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21. 격 투

 

궁예는 걸으면서 줄곧 생각해보았다.

현령 김계진의 낯짝도 모르거니와 그와 무슨 특별한 인연도 없는데 어째서 그는 나를 역적취급하려는건가? 내가 임금의 뭐라고 했다 그러는가. 그게 무슨 못할 소리라고… 참, 녀석. 벼슬이나 한다는 녀석이 속은 무던히 좁구나. 흥, 너 같은게 나를 역적취급하려 한댔자 쥐뿔도 얻을게 없을게다. 그렇게 호락호락 굽어들 궁예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보았다면 네가 큰 실수를 한거야. 별 되지 못한 녀석 다 본다.

궁예는 문득 천궁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현령도 시내를 어찌해보려고 그런다? 사내답지 못한게 벼슬고리나 찼다고 남의 제밥에 뛰여든다? 허, 거 괘씸한 놈이구나.

궁예에게는 피하라던 시내의 말도 떠올랐다. 그러나 무슨 일에서건 피해본적이 없는 궁예다. 상대가 누구이든 속에 병신이라는 옹이와 누구에게도 지고싶지 않은 승벽이 꼬리를 사리고있어 달아나기에는 너무나 거슬렸다.

궁예는 두사람이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건 뭐야?!》

보니 3변수당의 한주군사 같았다. 하나는 창을 들고 하나는 검을 들었다.

《왜 그러우?!》 하고 궁예가 물었다.

두 군사는 궁예를 보더니 대뜸 《너 선종이지, 세달사의?》 하고 따졌다.

《그렇소.》

《마침이다. 우린 널 잡아들이라는 현령나으리의 령을 받고 나온 군사들이다.》

《그래서 어찌겠다는거요?》

《이놈, 잔소리말고 현령어른에게 가자!》

궁예는 두 군사를 이리저리 살폈다. 별로 눈에 차지 않는것들이다.

《흥, 길가는 탁발승에게 야료마시고 물러서시오. 나는 현령을 알지도 못하고 더구나 그에게 죄지은것도 없소.》

한 군사가 창을 내들었다.

《복종하지 않으면 맞구멍낼테다!》

《어디 그래보시오.》

궁예가 맞서자 두사람은 말로 해서 안되겠는지 덤벼들었다. 궁예는 명치를 노리고 달려드는 창을 슬쩍 피하고 도리여 창을 붙잡아 나꿔챘다. 창을 놓친 군사가 얼떨결에 앞으로 비칠거리더니 곤두박질했다.

《이놈 봐라!》 하며 다른 군사가 검을 뽑았다.

그러나 궁예는 뺨에 푸뜰 웃음을 띠우고 그를 노려보았다. 석삼년 검술, 창술, 궁술을 남몰래 익힌 궁예였다. 이왕 속세에서 힘으로 세파를 헤쳐나갈 결심을 굳힌 때부터 익힌 기교가 기교인지라 얼빤한 군사들이 당해낼리 없다.

궁예는 소리치며 달려드는 군사와 맞서 두어번 몸놀림에 벌써 그의 검을 쳐 떨어뜨리고 발로 꾹 밟았다. 졸지에 창과 검을 빼앗긴 두 군사는 당황해 어쩔줄 몰라했다.

《나는 속세를 떠난 비구인데 너희들이 어째서 나에게 해를 입히려든단 말이냐. 살생을 금하는것이 불도의 계률이기에 너희들을 해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다시 무고한 사람에게 덤벼들어 까닭없이 욕보이면 결단코 용서치 않는다.》

궁예는 창과 칼을 던져주고 걸었다.

얼친 두 군사가 입만 헤 벌리고 궁예를 바라보았다.

궁예는 그길로 세달사로 갔다. 세달사에 이른 궁예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것을 느꼈다. 그를 보는 눈초리가 어딘가 두려움과 원망에 차있었다. 궁예는 그러지 않아도 때려치우고 떠나려고 결심한지라 그런 꼴을 보자 더욱 속이 울컥 살아올랐다. 곧장 주지를 만나러 들어갔다. 주지는 겉으로 태연한체 하면서 궁예를 맞아주었다.

《그간 어딜 다녔기에 까딱하지 않았느냐?》 하고 주지가 물었다.

《두루…》

《내 알바는 아니다만 불문에 든 사람이 지금은 수도기간이라는것을 알텐데 그렇게 정처없이 다녀서야 어찌 비구의 본도에 맞는다 하겠느냐.》

선종 궁예는 주지의 부드러운 말을 귀등으로 듣고있었다. 벌써 십여년 같이 지내오면서 이 늙은이가 이쯤되면 속이 얼마나 뒤틀려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요새는 어째, 시주들이는 사람도 없는가보지?》

《글쎄올시다.》

궁예는 애매하게 대답하였다.

속으로 다짐한 그대로 이제는 사찰을 떠나겠다고 말하자. 그러면 주지도 지정도 시원해할테지…

《참, 지정스님은 어디 갔소이까?》 하고 궁예는 제 생각에 옴해 물었다.

