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2 장

7

 

철수는 굴착기의 밑에 들어가 망치질을 하고있었다. 낡은 굴착기이다보니 이래저래 손질이 많이 갔다. 그러나 자진하여 맡은만큼 부속품도 교체할것은 해서 제구실을 하도록 해야 했다. 이런 측면에서 놓고보면 사실 철수는 낡은 굴착기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은별이를 보아서라도 해내야 했다.

《뭘하고있나?》

성욱이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철수가 후닥닥 밖으로 빠져나왔다.

《볼트가 잘 풀리지 않길래…》

성욱은 새 변들과 고압호스들을 그앞에 내밀었다.

《이걸 국장동지에게 부탁했댔나?》

그것은 사고심의회의가 끝난 후 국장에게서 넘겨받은 부속품들이였다.

철수는 얼굴부터 붉히며 변명을 했다.

《제가 그럴게 뭡니까? 그건…》

《이러나저러나 같지. 앞으론 그런 수직운동은 금하라구.》

《…》

《자, 이제부터 조립하세.》

성욱은 굴착기의 배밑에 들어가려고 서둘렀다.

《지배인동지, 제가 하겠습니다.》

고집을 부리는 철수를 바라보던 성욱이 핀잔을 했다.

《무슨 고집인가? 보긴 이래두 난 비단섬건설때부터 소문난 운전사야.》

《?!…》

성욱은 종시 굴착기배밑에 들어가더니 한손을 내밀었다.

《27나사틀개부터 좀 주게.》

철수는 하는수없이 성욱이가 요구하는 공구들을 섬겨주기 시작했다.

은별이의 요구대로 낡은 굴착기에 옮겨앉은 뒤 철수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었다.

버럭밭이 마련된것만큼 건설장의 운명은 채석장에 지워졌다. 그러나 새로 받은 차들을 제외하면 종전에 있던 륜전기재들은 모두 페기직전이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말썽을 부리는것이 철수가 맡아나선 유압식굴착기였다. 굴착기는 움직이는 때보다 멎어있는 날이 더 많았다. 성욱은 타산도 없이 만조만 믿고 철수에게 그 굴착기를 맡긴것을 후회했다.

이날 성욱은 철수와 함께 종일 고압변들과 고압호스들을 교체했다.

그리고는 날이 저물도록 기관수리까지 말끔히 끝냈다.

《자, 인젠 발동을 걸게.》

지배인곁에서 손발을 꽁꽁 얼구며 굴착기를 수리하고난 철수는 운전칸에 뛰여올라 발동을 걸었다. 단번에 발동이 걸렸다.

성욱은 손짓을 하며 철수의 굴착기를 채석장 한가운데 내다세운 다음 화물자동차들에 막돌을 싣게 해보았다.

《자, 인젠 만가동해야 돼.》

《걱정마십시오.》

《철수, 우린 조국땅의 한 기슭을 개척하고있어!…》

《예.》

철수는 말뜻을 깊이 새길새도 없이 선선히 대답했다.

철수의 이 대답을 듣고난 성욱은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자리를 떴다.

그는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한채 화물자동차들을 타고 다니면서 막돌운반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사실 막돌이 생각처럼 쉽게 운반되는것은 아니였다. 철수의 유압식굴착기가 제일 사달이였다. 그래서 오늘도 철수를 도와 고압변과 고압호스들을 교체하고 굴착기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였던것이다.

 

굴착기가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을 때 철수는 은별이를 만나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한것은 20만산대발파를 보장하기 위해 육탄이 되여 희생적으로 갱에 뛰여든 그에게 처벌이 가해진것이였다. 그 처벌을 아버지인 국장이 주었다는것이 자못 놀라왔다.

(그러니 은별동무는 국장동지의 딸이였구나. 어쩐지 자꾸만 숨긴다고 했지. 그가 얼마나 괴로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슴을 태우던 철수는 마침 관리국에 들어가는 화물자동차가 생기자 무작정 은별이를 만나볼 생각을 하였다.

관리국목장은 다사협동농장근방에 있었다.

철수는 대략 2시간이면 그를 만나고 작업장에 올수 있으리라고 타산했다. 그리하여 철수는 관리국으로 들어가는 화물자동차운전사와 비밀리에 약속까지 하였다.

그날은 해풍이 초속 13메터로 강하게 부는 추운 날씨였다. 화물자동차는 약속한 시간에 채석장에 나타났다. 철수는 작업중에 있는 다른 굴착기운전공에게 량해를 구하고나서 화물자동차에 올랐다.

