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8 회)
28. 흥 정 사나이들은 대체로 싸운 끝에 친해진다. 가시내들은 저희들하고 다른 이런 사내들을 보고 사람이 독하게 맺힌데 없이 헤실헤실하다고 비웃지만 사나이들은 대범하다고 한다. 궁예, 원회, 신훤은 만나서 싸우고 대뜸 친해졌다. 한건 궁예의 뛰여난 검술도 있었겠지만 무엇인가 안다고 하는 비슷한 생각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사람은 무엇인가 자꾸 알고싶어한다. 아마 사람이라는 그 존재의 속성일것이다. 알며는 움직인다. 반드시 그렇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하다못해 입이라도 놀린다. 밥이 들어가야 할 입으로 소리가 나온다. 그래서 나온 소리는 복도 되지만 때로는 화도 된다. 많은 경우 복이 된다. 많이많이 다 알고 나오는 소리가 부처님말이요, 누구누구 성인의 말이요, 똑똑하다는 사람의 말이다. 잘못을 깨우치고 옳음을 이룩하라고 한다. 화도 된다. 조금 알고나니 이건 뭐야 하고 움직인게 입이요, 그 입에서 나온 소리가 때로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나아가서는 제몸까지 망친다. 그러고보면 조금 안다고 함부로 밥들어가야 할 입을 놀릴게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입을 놀리지 않고는 살수 없다. 외눈깔땡중과 두 도적이 서로 친해진것도 사실 이 입을 놀린 덕분이였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걸어온 길이 어쩌고, 이 세상이라는게 저쩌고 하는 소리를 했다. 대개 투덜거리는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먹고 입고 쓰는데서 오는 본능적요구의 불만에서 오는 투덜거림이 아니였다. 세상이라는것을 제법 리치를 가지고 꿰뚫어보는 수작이였다. 이를테면 불공평이라든가 불합리같은것이였다. 《자고로 불공평이라는건 어느때나 있는것이지만 그것이 이제는 죄를 범하기에 이르도록 심해졌다는걸세. 사람이라는건 제 능력껏 일하고 일한데
맞게 마땅히 대우를 받아야겠는데 이놈의 세상은 그렇지 못하단 말이야.》 《옳네. 대체 이 나라는 기준자체가 틀려먹었소. 예로부터 성인들은 먹고사는걸 기준으로 했는데 이놈의 나라는 그저 제 비위에 맞추는걸 기준으로 한단 말이야. 무슨 뼈다귀니, 무슨 피니, 무슨 나리니… 그따위 잡스런걸 기준으로 하니 구데기 성한 똥통처럼 되는게지 뭔가.》 《이런 나라는 없애버려야 해. 지금 나라가 이 모양이 된건 망하게 하려는 부처님의 계시일수 있어.》 틀리는지 맞는지 대개 이러루한 소리들이였다. 이제 당장 살아갈 걱정이나 대책이 아니라서 공허한감도 들지만 사실은 그게 그건셈이다. 이들의 소리에서 차이가 있다면 원회, 신훤은 어딘가 막연한 투덜거림이지만 궁예는 구체적인것 즉 나라를 없애버리려 한다는데 있었다. 뚜렷한 목표가 있다 할가. 당장 먹을것을 마련하기 위해 토끼눈처럼 빨갛게 되여 바쁜 기훤《장군》과는 사뭇 다른것이다. (이 사람은 기훤보다 크다. 배짱도 있고 용기도 있다. 도적이면 큰 도적이요, 사람이면 큰사람이다. 그 중간은 아니다.) 원회와 신훤은 이렇게 생각했다. 바로 그것으로 해서 자기들이 궁예와 통한다고 여겼고 그래서 기분들이 좋은것이다. 사흘째 되는 날 기훤에게서 사람이 왔다. 앞서 원회와 신훤은 기훤에게 말하기를 궁예라는 땡중이 많은 보물을 가지고있는것은 사실인데 그가
