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 회)
15. 현령 김계진 키가 자그마한데 비해서는 몸이 도토리처럼 통통하고 이마는 때이르게 벗어진데다가 대추씨같은 눈을 가진 김계진이 한주의 보잘것없는 어느 현령으로 된것은 3년전이였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례사로운 일이였지만 조금이라도 그 가계와 본인에 대해서 아는 사람에게는 참 놀라운 일이였다. 계진은 신라왕경에서 태여나 서른이 되도록 타곳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였다. 벼슬아치노릇이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는 화랑도의 하나였지만 진정한 화랑도는 아니였다. 화랑도의 총지도자격인 국선(國仙)은 물론이거니와 그아래 문호를 가진 화랑도 못되고 다만 화랑아래에 있는 수천명 랑도가운데 하나였다. 화랑도의 자격이 덕망, 인격, 용모가 뛰여난자들이 된다고 하는데 계진은 그가운데 하나도 못 갖추고있었다. 또 그 수양방식인 서로 도의를 닦는것이라든지, 시와 음악을 즐긴다든지, 명산대천을 찾아 즐기는따위도 계진에게는 먼산보기다. 도의라는것이 무엇인지는 애당초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시와 음악은 술과 놀음을 위한 수단정도로 시늉이나 내고 명산대천을 찾아가는것은 질색이였다. 그가 화랑도가 된것은 다만 그의 아비가 진골의 귀족이라는것과 그의 성품자체가 그 어떤 일을 하는것은 질색이고 다만 술먹고 노는것은 빡했기때문이였다. 신라에 화랑도가 생겨난것은 진흥왕 37년(576년)이라고 한다. 태여날 때부터 녀자무리질투의 때가 끼였다. 남모와 준정이라는 두 녀자가 서로 질투하다 죽일내기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후 남자들에게로 넘어와 뛰여난자를 고르는 수양단체로 되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녀자냄새는 배여있었다. 이런 화랑도가 신라의 력사에 용감한자들과 뛰여났다는자들을 적지 않게 배출한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계진이 태여나 자라던 그때의 화랑도는 말만 그럴듯하고 사실상 난봉군들이 서식하기 좋은 무리로 변해버렸었다. 외아들로 태여난 계진은 겁이 많고 의존심이 강했다. 그래도 눈치 하나만은 빨라서 제가 좋아하는 술먹고 노는 일이 어떻게 하면 쉽게 이루어지는지 곧잘 알았다. 화랑도에 끼우는것은 계진이 바라는걸 쉽사리 이루게 해주었다. 김유신, 김흠춘, 죽지, 사다함, 관창, 원술 등 화랑도들과 더우기는 계진이 나서자란 대의왕이였던 경문왕 응렴도 화랑도였다는 이 사실은 계진이 자기를 돋굴수 있는 멋진 갑옷이였다. 용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계진이였지만 화랑도에 끼우면 능히 그 용기있는자처럼 남의 눈에 비칠수도 있었던것이다. 아무리 비루먹은 개라도 범의 가죽을 쓰며는 그앞에서 꾸벅 죽기마련인데 이것이 계진에게는 마음에 들었다. 계진은 화랑도의 정신적스승이라고 하는 원광법사가 내세운 세속오계 즉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림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択)가운데서 임금에 대한 충성이니, 부모에 대한 효성이니, 벗에 대한 믿음이니 하는것은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수 없다. 다만 조금 그럴사하게 여겨져 실천하는것은 네번째 림전무퇴(싸움에 닿아 물러서지 않는다는것)와 살생유택(생명을
죽이되 가려서 하라는것)인데 이것도 서로 버무러져있었다. 한마디로 싸움에 닿아 물러서지 않는것은 아무때나 그런것이 아니고 가려서 한다는것이다. 나름대로의
처세술이였다. 하여튼 계진은 화랑도에 끼운 보잘것없는 랑도로서 화랑들의 심부름이나 들어주는 값으로 나름대로의 자기 안락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결국 계진은 화랑도에 끼운 난봉군에 불과하였다. 서른 넘은 사람이 집안에서는 아직도 기저귀 찬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밖에 나가서는 노비처럼 심부름이나 들어주던 계진도 달라지는 때가 왔다. 바로 살인사건에 관계되였기때문이였다. 하루는 계진이 술먹고 취해서 다른 화랑의 랑도들과 대판싸움이 붙었는데 계진이 그날은 승기나는 때라 《림전무퇴!》를 웨치며 앞장섰다. 겁쟁이가 최대로 겁먹으면 발악으로 용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대개 살인으로 이어진다. 