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 회)
14. 아버지와 딸 강무달은 동네 삼찌는 일을 도맡아해주었다. 그 일은 여간만 고되고 위험한 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불볕아래 낟알가꾸는 농부도 땀흘리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삼찌는 일만은 꺼리기가 일쑤다. 산비탈이나 둔덕진 곳에 한길 되게, 6자 내지 7자넓이 되게 굴을 파고 아궁을 내고 판돌을 깐다. 판돌우에 삼을 묶어 가지런히 세우고 지지목을
건너댄다. 다시 덤불이나 나무를 쌓아 물길을 낸다. 이렇게 한 다음에 불을 어느 정도 때고 어느때 김을 막는가 하는것이 기본인데 보긴 쉬워도 다
요령이 있어야 한다. 눈맛, 손맛에 요령이 붙지 않아가지고서는 불과 물김에 데기 쉽고 더우기는 삼을 아예 버릴수도 있는것이다. 아차해서 삼을 잘 찌지 못하면 그건 랑패다. 나라에 바치는 백성의 조세라는것이 크게 세가지 즉 먹는것, 입는것, 력역(力
役)이다. 그가운데서도 까다로운것이 입을것에 속하는 마(베)를 내는것이다. 베는 삼에서 난다. 한결에 조 두석정도 내는 세도 봄내 여름내 땀흘려 가꾼 곡식이여서 물론 개울물 떠주듯 바치는것은 못된다. 그런데 베를 내는것은 그런 피땀 파는듯 한 아픔과 함께 그 마련이라는게 여간만 까다롭지 않다. 입으로 들어가는 쌀은 농사군의것이나 나리님의것이나 같고같지만 입는것은 그렇지 않다. 좋은것은
나리님께, 나쁜것은 상놈에게 귀천을 가리는 징표가 입는것일수도 있다. 베는 그래서 받는 까박이 여간 심하지 않다. 에라, 언제는 안 그랬더냐. 또 살자! 춘하추동 년년사로되 농부일생 무한이로다. 농민들은 좋은 땅을 골라 터밭보다 먼저 개똥, 닭똥을 모아뿌리고 땅을 잘 고루며 새끼줄치고 고랑을
째며 삼을 심는다. 땅이 나쁘면 삼이 잘 자라지 않는다. 또 너무 배거나 거름을 주지 못하고 가꾸기를 잘못 해도 헛아지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농부들은 낟알보다 더 애지중지 키운다. 이렇게 키운 삼을 8월에 베여 단으로 묶어 찌는데 삼을 잘못 찌면 그야말로 한해농사 페농중에 페농이다. 삼을 잘못 쪄서 세를 못 내면 그만큼 낟알을 베와 바꾸어 바쳐야 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삼을 찔 때 사람들은 일손을 거들어주면서도 삼찌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몫을 떼여주는것이다. 아궁에 불을 때는 무달의 옷은 화락하게 젖어있었다. 불을 헤집어 판돌을 보니 때가 된것 같았다. 무달은 코를 힝- 풀고나서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자, 시작해봅세다.》 하고 말하고 삼굴우로 올라갔다. 조력군이 그에게 물이 담긴 함지를 올려주었다. 무달은 삼굴우에 낸 구멍으로 물을 쏟아넣었다. 김이 새여나오며 달아오른 판돌에 물이 닿는지 쿠릉-쿠릉- 소리를 내며 김이 뿜어나오기 시작하였다. 무달은 더욱 잽싸게 여러 구멍들에 물을 쏟아넣는다. 까딱 잘못하면 뿜어나오는 김에 데는것은 둘째치고 삼을 태우거나 설익힐수 있는것이다. 무달은 비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쿠릉-쿠릉- 쏴-쏴- 조력군들도 땀을 흘리며 물함지를 올려밀었다. 《된것 같수다.》 무달은 빈 함지를 내려주며 말했다. 