치렬한 격전장에서 쉬운 길로 과오없이 갈생각만 하고있다.)

명도는 자제력을 발휘하여 따져물었다.

《그럼 처장동지의 주장대로 등곶을 따라 에돌면 3호개고를 언제쯤 막을것 같습니까?》

《국장동무, 그전에도 말했지만 난 시간이 좀 지체되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하자는거요.》

《처장동지, 수령님께서 그어주신 선은 우리가 한치도 에누리할수 없는 법선이며 가장 과학적인 선입니다. 등곶을 따라 에돌면 지금보다 더 막대한 자재와 로력이 들어야 하고 개고만 해도 두개를 더 막아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간석지로동계급의 높은 애국심과 정신력을 믿고 어렵더라도 지름길을 택해주신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로동계급은 쉬운 길을 택하느니 수령님께서 그어주신 법선을 베고죽더라도 끝까지 그 길로 갈것입니다.

처장동진 정신을 차리고 우리 로동계급의 정신력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처장동진 너무나 변했습니다. 이건 탈선정도가 아닙니다.

감히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그이께서 그어주신 법선을 변경하려 들다니… 상상이나 할수 있는 일입니까?》

날카로운 명도의 지탄에 기겁한 도흥은 제딴의 론리를 고집했다.

《여보, 거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대지 마오. 나도 일이 되게 하자는거요. 까놓고 말해서 무모한 공법도입으로 국가에 손해를 주게 되니 하는 소리요.》

《우리는 비록 실패는 했지만 반드시 새 공법으로 법선을 지킬것입니다.》

명도의 확신성있는 이 말에 도흥은 한걸음 물러서는 자세를 취했다.

《글쎄 그렇다면야 좀 좋겠소?》

《왜 우리가 붉은기를 지켜 억세게 싸워나가는것입니까. 우리가 어째서 참기 어려운 고난의 행군길을 걸어온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노예로 살수 없기때문입니다. 사회주의를 지키는 신념은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수령님께서 그어주신 법선도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감히 변경하려들다니… 먼 후날에 가서도 이것은 추호도 용서할수 없습니다.》

당황해진 도흥은 한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됐소, 됐소. 그 안을 철회하면 될게 아니요.》

명도는 마디마디에 그루를 박으며 준절한 어조로 주장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수령님께서 그어주신 법선대로 제방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이기 전에 철칙입니다.》

《…》

도흥은 말이 없었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엄중했는가를 깨달은것 같았다. 도흥은 기가 질린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길로 지도국에 갔다오겠소.》

《?…》

도흥은 의혹에 잠겨있는 명도에게 그 리유를 설명했다.

《사실은 그 절충안대로 3호개고를 막을 결심이였소. 그 결심을 지도국에도 반영했댔고… 하지만 인젠 알았소. 올라가서 그 절충안을 철회할 결심이요.》

도흥은 괴로움에 차서 거친 숨을 톺으며 그간의 일들을 실토하고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번뇌와 고민의 빛이 력연했다.

명도는 자기의 결심을 철회하는 도흥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는것을 직감했다.

또한 도흥이 제때에 자기의 실책을 깨닫고 그쯤 물러선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후 평양에 올라갔던 도흥처장이 명도를 찾아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명도를 만류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국장동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간석지제방공사에 필요되는 다량의 철근을 해결해주시였소. 래일 아침 그 철근이 건설현장에 도착하게 되오.》

명도는 자리에 누운채 너무나도 뜻밖의 감격적인 소식앞에 눈물을 머금었다.

《나라가 아직은 어려운데 우리 장군님께서 또다시 철근까지…》

명도는 철근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일을 생각했다.

온 건설장의 운명이 그 철근에 달려있지 않았던가. 더는 어쩔수가 없어 안타까이 가슴을 부여안고 몸부림을 치던 날들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그런데 그 고충을 우리 장군님께서 몸소 풀어주신것이 아닌가.

명도는 너무나도 꿈만 같아 어린애처럼 눈물을 흘리였다.

도흥은 그간의 일로 하여 가책을 느꼈던지 인차 자리를 일었다.

그가 간지 얼마 안되여 운섭이와 용길, 성민이와 성욱을 비롯한 간석지일군들이 명도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 기쁜 소식을 전해들은 모양이였다.

명도는 운섭이와 용길의 손을 꽉 잡아쥐며 목메여 부르짖었다.

《이 사랑, 이 믿음에 언제 가야 다 보답하겠습니까?》

운섭이도 격정에 젖어 명도의 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공사에서 제일 걸린 고리가 풀렸으니 끝까지 우리 공법대로 내밀수 있게 되였습니다.》

용길이도 기쁨에 겨워 이야기했다.

