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13. 길에서 만난 어떤 사람

 

궁예는 여느 스님들과는 달리 언제나 길을 독차지하고 걷는 버릇이 있었다. 마주 오는 사람은 궁예가 스님인줄 알기에 흔히 스님들이 그러하듯 의례히 길을 피할줄 알지만 궁예는 고집스레 가운데길을 잡아 걸었다. 그러면 상대는 제풀에 길을 비켜주며 지나쳐서는 혼자 욕을 해대군 하였다. 그런 욕쯤은 궁예에게 있어서 말귀때기에 스치는 바람소리나 같은것이다. 힘이 넘쳐나는 젊은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궁예는 뭔가 거칠것이 없다 하는 투로 길을 걸어갔다.

그러던 궁예에게 삿갓을 쓰고 오는 사람이 눈에 띄였다. 궁예는 이번에도 삿갓을 마주보며 꼿꼿이 걸어갔다. 삿갓은 그런 궁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곧추 걸어왔다. 길가운데서 두사람이 딱 마주쳤다.

삿갓은 갓을 조금 들치고 궁예를 바라보았다. 궁예도 기다린듯 상대를 마주보았다. 삿갓의 두눈동자와 궁예의 한눈동자가 칼날처럼 부딪쳤다. 두눈보다 먼저 한눈이 껌벅했다. 이상한 일이였다.

궁예는 저도 모르게 한발 비켜섰다.

삿갓은 아무 일도 없는듯 가던 길을 갔다.

승복을 걸친 늙은이인데 눈길이 여간 맵지 않았다.

궁예는 왜 제가 먼저 물러섰는지 알수 없었다. 한동안 삿갓의 뒤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궁예는 무슨 끈에 매달린듯 삿갓의 뒤를 따라갔다.

삿갓은 궁예가 따르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걸어갔다. 궁예는 삿갓이 분명 왜 따라오느냐고 물을줄 알았다. 그러나 삿갓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사람을 따라가는 궁예는 마치 주인의 뒤를 따르는 개같았다.

《저… 로승님!》

마침내 궁예가 참지 못하고 불렀다.

삿갓이 멈춰섰다.

《로승님!》

《왜 그러느냐?》

《혹시 도선스님이 아니시오이까?》

삿갓이 돌아섰다.

《너는 누구냐?》

《저는 세달사에 있는 선종이라 하옵니다.》

《그런데 왜 길가는 사람을 불러세웠느냐?》

《도선스님이 맞소이까?》

《그렇다면?》

《아, 소승이 묻고싶은것이 있소이다.》

《뭐냐?》

《속세에 떠도는 말이 헌강왕이 스님의 명성을 듣고 사람을 보내여 궁중에 모셨다고 하온데… 그게 사실이오이까?》

삿갓의 눈시울이 쪼프려졌다.

《그건 왜 묻느냐?》

궁예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헌강왕의 아들이올시다. 그래서 그분에 대해서 알아보고싶소이다. 내가 진짜 왕의 자식인지 아닌지…

그런 소리는 어쩐지 저 눈매가 사나워보이는 스님에게 벼락맞을 소리로 들릴것 같았다.

《저… 스님께서 풍수지리에 밝으시여 으뜸이라 하던데…》

궁예는 헌강왕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듣자 로승의 낯빛이 변하는것을 보았기에 서둘러 말꼬리를 둘러쳤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만하면 제가 눈치 하나 빠르다고 여겼다.

《이놈!》

별안간 터진 고함소리가 궁예를 우뚤 놀라게 했다.

《부처님 믿는 사람이 속에 없는 말을 함부로 하느냐? 눈이 하나래서 곧은배기인줄 알았더니 입에 두 소리를 담는구나.》

그 소리에 궁예는 이때껏 뻣뻣하던 뼈를 흐트리고 땅에 풀썩 두 무릎을 댔다.

《도선스님! 이렇게 만나뵙게 된것도 부처님의 연줄인줄 아오이다. 부디 소승을 가르쳐주시옵소서.》

《흐음, 네가 그래도 배짱은 있구나. 그래 뭘 알고싶으냐, 헌강왕이냐 풍수냐?》

궁예에게는 이미 헌강왕이니, 경문왕이니 하는 말이 멀리 사라졌다.

