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2 회)
22. 징 벌 초생달이 구름과 숨박곡질하고있는 밤이였다. 초저녁부터 떠들썩하던 현청도 조용해졌다. 현청의 북쪽토담을 따라 두사람이 그림자를 끌며 조심히 걸음을 옮겼다. 두 그림자는 토담을 따라가다가 담을 넘었다. 그안에는 옥이 있었다. 《누구야?!》 밤공기를 울리며 옥지기가 소리쳤다. 그림자는 주춤 멎어섰다. 《누구야?》 옥지기가 재차 물었다. 《어른이 보냈소…》 그림자의 대답이였다. 옥지기는 손에 든 창을 내리고 한발자욱 다가왔다. 《천궁어른이 보냈소?》 하고 옥지기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렇소.》 《기다렸소. 그래 두사람이요?》 《도와만 준다면야 두사람도 넉넉하지. 그래 열쇠가 어디 있소?》 옥지기는 괴춤에서 옥열쇠를 꺼냈다. 두 그림자는 열쇠를 받아쥐고 옥문으로 다가갔다. 《가만.》 옥지기가 불렀다. 《먼저 날 묶게. 그리고…》 《그건 늦지 않소. 아무래도 아침까지 괴롭게 있어야 할텐데…》 옥의 쇠를 열었다. 《선종스님!》 하고 문을 연 그림자가 낮게 불렀다. 궁예는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그림자가 옥안으로 들어와 궁예를 풀어주었다. 《어서 나갑시다.》 궁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왔다. 《이쪽으로!》 궁예는 어리둥절해졌다. 《당신들은 누구요?!》 《같이 가면 알게 되오. 어서 서두르시오.》 한사람이 궁예의 앞에 서고 다른 사람은 옥지기를 묶고 그의 입에 허술하게 헝겊까지 물려놓았다. 《고생하게 됐수다. 하지만 천궁어른은 신의가 있는분이니 고생한 값은 톡톡히 받게 될게요.》 옥지기는 끙끙 소리를 냈다. 궁예를 데리고 두사람은 부지런히 다그쳤다. 현청에서 멀찌감치 벗어나서야 두사람은 궁예에게 말했다. 《우리는 천궁어른이 보낸 사람들이요.》 《천궁?》 《우리 어른이 아니였다면 스님은 래일로 서울로 끌려가 틀림없이 죽었을거요.》 《천궁님이 어디 있소?》 《그건 알아 뭣 하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게 아니요.》 《뒤산너머 개울가에 가보시오. 거기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소.》 《거기 천궁님이 있소?》 《우린 모르오. 자, 그럼 다시는 여기 얼씬거리지 마시오. 이제 다시 잡히면 그때는 천궁님도 어쩔수 없소.》 두사람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궁예는 그들의 뒤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뒤산너머로 갔다. 달빛에 개울이 비쳤다. 개울가에 이른 궁예는 어둠속을 둘러보았다. 개울건너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구요?》 《나예요.》 뜻밖에도 녀자의 목소리가 났다. 궁예는 흠칫했다. 그것은 귀익은 목소리였다. 《시내!》 궁예는 개울물을 튕기며 뛰여갔다. 《무사하셨군요.》 《대체 어찌된 일이요? 난 천궁장자가 보낸 사람들에게 구원되여 여기까지 왔소. 그런데 시내는 어떻게 알고 여기에…》 《어쨌든 무사하니 됐나이다. 어서 피하시오이다.》 궁예는 짐작이 갔다. 시내가 천궁장자에게 부탁하여 빼내주었을것이다. 《고맙소, 시내!》 《그런 말씀 마시오이다. 어서 피하시오이다. 날밝기 전에 멀리…》 궁예는 우뚝 서있기만 했다. 《웬 일이시오이까?》 《그대로 달아날수 없어.》 《어찌자는거예요?》 《죽여버릴테요!》 《누굴…》 《현령 그놈을…》 《뭐라구요?!》 시내는 놀라 궁예를 보았다. 궁예의 한눈이 번쩍이고있었다. 눈앞에는 초저녁에 옥에 나타나 절반 먹은 술을 뿌리며 해해 웃던 계진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궁예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놈을 없애버리지 않고서는 어디 간들 편하겠는가. 단순한 모욕때문이 아니다. 옥에 갇혔을 때까지만도 일대일의 복수감이 불탔지만 지금은 달랐다. 계진을 그냥 놔두면 또 시내를 못살게 굴것이다. 나를 모욕하고 매를 든것은 그대로 지나칠수 있으나 시내를… 아니다, 죽여버려야 한다. 독사의 대가리는 제때에 잘라버려야 한다. 《시내, 고맙소. 천궁장자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오. 언제든지 꼭 은혜를 갚겠다고…》 시내는 궁예의 낯빛을 보고 그의 결심을 알아차렸다. 《이러지 마시오이다.》 《내 걱정마오. 그깐 놈은 내 상대가 되지 않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오.》 궁예는 시내를 뿌리치다싶이 하고 현청으로 내달렸다. 어두운 담장을 넘어 계진이 자는 방에 뛰여들었다. 술에 취해 쪼그리고 자는 계진의 머리카락을 잡아일으켰다. 궁예는 바르르 떠는 계진을 노려보고나서 단칼에 찔러눕혔다. 《사람 살…》 계진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맥없이 현청을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