《지금 관리국기술집단은 자동투석기설계에 달라붙었는데 이내 완성될겁니다.》

명도는 생각깊은 어조로 절절하게 말했다.

《그새 내 생각을 깊이 해보았는데 대형에 매달리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칠것 같소.

대형공법은 적용하는 기일도 오래 걸리고 또 류속의 힘을 약화시키는데도 불합리할것 같소.》

지금껏 투석법을 대형으로만 리해하고있던 명도가 이렇게 말하자 용길은 의문에 찬 시선으로 국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수라도 있습니까?》

《생각중인데 중형이나 소형으로 넘어가야 하오. 그렇게 되면 기동성도 있고 또 류속의 힘도 덜 받을것 같단 말이요.》

《국장동지의 주장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타산안이 있어야 할게 아닙니까?》

《그에 대해서는 이제 답변을 주겠소.》

이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성욱이 한마디 했다.

《우린 자동차적재함에서 쇠그물을 엮은 다음 막돌을 실어 통채로 자동하차하는 시험을 계속하겠습니다.》

명도는 잡도리가 다른 성욱의 이 제안에 지지를 표시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요. 참 기사장동무, 선박사업소의 전단면투석법이 어떻습디까?》

《철근만 대주면 밑바닥이 패인 3호개고구간을 그 사람들이 몽땅 메울것 같습니다.》

명도는 신심에 넘쳐 만족스럽게 말했다.

《선박사업소사람들이 소문없이 큰 고리를 제끼고있구만.》

일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운섭이와 용길이 명도의 곁에 와 앉았다.

《국장동무, 은별이의 처벌이 해제됐소.》

《예, 그 애한테서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요?》

《그 애 결심은 영원히 간석지에 뿌리를 내리겠다는겁니다.》

《아무리 봐야 간석지의 보배라니까. 한데 만조선장의 아들과 각별한 사이같더군. 그 말썽군 말이요.》

명도는 당비서가 은별의 장래를 두고 마음을 쓴다는것을 알았다.

《저도 압니다. 그렇지만 그 애가 여전히 그를 생각하고있으니 어쩌겠습니까? 조국땅을 넓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저 바다같아야 한다나요. 우리의 투쟁은 자연개조이자 인간개조라는것이 아닙니까.》

《하하… 국장동문 정말 욕심나는 막내딸을 두었소.》

은별이의 기특함에 탄복하던 운섭은 막혔던 속이 트인듯 금선에게 물을 청했다.

《아주머니, 시원한 물이나 한그릇 주슈.》

금선이 떠주는 랭수 한그릇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난 운섭은 명도에게 치료를 잘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부엌문이 열리며 손에 가물치를 든 강만조가 들어섰다.

《안녕하슈. 제 선장 만조웨다.》

금선은 감개가 무량한듯 한손을 내저으며 반가와했다.

《에구머니나, 만조선장이 우리 집에 다 오시구.》

《국장동진 좀 어떻습니까?》

《많이 나았어요. 그러지 않아 밖에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났수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이걸루 생선탕을 얼벌벌하게 끓여주십시오.》

《에구나, 이른봄에 참 귀한거군요.》

마음에 달이 뜬듯 금선은 그것을 받으며 무등 기뻐했다.

집안에서는 명도와 용길이 공사일정을 열정적으로 토의하고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허리는 좀 나았습니까?》

명도는 그를 보자 반가와하며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만조는 그를 만류하며 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번 온다온다 하는게 발이 늦었습니다. 전단면투석을 하자니 언제한번 짬을 낼새가…》

명도는 근면하고 성실한 만조의 일본새를 잘 알고있었다.

《그게 나에겐 병문안 오는것보다 더 중요한거지요. 그래도 만조선장이 꽝꽝 내밀어주니 그렇지 선박사업소가 없었다면 어쩔번했소?》

만조는 웃주머니에서 써래기를 꺼냈다.

용길이 려과담배를 내밀었으나 만조는 두툼하게 한대 말아피웠다.

《국장동진 비단섬을 건설할 때의 이 써래기맛을 잊지 않았겠지요?》

《내가 그걸 잊을리가 있나요?》

만조는 담배연기를 구름같이 내뿜으며 자기 소리를 했다.

