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 회)
16. 베짜는 처녀 인물 잘나고 보름새베 잘 짜기로 소문난 무달의 딸 시내에게는 어릴 때부터 품은 꿈이 있었다. 그것은 고구려의 평강공주처럼 되는것이였다. 엉뚱한 꿈이였다. 시내의 꿈은 아버지에게서 평강공주에 대한 노래를 들으면서부터 자라났다. 평강공주 어릴 때 울보였대요 바보 온달총각에게 시집을 가서 고구려의 큰 장수 키웠답니다 옛말 해달라고 조르는 딸에게 무달이 들은 풍월로 불러준 노래였다. 그때에 고구려는 이미 망한지 오랬지만 고구려 온달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이 일대에 널리 퍼져있어 땅뚜지며 살아가는 농부들도 한가락 뽑을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딸에게 불러준 그 서툴고 무심한 노래가 평생 딸의 뼈대가 될줄 미처 몰랐다. 무달의 어린 딸은 숨쉬듯, 밥먹듯 그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 무달은 그러는 딸이 남달리 총명하고 귀엽게만 보였다. 그러나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였는데도 그 노래를 부르는것을 보고 은근히 걱정되였다. 사람이 겉을 낳지 속을 낳을가. 무달이 정작 딸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알게 되였을 때는 이미 그 무엇으로써도 돌이킬수 없게 되였다. 《얘, 그 노래 청승맞다. 내앞에서 그만 불러라!》 베틀에 앉아서도 가락맞추어 부르는것을 나무랐다. 딸은 곱게 웃으며 도토리를 모로 세운듯 한 눈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배워준 노래 아니예요 하는 태도에 무달은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그런 시내가 궁예를 만나게 된것은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이였다. 참한게 골로 빠진다던가? 어느날 무달은 밭에 나가고 시내 혼자 집에서 노래부르며 베를 짜고있는데 밖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수리 수리 마 수리 수수리 사바하 삭발한 젊은 외통눈스님이 념불외우며 물을 청했다. 시내는 베틀에서 내려 부엌에서 물을 떠 스님에게 내주었다. 스님은 물바가지를 받고 시내를 보았다. 시내는 웃음을 머금고 어서 스님이 물을 마시고 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스님은 인차 물을 마시지 않았다. 시내는 혹시 물바가지에 티라도 있는가 하여 걱정되였다. 바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바가지에는 맑은 물이 티 한점 없이 담겨져있었다. 《어서 드시오이다. 더우실터인데…》 하고 시내는 웃는 얼굴로 권했다. 스님은 보름보기눈으로 시내를 마주보고있었다. 여느 사람 같으면 그 모습에 얼마쯤 놀라기도 하련만 시내는 딴판이였다. 오히려 한눈뿐인 스님을 보며 밝게 웃고있었다. 젊은 스님인 궁예는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였다. 멍하니 처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있었다. 이때까지 궁예는 이런 처녀를 아니, 이런 사람을 처음 보았다. 《다른 물을 드리오리까?》 하고 시내가 맑은 소리로 물었다. 《아, 아니오이다. 고맙소이다.》 젊은 스님은 입술을 바가지에 대고 물을 마셨다. 한바가지 물을 다 마셨다. 처녀는 놀랍게 보고있었다. 《더 드시겠나이까?》 처녀가 물었다. 《그러면 고맙겠소이다.》 스님은 다시 물 한바가지를 받아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물을 청했다. 세바가지 아주 달디단 꿀물을 들이키듯 맛나게 마셨다. 《고맙소이다.》 궁예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이고 돌아서 나갔다. 처녀는 스님의 뒤모습을 보며 입을 가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 외모보다 소처럼 물마시는것이 놀라웠다. 젊은 스님은 그후에도 여러번 시내의 집에 왔다. 그때마다 스님은 음식물보다 물을 청했다. 시내는 스님이 물마시는것이 재미있어 아낌없이 물을 떠주었다. 웃음과 함께 스님은 꼭 세바가지 물을 마시군
하였다. 스님은 겨울에도 왔다. 시내가 더운 물을 주어도 스님은 찬물을 청했다. 어쩌는가 보자고 시내는 찬물을 주었다. 겨울에도 찬물을 세바가지