화물자동차로 다사마을까지 가는데는 20분남짓이 걸린다. 자기가 은별이를 만나는새에 화물자동차는 관리국창고에서 건설장에 필요한 자재들을 실을것이다. 그것이 대략 1시간정도 걸리는것으로 보아도 그 시간이면 은별이와 그간의 회포를 충분히 나눌수 있을것 같았다.

철수는 가차도를 떠난지 꼭 23분만에 다사마을에 들어섰다. 철수는 은별이가 있는 관리국목장으로 줄달음을 쳤다. 그는 잠시후에 목장에 다달았다. 목장입구에 들어서보니 량쪽으로 전개된 돼지우리들에서 돼지들이 김이 뽀얗게 서리는 뜨물을 먹고있었다. 목장특유의 냄새가 풍기고 방금 쳐낸듯 한 산더미같은 진거름에서는 김이 문문 오르고있었다.

(은별동무가 어디 있을가?)

관리공들이 거처하고있는 방쪽에서 손풍금소리가 들려왔다.

그리로 다가간 철수가 창유리에 눈길을 주었으나 성에가 하얗게 올라 도무지 안을 들여다볼수가 없었다. 아마 오락회를 하는 모양인지 박수갈채가 터져오르고 뒤미처 은별이의 맑고도 챙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잘 부를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 간석지건설자들의 마음을 담아 한곡 부르겠습니다.》

아마 손풍금반주도 은별이가 하는 모양이였다.

 

달빛도 밝은 간석지 이밤

백리제방 바라보니

구슬땀 흘린 청춘의 보람

가슴에 넘쳐나네

말하라 심장아 청춘의 심장아

그 어떤 영예를 아니면 명예를

바라서 예왔더냐

 

은별이의 맑고 챙챙한 노래소리는 계속되였다.

 

화려한 길도 정다운 집도

뒤에 두고 우리 왔네

비바람 헤치며 수령님 오신

그 자욱 생각했네

불타라 심장아 청춘의 심장아

그 자욱 따라서 우리는 왔다네

청춘의 꿈을 안고

 

노래는 합창으로 번져졌다.

 

래일엔 여기 청춘의 제방

아득히 뻗어가리

금물결 일고 새 거리 솟아

웃음꽃 넘치리라

동무여 그날에 그 무엇 바라랴

수령님구상을 우리 당 높은 뜻

청년들 꽃폈거늘

그 무엇 바라랴 이보다 큰 행복

우리는 모른다네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그러나 열정에 넘친 그들의 노래소리는 철수의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했다. 전투장을 리탈하여 몰래 은별을 만나러 온 그에게 있어서 지금의 한초한초는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그대로였다.

(제길, 돼지들이나 기르면서 간석지건설자들이라구…)

철수는 이렇게 생각하며 얼어오는 발을 연신 굴렀다.

이윽하여 다른 처녀관리공에게 노래가 넘어간 모양이였다. 그런데 손풍금반주를 은별이가 하는것이 문제였다.

(젠장, 손풍금반주까지 할건 또 뭐야.)

철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는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감을 늦추지 못하다가 손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찾는 소리가 약한지 안에서는 웃음소리, 노래소리만 들릴뿐 반응이 없었다. 철수는 좀더 세게 창문을 두드렸다.

노래소리,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얘, 밖에 누가 온것 같애.》

《나가봐.》

이 소리에 철수는 겁에 질린듯 불빛밖으로 물러섰다.

웬 처녀가 밖으로 달려나왔다.

《누구예요?》

《채석장에서 온 굴착기운전공입니다. 은별동무를 좀 만날가 해서…》

《들어가시자요.》

처녀는 의미있게 웃으며 살뜰하게 권고했다.

《아니, 그럴새가 없습니다.》

《예?!》

처녀가 들어간 뒤 철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은별이를 기다렸다. 잠시후 솜옷차림의 은별이가 철수앞에 나타났다. 오래간만에 철수를 만난 은별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시간을 내였어요?》

《동무가 처벌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왔소. 은별이, 괴롭더라도 참자구.》

은별은 소리를 내여 웃음을 터뜨리더니 대수롭지 않게 되뇌이였다.