《그때가 벌써 어언 40년전 일이웨다. 세월두… 참, 그러지 않아두 내 기사장동물 만나려던 참이였는데 전단면투석법을 원만히 내밀자면 3호개고의 제방 안쪽들에 림시부두를 건설하는게 어떻겠소. 그렇게만 되면 지금처럼 멀리서 버럭을 싣고 밀물시간을 맞추느라고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될것이고 자동부림배가 하루 댓탕은 할것 같수다.》

용길은 만조선장의 말을 들으며 현장실태를 머리속으로 그려보았다. 지금은 대계도쪽 채석장에서 자동부림배에 버럭을 실어가지고 대기상태에 있다가 밀물때가 되면 일시에 3호개고쪽으로 와서 투석하고있었던것이다. 만일 만조선장의 말대로 하면 배가 오가는 시간을 훨씬 단축할수 있을것이다. 아니, 그것은 많은 로력과 시간을 단축할수 있는 기발한 안이여서 4회전이상 바라볼수 있었다.

용길은 무릎을 치며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그것 참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 때는 격이구만요. 국장동지, 어떻습니까?》

명도는 밝은 얼굴로 만조의 두손을 억세게 잡아쥐였다.

《만조, 역시 만조는 만조야, 하하…》

만조는 어색하고 면구스러워하며 《너무 이러지들 마십시오.》 하고 대꾸했다.

명도가 부엌에 대고 소리를 쳤다.

《여보, 뭘하는거요. 뭘 좀 들여오구려.》

《잠간 있으면 돼요.》

용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서두르는것을 명도가 만류했다.

《기사장동무, 혼자 있기 갑갑해서 그러니 잠간 앉아있소.》

《철근도 들어온다는데 조직사업을 하자고 그럽니다.》

《철근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자, 앉으라니까.》

명도는 비록 허리를 다치고 집에 누워있으나 늘쌍 현장일군들과 함께 있으니 현장실태를 뜬금으로 외우고있었다. 외롭지도 않았다.

요즈음 금선이의 수고는 여느때보다 더 컸다. 그러다보니 연신 들이닥치는 사람들때문에 말리워두었던 어물들도 들장이 나는판이였다.

하지만 그것 역시 생활의 락이 아니랴.

금선은 그사이 날쌔게 가물치의 밸을 따고 된장물을 풀어 생선탕을 끓이고있었다.

집안에서 만조가 하는 말이 그의 귀전에도 들려왔다.

《국장동지, 우리 철수녀석때문에… 면목이 없습니다. 이 만조에게 그런 모자라는 녀석이 태울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명도도 만조가 아들때문에 마음고생을 한다는것은 잘 알고있었다.

《아직 철이 덜 들어 그러겠지요. 근본이 간석지물림인데 갈데 있겠소. 제발로 다시 올겁니다. 그땐 달라붙어 닥달질을 해서라도 아버지의 대를 잇게 해야지요.》

만조는 은별이와 철수사이의 류다른 사연을 말할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가뜩이나 3호개고때문에 시름이 많은 명도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니, 차라리 모르고있다면 말하지 않는 편이 나을것 같기도 했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때문이였다.

 

×

 

가족지원대 책임자로 임명된 순영은 요즈음 속이 달아 몸살이 날 지경이였다.

요전날 당비서와 함께 명도국장에게로 가서 정식 가족지원대 책임자로 임명받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있는 그는 소조까지 맡고있어서 여간 시간이 바쁘지 않았다. 간석지의 녀인들 누구나 그러하지만 순영이 역시 일밖에 모르는 남편대신 가정을 맡아 간난신고를 하고있었다.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던 그 나날 순영이도 수업이 끝나면 바다기슭에 나가 바다나물을 뜯었고 조개를 캤다.

그래도 간석지땅에는 바다라는 유일한 생활의 지탱점이 있었다. 감때사납고 인정머리가 없는것이 바다라고 하지만 간석지에는 노력만 하면 생활보탬을 할수 있는 바다나물도 있고 기타 어물들도 있었다. 그래서 간석지녀인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고생을 하면서도 남편과 가정을 위해서 짬만 있으면 바다기슭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3호개고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는데 맞게 녀인들의 분산되였던 이 힘을 합칠 때가 온것이다.

순영에게는 성민이가 개준의 길을 걷던 청년돌격대시절에 그의 사나운 성격을 길들이던 처녀선동원의 기질이 다분하게 남아있었다. 그는 이악하고 성격이 대발랐으며 조직적수완과 사람들의 정신력을 발동할줄 아는 능력도 있었다.

이것이 그를 가족지원대 책임자로 추천하게 한것이다.

사실 성민이도 자기의 안해가 그 책임을 맡자 은근히 흠썩해했다.