마셨다. 그제야 시내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다른 스님과 같지 않다. 더럭 겁이 났다. 재미있던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스님은 그후에도 왔다. 어떻게 알고 그러는지 집에 처녀 혼자 있을 때마다 오군 하였다. 여전히 찬물을 청해 마시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버렸다. 달라진것은
이전과 달리 문턱에서 빙그레 웃어보이는것이였다. 처녀의 웃음이 사라지고 대신 젊은 스님의 없던 웃음이 생겼다. 그런데 스님의 웃음은 야릇한데가 있었다. 웃음이 피여날 때만은 한 눈이라는 흠이 사라지는것이였다. 무척 선량해보이는 그 웃음은 스님이 병신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차츰 시내는 스님을 기다리게 되였다. 무례하다고 할 거동은 한번도 하지 않는것때문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매혹적인것이 있었단 말인가. 평강공주 어릴 때 울보였대요 바보 온달총각에게 시집을 가서 고구려의 큰 장수 키웠답니다 시내는 호젓할 때면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에 잠기군 하였다. 사랑이란 향기와 같아서 사랑하는이들이 아무리 자기들만의 비밀로 하려고 하여도 알려지기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눈빛만 보아도 알수 있다던지. 딸의 이 류다른 사랑을 아비인 무달이 모를리 없었다. 처음 딸에게 짝이 생겼는가부다 하고 흐뭇해하던 무달은 그 상대가 다름아닌 외통눈이스님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기가 막혔다. 그도 그럴것이 무달은 딸의 나이가 차가는데도 매파 정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무달이 보건대 이 동네는 물론 군, 주 아니, 온 나라를 뒤져보아도 자기 딸만 한 처녀는 있어보이지 않았다. 이런 딸을 애비라는 그 권리 하나만으로 어찌 물건팔듯 할수 있으랴. 그럼 딸은? 꽃도 한철, 나비도 한철이라. 그러나 무달은 어쩐지 꼭 딸에게 훌륭한 배필이 스스로 생길것만 같았다. 그런데 딸이 정작 좋아하는 사내가 외통눈이스님이다. 오라는 딸은 아니 오고 외통눈이사위만 온다는 말이 생각났다. 속병신도 가슴이 아프지만 겉병신은 당장 눈이 아픈 법이다. 더구나 사람값이 천냥이면 팔백냥에 드는 눈이 하나 없는 녀석을, 그것도 땡중을 사위로 맞아야 한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런데 알다가도 모를건 딸이다. 어찌다 골라골라 저런 병신을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될 일이다. 아무리 딸이 하는 일에 참견 안한다고 해도 그저 잘한다고 내버려둘수는 없다. 흔히 그 나이때는 철이 없어 눈이 멀기마련 아닌가. 그대로 내버려둘수는 없다. 아무리 마음어지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무달은 어느날 집을 지키고있다가 젊은 스님을 만났다. 의례히 혼자 있으려니 했는데 불쑥 무달이 나타나는 바람에 애꾸스님 궁예는 놀랐다. 하지만 인차 태연하게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스님께서 우리 딸을 좋아하는 눈치던데 사실이오이까?》 벼르고벼르던 말이라 따지듯 물었다. 궁예는 싱긋 웃었다. 《좋아한다는건 무슨 말씀이시오이까?》 하고 궁예는 스님답게 합장하고 공손히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소이까?》 《아, 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다 사랑하라 하셨소이다.》 이게 말이야 못하랴. 그래, 눈이 하나 없어 그렇지 입이야 어디 삐뚤어졌나. 무달은 갑자기 할 말이 없었다. 하긴 공양다니는 스님을 박대하는건 인심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무달은 잘라맸다. 《하여튼 차후부터는 우리 집에 오시는걸 삼가해주었으면 하오이다.》 이것은 스님에 대한 례가 아니다. 그러나 무달은 딸을 위해서는 삼보(三寶-불교의 세가지 보배 즉 부처, 불경, 스님)를 모욕한 죄로 자기가 지옥의 불가마에 떨어진대도 마다하지 않을 결심이였다. 