《풍수입니다.》

《뭣때문이지?》

궁예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궁예가 풍수에 대해서 알고싶은지는 이미 오랬다. 풍수를 알아 다만 그것으로 학문을 떨치고 어느 묘자리, 집자리따위를 잡아주거나 일신의 편안을 위해서가 아니다. 봉술, 검술을 배운것으로 그치지 않고 병법에 대해서도 대단히 흥미를 가지고있는 궁예에겐 언제부터 병법의 도, 천, 지, 장, 곡의 5대요소의 하나인 지리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고있던터였다. 검술까지는 요령으로 배워낼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수가 갖추어야 할 초보일뿐이다. 웬만큼 담있는 부랑아도 그쯤은 배워낼수 있다. 궁예는 그런것은 하찮은것이라고 여겼다. 나름대로 궁냥이 깊은 궁예에게는 도, 천, 지 같은것을 깨달아야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스승이 없이는 바라는대로 배워낼수 없었다. 도선스님이라는분이 풍수지리에 뛰여난 경지를 갖추고있다는 소문이 났다. 그 소문이 태백산인지 백계산인지 어디서 수양하는줄 알았는데 그즈음에 한주, 더우기는 패강진일대에도 자주 걸음을 한다는 소리를 동냥들은 궁예는 벌써부터 도선스님을 한번 만나 가르침을 얻으리라 생각하고있었다. 그래 두루 소문도 쫓아보고 행방을 찾아 걸어도 보았지만 만날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바로 도선스님일줄이야…

《소승은 한번 큰일을 해보고싶소이다.》

궁예는 저만 아는 소리를 했다.

《하하.》

도선이 큰소리로 웃었다.

궁예는 놀라 도선을 바라보았다.

《네가 승복을 걸친 주제에 헌강왕이 어쩌고저쩌고하는걸 보면 부처님의 독실한 제자가 되기보다는 속세에 뜻을 두고있는게 분명한데 큰일이라면 나라를 희롱하자는거냐?》

궁예는 꺽 숨이 막혔다. 그건 여태 궁예가 속깊이 파묻고있는 비밀이다.

이 늙은이는 귀신인가, 사람인가?

《선종이라 했느냐?》

《예!》

《속세의 이름은 뭐냐?》

《궁예라 했소이다.》

《궁예라…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되 성이 없으니 분명 귀족은 아닐테고… 그래도 네가 검술개나 하고 싸움개나 하였겠다. 이름이 곧 사람은 아니로되 그쯤 값에는 가니까…》

《옳소이다.》

《옳기는 뭐가 옳아, 네가 그래도 속은 살아서 큰일을 해보겠다고?》

《예.》

《그렇단 말이지. 하긴 착각하는것도 자유니까…》

《저를 믿어주시오이다.》

《믿고 안 믿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거다.》

《그렇소이다.》

《선종, 아니 궁예야! 내 말을 명심하거라. 무릇 사물이나 사건 그리고 그사이 짜임새를 보는데서 최소한의 균형잡힌 관찰과 리해를 가져야 한다. 그걸 위해 두눈의 멀고가까운 기능으로써의 각도와 거리의 파악이 필요하다. 두눈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너는 눈이 하나다, 하나!》

궁예는 모욕감을 느끼며 한눈을 부릅떴다.

도선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너의 병신을 놀리는게 아니라 너의 마음을 걱정하는게다. 너의 마음은 허심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마치 드러난 칼바위와 같다. 그런 마음 가지고는 누구 휘하의 장수로 되기나 딱 알맞다. 네가 운이 좋아 널 도와줄 사람이, 너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있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니 너는 풍수지리나 알게 아니라 좋은 마음을 만나기 위해 애써라.》

도선스님은 무릎꿇고있는 궁예를 한동안 내려다보고나서 돌아섰다.

궁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도선의 뒤를 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스님, 이제 두고보시오이다. 내 기어이 스님에게서 그 지리를 배우고 뜻을 이루겠나이다. 그때 가서 스님이 뭐라 하겠는지… 한번 한다하면 못해본적이 없는 궁예오이다.》

궁예는 무릎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씩 웃고 가던 길을 갔다. 그의 걸음은 백마산으로 향했다. 바로 거기에 조갑지에 담은 웅담을 주어야 할 처녀가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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