정상적인 용기가 아니고 발광적이기때문이다. 계진이 이날 그러했다. 계진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싸우다가 한 랑도의 머리를 박살내서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 이 사건은 다른 때와 달리 계진에게 몹시 불리했다. 그무렵 계진의 아비는 한주의 이찬 김요의 모반에 관여한것으로 하여 말밥에 오르고있었다. 그러나 김요와 그 추종자들은 사형당했지만 계진의 아비는 살아남았다. 계진의 아비가 김요의 모반에 관여했는지 안했는지 뚜렷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다는데도 있지만 기본은 계진의 아비에게 사촌동생벌 되는 시중 준흥이 계진의 아비를 비호하고나섰기때문이였다. 시중 준흥은 정강왕의 유지를 받들어 진성녀왕을 즉위시킨 사람인지라 그의 권세는 대단하였다. 다라니은어에 나오는 《판니 판니 소판니…》에서 《판니》가 바로 준흥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나라망칠 두 대신인 각간 위홍과 시중 준흥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이런 준흥이 도사리고있는 한 계진의 아비는 누구도 다칠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계진의 아비가 김요의 모반에 관계한것은 사실이였다. 준흥자신도 그걸 알고있었다. 준흥은 김요의 모반에 대해서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대체로 어떤 일에 극성인 사람을 보면 크게 두가지 원인때문이다. 서로 비슷비슷하지만 하나는 리익이 되는 일 즉 먹고 입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물이라든가 권세를 쟁취하기 위한것이요, 다른 하나는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이 두가지는 서로 어슷비슷하지만 그 양상이라든가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난다. 첫째가 무엇이 생겨나게 하는 리득을 얻기 위한것일 때 이것은 자기의 리익뿐아니라 남의 리익에도 어쨌든 관계되는것이기도 하다. 재물을 만들어내고 재간을 키우는것이 바로 그렇다. 그러나 둘째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술수로서 이것은 어떤 다른것을 없애버림으로써만 성립한다. 이때의 극성은 애매한 사람을 죽게 만든다. 자기의 속심이라든가 어떤 잘못을 숨기려는 사람이 종종 이런 극성을 부리는데 그 결과는 타방을 무자비하게 죽이는것으로 끝난다. 준흥의 경우는 바로 둘째에 해당된다. 역적모반이라든지 대사건이 일어날 때 흔히 앞장서서 열을 올리는 사람을 보며는 왕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든지 그러루한 순수성보다 자기의 정체를 가리기 위한 흉계가 더 많다. 자기의 결백성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여 죽여버리는것에 열을 올릴수록 그는 살아남게 되는것이다. 재미있는것은 이런 사람들은 례외없이 량다리치기하는 사람들이며 한편 약자들이라는것이다. 김요의 모반이 진압되는걸 본 준흥은 속이 켕기였다. 이런 준흥이 안도의 숨을 쉬였다. 자기의 사촌형 즉 계진의 아비가 갑자기 죽은것이다. 계진의 아비가 실지 병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놀라서 죽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모략에 의해 죽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죽은 사람에게는 죄를 따지지 않으니 준흥에게 다행이 아닐수 없었다. 준흥이 모반사건으로 하여 속을 썩이다가 사촌형이 죽음으로써 한숨 돌리려는데 이번에는 조카벌이 되는 계진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계진이 사람을 죽인것이다. 이 사건은 잠잠해질사하던 준흥의 가슴에 또다시 풍파를 일으켰다. 벌써 여러 적수들이 계진의 사건을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김요의 모반사건과 결부하여 다시 파헤칠 구실을 잡으려고 한다. 준흥은 계진을 불러들였다. 다 큰 조카를 뭇매질하고나서 준절히 타일렀다. 너는 진골의 피를 받은 사람이다, 네가 어떻게 살든 관계치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죽는 마당에 와서까지 못난이처럼 놀아대는건 참을수 없다 하고. 