《시주님께서는 공양오는 스님을 마다하시오이까, 아니오면 처녀를 만나러 오는 총각을 오지 말라 하시는것이오이까?》 궁예는 또박또박 새기며 물었다. 묘한 물음이였다. 아깝다! 눈 하나 없는게 아깝다는 생각은 남이 하는것처럼 무달의 머리속으로 스쳐지났다. 두눈 다 있다면 아무리 승복을 걸쳤다 하더라도 나무랄데 없는 사나일텐데… 《집에 출가하게 된 딸이 있은즉 그 딸은 빈도에게 애지중지하는 보옥과 같소이다. 만약 그 보옥이 맞춤한 곳으로 시집을 간 다음에는 스님이 문돌쩌귀가 닳도록 빈도의 집에 오신단들 무슨 타박이 있겠소.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시다는데 스님께서 보살의 정상을 가엾게 여겨주시오이다.》 아마 이런 말재주쯤은 무달의 평생에 처음 있는 일일것이다. 땀이 이마에 내뱄다. 딸에 대한 크나큰 념려와 사랑이 무달을 그렇게 만들어놓았을것이다. 궁예는 아무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함부로 탓할수 없는 웃음이였다. 그후 무달은 젊은 스님의 발걸음이 끊길줄 알았다. 그만큼 순진했다. 그러나 아니였다. 며칠전에는 웅담을 가지고 왔다. 마을좌상로인의 병에 웅담이 있어야 한다더라 하고 병문안갔던 뒤에 무달이 한 말이였는데 궁예가 어떻게 알고 얻어다 무달에게 주었던것이다. 아니 할수록 더 달라붙는다. 무작정 아니다 마다할수 없게 찾아오는걸 시퍼래서 물리치지 못하는 무달의 심정은 괴롭기만 하다. 게다가 촌주는 사흘이 멀다하게 살을 깎아내린다. 가뜩이나 마음용한 무달은 이런 처지에 놓이자
어찌할바를 몰라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달에게 천궁이 찾아왔다. 뜻밖이였다. 천궁은 정주일대에서 한다하는 부자였다. 현령도 함부로 대할수 없이 자존심이 세고 세력도 있다. 부자면서도 마음씀씀이 넉넉해서 동네사람들은 그의 말이라면 나라의 법보다 더 중하게 여기였다. 그는 원래 강무달의 집안과 인연이 있었다. 무달의 아버지와 천궁의 아버지들은 의형제사이였다. 하지만 그 아들대에 와서는 사이가 그닥 시원치 못했다. 무달이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이고 천궁이 부자여서만 아니였다. 배짱이 센 천궁은 무달의 용한 성격을 내놓고 비웃었다. 사내가 거 뭐요? 물렁팥죽이라니까! 언제인가 무달이 한잔 한김에 거 뭐, 고구려니 신라니 할게 있소? 어쨌든 싸우지 않고 살아가니 지금이 팔자좋은 세상 아니겠소 라고 했다는데 그게 어떻게 천궁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였다. 그달음에 달려온 천궁이 그게 무슨 쓸개빠진 소리냐, 이 땅은 대대로 고구려의 땅, 그런데 세상이 거꾸로 되여 신라땅이 되였는데 너에게는 그저 팔자좋은 세월이라는거냐 하고 따지고드는통에 무달은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고 나이아래인 천궁에게 욕을 먹었다. 《너 두고봐라. 제명 못산다. 그나마 편히 살것 같아? 이 땅은 고구려땅이다. 고구려의 얼이 살아있는 땅이란 말이다. 신라는 잠시 주객이 바뀌여 들어온데 불과해. 알기나 해?》 그 말은 무달의 귀에 박혀 영원히 사라질줄 몰랐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천궁은 무달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무달은 무달대로 주눅이 들어 천궁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러던 천궁이 제일 바쁜 때 무달을 찾아온것이다. 천궁은 여느때처럼 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을 거느리고있었다. 《무달형님이 요새 마음고생 많으시다면서요?》 천궁이 물을 때 강무달은 하마트면 눈물이 핑 돌번 했다. 《뭘, 그저…》 무달은 눈길을 어디 둘지 몰라 어눌하게 얼버무렸다. 《듣자니 현령 김계진이 형님의 딸 시내를 아낙으로 맞아들이지 못해 몸살 앓는다던데 무달형님은 어째서 얼싸 좋다 하지 않소?》 《딸년이 죽어라 싫어하누만.》 《시내가요? 허, 그 딸이 정신나갔나. 하지만 아무리 딸이 싫다 하더래도 애비가 하라면 했지 어디다 대고…》하고 천궁은 무달을 넌지시 건너다보며 든장질했다. 무달은 입을 다셨다. 《거 뭐, 나도 썩 좋은건 아닐세.》 《그렇다면 됐지, 속은 왜 앓으시오?》 《현령이 촌주를 시켜 족제비 닭 조르듯 하니 이거야 어디… 나라법 앞세우고 덤벼드는데 하늘에 대고 절구질할수도 없고…》 《형님은 평생 어진게 탈이요. 그러니 별 깍다귀가 다 숫보고 달려들지요.》 《그러게 말이네.》 《이제라도 마음 좀 굳게 먹으시오. 사람들이 욕합니다. 