《어디… 볼일이 있어 좀 나갔네.》

《그렇소이까? 실은 주지님께 알릴게 있소이다.》

《뭔데?!》 하며 주지가 놀란다. 그의 두더지귀같이 얄팍하고 빨간 귀바퀴가 뾰족하니 섰다.

궁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는 세달사를 떠나려 하오이다.》

십년묵은 체증이 떨어지는듯 하다.

《떠…난다고?! 별안간…》

주지는 말까지 더듬었다.

《그간 주지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소이다.》

《안할 소리… 사찰을 떠나겠다니 막지는 않겠지만 그래 언제쯤…》

《당장.》

《당장?!》

《왜 그러시오이까?》

《아니, 당장 떠나다니?! 어찌 그럴수 있나. 며칠 말미를 두고 떠나게.》

《그러고싶은 생각이 없소이다. 이왕 떠날걸 머물러있었댔자 피차 눈만 아플테니까요.》

《그래, 떠난다면 어디로 갈텐가? 내가 좀더 수도에 능한 곳을 알선할가?》

《그럴 필요없소이다. 어디로 가겠는지 딱히 정한 곳도 없고요…》

《허, 선종아! 그럴수 있느냐? 그나저나 너와 나는 십년가까이 서로 한사찰에서 살았는데, 속세의 정으로 봐도…》

궁예는 마음이 여린데가 있었다. 주지의 말을 들으며 평소에는 그가 미웠지만 리별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들으니 그런대로 또 속이 물러졌다.

이 사찰에 찾아들적만 해도 아직 어렸다. 그때는 세달사를 떠날 날이 있으려니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무엇에나, 어디에서나 좀 있으면 그 실상을 알게 되고 실상을 알게 되면 싫증을 느끼고 싫증이 나면 기어코 떠나고야마는걸 어찌하랴. 그건 숙명이다. 궁예는 자기가 좀처럼 한곳에 나무처럼 뿌리내릴수 없는 성미라는걸 알고있다.

《그럼 떠나겠소이다.》

궁예가 일어나려고 하자 주지는 다급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가…가만, 내가 시킬테니 떠나더라도 저녁이나 하고 떠나게.》

궁예는 망설였다. 주지가 그렇게 인정으로 나오는데 곧은목을 세울 심지가 없다.

《좋소이다. 저는 짐이나 꾸리겠소이다. 짐이라야 뭘…》

《그러게. 내가 준비되면 사람을 보내 부르지, 응? 퍽 힘들겠는데 쉬…라구…》

궁예는 주지의 방을 나와 승방으로 갔다.

팔베개하고 승방에 누워 곰팡내나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궁예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해보고있었다. 문득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궁예는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소리는 옆방에서 들리였다. 옆방으로 가보았다. 거기에는 피투성이 된 상노아이가 쓰러져있었다.

《얘, 너 어찌된 일이냐?!》

궁예는 아이를 안아일으켰다.

아이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선종스님!》하며 아이는 궁예에게 안겼다.

《어찌다 이렇게 되였느냐?!》

아이는 지정이 자기를 때렸다고 말했다.

《지정이?! 어째서?!》

《선종스님, 어서 떠나시오이다.》하고 아이는 다짜고짜로 말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지정스님이 선종스님 들어오는걸 보더니 나를 보고 빨리 현령나으리께 알리라고 했나이다. 여기 와서 선종스님을 잡으라고… 그래서 내가 못 가겠다고 하니까 나를 막 때리고는 제가 갔소이다.》

궁예는 벌떡 일어났다.

지정, 그놈이?! …

《그래, 이걸 주지도 알고있느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벌써 열흘전부터 주지님과 지정스님이 선종스님을 묶어서 현령에게 바쳐야 한다고 했소이다.》

《음, 그래서 주지가 아닌보살을 떨었구나…》

궁예의 외눈이 파랗게 살아올랐다.

궁예는 세달사 주지의 방이며 다른 방을 뒤져 값나갈만 한것들을 모두 걷었다. 도적질이 아니다. 악마를 속이는건 죄가 아니다.

궁예는 뜰에 침을 뱉고 상노아이를 업었다. 그리고는 세달사의 뒤문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세달사를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군사들과 만났다.

지정이 궁예를 보자 소리쳤다.

《이 외통눈아! 어딜 달아나려느냐?》

궁예는 아이를 내려놓고 지정을 맞받아나갔다.

《잘 만났다, 이놈!》

《저, 저놈 잡으시오!》

지정이 당황하여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지정이 가재걸음쳐 군사들의 뒤에 숨으려고 하는데 벌써 궁예는 그의 앞에 날아들었다.

궁예의 주먹이 지정의 턱을 후려쳤다.

《이 속병신아!》

지정의 턱이 원래 약한지, 아니면 궁예의 주먹이 센지 지정의 턱은 귀뒤로 돌아갔다. 궁예는 다시 지정의 목을 쳐 숨을 끊었다. 마지막숨이 넘어가는 그때야 지정은 자기가 아주 잘못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괜히 궁예와 맞섰구나. 차라리 모욕쯤 참고 주는 밥이나 먹으며 살걸. 부처님…

군사들이 궁예를 겹겹이 에워쌌다. 아무리 난다긴다하는 궁예라도 사람잡이에 이골난 군사들의 그물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궁예는 마침내 묶이우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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