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 회)
19. 세달사의 거미들 궁예의 성격은 동적이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곧고 격렬하였다. 천궁과 무달에 닭쫓던 개신세가 되긴 하였지만 한숨이나 풀풀 쉬지는 않았다. 물론 큰걸 알았다. 《이것이다!》 하고 확신한것은 아니고 《응, 그렇구나!》 하는 생각은 가졌다. 두눈 가진 사람들에게는 한눈 가진 사람이
병신되기마련이다. (고구려를 입에 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수 없다!) 그 정도 생각했다. 궁예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비죽이 웃었다. 그는 다음날 도선스님을 찾아 떠났다. 그러나 도선의 암자에 가서 며칠을 기다려도 만날수 없었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있는 성미가 아닌 궁예로서는 참으로 좀이 쑤시는 일이였지만 그래도 지꿎게 기다렸다. (싸다, 싸. 죽어라, 죽어!) 하는 소리를 입안에서 굴렸다. 어리석은짓을 저지른 자기에 대한 학대였다. 그것으로써 궁예는 도선을 기다리는 지루함을 이겨냈다. 도선은 닷새만에야 암자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궁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도선이 암자에 들자 궁예는 무작정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로승님, 저에게 가르쳐주시오이다.》 하고 궁예는 도선에게 빌었다. 좌선을 끝낸 도선이 눈을 뜨고 궁예를 보았다. 《너, 언제 여기 왔느냐?》 《예, 닷새 되였소이다.》 《무엇때문에? …》 《저에게 풍수를 배워주시오이다.》 《풍수?》 《그렇소이다.》 도선은 한숨을 쉬였다. 《너, 궁예라고 했지?》 《그렇소이다.》 《너는 나에게서 배우지 못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전 기어코 스님에게서 배우겠나이다.》 《그게 고집이라는것이다. 나는 이미 네가 알아야 할 요령을 배워주었는데도 너는 그걸 깨달을 생각을 않고 헛되이 다른것을 배워달라고 하니 그게 어디 될말이냐?》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이놈아! 내가 가르친 말은 벌써 잊었느냐? 네놈이 눈이 하나지 귀까지 하나인줄 몰랐구나.》 궁예는 그제야 생각났다. 좋은 마음을 만나야 뜻을 이룬다고 했던가. 그건 도선이 아니라도 이미 알고있는 소리다. 사람을 잘 만나야 땅이 생기고 땅이 있어야 재부가 생기고 어쩌고 하는 소리를 궁예는 이미 알고있었다. 《그건 알고있소이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할 일이고 지금은 풍수를 배워야 하겠소이다.》 떼질이 사촌보다 났다던지. 이런 경우 궁예에게서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밉지 않은것이라고 생각하며 도선은 속으로 웃었다. 재물 달라고 떼쓰는건 밉지만 배워달라고 떼쓰는건 고운 법이다. 재물이
넘어가는건 소유에 따르는 인격까지 넘어가지만 알고있는걸 넘기는건 주는편의 인격을 오히려 북돋아주기때문일가. 하여튼 덜퉁스레 《배워주시오!》 한번
내뱉고 마깝지 않으면 삐쭉 돌아서는 놈만큼 미운건 또 없을것이다. 도선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네 욕심뿐이다. 네가 참말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어울리면 아니해도 풍수를 얻게 되겠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하고 타이르고나서 《왜, 넌 남을 부리는게 뜻이 아니냐.》 하고 찔렀다. 궁예는 후뜰 놀랐다. (참, 귀신같다!) 남을 부린다는 그 말을 궁예가 모를리 없다.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피처럼 몸에서 돌고있는 생각이였다. 이런 귀신하고는 직방배기밖에 없다고 궁예는 타산했다. 《그래서 더 로승님에게서 배워야겠소이다. 앞으로 좋은 친구를 만나 풍수를 얻는다고 해도 그가 나를 속이는지 어찌 알겠소이까? 제가
모르고서야 좋은 사람인들 만나겠소이까.》 《딴은 네 말이 옳다. 넌 애당초 깊이 믿는 마음이 없는것 같구나. 그때문에 너는 성공하고 그때문에 망할게다. 하여튼 내 배워는 주겠다. 너의 그 솔직한 마음이 좋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믿지 않으니 그리 알고 배워라. 나에게서 배웠다는 소리를 했다간 벌받을줄 알아라!》 궁예는 보름에 두번씩 도선에게 와서 배우기로 하였다. 한번 하자고 하면 기어이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궁예는 이것으로 하여 기뻤다. 궁예는 사흘만에야 도선앞에서 떠났다. 세달사의 지정은 주지가 되는것이 큰 소원이였다. 궁예가 왕자니 뭐니 하면서 바람잡아 귀신의 골 까먹을 소리나 줴치고 다니는데 비하면 참으로
소박한 소원이였다. 지정스님과 선종스님은 이를테면 하늘과 땅차이였다. 일하기 싫고 그렇다고 굶는것도 바라지 않는 지정은 삭발하고 스님이 되면 일하지 않고서도 세끼 때를 넘기지 않으리라는 타산으로 사찰에 들어온 사람이였다. 념불에는 관심이 없고 제밥에만 욕심낸다고 볼수 있겠지만 누구인들 고달프게 일하고 배곯기를 바라겠는가. 사람이 먹는거야 생존의 법칙이요, 생존의 권리인데… 지정스님이 원래부터 주지가 되는게 소원이냐 하면 그런건 아니고 사찰에 들어와 그럭저럭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주지가 되면 다문 사찰에서나마 주인노릇하면서 마음 내키는대로 살것 같았다. 그런데 세달사의 주지가 되는것은 선종이 있는 한 불가능하였다. 왜냐하면 지정은 아무모로 보나 선종에게 뒤지기때문이였다. 우선 지정은 머리가 돌지 않아서 변변히 외우는 게송이 없을뿐더러 도무지 그