《괴롭긴요, 1선에서 물러난게 분해서 그러지. 철수동무, 부속품들은 받았어요?》

《받았소.》

《그럼 됐군요.》

《은별동무, 이건 내가 주는거요. 혼자 있을 때 풀어보오.》

철수는 보자기에 싸가지고온것을 은별에게 주고는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고나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보자기에는 철수가 은별이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눈처럼 하얀 털목도리가 있었다.

그러나 은별이를 만나고 돌아온 철수는 실망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가 자리를 뜬 사이에 랭각관이 얼어터진것이다. 철수는 눈앞이 아찔하여 굴착기에 머리를 박고 몸부림을 쳤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무슨 일을…)

성욱이가 채석장에 나타난것은 그로부터 1시간후였다. 그는 눈앞이 캄캄한듯 한동안 숨을 죽이고 서있는 굴착기를 바라보다가 모닥불을 피우고있는 철수에게로 다가왔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철수는 머리를 수그린채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한참 굴착기를 운전하댔는데 글쎄…》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지 한동안 철수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성욱은 이렇게 따지고들었다.

《그럼 가동중에 동파를?》

《예.》

어딘가 모르게 철수의 대답은 자신이 없었다.

성욱은 전지불로 굴착기를 꼼꼼히 살피더니 《동파먹은 랭각관이 어느건가?》 하고 물었다.

철수가 그 랭각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겁니다.》

한동안 착잡한 생각에 잠겼던 성욱은 그것을 해체하라고 지시했다.

현장에 나와있던 수리공들까지 달라붙어 랭각관을 해체하기 시작하여 밤이 이슥해서야 작업을 끝냈다.

성욱은 《갱생》에 해체한 랭각관을 싣고 사업소로 들어갔다. 지배인에게 거짓말을 한 철수는 불안한 마음으로 모닥불가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혹시 지배인동지가 눈치챈게 아닐가?)

그러나 자기가 채석장을 리탈하여 자리를 뜬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상 별다른 일은 없을것 같았다.

원상복구한 랭각관을 싣고 성욱이가 채석장에 도착한것은 새벽 5시경이였다. 그러니 그는 밤샘을 하며 전투를 벌려 종시 랭각관을 살려낸것이다.

현장휴계실에 들어와 말뚝잠을 자던 철수와 수리공들이 랭각관조립에 달라붙었다.

유압식굴착기가 다시 작업에 들어간것은 새벽 6시 30분경이였다.

온밤 굴착기때문에 씨름을 한 성욱이의 두눈에는 피발이 져있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기승을 부리던 바람도 자고 바다는 한결 얌전해졌다.

성욱은 그때까지 굴착기를 떠나지 못하고있는 철수에게 교대운전공을 보내주었다.

현장휴계실로 돌아온 철수는 세면장으로 갔다.

이곳 사람들은 세면할 물이 떨어지면 바다물에 치약을 타서 얼굴을 씻는다.

철수가 따끈한 바다물을 세면기에 담아 치약을 풀고있는데 나이든 굴착기운전공이 세면장에 들어섰다. 방금 채석장에서 오는 길인것 같았다. 그는 세면을 하고있는 철수를 한동안 바라보다 말고 이렇게 물었다.

《임자 굴착기가 동파를 먹었다면서…》

《…》

《어제 밤 10시경엔 어디 갔댔나?》

속이 뜨끔해진 철수는 거짓말을 했다.

《가긴 어딜 가요?》

《내가 모를줄 아나? 처녀를 만나러 갔댔지?》

《야, 처녀는 무슨 처녑니까? 그런 생소리는 마십시오.》

《에끼 이녀석, 죽을 죄를 졌어도 사람은 솔직해야지.》

《?…》

《밤 10시경에 17나사틀개를 쓸일이 있어 임자에게 갔더니 굴착기가 비여있더구만. 그런데도 지배인동지한테 가동중에 동파를 먹었다고 거짓말을 해?》

철수는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못했다.

그 운전공은 솔직치 못한 철수의 태도가 괘씸했던지 계속 퉁을 놓았다.

《그게 어떻게 살린 굴착기인가? 아버지를 봐서두 그럼 못써.》

세면을 하고난 그 운전공이 허리를 펴자 철수는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바이, 그 일은 제가 잘못했는데 제발 지배인동지에게만은…》

운전공은 철수를 어이없이 바라보더니 이렇게 타일렀다.

《짠물, 쓴물 다 겪어본 지배인동지가 그것도 모를것 같나? 그러지 말고 이제라도 찾아가 말하게.》

철수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성욱에게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용서를 빌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니 지배인은 볼일이 있어 관리국에 올라가고 없었다.

