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 회)
12. 꼬부랑깽, 꼬부랑깽 선종은 세달사를 뒤에 남기고 걸으며 투덜거렸다. 《흥, 네까짓것들속을 내 다 안다. 거미같은것들! 굴속에 잔뜩 들어박혀서 속에 없는 불경을 웅얼웅얼 외우는체 하지만 그게 말짱 먹이를 챙기는 거미그물인줄 내가 모를줄 아느냐. 부처님은 속일지 몰라도 나는 못 속인다, 헹.》 세달사에 몸담아온지도 어언간 10년, 그래도 처음에는 얼마나 신성하게 여겼던가. 그래서 결심 또한 얼마나 컸던가. 열살 남짓하던 궁예에게 있어서 세달사의 주지만큼 훌륭한분은 없었다. 그가 외우는 불경만큼 세상의 진리를 다 담은것은 또 없어보였다. 궁예는 부처님의 제자로 립신출세하리라 결심다졌다. 그러나 어린이가 본 세달사는 그후 다시 십년이 지나면서 그 한계를 낱낱이 드러냈다. 혈기왕성한 청년이 된 궁예에게 세달사는 좁은 헛간에 불과하였다. 그는 천성이 이렇게 좁은 곳에 머물러있지 못하게 된 팔자인듯 하였다. 우선 사람이 보기 싫다. 주지도 주지려니와 지정이란 놈은 더욱 보기 싫다. 지정이란 놈은 꼭 쥐새끼나 한가지다. 천상 건달군인 녀석이 제일 살아가기 좋은 곳이 이런 곳일것이다. 그리고 이런 건달군이 살아가기 제일 좋은 때가 지금처럼 사회가 썩어빠진 그때일것이다, 뭐가 옳고그른지 흐리멍텅한 그런 때가. 그래서 녀석은 자기 둥지를 누가 어쩔가 해서 노상 없는 수염을 쭝긋거리군 한다. 선종이란 대바르고 머리가 총명한 젊은이가 마침내 주지를 밀어내고 이 사찰을 차지하지 않을가, 그러면 지정이란 몸뚱이는 도대체 어디에 간단 말인가 해서 안절부절 못한다. 살겠다고 악을 쓰는걸 봐서는 불쌍하고 미물같은게 주제넘는걸 보면 밉다. 그를 보며 선종은 속으로 웃는다. 녀석, 나살이나 든게 전탕 헛것만 찼어. 놈아, 난 원래 이런 곳에 줄창 구겨박혀있고싶지 않아. 때가 되면 휭 나갈텐데 뭘 알품은 새새끼모양그래.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가만있으라니까. 그럼 나도 곱게 나가지. 선종은 고개를 쳐들고 답답한 가슴에 바람을 들였다. 선종은 십년전의 자기를 돌이켜보며 혹시 자기의 일생은 십년을 고비로 해서 변하지 않나 하고 짚어보았다. 십년전의 궁예는 비록 홀어머니슬하의 가난한 소년이였을망정 제또래에서는 우두머리노릇을 하며 지냈다. 키는 같은 나이또래보다 주먹 하나만큼 컸고 어깨가 넓으며 허리는 범의 허리처럼 가늘었다. 궁예는 마을에서 제일 가난하였으나 아이들속에서는 임금이였다. 그의 치명적인 약점인 외통눈도 그를 숫보게 하지 못하였다. 그는 주먹이 세고 무서운것을 몰랐으며 또한 아이치고는 보기 드물게 의협심도 있었다. 한번 성났다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때려눕히는 성미였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맞은 아이가 한번 고뿔이라도 들었다 하면 맨몸으로 꿀벌의 둥지를 털어 꿀을 가져다 주는 때도 있었다. 그때 벌한테 쏘여 하나뿐인 눈마저 없어질 정도로 퉁퉁 부었지만 그래도 앓는 아이네 집 토방에 슬그머니 꿀을 가져다 놓고 모르는체 돌아나오는 궁예를 보고 아이들은 어린 마음에도 궁예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였다. 어떤 아이는 외통눈이 궁예의 본을 따서 성한 한눈을 감고 다니기도 하였다. 이 모든것은 누가 시켜서 그런것도 아니고 배워주어서도 아니였다. 그때의 궁예는 제멋대로 세상 살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열살 잡혔을 때 그 재미는 사라지고말았다. 5월 5일이였다. 그날은 궁예의 생일날이였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왕을 위해 나름대로 음식들을 가지고 왔다. 그가운데 많이는 부모들 몰래 훔쳐낸것들이였다. 왜냐면 아이들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궁예와 휩쓸리는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궁예는 제일 못살고 보기 흉한 외통눈인데다가 궁예의 어머니라는 녀인은 행실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 녀자는 곧잘 거짓말을 하고 이따금 슬그머니 도적질을 하였다. 