념의 내용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조차 알수 없었다. 부처님의 도를 이 세상 아닌 저세상에 가서 락을 구하는 허황한 잡술이라고 비웃는 유교신봉자에게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랄가. 하지만 례를 기본으로 하는 공맹의 학설이 밥먹여주고 옷입혀주고 출세시켜주는 그런 때는 수백년이 지나서야 이 땅에 들어오게 되니 지정은 가엾다고밖에 볼수 없을것이다. 사찰이란 곧 부처님의 도를 깨치는 곳인데 부처님의 도의 귀때기도 제대로 리해 못하니 애당초 주지가 되기는 틀린것이다. 그러나 지정은 자기를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는 자기도 능히 주지가 될수 있다고 속으로 웨치는데 그렇게 된데는 보기에 자기의 잘못보다 주지스님 잘못이 더 컸다. 주지스님도 뭐 별로 잘 아는것도 아니더구나. 선종에게 늘 몰리는것만 보지? 그래서 지정은 주지가 되는것이 선종처럼 경이나 잴잴 외우는 사람만이 되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겁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용감하고
뭔가 하려고 하는 측면에서는 제법 기개있는 사나이였다. 그런데 이런 지정의 숨은 생각에 걸림돌이 되군 하는것이 선종인 궁예였다. 《아수라같은 새끼. 지옥의 불가마에나 콱 떨어져라!》 하고 지정은 험하게 욕하군 하였다. 꼭 속으로 그러지 않으면 선종이 없는 곳에서 투덜거리군 하였다. 지정은 궁예를 싫어하고 무서워하였다. 궁예는 애꾸인 주제에 두눈 시퍼렇게 살아있는 지정을 쩍하면 놀려대군 하였다. 머리가 좀 돌지 않을뿐이지 욕심까지 없는것이 아닌 지정에게 이것은 큰 모욕이였다. 선종은 경을 외우는데서뿐아니라 상문의 일체 생활에서도 코코에 지정을 못살게 굴었다. 가령 지정이 주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주지의 말이라면 알건모르건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아주 탄복을 했습니다요 하고 감동되는 때가
더러 있는데 선종은 여느 스님들앞에서 지껄이군 했다. 《지정은 참으로 부처님의 큰 제자가 될것이다. 아마 문수보살이나 룡수보살이 될지도 몰라. 주지님을 잘 모시는것이 곧 극락에 가는 길이니까…》 처음에는 그게 진짜 소리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주지가 그 소리를 듣고는 선종이 괘씸하다고 하면서 지정에게 선종이 하는 소리는 지정을 놀리는 소리라고 친절히 귀뜀해주어 알게 되였다. 지정은 더욱 주지에게 바싹 달라붙어 선종에 대해서 꼬치꼬치 미워하였다. 굶은 범이나 이리한테 필요하겠는지, 아니 그렇지도 않다. 하늘은 이런 종자도
만들어서 인간세상이 심심치 않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무식하고 우둔한것은 그저 그런대로 있으면 때로 가엾다고 동정이나마 받을수 있겠는데 이런것들이 욕심까지 혹달리면 그때는 부처님의 애제자가 되는것이다. 선한 애제자는 아니고 악한 애제자 즉 세상이
미워하는 악질이 된다 그것이다. 지정은 어떻게 하면 선종을 몰아내고 장차 이 세달사의 주지가 될가 하고 궁리하군 하였다. 이런 지정에게 낯모를 사람이 와서 선종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자 웬 일인가 하여 귀를 발쭉 세운것은 당연하였다. 그런데 듣고보니 펄쩍 뛸 일이다. 《선종인지 망종인지 한 그놈이 감히 나라님을 욕되게 했으니 가만 놔둘수 없다!》 하고 현의 집사라는 사람이 침방울을 튕기며 소리쳤다. (역시 부처님은 어지고 순한 지정을 편드시는구나. 나무아미타불! …) 지정은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며 코구멍을 살살 다쳐놓은듯 한, 아니 귀구멍을 살살 후벼놓는듯 한, 아니 그것도 아니고 마려운 대변을 쑥
뽑아내는듯 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니 선종이 나타나면 곱게 현에 와서 오라를 받으라고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놈은 물론 여기 세달사도 무사치 못하리다.》 이틀동안 선종을 잡으려고 기다리다가 돌아가면서 집사가 호통친 말이였다. 주지는 큰일났다고 아우성치였지만 지정은 얼씨구나 때가 왔다고 쾌재를 불렀다. 이놈, 어디 봐라. 이 지정을 야료하고 무사할줄 알았더냐. 지정에게는 마치 연등놀이가 당장 눈앞에 다가온듯싶었다. 《주지스님, 이 기회에 아예 선종을 우리가 잡아바칩시다. 그러면 우리 세달사는 편안할것이고 또 선종이 없으니 앓던 이 뽑아치우는 격이 아니오이까.》 하는 지정의 말에 주지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나 선종은 또 사흘이 지나도록 세달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미친 수개같은게…》 지정은 안타깝게 선종을 기다렸다. 선종을 기다리기는 이때껏 처음이였다. 그놈은 언제나 나타나려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