철수는 일이 맹랑하게 번져진다고 생각하며 쓴입만 다셨다.

 

×

 

관리국에 들려 자동차수리에 쓸 부속들을 타다가 사업소에 부리고난 성욱은 그길로 차를 돌려 현장으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기를 속인 철수의 일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만조를 믿고 철수에게 굴착기를 맡긴것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흥, 믿는 나무 꺼꾸러진다고 그 녀석이 그런 시라소니일줄이야 알았나?)

그의 눈앞에는 새 굴착기를 남에게 양보하던 철수의 일이 떠올랐다.

만조선장에게서 철수가 새 굴착기를 내놓으려 한다는 말을 들은 성욱은 기특한 마음을 안고 채석장에 갔었다.

철수는 가차도채석장에 전개된 새 굴착기에서 작업하고있었다.

《철수, 내려오게.》

굴착기를 보조운전공에게 맡기고난 철수는 굴착기에서 내려 성욱에게로 다가왔다.

《자네 새 굴착기를 내놓겠다는게 사실인가?》

《전 수도건설장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명색도 없이 새 굴착기를 타자니 어쩐지…》

성욱은 그때 만족한 웃음을 짓고 철수의 어깨까지 두드려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기능공들도 쩔쩔매는 낡은 굴착기를 꽤 다루어내겠나?》

《해보겠습니다.》

그 말에 성욱은 비단섬건설장에서 첫걸음을 뗀 건설자들의 자세가 후대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있다고 얼마나 흠썩해했던가.

그런데 그것은 한갖 철수가 공명심에 들떠서 한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것이다.

성욱은 철수를 단단히 다루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풀어놓은 송아지같이 놓아두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기때문이였다.

그날 오후 첫시간에 현장휴계실에서는 철수의 자유주의적행동을 비판하는 종업원회의가 열렸다. 거기에는 성욱이와 기계화사업소의 당세포비서, 작업반장들, 철수와 몇몇 운전공들도 참가했다.

성욱은 철수를 불러일으켜 처음부터 과격한 목소리로 다불러댔다.

《철수동무, 다시 묻겠소. 어제 저녁 랭각관이 얼어터진게 굴착기 운전중이였나?》

철수는 지배인이 이미 낌새를 채고 초급일군들과 자기를 불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가 머리를 수그린채 진땀만 빼자 성욱은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운전중에 랭각관이 터졌다고 거짓말을 할 땐 언제구 왜 꿀먹은 벙어리가 됐나?》

철수는 얼굴이 수수떡이 되여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성욱의 분격은 점점 도를 넘었다.

《우린 동무의 참회나 듣자구 여기 모인게 아니야. 동무가 다른데서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지만 제일 너절한건 조직과 집단을 속이고 우롱하는거야. 왜 솔직치 못한가? 자, 동무들도 말을 좀 하오. 이 동무의 잘못이 무엇인가?》

나이지숙한 철수네 작업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동무가 여기 간석지건설장을 자원한것이나 낡은 유압식굴착기를 맡은것은 순수 공명심때문입니다. 그러니 일에 뼈심을 들일게 뭡니까?

이 병집을 고치지 않는다면 저 동무는 언제가도 그 본성을 고칠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한 운전공이 일어나 비판을 했다.

《철수동무의 자유주의적인 행동은 이 동무의 사상적병집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에 지나지 않습니다. 철수동무가 저지른 행동은 그사이 축적되였던 병집이 곪아서 터진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만치 저 동무를 굴착기에서 내리워야 합니다.》

비판하는 사람들마다 철수가 안착되지 않은것은 물론이고 굴착기를 되는대로 혹사시키고있다고 비판했다.

성욱은 이렇게 모임을 결속했다.

《오늘부터 철수동문 굴착기를 내놓소. 당분간 채석장 신호수노릇이나 하오.》

넋의 마비라도 온듯 철수는 수치와 모멸감으로 하여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이제 은별이가 자기를 뭐라고 하겠는가. 다시는 영영 상대하지 말자고 할수도 있다.

그날밤 철수는 잠자리에 들었으나 칼끝같은 생각으로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마모되고 어지러워진 넋은 동요와 주저의 한계점에서 그를 왕청같은 길로 사촉하고있었다.