여느때라면 삼촌의 훈계가 들어올 귀구멍이 꽉 막혀있던 계진이였다. 그러나 아비의 죽음이 충격을 주었는지, 아니면 살인친 죄의식이 그랬는지 계진은 눈을 끔벅이며 고스란히 매를 맞고 핀잔을 들었다. 제법 이를 사려물기까지 했다. 노죽인가? 아니다. (번데기가 나비로 된다.) 하고 준흥은 계진을 보며 생각했다. 준흥은 계진의 뒤를 조종하기로 결심했다. 남들 같으면 울고불고했겠지만 준흥은 그속에서 살아날수 있는 길을 찾았다. 바로 그것이 계진을 변방고을의 벼슬을 시키는것이였다. 준흥은 당시 사벌주에서 일어난 원종, 애노의 반란을 진압하다 죽은 촌주 우연을 대신하여 그의 아들을 촌주로 등용한 일을 상기하여 계진이
벼슬살이할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였다. 준흥의 적수인 대마 영기의 패거리들이 그 부당성을 걸고들었지만 공연히 파리 나래질에 불과했다. 준흥이 자기의 조카 계진을 벼슬시키는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준흥의 사촌형인 계진의 아비와 계진의 일이 무죄일거라고 중얼거렸다. 뻔뻔스러운것에 곧잘 속아넘어가는것이 예나 지금이나 있는 사람무리의 어리석음이요, 그것이 사실로 돼버렸다는데 그때 신라정치의 그다운 약점이 있었다. 준흥은 화랑도의 기풍을 들먹여 계진의 살인사건을 무마하는 한편 녀왕에게 품하여 계진을 한주의 관리로 임명케 하였다. 살인한 난봉군이 관리가 된다는것은 보통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것이였으나 진성녀왕때의 형편을 안다면 능히 그럴수 있었다. 죽은 아비의 뒤를 이어 먼 변방을 관리하는 현령이 된것은 오히려 녀왕의 칭찬을
받았다. 어수선한 세월이라 서울의 말단벼슬이라면 몰라도 변방의 관리, 그것도 한주 현령으로 가는것은 누구나 꺼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조종의 내침을
받아가는 벼슬이지 자원해서 가는것은 아니였다. 벼슬자리, 그것도 서울도 아니고 변방말직의 벼슬자리를 사는것은 시중 준흥에게 큰게 아니였다. 비루먹은 강아지도 리득만 있다면 능히 벼슬감투를 씌울수 있는 세월이였다. 그까짓 벼슬자리는 별일이 아닌데 문제는 조카녀석의 태도이다. 처음 준흥은 조카녀석이 이름만 걸어놓고 벼슬물계를 아는 믿음직한 녀석을 붙여 도와주려 하였다. 그런데 변방고을의 현령으로 가라는 령이 내리자 조카녀석은 순순히 받아삼켰다. 이게 알고 그러는지, 아니면 영 모르는 바보흉내인지 한동안 준흥은 기웃거렸다. 그러나 준흥은 인차 조카의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계진의 낯빛은 이전처럼 바보스러운 표정과는 다른것이 떠돌았다. 마치 무슨 깨달음을 얻은듯 한 낯짝이였다. 저게 바로 스님들이 말하는 《부타!》라고 소리친 석가모니가 아닌가. 그럴수도 있는것이다. 집안이 진골인데 아무렴 계진이라고 늘 바보일수는
없지 않는가. 역시! 준흥은 조카에게 흡족했다. 그래서 신심을 가지고 앞으로 할 일을 조목조목 말해주었다. 먼저 한 일년 현령자리를 차지하고있되 나서지는 말고 눈치를 배워라, 그 다음에는 변방 벼슬아치들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듯이 요령껏 재물을 모아 장차 서울로 올라올 밑천을 마련하거라, 기껏 사오년이면 서울로 올라올 길을 터놓을테니 그때쯤 되면 너의 과거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던 떠벌이들도 잠잠해질게고 또 네가 서울에 올라와 이
삼촌의 한쪽귀퉁이를 받쳐주면 집안의 부귀영화는 명산대천처럼 오갈데 없는것으로 될게다. 계진은 삼촌의 훈시를 용케 알아들었다. 그는 부임한 때로부터 1년가까이 현에서 제기되는 일체 공무를 아래것들이 다 처리하도록 맡겨놓고 저는
팔짱끼고 앉아있는척 하였다. 그렇게 되니 신임현령에 대한 소리는 자연히 눅잦혀졌다. 계진은 일년이 지나서부터 드디여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변방으로 쫓겨온듯 한 억울함과 낯선 고장에서 의례히 있기마련인 소심성도 없지 않았다. 시골은 시골로서 로회함과 비굴함이 있었다. 계진이 시중 준흥의 조카라는것을 알게 된 주, 군의 우두머리들은 계진을 서뿔리 대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계진이 벼슬에서 초년이라 하더라도 그뒤에는 임금을 끼고도는 시중이 있으니 이게 혹시 자기들을 물어메치지 않겠나 하여 불안해하였다. 억지아첨이 슬슬 내배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계진은 벼슬을 알지도 못했거니와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어쩔수없이 변방고을의 벼슬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벼슬에 찌들은 놈들보다 더 새롭고 더 많은것을 깨달았다. 벼슬은 계진에게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자기앞에서 사람들이 설설 기는것을 보면서 계진은 이것이 바로 권력의 맛이라는것을 재빨리 깨달았다. 늦게 배운 서방질에 곱새 베낀다고 계진은 비록 고을 벼슬아치라고 하더라도 제앞에서 꾸벅 죽는것이 아주 흡족하였다. 차츰 밤낮