워낙 검술이 뛰여나고 사나워서 힘으로 빼앗을수는 없다, 그러니 며칠 잘 그슬리면 그 보물이 고스란히 《장군》의 손에 굴러들게 하겠다고 하였었다. 그런데 사흘이 되였으니 기훤이 어찌됐나 궁금해서 재촉하는 모양이였다. 《제기랄, 주막집할미인가?》 원회와 신훤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억지감이 아니다. 궁예는 그렇게 두사람을 보았다. 내가 좋은 모양이다 하고 궁예는 모르는체 했다. 《장군이 부르면 가야지.》 하고 궁예가 술바라를 잡으며 말했다. 원회와 신훤은 서로 마주보았다. 《시끄럽구만.》 원회가 가지빛나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투덜댔다. 《며칠 더 기다리라고 하지.》 하고 신훤이 말했다. 《보물을 뺏는게 그렇게 쉬운가. 더구나 입술에 침 안 묻히고 혀 하나로…》 세사람은 껄껄 웃었다. 심부름온 졸개에게 그렇게 이르도록 하였다. 며칠이 지나 또 독촉이 왔다. 이번엔 좀 색다른것이였다. 《부두령들께서 빨리 산채로 돌아와 인질로 잡힌 고마를 처형하는데 참가하라고 하오이다.》 두사람의 낯빛이 변했다. 고마를 처형한다?! 《장군께서 꾀를 쓰시는군. 우릴 위협하는걸세.》 《설마…》 《하여튼 가보아야겠는걸.》 원회와 신훤은 저희들끼리 말했다. 《무슨 일이 있소?》 하고 궁예가 물었다. 《장군께서 성화부리오이다.》 《인질소리는 또 뭐요?》 《그런 사람이 있소이다. 한 달포전에…》 원회는 고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산삼을 빼앗고 인질로 잡아두던 소리를 하면서 고마라고 하는 그 친구가 아주 인상적이였다고 덧붙였다. 물건을 빼앗기고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는건 그런대로 제 물건이 아니래서 그렇다치고 대체로 도적만난 사람들이 겁에 질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는 당황감이 없다는것이 무언가 다르더라, 게다가 《장군》을 대하는 그 태도가 아주 빳빳한게 눈에 들더라며 그때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당신이 소문난 기훤장군이시오?》 하고 고마라는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 하니 고마는 대뜸 《장군, 나는 당신을 위해서 큰일 해줄수 있소.》 하고 말했다. 《알고있다.》 기훤이 히죽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고마라는 그도 어지간히 놀랐다. 《어떻게 아시오?》 《그야 단순하지. 넌 왕륭의 사람이라니 널 잡아두면 왕륭이 가만있겠나, 한다하는 한주의 부호가 말이야. 아마 너를 살리기 위해 재물을 아끼지 않을거야. 나라고 해도 수닭보다는 알낳는 닭이 더 귀하니까. 그게 좀 큰일인가.》 기훤《장군》의 의기양양한 소리에 고마는 쓰겁게 웃는다. 《아니, 그런게 아니요. 나는 당신이 뒤날에 떳떳이 이름을 날릴수 있게 큰일할 방도를 가르쳐줄수 있소. 그까짓 재물 몇바리에 대겠소?》 《그게 무슨 수작이냐? 하하, 그따위것은 알고싶지도 않아. 난 그저 재물만 있으면 돼.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소박한 사람이란 말이야.》 《장군》은 너털웃음지었다. 멋모르는 그의 졸개들도 그저 따라서 좋아라고 웃어댔다. 그러나 원회와 신훤은 그때 고마를 딴 사람으로 보았다. 그래 웃을수 없었다. 잡새들이 떠들어대는듯 한 웃음속에 외로운 사내는 중얼거렸다. 《역시 쓰레기는 쓰레기로구나.》 두목이 웃으니 또 따라웃는 무리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몰랐다. 원회와 신훤은 놀랐다. 장군의 이름에서 《기》라고 하는 자에는 바로 쓰레기라는 뜻이 있었다. 뒤글자인 《훤》과는 어울리지 않는 뜻이다. 뭘