그가 물러나며 손짓하자 조력군들이 흙으로 김이 나오는 구멍들을 메웠다. 마침내 일은 끝났다. 무달의 온몸은 물에 빠진듯 젖어있었다. 그는 함지에 물을 떠서 손을 씻고 얼굴에 푸푸 물을 뿌렸다. 조력군으로 일손을 거들어주던 배나무집아낙이 물었다. 《아주바니, 잘 되였수?》 무달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고나서 고개를 끄덕이였다. 아낙의 입이 벙글써해졌다. 그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무달에게 내밀었다. 《수골했수다.》 무달은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래일 아침에 헤칩세다.》 무달은 삼굴을 살펴보고나서 말했다. 배나무집아낙과 조력군 두사람이 먼저 자리를 떴다. 무달은 속이 출출해났다. 그는 다시한번 삼굴을 둘러보고 집으로 향했다. 《올해 받게 될 벌이삼으로는 꼭 딸의 옷감을 마련해야겠다.》 하고 무달은 중얼거렸다. 베도 심고 벌이베도 받지만 그럭저럭 세를 바치느라 언제 한번 펑하니 딸의 옷을 해주지 못했다. 동네는 말할것도 없고 현내에서도 베 잘 짜 소문난 딸이다. 누구나 베짜기를 다 잘하는것은 아니다. 더우기 보름베는 여간 솜씨가 없어가지고는 좋은 소리 못 듣는다. 그러나 무달의 딸이 짠 보름베는 보는 사람들이 혀를 차게 하였다. 비단 못지 않다고 말했다. 강무달은 그런 딸이 늘 여덟새베옷을 입는것이 마음에 걸리군 하였다. 아들은 장한 맛에, 딸은 고운 맛에 키운다는데… 대장쟁이집에 식칼없다고 아비는 삼찌는 일을 도맡아하고 딸은 보름새베를 짜 소문내도 그들은 언제 한번 보름새베로 옷을 지어입지 못한다. 가난때문이다. 해마다 조세에 몰려 어쩌지 못한다. 마음이 어진지, 약한지 무달은 그저 촌주나 현령의 집사가 얼마만큼 조세를 바치라면 꿀꺽소리 한번 못 내고 그대로 꼬박꼬박 바친다. 그리고는 빈손을
털며 멍하니 한숨을 쉬군 하는것이다. 그런 무달을 두고 이웃들은 동정하기도 하고 숙맥이라고 욕질도 했다. (그 누구와도 다투고싶지 않다.) 하고 무달은 생각한다. 나리님들과는 더 그렇다. 배짱있는 사람들은 촌주나 집사들과 사리를 밝혀가며 싸워서 부당한 조세를 안 내기도 한다. 그런데 무달이 어쩌다 한번 그럴라치면 어찌나 왝왝거리는지 그저 욕질뿐이다. 그건 아니한것보다 못했다. (나는 마음이 약해!) 하고 무달은 슬프게 생각한다. 강이 나졌다. 무달은 땀이 난 몸을 씻고싶었다. 그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잠뱅이를 벗고 풍덩 몸을 잠그었다. 한참 시원하게 몸을 씻고있는데 강아래쪽에서 사람이 올라왔다. 촌주였다. 그도 미역감았는지 머리가 젖어있었다. 무달은 서둘러 물에서 나왔다. 《아, 촌주님이시우?》 촌주는 흥흥 코노래를 부르며 올라오다가 무달을 만났다. 그의 낯빛이 갑자기 잰내비엉뎅이로 돼버린다. 《난 또 어떤 놈이 남 미역감는데 물을 흐려놓나 했지? 에이, 고약하게…》 하, 거참. 강물은 맑은 그대로 흐르는데 하면서도 무달은 또 꾸벅 죽는다. 《촌주님이 미역감는줄 몰랐수다.》 《에, 그저 어떤 놈인지 당장 죽살을 내려다가 참았네.》 《정말 안됐수다.》 촌주는 다시 표정을 바꾸어 비죽이 웃는다. 좋아서 그런게 아니고 억지다. 《이봐, 무달!》 저보다 스무해는 더 나이든 무달에게 반말질이다. 이름좋은 하늘타리촌주다. 촌주라기보다 촌구석의 악서리패대가리가 더 어울릴게다. 이런 녀석이 어떻게 촌주가 되였는지 참. 나라가 길이 번영할 징조다. 그래도 이 악대가리가 현령의 제일가는 믿음을 받는다는걸 사람들은 다 안다. 