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25. 견 훤

 

견훤은 력사에 후백제라고 하는 나라를 세운 사람이다. 《삼국사기》 렬전에 기록되여있다. 고려, 나중엔 태봉국을 세웠던 궁예와 더불어 어딘가 멸시적인 감정으로 기록된것이 인상적이다.

그 기록을 보면 견훤에게 특징적인것이 셋인데 첫째는 출신고장, 둘째는 성과 이름, 셋째는 출생과 유년기성장이다.

출신지명에 대해서 《삼국사기》에서는 그가 상주 가은현사람이라고 했다.

상주란 어떤 곳인가?

백두대산줄기가 남으로 뻗어내려 태백산줄기를 이루고 그 태백산줄기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다시 동남의 경상산줄기와 서남의 소백산줄기, 지리산줄기로 갈라진다. 서남으로 뻗어내린 이 산줄기 즉 소백산줄기와 지리산줄기는 세나라시기 신라와 백제의 경계선이였다.

그런데 그것은 썩 뒤의 일이고 그앞에서는 여러 자그마한 나라들로 존재하였다.

특히 신라는 오늘의 경상도일대를 중심으로 처음에는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많았다. 신라외에 가락국, 사벌국, 감문국, 골벌국 등 지경이 오늘날 한개 군에 해당하는 작은 나라들이였다. 그가운데 하나인 사벌국은 속리산과 락동강사이에 자리잡고있던 작은 나라였다. 이 사벌국이 언제부터 생겨난지는 모르지만 신라 12대왕인 점해니사금(沾解尼師今)(247-261년)때에 신라에 병합되였다. 그뒤에 상주로 되였다. 하지만 상주라는 이름보다 사벌국이라는 이름이 지꿎게 남아있었다.

점해니사금으로부터 거의 600여년이 흐른 뒤인 신라 진성왕 3년(889년)에 원종, 애노라는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곳이 바로 사벌주라고 기록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여튼 사벌국 즉 상주는 이미 오래전에 신라에 병합된 이를테면 신라인셈이다.

견훤이 이 상주의 가은현사람이라고 하는것은 그가 상주에서 출생하여 자랐다는것인지, 아니면 성장하여 그곳에서 출세했다는 말인지 잘 모를 일이다. 견훤이 후날 자립하여 신라에 맞서면서 자기를 당나라와 야합한 신라가 멸망시킨 백제의 마지막왕 의자왕의 원한과 수치를 씻을 사람으로 내세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는 백제사람인가, 신라사람인가. 신라의 상주사람이라면 결국 신라의 역적인셈이다. 가락국의 출신이면서 신라의 《충신》인 김유신의 행적과는 판판 다르다. 그래서 《삼국사기》에서 그렇게 멸시적인 태도가 엿보이게 기록했던가. 물론 출신지역이 꼭 그 사람의 후날 행동을 규정한다고 보는것은 억지다. 그러나 견훤은 자기를 백제의 후손이라고 했으며 또 그렇게 마지막까지 신라와 싸웠다. 그렇다면 견훤이 신라 상주사람이라고 한데는 어떤 리유가 있을것이다. 견훤이 광주 북천사람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 기록에 따르면 아마도 견훤이 본래 광주 북천의 출신인데 후에 어찌하여 상주에 이주해서 살다가 신라군사가 된것이 아닐가 한다. 견훤의 아버지와 비교해봐도 그럴듯하다. 그의 아버지는 아자개라고 하는데 그는 농사짓다가 후에 장군이 되였다고 한다. 견훤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영향이란 백제 동경 내지 백제 부흥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다음으로 《견훤》이라는 그 성과 이름이 눈길을 끈다.

기록에는 본래 견훤이 리씨였는데 《견》으로 성을 바꾸고 이름도 《훤》으로 지었다고 한다. 어떤 리유에서 그랬을가? 문제는 견훤이 어째서 본래의 리씨를 버리고 《견》이라고 썼겠는가 하는것이다. 《견》이라는 글은 많은 경우 질그릇과 련결되여있다. 그렇다면 어떤 질그릇 만드는 사람의 후손이라는 뜻인가. 훤의 아버지는 농사짓던 사람이다. 그러니 질그릇 만드는 쟁이도 아니다. 훤이 어떤 뜻에서 자기의 성을 《견》으로 했는지는 자세히 알수 없지만 그가 신라의 이른바 《고귀한 족속들》과 삶을 달리했다는것은 엿볼수 있다. 질그릇과 련결되는것은 신라의 《박》이니, 《석》이니, 《김》이니 한것과 구별되기때문이다.

또 그의 이름을 《훤》이라 한것을 보면 그가 무엇을 바랬는가를 알수 있다. 《훤》은 원추리꽃을 념두에 둔것인데 원추리꽃이란 《망우초》 즉 근심을 잊는 꽃이요, 《의남초》 즉 마땅히 사나이다움을 나타내는 꽃이름이다.