좀 안다는 부두령들도 이상하다 하고 기웃거렸을뿐인데 이 젊은이가 바로 그걸 꼬집은것이였다. 이야기를 들은 궁예는 호기심이 부쩍 났다. 고마라는 녀석은 어떤 놈일가? 허풍쟁인가, 아니면 진짜 호걸인가? 궁예는 얼핏 도선스님의 말을 생각했다. 《혹시 좋은 사람을 만날수 있다.》 (정말로 그 좋은 사람?!) 기훤이란 사람은 그렇다치고 고마라는 사람을 한번 보고싶었다. 《궁예형은 어찌려우?》 벌써 형이라 부르며 원회가 물어 궁예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글쎄, 어쩔가? 한번 산채를 보고싶기도 한데…》 《아니, 언제는 도적굴이라더니…》 《그건 맞아. 원회, 신훤 같은 까마귀들이 있는 곳이니 하는 소리지…》 《잘은 이랬다저랬다하우. 하여튼 좋소. 그럼 형이 우리와 함께 가주시오.》 하며 원회는 눈길을 내리깐다. 《장군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훤이 중얼거렸다. 《여차하면 이 중태를 옛다 받아라 던져주고말지 뭐.》 하고 궁예는 씩 웃었다. 《그럼 함께 가봅시다.》 기훤《장군》은 눈치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빨랐다. 그는 궁예를 무리에 받아들여 검술을 가르치게 하자는 원회와 신훤의 말을 들으며 벌써 그들이 궁예와 한패가 된것을 냄새맡았다. 《장군》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몹시 좋지 않았다. 그가 더욱 좋지 않게 여기는것은 궁예가 가지고있는 보물을 선뜻 내놓지 않는것이였다. 《검술을 가르친다? 거 좋지. 장군휘하의 사람들이 검술을 몰라서야 쓰나…》 하며 기훤은 묵은 이끔을 쑤셨다. 궁예는 첫눈에 기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뿌루퉁한 그 태도가 못마땅하였다. 하지만 첫낯이여서 참았다. 기훤은 딴소리를 하였다. 《왕륭에게서는 아직 소식이 없느냐?》 하고 그는 뻔히 알면서도 졸개에게 물었다. 《없소이다.》 《그럼 좋다! 나도 기다리는데는 한도가 있는 사람이야. 아량이 지나치면 속물로 비치니까. 왕륭이 제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모르쇠하면
내가 그녀석의 낯짝에 분칠을 좀 할테다. 래일 당장 고마를 죽여버려라!》 《장군! 고마는 이달 마지막까지 기다리기로 하지 않았소이까!》 하고 원회가 말했다. 《뻔한걸 가지고 뭘. 왕륭이란 놈 망둥이 제 새끼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좀 듣게 하자는거야.》 원회는 기훤이 궁예에 대하여 언짢게 볼뿐아니라 너희들도 같구같다 하는 소리를 못해서 고마를 서둘러 죽이려 한다고 직감했다. 시어미역정에 개배때기 차는 격이다. 궁예는 입안에 웃음을 물고있었다. (장군이랍시는 이 사람, 꽤 우스운데가 있다.) 하고 생각하며 줄곧 어찌는가 지켜보기만 하였다. 미리 짜놓았는지 기훤의 심복졸개들이 무슨 잔치전에 돼지잡듯 으쓱거리며 마당에다 처형할 형틀을 마련하였다. 형틀이라야 어느 농가에서 흔히
쓰는 작두날이였다. 짝지발통나무에 큰 작두날이 걸렸는데 그걸 갖다놓은 졸개는 날을 벗겨 숫돌에 썩썩 갈았다. 투박하게 벼려낸 작두날에 녹이
쓸어있었던것이 차츰 얼음장처럼 시퍼렇게 날이 섰다. 기훤《장군》은 그 작두날을 바라보며 이따금 원회와 신훤, 궁예를 훔쳐보았다. 그도 고마를 이렇게 서둘러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가 제일 미워하는것이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인데 그런쪽으로 보면 고마라는건 주는것도 먹는둥마는둥하여 꽤 사랑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처삼촌묘 벌초 미루듯 며칠며칠 하면서 부두령들이 궁예와 배꼽을 맞추는걸 보자
밸이 살았다. 부두령들에게는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은근히 침놓기 위해서 또 새로 나타난 궁예라는 이 외눈깔땡중놈에게는 중태기를 순순히 내놓게 하기 위해 고마를 죽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뛰는 놈우에 나는 놈이라고 부두령들이나 궁예가 《장군》의 속을 뻔히 들여다보고있다는것만은 조금도 몰랐다. 《고마를 끌어오라!》 기훤이 소리쳤다. 끌려온 고마는 전혀 영문을 몰라했다. 새로 나타난 궁예를 얼핏 보았을뿐 다른건 별치않아하였다. 