섰다죽어도 속에 주대가 있어야지 그게 뭐요?》 《글쎄, 그런 욕먹어 싸지, 싸!》 《하여튼 알았으니 어디 내가 한번 나서보리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네.》 《그런데 시내에게 맞춤한 신랑감은 있소?》 《없네, 아직…》 《그럼 내가 중매를 서볼가?》 《천궁이 중매를 서주면야 더 바랄게 없지.》 《좋수다. 그럼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시내를 한번 만나봅시다.》 무달은 큰 짐을 벗은듯 시내를 불러냈다. 천궁은 절하는 시내를 보며 감탄했다. 《네가 그사이 이렇게 예쁘게 번졌으니 현령이 탐내는구나. 게다가 네가 짜낸 보름새베까지 비단보다 더 고우니까.》 시내의 얼굴이 익은 꽈리처럼 빨갛게 됐다. 《그래 시내야, 넌 어떤 사내를 만났으면 하느냐? 나한테 끌끌한 총각들이 한둘 아니다.》 시내는 아래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어디 씨원히 말해봐라. 너의 아버지 부탁이니 내가 맞춤한 신랑감을 골라주련다. 그래야 현령인지 방울인지 하는 녀석의 성화도 그치지? 너의 아버지가 너때문에 속이 재됐다.》 《참, 아저씨도…》 《어서 수집어말고 말하라니까.》 《제 걱정은 마시와요.》 《그건 무슨 말이냐. 시집 안 간다는 뻔한 거짓말이겠지?》 《글쎄, 저에게는 있소이다.》 《뭐가?》 《그런 사람이…》 《저런?! …》 천궁은 짐짓 놀라며 무달을 보았다. 무달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아니야. 실은 저년이 눈에 콩까풀 씌워가지고 한 녀석하고 지분거리는데…》 《그게 누구요?》 《거 왜, 세달사 스님노릇하는 애꾸눈이 있지 않나?》 《오, 선종?!-》 《그래, 선종인지 뭔지…》 《그렇게 됐구만…》 천궁은 놀라운듯 말꼬리를 길게 뽑았다. 무달은 펄쩍 뛰며 안달아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천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땡중이라고 좋은 사내가 아니란 법은 없지. 원효라는 사람은 스님이였지만 공주님과 어찌해서 설총인지 하는 똑똑한 사람 만들었다니까. 그건 그렇고 시내야! 세달사 선종은 병신 아니냐.》 시내는 입술을 옥물었다. 그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솟았다. 《됐다, 됐다. 너를 모욕하자는건 아니다. 너야 똑똑한데 부실한 가시내처럼 한때 바람나서 그러지야 않겠지. 그런데 말이다. 시내야, 그 선종이라는 스님말이다. 그 사람에게서 네가 보는게 있었겠지?-》 하고 천궁은 일부러 말투를 느리게 끌며 물었다. 시내는 발끝만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고구려 평강공주를 아시오이까.》 《평강공주?!》 천궁의 짙은 눈섭이 꿈틀했다. 《그래서? …》 《평강공주님은 사람들이 바보라고 몰아주는 온달을 랑군으로 맞아 나라의 장수로 키우지 않았나이까.》 《그랬지.》 하고 천궁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하지만 시내야! 설마 너는 자기를 평강공주로 여기는건 아닐테지?》 《그렇나이다. 저는 평강공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이다. 그렇다고 평강공주님처럼 살지 못한다고야 할수 없지 않나이까.》 《그러니 너는 애꾸스님을 랑군으로 맞아들이겠다는거냐? 그가 진정 너의 온달이 될수 있다고 보느냐?》 《그렇게 해보겠나이다.》 무달이 듣다못해 끼여들었다. 《닥쳐라, 이년! 이년이 미쳤지, 미쳤어. 천궁! 제발 곧이듣지 마오.》 《아니요, 무달형님. 나도 선종을 모르는건 아니요. 그는 범상한 스님이 아니요.》 《아니, 이젠 천궁까지? …》 《형님, 아무리 길러준 애비라도 딸의 마음이 뜻이 있고 절개가 있다면 억지로 말릴수 없지요.》 《천궁, 그대는 장자요. 사람들이 떠받드는… 헌데 남의 집 일이라고 그렇게 말할수 있나. 천궁이라면 딸이 그 애꾸땡중놈과 눈맞아 돌아가도 좋다 하겠나?》 《시내만큼 똑똑한 처녀라면 마다하지 않을거요. 속병신이 천지에 구데기처럼 널렸는데 까짓 보름보기겉병신이 무슨 큰일이요? 겉보고 속보는건 고구려사람 같지 않소!》 《고구려사람은 또 뭔가? 생뚱같이…》 《하여튼 나는 시내의 맘이 좋다. 그러지 않아도 선종스님을 만나보려던 참이다, 따로…》 《어이쿠, 딸을 길러 병신에게 주다니…》 무달은 무릎을 꺾으며 주먹으로 땅을 쳤다. 천궁은 무달에게 소리쳤다. 《제발 넉두리는 그만하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