《무달, 내 그러지 않아도 임잘 만나러 가던 길이야…》 이분이 또 무슨… 《다름이 아니고 요전번 현령나으리님 말이야…》 《현령님 말이라니요?》 《거 왜, 자네 딸을 현령님에게 보내라는것 말이야… 그새 좀 생각했나?》 《아직…》 《뭐 아직? 소불알 떨어질 때까지 아직인가.》 무달은 속이 후두둑 뛰였다. 《사정 좀 봐주시우.》 《사정은 무슨 사정? 아, 예로부터 싸움은 말리고 에? 거 뭐라드라? 그렇지! 남녀간의 정사는 붙이랬다고… 현령님의 작은댁이 어딘가. 그래, 딸에게 말했나?》 《아직…》 《아직, 아직! 이 비루먹은 소새끼! 딸에게 말해봐! 얼싸 좋다 하지 않으리.》 《그렇게야 어떻게…》 《딸이 팔자 고치는거야, 팔자. 애비라는게 딸을 한평생 고생만 시키겠다고 해서야 어디 쓰나.》 촌주는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 이리저리 말투를 바꾼다. 무달은 입안에서 《안되우.》 하는 말이 터져나오려는걸 가까스로 참는다. 그랬다가는 이녀석이 또 무슨 지랄을 부릴지 모른다. 성미가 사나운 놈이 그 말만 했다가는 당장 뼈다귀를 꺾자고 할것이다.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 《벌써 두번째야, 두번째. 알지, 나는 세번 넘어 비라리를 하지 않는다는걸? 현령님의 작은댁으로 딸을 보내겠다고 내가 약속한것만큼 난 꼭 하고야말아. 내가 뭐 눈곱낀 중매군늙은인줄 알아?》 촌주는 오드득 이발을 갈며 두손가락을 펼쳐 흔들었다. 무달은 허청허청 집으로 걸어갔다. 강무달은 딸을 두고 고민이 컸다. 다 큰 딸을 둔 부모치고 생각이 어찌 많지 않으랴. 부모들은 딸의 행복과 그로부터 오는 자기들의 기쁨을 바란다. 그것은 권리다. 그래서 걱정도 많고 기쁨도 많은것이 다 큰 자식을 둔 부모들이다. 그러나 무달은 의례히 맛볼 기쁨은 깡그리 사라지고 근심만 커갔다. 누구는 딸을 데려갈 사위감을 찾지 못해 야단이라는데 무달에게는 거꾸로 사위될 녀석들이라는게 이리새끼들같은것이여서 야단이다. 앞뒤로 쫓기는 판이였다. 앞에는 현령이 달려들고 뒤로는 외통눈이땡중놈이… 둘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면 모르겠는데 둘 다 마음에 없다. 《어이구… 이를 어쩌누?》 어느때는 촌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현령의 장인이 되여봐? 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러나 딸은 현령이라면 죽어라고 싫어한다. 《차라리 죽고말겠다.》 하고 딸은 현령소리만 나면 말했다. 이게 보통 독한 마음이 아니다. 일찌기 마누라를 여의고 딸을 키울 때 딸덕을 크게 볼 생각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랑패에 빠질줄 또 어찌 알았으랴. 요즈음은 도무지 먹는게 살로 가지 않는다.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무달은 딸의 마음을 리해한다. 딸은 현령나으리보다 외통눈이땡중을 더 좋아하는가부다. 그것이 무달에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것이였다. 그 외눈깔땡중놈은 마음에 없다. 그러나 딸은 다른 모양이다. 마음이 모질지 못한 무달은 그저 꿍꿍 앓기만 한다. 그러는 사이에 현령은 더욱 보챈다. 《어이구… 이를 어쩌누?》 무달은 무너지듯 한숨을 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