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11. 세달사 외눈깔스님의 밸통

 

선종 궁예는 상좌아이가 흔드는 바람에 깨여났다.

《뭐야, 이거?!》

짜증내며 한눈을 번쩍 뜬 선종은 상좌아이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응, 너냐?》

선종의 목소리는 언제 그랬더냐싶게 누그러졌다.

선종의 외통눈이 금강력사처럼 생긴 모습에 겁질렸던 상좌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종은 갑작 생각되여 품속을 더듬어보았다. 웅담은 그대로 있었다. 안도의 숨이 나왔다.

눈앞에는 어제 밤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선종은 깨져라고 사찰문을 두드렸다.

주지스님이 당황하여 달려나왔다.

《아니, 선종 아니냐?! 어찌된 일이냐, 이 밤중에?》

그러면서도 주지의 눈은 재빨리 선종의 등뒤 중태기에 쏠렸다. 중태기는 비여있었다.

《시주받으러 나간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나타나느냐?》

주지의 목소리는 못마땅한 어조였다. 밤중에 들어와서가 아니라 중태기가 비여있기때문에 그러는거라는걸 선종은 안다.

《그렇게 됐소이다, 주지님!》

선종은 주지를 밀쳐버리다싶이 하고 승방으로 걸어갔다.

술냄새가 풍겨왔다.

주지를 따라나왔던 스님들이 코를 가리며 몸을 피했다.

《이런 파계승같은 놈…》

참다못해 용력있어보이는 스님 하나가 주먹을 쳐들었다.

주지가 말렸다.

《놔두게…》

《아니, 저런…》

선종이 불문률을 란폭하게 어기고 술을 마시고 시주 또한 한톨없이 한밤중에 들어온것을 보고도 주지가 참는것은 남달리 불심이 깊거나 인정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선종은 주지로서도 어쩔수 없는 비구였다. 처음부터 그랬냐 하면 아니고 이즈음에 와서는 몹시 거슬리게 논다. 그렇다고 서뿔리 그를 다쳤다가 무슨 란동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곱게 놔주는것이다.

선종은 그대로 승방으로 와서 네활개를 펴고 쓰러져버렸다.

간밤의 일을 얼핏 생각하고난 선종은 하나뿐인 눈을 크게 뜨며 상좌아이에게 물었다.

《그래, 주지님이 나때문에 또 너를 못살게 굴었겠구나.》

《뭐야?》 하며 깨여날 때 소리와는 딴판으로 정이 푹 밴 소리다.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대변한다면 선종의 마음구석에 다정한 엄마의 정이 있었다.

아이는 눈을 끔벅이며 대답 못했다.

선종은 이 아이가 간밤에 늦게야 호롱불을 비치고 나오다가 자기와 어기친것을 생각했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제때에 나와보는것이 아이로서는 응당한 일인데 주지이하 여럿이 몸소 나와 선종을 맞이하도록 깨여나지 못했으니 선종에게 불쾌했던 그네들이 아이에게 분풀이했을것은 뻔한 일이다.

아이는 방문밖을 힐끔 보고나서 수군거렸다.

《선종스님! 지정스님이 주지님에게 선종스님을 내쫓자고 그랬사와요.》

선종은 외통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조심하시와요.》 하고 아이는 선종의 그 무서운 외통눈길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무섭긴 해도 그 누구보다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며 어떻게 하나 돌봐주군 하는 외통눈이 선종스님이였다.

《걱정말아.》

선종은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지정스님이 왔다.

《선종스님, 오늘부터는 밖에 나가지 말고 불문을 외우시랍니다.》

선종은 백마산쪽으로 가야겠기에 불끈했다.

《누가 그따위 소릴 해?》

억지로 비구들의 공손한 례로 말붙이던 지정의 눈길이 꼿꼿해졌다.

《주지님의 분부시다.》 하고 지정은 거친 선종의 말투에 발끈하여 대꾸했다.

《뭐, 주지? 오호라, 그러니 이제는 내가 동냥질해오지 않아도 배두드리며 살게 되였다 그거야?》

그게 무슨 소리인지 지정이 모를리 없다.

