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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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 진눈까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나운 겨울은 마지막기승을 부리고있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장군님의 사랑으로 몸이 달아오른 간석지사람들은 전투장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성욱은 한쪽으로 대형화물자동차들의 점검상태를 돌아보면서도 모자라는 부속품들을 마련해오느라고 애쓰고있었다.
저녁무렵이 되자 또다시 사나운 해풍이 들이닥쳤다. 격노한 파도가 해안방조제를 때릴 때마다 물기둥이 길길이 뛰여오르며 사방에 물보라를 일구었다.
진눈까비에 홈빡 젖었던 전투원들의 옷들은 소가죽처럼 꽛꽛하게 얼어버렸다.
제방뚝길은 진눈까비에 짓이겨지고 얼어버려 제대로 나다니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모진 자연의 횡포속에서도 전투원들은 일손을 늦추지 않고 자동부림배에 돌들을 싣고있었다.
성욱은 갑자기 온몸이 오슬오슬 춥고 눈앞이 흐려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기사장을 대신하여 전투장에 나온지도 벌써 1달이 가까왔다. 그러나 언제한번 허리를 펴볼새가 없이 채석장과 3호개고사이를 오가며 수송전투를 지휘해온 그였다. 풍채가 좋던 그의 체중은 훨씬 줄어들었다. 또한 눈에는 피발이 서고 입술은 조갈이 들다 못해 터갈라져 피가 흘렀다. 작업신마저 어느 한 장석공과 바꾸어신다보니 해여진 신발안에 비닐박막을 대고 다녔다. 이뿐이 아니였다.
기름기마저 다 빠진 손은 얻어맞고 창상까지 입어 붕대를 감고다니는 형편이였다. 이렇게 무리하게 뛰여다니던 그는 새 공법시험을 앞두고 3호개고전투장에서 졸도하고말았다.
그는 곧 집으로 후송되였다.
정신을 잃었던 성욱이 제일먼저 알아본것은 자기네 사업소 기사장이였다.
그는 소스라쳐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사람들에게 제지당하였다.
성욱은 갈리고 거친 목소리로 기사장을 무섭게 다불러댔다.
《여보 기사장동무, 3호개고는 어떻게 하구 여길 왔나?》
노기를 띤 성욱의 추궁에 기사장은 목이 메여 대꾸했다.
《지배인동지, 몸이 무쇠인들 견디겠습니까?》
《무슨 소릴 하나?》
《걱정마십시오. 파도가 멎으면 멎었지 우리 기계화차들이 멎어설것 같습니까?》
《정신나가지 않았나? 지금 전투장에선 부지깽이도 뛰는판인데 병문안을 하러 한가하게 몰려다녀. 당장 자기 위치로 가게!》
성욱이 불맞은 호랑이처럼 펄펄 뛰는 바람에 방안분위기는 썰렁해졌다.
한 운전사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아따 지배인동지두, 인젠 나이도 있는데 좀 쉬염쉬염 하십시오.》
《무슨 잔말이야, 어서 썩 가라구.》
기계화사람들은 하는수없이 성욱의 안해 도순에게 지배인을 부탁하고 돌아가버렸다.
집안으로 들어온 도순은 남편을 민망스럽게 바라보며 지청구를 했다.
《에구, 그래두 당신을 생각해서 병문안을 왔는데 그렇게 쫓는 법이 어디 있수?》
《이건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투야, 전투! 언제 가야 철이 들겠는지. 당신도 지각이 있으면 뭘 좀 준비해가지고 전투장에 나가오.》
그러자 도순은 약이 올라 남편에게 맞대꾸질을 했다.
《제발 저 혼자 우쭐하지 말라요. 방산상점을 찾아다닐 때 같아선 제 살점이라두 베여줄것 같더니… 우리 내인들은 뭐 맘이 편한줄 알아요?》
도순은 남편의 수모가 너무나도 기가 찼던지 앞치마로 눈굽을 찍으며 긴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바람에 당황해난 성욱은 제 손으로 점적을 달던 주사바늘을 뽑으며 《됐소, 됐소. 당신과 입씨름할새가 없소. 의사들이 오면 3호개고에 나갔다고 하오.》라고 하더니 자리를 털고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걸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남편의 잡도리가 당장 현장으로 나갈 태세라는것을 눈치챈 도순은 황급히 성욱이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여보, 이왕 들어오신건데 하루밤 쉬고 나가시구려. 군대나간 아들한테서두 편지가 왔는데 그것두 안 보시려우?》
《회답을 써보내오. 간석지의 아들답게 군사복무를 잘하라구.》
성욱은 벌써 신발을 찾아신고있었다.
《여보, 빈속으론 거기까지 못 가요.》
《왜 못 가? 가다 쓰러져두 가야 해.》
《그럼 잠간 계슈.》
도순은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가 가마에 넣었던 닭알을 꺼내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대접하려고 삶던 닭알이였다. 그는 그것을 남편의 호주머니에 밀어넣어주었다.
《가시면서 잡수시라요.》
《알겠소.》
부엌문턱을 나서던 성욱은 현기증이 오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한동안 자기를 다잡다가 《난 가겠소.》 하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도순은 남편을 따라나서며 《몸을 돌보면서 일하세요.》라고 걱정했다. 도순은 다리맥이 매시시하여 토방에 주저앉으며 푸념을 했다.
《에구, 무슨 성미가 저런지 원.》
성욱이 3호개고에 도착한것은 자정이 가까와올 무렵이였다.