마을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궁예와 휩쓸리면 반드시 그 나쁜 영향을 받을것이라고 여기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째서 궁예를 따르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는 언제나 다른것이지만 궁예를 놓고는 그것이 더욱 심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궁예에게 쏠리는 마음은 아무리 해도 막을수 없었다. 심지어 궁예보다 나이가 우인 아이들도 궁예를 좋아했다. 단순히 궁예가
주먹이 세고 싸움을 잘해서만이 아니였다. 궁예는 힘으로 자기보다 우인 아이들을 굴복시키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럴듯한 례절과 의리로 그들을 감복시키기도 하였다. 궁예의 생일날에 너나할것없이 눈치껏 훔쳐온 음식들을 강가의 너럭바위우에 차려놓았을 때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였다. 흔한 쑥떡과 고사리나물로부터 대가리없는 통닭까지 있었다. 《궁예형, 생일을 축하해!》 하고 그중 눈치있는 아이가 말했을 때 궁예는 하나뿐인 눈에 이상한 재빛을 띄우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도리여 머리저었다. 《아니야… 됐어, 먹기나 하자. 너희들, 실컷 먹어!》 궁예는 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들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그중 먹음직한 음식들을 궁예앞에 따로 차려주었다. 궁예는 맛나게 음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그저 웃기만 하였다. 그는 전혀 자기앞에 놓인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하도 권하면 먹는체 해보일뿐이였다. 궁예는 그 음식을 먹지 않았다. 궁예는 그 음식을 어머니에게 가져다줄 생각을 한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몹시 사랑하였다. 아이들은 음식들을 먹고 강에서 미역을 감으며 재미나게 놀았다. 그날 저녁 궁예는 음식을 어머니앞에 드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뜻밖에 몹시 성냈다. 《너는 왜 동네사람들에게 나를 욕먹이니, 왜?》 하고 궁예의 엄마는 성이 나서 소리쳤다. 궁예는 어리둥절해졌다. 《네가 동네아이들을 시켜서 음식들을 훔쳐다가 잔치를 차렸다면서?》 그제야 궁예는 왜 어머니가 성났는지 알아차렸다. 《그건 또 누가 그래요? 사실 그런게 아니라…》 어머니는 궁예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했다. 《난 너때문에 속상해죽겠다. 동네에서 뭐라는지 아느냐? 내가 너를 시켜서 그렇게 하게 했단다, 널 시켜서…》 궁예는 외통눈을 끔벅이였다. 여느때도 어머니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것은 아니였지만 그때만은 참을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어머니는 저를 키워오면서 여태 그렇게도 저를 모르시나요? 내가 언제 친구들의걸 빼앗아먹은적이 있었어요? 오늘 이건 우리 친구들이 내 생일을 위해서 마련한거예요. 그게 뭐가 나빠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동네사람들의 말만 듣고 나를 욕하는군요. 나때문에 동네말을 듣는것이 그렇게도 싫어요?》 궁예의 한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나쁜 행실에 대해서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궁예의 어머니는 몹시 놀랐다. 그 말이 여느 어른들 찜쪄먹게 사리에 맞는것이다. 당황한 그 녀자는 황급히 얼버무렸다. 《난 다만 네가 나라님의 후손이고… 궁예, 넌…》 나라님 후손이라는 말이 어린 궁예를 더욱 분노케 했다. 《그만둬요!》 