사실 세달사의 경리에 쓰이는 많은것이 선종의 동냥으로 마련되는것이다.

보살들에게서 시주를 받는것이 누워서 떡먹듯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보살들은 착실하게 부처님을 믿는 마음에서 시주를 있는껏 하지만 다 그런건 아니다. 시주하는데도 있는 놈일수록 더 깍쟁이 부리는 법이다. 어찌다 재산을 모은 놈일수록 더했다. 그러기에 시주를 받는것도 일종의 요령이였다. 말이 툭해 다르고 탁해 다르다고 어떻게 시주를 호소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시주의 량이 많아지기도 하고 적어지기도 하는것이다.

무슨 재주인지 모르지만 선종은 한번 동냥간다 하면 세달사가 서너달 지낼수 있게, 어떤 때는 한해 잘 지낼만큼 시주를 받아오군 하는것을 누구나 알고있었다. 지정 같은이는 그것이 선종의 왈짜로 되는게라고 지레짐작해서 사찰의 스님들에게 큰소리로 비난도 하지만 어떤 스님들은 아마 한쪽눈만 남은 외통눈이라서 불심보다 동정으로 시주하는 사람이 많을것이라고들 했다.

선종 본인은 아예 그런 말을 안하니 어찌된 일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좋다. 내 주지를 만날테다!》

선종은 다른 때라면 모르지만 품에 웅담을 가지고있기에 오늘은 어떻게 하나 나가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주지는 선종이 찾아가기 전에 문앞에 왔다.

《선종아! 무슨 일로 떠드느냐?》

외통눈은 잠시 주지를 바라보았다.

이게 지정을 보내놓고 내가 어찌나 몰래 뒤를 캔게 아니야? 괘씸하게 하는 눈치가 짙게 내비쳤다.

그러거나말거나 주지는 아닌보살이다. 주지가 그러는데는 아무리 결패있는 선종이라도 누그러든다. 한참 주지를 건너다보던 선종은 주저앉았다.

《주지님이 날더러 밖으로 나가지 말고 불문을 외우라 했소이까?》

《그래.》

《뭐라구요?!》

《선종아, 성내지 말아. 난 네가 그사이 불심이 얕아졌나 해서 그랬다. 네가 누구보다 시주를 많이 받아오군 하는거야 누군들 모르겠느냐. 하지만 그게 다 령험한 부처님의 덕이 아니겠냐. 그런데 요새 와서는 부처님께 드리는 봉양이 적어졌으니 네게서 불심이 떠나지 않나 해서 그랬던것이니라.》

말이야 그럴듯하지.

선종은 주지의 말을 비틀어 듣는다.

《좋소이다. 그럼 경문이나 외우면 불심이 깊어지고 동냥시주도 더 많이 들어오는가 보시오이다. 그래, 어느 경문을 외우라이까. 법화경? 아니면…》

주지는 선종이 또 누구보다 경문을 곧잘 외우고있다는것을 안다.

주지 자기보다 더 잘 외우고있는지 이미 안지 오랬다. 선종이 세달사에 입문한지 꼭 십년이 된다. 그 십년사이에 주지가 보건대 선종이란 이 외통눈은 무섭게 경문을 외워서 거의 통달하였다. 머리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한번 한다하면 무섭게 달라붙는 남다른 그 편집광때문인지 하여튼 선종의 경문외우기는 대단했다. 모르면서 삐죽거리는건 사랑스럽지만 알고 삐죽거리는건 미워하는 주지였다.

《됐다, 됐다.》

주지는 억지스런 미소를 띠며 념주를 굴렸다.

그제야 선종은 수그러졌다. 그는 주지와 지정의 찌프린 눈살을 뒤에 달고 밖으로 나섰다.

누구나 좋아라 나설수 없고 또 나선다고 해서 쉽사리 되지 않는 일을 구태여 자청하고 나서는 선종이다.

불깐 돼지같은 놈. 저걸 그저 이그… 저게 무슨 웅큼한 수를 쓰는게 아니냐? 외눈깔병신 저놈이… 범이나 콱 물어갔으면 좋겠다.

주지와 지정은 서로 눈길을 비벼대며 선종의 뒤통수를 바라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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