작두날을 다 간 졸개는 거기에 손목만큼 두꺼운 나무를 들이밀고 절컥 날을 내리쳤다. 작두날에 나무가 썩둑 토막났다. 그러자 그는 누런 이발을 내놓고 히죽이 웃더니 기훤에게 다가가 뭐라고 수군거렸다.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졸개들이 범가죽을 씌운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앞에 작두를 끌어다 놓았다. 졸개 둘이 고마의 등뒤로 가서 팔을 끼고 지켜섰다. 기훤이 의자에 가앉았다. 산채의 도적들이 우르르 쓸어나와 마당을 에워쌌다. 사람죽이는 구경을 하려는것이다. 그제야 고마는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장군, 무슨 일이요?!》 하고 고마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물었다. 기훤은 한쪽뺨을 푸들거리며 웃었다. 《핫하, 고마, 오늘은 그대의 머리를 베는 날이요.》 《롱담이 지나치시군요, 장군.》 《난 롱담을 모르는 사람이야.》 기훤은 고마로부터 원회, 신훤, 궁예쪽으로 눈길을 한번 쑥 훑었다. 《정말 나를 죽일셈이요?》 고마가 자기 팔을 붙잡은 졸개들을 보며 물었다. 《그렇다.》 《약속이 다르지 않소?》 《약속은 무슨 말라빠진 약속이냐. 나는 너와 약속한 일이 없다. 여기선 오직 나, 이 기훤장군만이 모든걸 결정한다. 왕륭이 너를 모르는체 하는데 내가 너를 죽인다고 무슨 큰일이냐?》 《기훤, 이건 너무하오.》 《너무할건 없다.》 《이 쓰레기야!》 기훤《장군》은 히물히물 웃었다. 그가 눈짓하자 졸개들이 고마에게 억지로 술 한사발 먹였다. 그리고는 고마를 끌어다가 작두날아래 눕혔다. 작두날밑에 목을 눌린 고마는 몸부림쳤으나 기훤의 졸개 넷이 그의 몸을 누르고있었다. 마당에는 서리발이 돋쳤다. 원회와 신훤은 손을 허리에 찬 칼에 가져갔으나 차마 손을 쓰지 못했다. 마당에 빙 둘러선 졸개들은 퀭해진 눈을 끔벅거리고있었다. 어떤 자는 너무 긴장해서 입술을 감빨며 몸을 떨었다. 《이리하여 기훤장군은… 고마를 죽인다!》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 우뚤 놀랐다. 이어 작두날이 쳐들렸다. 그 소리가 벼락치는 소리같았다. 《가만!》 작두날이 허공에서 하얀 빛을 뿌리며 멎었다. 졸개들은 놀란 새무리인양 고개를 돌리고 두리번거렸다. 《가만!》 궁예가 다시 소리쳤다. 《그것 참 재미있는 일이오이다.》 하며 궁예가 기훤의 앞으로 다가갔다. 《장군, 대체 인질의 몸값을 얼마로 매겼소이까?》 궁예가 웃으며 묻자 기훤은 궁예의 아래우를 훑었다. 처음에는 이 건방진 외눈깔이 자기를 놀리는가 하여 속이 발칵했지만 인차 다른 냄새를
맡았다. 그는 륙감으로 좋은 일이 있다고 느꼈다. 《알아서 뭘 하자는거요?》 하고 기훤은 곁눈질하며 물었다. 《값이 맞으면 내가 내지요.》 《대사가, 그걸?!…》 《이거면 눅지는 않을것이오이다.》 궁예는 자기의 중태기를 기훤에게 내밀었다. 기훤은 순간 자기를 잊은듯 숱한 사람들이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태를 뒤졌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흐음, 당신은 역시 호걸남아요. 자비로운 부처님께서 굽어살피실게요.》 (내가 값을 물고 고마를 살려준것이 부처님의 은혜를 받는 일이라면 너는 부처님의 벌을 받을게다.) 하고 생각하며 궁예는 쓰윽 웃었다. 원회와 신훤은 궁예와 기훤을 놀랍게 보고있었다. 한사람에게는 선망이, 다른 사람에게는 미움이 팽글팽글 돌아갔다. 이때까지 시퍼래서 당장 죽인다 어쩐다 하던 기훤은 그 일은 씻은듯 잊고 궁예를 귀한 손님인양 맞이하였다. 궁예는 고마를 만나겠다고 하였다. 《그러시오.》 기훤은 이미 고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원회에게 궁예의 요구대로 산채를 돌아보게 하고 자기는 방으로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