그를 대신하여 전투장에 나와있던 기사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 현장지휘부로 들어서는 성욱을 놀랍게 쳐다보았다.
《아니, 치료는 어떻게 하시구 이렇게 나오십니까?》
《진눈까비를 맞고 독감에 들다니. 젠장, 나인 나이야.》
《여긴 제가 지킬테니 사업소로 들어가십시오.》
《철도짐함공법을 시험하는걸 보고 가겠소. 참, 그 공법시험은 어떻게 됐소?》
《물때를 맞추어 래일 아침에 한답니다.》
《됐구만. 난 좀 눈을 붙이겠소.》
《어서 그러십시오.》
성욱은 잠시 눈을 붙일 심산으로 목침을 가져다놓고 솜저고리를 벗었다.
이때 느닷없이 강만조가 지휘부안으로 들어섰다.
《동갑이가 있었구만. 현장에서 졸도했다더니 몸은 좀 어떤가?》
만조는 손에 들고왔던 물고기봉지를 한쪽구석에 놓으며 걱정스레 물었다. 간석지식환자면회방식이였다.
성욱은 공연히 얼굴까지 붉히며 게투덜거렸다.
《한겨울철에도 바다물에 뛰여들어 목욕을 하던 때가 어제같은데 진눈까비에 독감이 들었군. 원, 쯧쯧… 그런데 어떻게 시간을 냈나?》
성욱은 만조를 뜨끈한 구들목에 끌어다앉히고는 담배를 꺼내여 그에게 권했다.
《출항준비를 끝내고나니 자네 생각이 나더군.》
만조는 성욱이 주는 담배를 입에 물더니 가스라이타로 불을 달아 한모금 깊이 들이빨았다.
《여보게 성욱이, 자네두 우리 철수때문에 속깨나 태울테지?》
성욱은 말이 없이 한숨만 지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만조는 성욱의 손을 잡아쥐며 미안스레 덧붙였다.
《자네에게 정말 미안하네. 나한테 그런 시라소니같은 녀석이 태울줄이야 어찌 알았겠나?》
성욱은 낯을 찌프리며 그의 푸념을 묵묵히 듣고있었다.
일밖에 모르는 만조였고 한생 당과 조국앞에 부끄러운 일을 해본적이 없는 만조였다.
그러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후대들이 부모들과는 근본을 달리하는것 같아 안타까왔다.
성욱은 자기도 담배를 피워물며 속궁리를 내비치였다.
《그 애들이야 굶어도 보고 얼어도 본 우리들하구 처지가 다르지. 고난의 행군시기에 맞받아나가는 방법이 아니라 에도는 방법을 배웠거던. 철수를 보니 작태가 그 꼴이야. 수도건설장에서 새 굴착기를 탔다던데 그건 경마잡힌거나 같은 신선놀음이였을걸세. 그런 애가 자연의 광란과 싸움을 벌리는 여기 간석지건설전투장이 몸에 밸게 뭔가. 애초 자네가 그새 그 앨 붙잡고 간석지에 함께 있어야 하는걸 잘못했어.》
만조는 한숨을 지었다.
《청년조직의 추천을 받고 수도건설장으로 떠난다길래 그렇게 믿었댔지. 자, 이 편질 좀 보게. 그 앤 아주 버린 애야.》
성욱은 만조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 읽어내려갔다.
《아버지, 나는 더이상 비판만 받고 살수 없습니다. 아버진 늘 일터에 마음을 붙이고 살라고 하는데 내 일은 왜 그렇게 꼬이는지. 며칠간 여기를 뜨겠으니 찾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들 철수 씀》
쓰겁게 웃고난 성욱은 만조의 아들이라고 하여 그처럼 철수를 믿었던 자신이 어리석게만 생각되였다. 성욱은 만조에게 사태의 진상을 까밝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자네네 철수가 국장의 딸과 유별한 사이란걸 알고있나?》
《그 처녀가 국장의 딸이였단 말인가?》
《그 녀석이 건설장의 혁신자로 소문난 그 처녈 후려냈어. 그날 밤 랭각관을 얼군것두 그 처녀를 보러 갔다가 그렇게 됐대.》
《그게 사실인가?》
《처녀야 훌륭하지. 다만 짝이 기울어서 그러지.》
성욱의 이 말에 만조는 허둥거리는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 처년 제대군인, 당원에 남자들이 하는 착암과 발파기술까지 소유하고있다는데… 여보게, 국장이 알면 날 어떻게 생각할텐가. 왜 하필 그 녀석이 국장 딸과 그런단 말인가?》
성욱은 기가 막혀 가슴을 두드리는 만조의 잔등에 손을 얹었다.
《다 같은 비단섬출신들이니 허물은 없네만 아마 그 처녀도 철수에게 침을 뱉었을거네. 그래 어디로 갔는지 짐작되는게 없나?》
만조는 도리머리를 하며 한숨만 지었다.
성욱은 허리탈이 심한 만조의 건강이 마음에 걸렸다.
《자네 허리탈은 어떻게 하고 아직까지 배를 타나?》
《허리가 대순가? 온 다사땅이 법석 끓는판에 우리 철수가 진 죄를 씻기 위해서두 이 애비가 뛰여야 할게 아닌가? 난 가겠네. 몸조리를 잘하라구.》
아들에 대한 경멸의 아픈 상처를 안고 모대기는 만조를 바라보던 성욱이가 그에게 권했다.
《여보게, 여기서 함께 쉬자구.》
《아니, 난 조타실에 누워야 잠이 잘 와.》
격심한 고통을 안은 만조는 무거운 걸음으로 그곳을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