우는소리를 하는 삼촌 준흥이 우습게 보이였다. 계진은 아직 젊었고 또 벼슬살이의 쓰고 단맛도 깊이 느껴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어찌다 맛본 그 권세가 바로 자기가 앞으로 영원히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삶의 진맛이라는것을 새겨넣었다. 상부, 상관, 하여튼 저보다 센 웃자리에 있다더라 하면 그가 누구든(설사 그가 병신,
바보라고 하더라도…) 기름기 찰찰 도는 아첨을, 저보다 아래에 있다더라 하면 그게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가시돋힌 사나움이 벼슬아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계진은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벼슬이란 참 기가 막히는구나. 그래서 죽는것도 마다 않고 싸우는것이겠지.) 하고 계진은 생각하였다. 이때 와서 계진은 무슨 화랑도의 세속오계나 세상리치에 대해서 떠들어대는것은 함부로 벼슬의 재미를 남에게 넘겨줄수 없어 꾸며낸 교활한 술책이라고까지 코웃음쳤다. 계진이 벼슬을 한지 이태만에 처음으로 삼촌에게 자기 고을에서 나는 보름새베를 보낸적이 있는데 이것이 뜻밖에 황금알을 낳는 암닭이 되게 해주었다. 준흥은 계진이 보내온 보름새베를 받고 몹시 좋아하였다. 그것은 당시 서울에서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귀족들에게 있어서 당나라비단에 못지 않았다. 좋은 례물은 곧 더 높은 벼슬과 재부를 낳는 알이라는것을 계진은 구태여 삼촌이 일러주지 않아도 깨닫고있었다. 계진은 보름새베를 짜는 사람이 강무달의 딸 시내라는걸 촌주로부터 얻어듣고 찾아왔다. 사실은 보름새베때문에 왔는데 와서 보고나서 엉뚱한 욕심이 생겼다. 《알낳는 암닭이 있었으면…》 베도 베지만 사람까지 탐났다. 그때부터 강시내를 손아귀에 넣기 위해 뛰였다. 처음엔 현령의 위엄으로 으름장 한마디면 될줄 알았다. 《현령의 댁으로 들여보내라.》 그런데 뜻밖에도 처녀는 물론 어리숙해보이는 무달에게까지 퇴박을 맞았다. (이 촌놈들이?) 물고를 내려고 하였다. 다행히 촌주가 《이런 일은 그렇게 하는것이 아니올시다.》 하고 귀구멍에 냄새나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여기 한주는 여느곳하고 달라서 억지가 통하지 않는다. 만일 억지부려 될것 같으면 벌써 일이 됐을것이다. 닭알에도 뼈가 있는 법, 여기에는 다른 주, 군, 현과 마찬가지로 호족들이 많은데 이것들이 다른 호족들과 다른것은 나라법을 우습게 안다는것이다. 나라법을 우습게 안다는것은 신라를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고있다는것이요, 그것이 백성들과 호족들이 혈연적으로 굳게 맺어지게 한다는 소리였다. 이름좋은 하늘타리일망정 계진은 한때 화랑도였다. 무리의 힘이 어떤가 하는것을 륙감으로 알고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계진은 이런 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달의 딸을 첩으로 맞아들인다면…》 억지가 아니고 인정으로 끌라는 소리다. 계진은 눈치가 무디지는 않았는지 제꺽 알았다. 그도 역시 이 시골이 보기는 어수룩해도 분위기가 여느곳하고는 다르다고 보았다. 서울의 한다하는 귀족들도 한주, 패강진 하면 꺼림직해한다. 《그러니…》 하고 계진은 수를 쓰기로 했다. 촌주를 통해 두둑이 재물을 보냈다. 그런데 얼뜬해보이는 무달이 덥석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는 현령의 은총을 특별히 받을만큼 하는것이 없은즉 공짜로 받을수
없다는것이다. 조세를 착실히 바치는 사례라고 하나 오히려 의심만 샀다. 《수낮은 놀음이라는건가?》 하며 현령 계진은 이발로 손톱을 깨물었다. 다른 수가 없는 한 촌주를 내세워 조르는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