하고 궁예는 온몸에 힘을 주며 주먹을 내리쳤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예요.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들이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지 못해 멸시하는데 내가 언제까지 그따위 허튼소리를 믿겠어요? 난 바보가 아니예요. 난 그럴수 없어요.》 궁예는 목에 피줄을 돋구며 소리쳤다. 궁예의 어머니라는 녀자는 이 사실을 한두번만 이야기한것이 아니였다. 궁예는 신라임금의 피를 받은 사람이다. 궁예가 태여났을 때 집우에는 흰 서기가 비끼고 날 때부터 이발이 나와있었는데 이것을 본 사람이 장차 나라에 해를 입힐 애라 해서 그를 없애도록 임금에게 부추겼다. 그래서 성우에서 떨구는걸 유모였던 자기가 받다가 그만 잘못 받아 한눈을 찔렀다. 그래서 외눈이 되여버렸다. 그후 궁예를 안고 달아나 이제까지 키워왔다는것이다. 처음 궁예가 어릴 때 그 말을 듣고는 아주 으쓱해하였다. 그러나 차츰 의심스럽기도 하였다. 궁예가 정작 알아야 할걸 따져물으면 젖먹이던 종이였다는 어머니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다. 녀자는 궁예가 나는 어느 임금의 아들이냐 물으면 어느때는 신라 47대 헌안왕 의정이라고도 하고 어느때는 48대 경문왕 응렴의 아들이라고도 하였다. 또 궁예가 나는 얼마만큼 높은 성우에서 떨어졌고 어떻게 살았는가고
물었을 때에도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다. 의문스러운것은 이밖에도 많았다. 궁예는 둔한편이 아니였다. 그는 이 어머니라는 녀인이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궁예는 속으로만 그렇게 여길뿐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부터 궁예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한쪽눈은 아이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하다 할 정도로 번쩍거렸다. 어느날 궁예는 어머니라는 녀자에게 말했다. 《내가 신라임금의 아들이라는건 거짓말이예요. 다시는 그런 말 말아요. 남이 알았댔자 우리에게 좋을게 뭐예요. 그리고 나때문에 어머니가
모욕을 받는다면 나는 어머니와 헤여질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어머닐 미워하지는 않아요. 언제인가는 나를 키워준 그 은혜를 꼭 갚겠어요. 다만 지금은 어머니를 위해서도 그렇고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집을 나갈수밖에 없어요.》 궁예는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 《나는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곳을 찾아가보겠어요. 그리고 뜻을 이루겠어요.》 하고 대답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캐묻지 못했다. 궁예는 세상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것 그리고 알면 알수록 이 세상에 결코 매여있을수 없는 팔자라는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래서 보퉁이 하나 어깨에 지고 찾아온것이 세달사였다. 이제 십년이 지나 다시금 이 세달사라는 곳이 싫어지는건 왜서일가? 궁예는 자기가 주지나 지정 같은것들과는 도무지 타협되지 않는다는걸 슬프게 여겼다. 아무리 자비심을 가져보려고 해도 미운 불길만 날이 갈수록 타오르는걸 어찌한단 말인가. 다른건 몰라도 사람이 사람
싫으면 그건 어쩌지 못하는게다. 궁예는 벌써부터 이 세달사에 오래 머물러있을수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세상도 따라 어지러워진다. 그러니 또다시 나간다? 이것은 행인가, 불행인가? 궁예는 한숨을 쉬였다. 그는 품속에 있는 조갑지를 다시 만져보고 걸음을 다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