결국 이 사람은 보잘것없지만 필요한 질그릇이라는 뜻의 성을 달고 사나이답게 한세상 살아가고싶은 열망이 담긴 이름을 붙였는가 한다.

《삼국사기》의 견훤에 대한 기록에서 제일 이채로운것이 그의 출생과 성장에 대한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아직 강보에 싸여있을 때 어머니는 그를 밭두렁에 놓아두고 농사일을 하는데 범이 와서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고 한다.

젖먹이아이와 범 혹은 승냥이와 결부시키는것은 동서방에 있는 일이다. 로마의 창립자 로물루스에 대한 이야기에도 승냥이가 젖을 먹였다는 내용이 있다.

아가에게 범이 젖을 먹였다고 하는것은 범상치 않은 인물에게 붙여지는 이야기이다.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아가때부터 남달랐다 하는것만은 분명하다.

어찌 보면 견훤이 아가때부터 체격이 웅건하여 그런 전설이 붙여졌을수도 있다.

(군사가 되겠다.)하고 생각한것은 견훤에게 자연스러운 귀결이였다. 남다른 체격과 힘과 용기를 수단으로 하여 자기 앞길을 개척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군사가 되였다.

견훤이 들어간데는 수도방위부대였다. 수도방위부대로서 신라무력의 골간을 이루고있던 대당, 귀당이 있었다. 여기서 《당》이라는것은 군대를 지휘할 때 쓰는 기발을 뜻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부대를 가리키는 의미를 가지게 된것인데 고구려의 군사편제에서 본받은것이였다.

수도방위부대들로서 대당, 귀당외에 9서당이라는것도 있었다. 9서당은 본래 진평왕 5년(583년)에 설치된 서당과 진평왕 47년(625년)에 설치된 랑당이 모체가 되여 편성되였는데 여기에는 원래의 신라사람들뿐아니라 이전의 백제, 고구려, 말갈 및 보덕성(안승의 《고구려》)에 속했던 사람들도 망라되였다.

이 9서당은 그 계렬에 따라 서로 군복에 다는 표식인 《금》의 색갈을 달리하여 구별하였다.

금(衿)이라는것은 옷깃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웃옷의 깃, 지금 동정이라고 부르는것이다. 지금 웃옷에 다는 덧깃을 동정이라고 하는것은 신라때 군사들이 색갈있는 덧깃을 옷에 달아서 부대소속을 구별케 하였기때문에 신라부대의 일반적명칭인 《당(동)》과 《정》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수도방위부대로서는 계금당, 경여갑당, 경오종당, 사설당, 노당(쇠뇌부대), 운제당(성새공격에 쓰는 높은 사다리를 다루는 부대), 충당(성새공격 등에 쓰는 충격기구를 다루는 부대), 석투당(돌을 던지는 부대)으로 구성된 당시의 기술병정부대들도 있었다.

견훤은 개지극당이라는 부대에 편입되였다. 이 부대는 극이라는 창을 쓰는 부대였다.

견훤은 체격과 용기, 힘으로 하여 단박 눈에 띄웠다. 하지만 견훤이 있다 하고 한번 번쩍이였을뿐 그것으로 끝났다.

견훤의 출세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건 그때 신라수도에 3 000명안팎의 상비군이 있었는데 견훤은 그 상비군의 군인이 아니였다. 그 상비군밖에 나머지 여러 당들 특히 견훤이 속한 부대와 같은것은 제한된 졸, 관들로 구성된 골격만 가지고있다가 유사시에 징집된 군사들로 대오를 늘인 다음 싸움에 나갔기때문에 전시가 아니고서는 출세가 이루어지기 곤난하였다.

그런데 신라수도의 형편은 지방에서 무수한 란이 일어나는데 비하면 아직 태평세월이였다. 견훤과 같은 사람에게는 짜증이 날 지경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왕을 호위하는 시위부의 장군 하나가 견훤을 보고 탐나서 시위부에 들어오라고 했다. 견훤은 귀가 트이였다. 하지만 견훤은 시위부라는것이 어떤데인가를 알게 되자 그만두고말았다. 시위부는 장군, 대감은 물론 졸들에 이르기까지 대사(12등급벼슬)벼슬을 가진자들로서 문벌이 높은 귀족출신의 정병들만 들어가는 부대였다. 견훤 같은 사람은 엄두도 낼수 없는 부대였다.

견훤은 마침내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수자리갈 결심을 하였다. 지방에서는 서울과 달리 란장판이다. 힘과 용기로 출세할수 있는 견훤 같은 사람이 출세할 곳은 바로 그런 란장판이였다.

그래서 서남쪽 해변 즉 옛 백제땅으로 갔다. 과연 지방은 견훤에게 있어서 활무대였다.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주로 신라조정을 반대하여 들고일어난 농민들과 하는 싸움이였다.

그는 잘 때에도 창을 베고 잤고 용기가 있어 항상 다른 군사들보다 앞장섰으며 이러한 공로로 얼마 안 있어 곧 비장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였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