성민에게 있어서 운섭당비서는 사업상 은인이였고 순영은 생활상 은사였다. 밖에 나와서는 완강하고 손탁이 센 성민이지만 가정에 들어가서는 고분고분했다. 그래서 간석지마을에서 제일가는 애처가를 꼽으라면 첫 손가락에 오르는것이 성민이였다.

그는 가정에 들어가면 누구보다도 안해를 위해 왼심을 썼다. 성민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는 안해를 위해 밥도 짓고 빨래도 하군 했다.

첫애기를 업고서도 순영은 학교일에서 빈틈이 없었다. 맵짠 순영의 손탁에 들기만 하면 아이들이 멋진 완제품으로 비다듬어졌다. 그래서 학부형들은 자기 아이들을 순영에게 맡기려고 신경을 썼다.

하기에 그들부부는 다른 가정들과 달리 늘 바쁜 사람들이면서도 윤이 흐르고 생활의 리듬도 잘 맞는 화목한 짝패로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순영은 우선 일군들의 안해들로 조직되는 가족지원대의 특성에 맞게 녀인들의 성격과 취미, 지향에 따르는 사업일정표를 구체적으로 짰다. 만일 그것이 현실화되면 녀인들의 마음속 복잡한 구조를 멋지게 정리할상싶었다.

국장의 안해인 금선은 회계원출신이므로 생활적이면서도 매사에 구체적이고 속내가 깊었다. 예술적인 재능은 없지만 살림을 설계하는데서는 능수였다. 한편 당비서의 안해인 영녀는 농촌출신으로서 근면하면서도 락천적이고 노래와 춤에서 남다른 재간을 가지고있었다.

또한 삭주군의 방산상점 판매원출신인 도순은 성격이 개방적이고 괄괄했으며 아무 일에서나 서슴을줄 몰랐다.

자재부국장의 안해인 분옥은 수도 평양출신으로서 누구보다도 섬세하고 생활을 알뜰하게 꾸릴줄 아는 특기가 있는 반면에 소심한것이 흠이였다.

그러나 순영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녀인들이 할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누구나 다 간석지건설을 위해 아글타글하고있는 남편의 일을 돕기 위해 왼심을 쓰고있다. 이 마음을 한데 뭉친다면 무서울것이 없지 않겠는가.

이래저래 구체적인 타산을 세운 순영은 어느날 자기네 집에 녀인들을 모이게 했다.

금선, 영녀, 도순, 분옥 등 녀인들이 모여오자 그는 자기의 속궁리를 이렇게 내비치였다.

《오늘 이렇게 모인건 딴게 아니예요.

지금 3호개고에선 우리 주인들이 완강한 전투를 벌리고있어요. 그들이 가정에 대한 걱정이 없이 공사를 다그치게 하자면 우리들도 한몫 해야겠길래 이렇게 마주앉은거예요. 우리 가족지원대는 앞으로 현장지원사업은 물론이고 어려울 때마다 전투장에 나가 노래도 들려주구 일손도 도와야겠어요. 그리고 어려운 집일이 제기되면 함께 달라붙어 해제끼구요.》

그의 말을 듣고있던 도순이가 엄살을 부렸다.

《애개개, 난 노래와 춤이라면 딱 질색인데 야단이구만.》

분옥이도 한마디 했다.

《나도 같애요. 처녀때두 못 부른 노래인데 어쩌니…》

영녀가 그들을 보다못해 지청구를 했다.

《남정네들이 제방을 막는걸 생각하면야 그쯤한것도 못하겠나, 내 배워주겠네.》

금선이 영녀의 무릎을 잡아흔들며 제 생각을 말했다.

《에구, 형님이 추는 막춤과 같은줄 아슈. 〈양산도〉춤 말이예요.》

그 바람에 웃음판이 펼쳐졌다.

그들의 말을 듣고있던 순영이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춤도 별게 아니예요. 그건 제가 배워주겠어요.》

그러자 도순이가 순영에게 물었다.

《진짜 춤을 출줄 아나?》

《알지 않구요. 한번 보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순영은 자기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는데 볼만 했다.

녀인들이 경탄해하며 박수까지 쳤다.

이윽하여 자리에 앉은 순영은 자기의 견해를 이렇게 내비쳤다.

《남정네들이 3호개고를 점령하자구 밤낮 뛰고있는데 우리 아낙네들이라고 어떻게 팔짱만 지르고있겠어요. 그새 금선아주머니는 얼음같이 찬 물에 들어가 수산물을 잡아가지고 건설장지원을 많이 해왔어요. 그리고 영녀어머니는 바다나물 말리운것을 유치원에도 보내주었구요.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때에 남편들이 집걱정을 하지 않구 제방을 막는 일에 전심하게 한다면 그 이상 더 큰 보람이 없을거예요.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는지 한가지씩 좋은 안들을 내놓으세요.