(그럴것 없이 굴착기를 내 손으로 번듯하게 살려놓자. 당분간은 여기를 떠서 굴착기 살릴 방도를 찾자!)

철수는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쓰거운 고배를 거듭 삼키며 주변의 동정을 살폈다.

밤낮없이 전투를 벌리고있던 운전공들은 업어가도 모르게 곤히 자고있었다.

철수는 조심조심 은별이가 준 솜옷을 입고나서 자기의 소지품들을 배낭에 쓸어넣었다.

옆에서 자던 사람이 끙하고 돌아누우며 한발을 모포밖으로 내놓았다. 겁기에 질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던 철수는 살금살금 배낭을 지고 숙소를 벗어났다.

바깥날씨는 살을 에이듯이 추웠다. 그는 곧장 다사마을을 향해 반달음을 놓았다. 흥, 될대로 되라지. 그는 은별이를 만나고 떠날가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이악쟁이가 놓아줄리 만무했던것이다. 그는 집에 들려 부모님들이나 만나뵙고는 곧장 신의주로 들어갈 생각이였다.

신의주에는 도인민위원회 국장으로 일하는 삼촌도 있었고 또 무역기관에서 일하는 사촌형도 있었다. 거기 가서 머리쉼이나 하면서 기계부속 같은걸 장만해가지고 오자.

철수는 뒤일은 생각하지도 않고 어둠속길을 바삐 걸었다.

그가 집에 도착한것은 밤이 이슥해서였다.

그는 아버지가 무서워 조심히 부엌문을 두드렸다. 한참만에 불이 켜지더니 잠내가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누구요?》

《어머니, 저예요.》

《아니 원, 이 밤중에…》

어머니는 속옷바람에 눈을 비비며 나와 부엌문을 열어주었다.

《어떻게 왔니?》

《쉬! 아버진 계세요?》

《허리증이 도져서 밤마다 신고를 한단다. 그런데 어제부텀 무슨 공법을 도입한다면서 못 들어오시는구나.》

철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는것이 마음에 편했던것이다. 아들의 수상한 거동을 눈치채면 가만있을리 만무한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철수가 집에 온것이 반갑기만 한 모양이였다.

《너 저녁은 먹었니?》

《먹긴 했는데… 뭘 좀 없어요?》

《얼른 밥을 짓자꾸나.》

어머니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웃방으로 올라가 쌀을 내다 일어 얼른 가마에 안쳤다.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떠났니?》

《그건 차차 말하겠어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놓고 갈테니 후에 보세요.》

밥상을 펴놓은 철수는 종이에다 무슨 글인가를 뻑뻑 쓰기 시작했다.

아들에게서 별다른 눈치를 채지 못한 어머니는 오지단지에서 젓갈을 퍼냈다. 반찬이래야 김치와 젓갈 그리고 늦봄철에 뜯어 절군 남새볶음밖에 없었다.

잠시후 어머니가 차려주는 더운밥을 마주한 철수는 그것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모르게 훌훌 불며 게걸스럽게 먹었다.

측은한 눈매로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래 일은 재미있냐?》

《재미래야 그렇지요 뭐. 눈만 짜개지면 파도, 감탕내, 추위, 버럭과 막돌, 이런것밖에 더 있어요?》

《그래두 네 아버지랑 간석지사람들은 한뉘 거기에 마음을 붙이고 살지 않니?》

《그래서 남은게 뭐예요? 아무것도 없지 않아요.》

퉁명스럽게 내뱉는 철수의 이 말은 어머니를 실망케 했다. 어머니는 혀를 차며 아들을 나무람했다.

《그래선 못쓴다. 사람이 근본을 버리면 아주 못쓰게 되는 법이다.》

《됐어요. 그런 말 그만하자요.》

식사를 하고난 철수는 식곤증이 몰려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온 집인데 한잠 푹 자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날이 새기 전에 다사땅을 벗어나야 했다. 만일 자기가 없어진 사실이 알려지는 날에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철수는 불이 나게 외출복이며 외투를 찾아입었다. 그리고 사품들을 넣은 배낭까지 손에 들었다. 한숨이 다 나갔다.

전에없이 부산을 피우는 아들의 이 거동은 어머니를 불안케 했다.

《아니, 너 이 밤중에 어디로 가련?》

《그건 후에 알게 돼요. 아버지에게 편지나 보이세요.》

철수는 이런 말을 남기고 배낭을 어깨에 메고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되돌이

Twitter로 보내기 Facebook으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네이버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