난 서툴긴 해두 예술적소양이 있으니만치 녀맹기동예술선동대를 추켜세울 생각이예요.》

그러자 도순이가 한무릎 나앉으며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우리 집에 틈틈이 농사를 지었던 고구마와 감자가 좀 있는데 난 그걸 삶아 내가겠어요.》

영녀는 도순의 말이 미덥지 않은지 이렇게 물었다.

《그게 얼마나 많아서 집에서 다 감당한다던가?》

《본가집이 삭준데 오빠들과 언니들까지 다 동원해야지요.》

《아니, 본가집까지?》

《왜요? 온 나라가 간석지건설장을 지원하는판인데 여기 바다구경도 시킬겸 지원몫을 단단히 받자는거예요.》

그러자 녀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금선이 자기의 안을 내놓았다.

《난 녀맹원들로 수산가내반을 뭇자는거예요. 남편들을 돕는 일인데 좀 힘들면 뭐래요?》

순영이 제꺽 그 말에 찬성을 표시했다.

《정말 좋은 생각을 했어요.》

생각에 골똘해있던 분옥은 얼굴을 붉히며 공연히 마음이 다급해져서 안절부절 못했다. 다들 좋은 의견을 내놓는데 자기에게는 안이 없었던것이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순영이 한마디 물었다.

《자재부국장넨 왜 말이 없어요?》

분옥은 머리를 더 깊숙이 숙이고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전… 돼지를 몇마리 낼가 해요.》

《아니, 뭐? 돼지를 몇마리씩이나?》

도순이 깜짝 놀라며 묻는 말이였다.

반발심이 난 분옥이 얼굴을 들며 《왜요? 못할것 같아요?》라고 하는 바람에 또다시 웃음판이 펼쳐졌다.

도순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지 이렇게 물었다.

《그건 돼지새끼겠지?》

《새끼돼지라니요? 엄지돼지지. 우리 집에서 기르는 덕틀돼지만도 세마리씩이나 되는데요 뭐.》

영녀가 감탄하며 분옥을 칭찬했다.

《듣던중 제일 시원한 소리구만. 물감장사군같은 자재부국장에 비하면 분옥동무가 통짜야. 오늘 당장 바지를 바꾸어입자고 하게.》

그 말에 또다시 웃음판이 펼쳐졌다.

순영은 신심과 자부에 넘쳐 녀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라요, 어디 우리 녀인들을 숫보게 됐어요? 얼마나 힘이 솟나요. 이제 관리국일군들의 가족이 더 모이면 굉장할거예요. 시작은 뗐으니만치 래일부터 낮에는 제각기 분공을 수행하구 저녁에는 모여앉아 북치는 련습부터 하겠어요.》

도순이가 비명을 질렀다.

《애개개 책임자,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냅다 밀판인가?》

《그래야 남정네들과 보조를 맞출게 아니나요. 오늘 가족지원대모임은 이만하겠어요.》

이렇게 되여 간석지마을에는 가족지원대가 생겨나게 되였다.

녀인들로 조직된 가내수산반에서는 여러가지 해산물들을 잡아들였고 도순이를 비롯한 후방조는 매일 고구마며 감자를 삶아가지고 3호개고로 나갔다.

저녁이면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순영의 지도밑에 북치는 련습을 하고 손풍금도 배웠으며 새 노래보급도 했다.

녀인들은 한주일에 한번씩 붉은 기발을 휘날리며 3호개고에 나가 자기들이 준비한 소박한 예술소품들을 전투원들에게 보여주었으며 그들의 일손을 도왔다.

관리국일군들의 안해들이 가족지원대를 뭇고 자기 활동을 시작하자 간석지녀인들에게 주는 충격은 실로 컸다.

관리국일군들의 다른 안해들도 저저마다 가족지원대에 입대시켜줄것을 청원하였다.

이렇게 되자 관리국산하 간석지건설사업소 종업원들의 안해들도 가족지원대를 뭇고 남편들을 도와나섰다. 어떤 녀인들은 자식들을 시부모들에게 맡기고 남편과 함께 돌격전에 뛰여들기도 했다. 그전 같으면 남편들이 일밖에 모르고 집살림을 돌보지 않는다고 투정질을 했을 녀인들이 전투장에서 건설자들과 함께 힘든 일에 어깨를 내댔다.

간석지마을의 로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들 역시 성의껏 마련한 지원물자를 가지고 건설장으로 달려와 전투원들을 고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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