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10. 초생달은 미인의 눈섭이더냐, 농부의 낫날이더냐

 

검푸른 하늘에 초생달이 걸렸다. 별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었다. 파르르 떠는듯 한 별들은 웃는듯우는듯 초생달과 어울려 그곁에 꼭꼭 자리잡고있다. 초생달의 가녁이 밤이 갈수록 또렷해진다. 따라서 진땀을 짜내며 미치게 찌물쿠던 더위도 설펴지고 극성스럽게 앵앵거리던 모기들도 뜸해졌다. 처량하던 밤새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어느 풀덤불밑에서인지 외로운 풀벌레만 아직 못다 운 울음소리를 흐느끼듯 가냘프게 내고있었다.

초생달이 걸린 그아래 백련산이 잠들고있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떼무덤 껴안듯 무던히 많은 올망졸망한 봉우리들로 에워싸인 백련산이다. 백련산에는 세달사라는 사찰이 있다. 그 세달사로 가는 길은 고만고만한 등성이와 산굽이를 돌고돌아 오불꼬불하다.

어느 문인이 《그리하여 세달사는 천번 에도는 길이 합쳐지는 곳에 자리잡았다.》 하였다.

어둠과 나무가지들에 반쯤 가리워진 길을 따라 한사람이 걸어가고있었다.

희미한 달빛아래 등에 중태기를 지고 석장을 짚은 까까머리스님의 모습이 드러난다. 석장을 짚은걸 봐서는 로승일듯싶은데 그에 이상하게 대조될 정도로 걸음은 힘이 넘쳐있었다. 큰 키에 어깨가 별스럽게 넓어 어딘가 스님답지 않다. 상문에서 이르듯 삼라만상이 고요히 안식에 드는 때에 이렇듯 호젓한 밤길을 홀로 걷는것도 그래 또 그 거동이 나무아미타불로 세월을 보내는 수도승처럼 나약하지 않은것도 어딘가 수상하였다.

불문에 든 사람이라면 다 나약해보인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둑한 밤에 산길을 걷는 스님은 제세상을 만난듯 활개짓하며 걷는데 그의 입에서는 무슨 소리가 흘러나왔다.

 

수리 수리 마 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 수리 수수리 사바하

 

아마도 정구업진언일듯싶은데 그 어조는 마치도 속세의 타령과 같았다. 그러니까 념불을 마치 속세의 인간들처럼 아니, 분명 그런 곡조에 붙여 흥얼거리는것이다.

파계승?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뒤로는 어떤 짐승이 어슬렁거리며 따라왔다. 어둠에 두눈깔이 퍼르스름한 그놈은 여느 개라고 하기보다는 조금 커보이는데, 늑대? 늑대다.

스님은 벌써부터 그놈의 늑대가 자기를 따라오는것을 알았는지 이따금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흰 이발을 내보이며 웃군 하였다.

세상에 무서운건 범도 아니요, 늑대나 승냥이는 더욱 아니다. 사람, 사람이 제일 무서운거다.

스님은 념불을 속세의 곡조에 태워 흥얼거리며 생각하는것이였다.

밤바람이 불어왔다.

《어, 씨원하다.》 하고 스님은 노래끝에 소리지른다.

바람은 백련산서쪽 십리 밖에 있는 저 백마산쪽에서 불어왔다. 스님은 바로 백마산까지 가는 길이다. 그러나 오늘 밤으로는 안되겠다. 세달사에 몸담고있으니 어차피 거기에 들려야 한다.

바람에 파도소리가 실려오는듯싶었다. 그러니 세달사도 가까웠다.

스님은 걸으면서 옷섶에 깊숙이 손을 넣어 무엇인가를 찾았다. 손에 짚이는것은 조갑지를 싼 헝겊이다. 그 조갑지속에는 웅담이 있었다.

물건이 있음을 확인한 스님은 그길로 내처 백마산까지 가고싶었다. 그러나 배가 벌써 출출해나고 또 모진건 졸음이 밀려드는것이였다. 아무데서나 펄썩 누워 코를 골고싶었지만 품속에 든 그 조갑지때문에 마음을 놓을수 없다. 눈만 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인데 아무리 스님이라 해도 애써 얻은 웅담을 도적맞히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어느때나 한번 잠들었다 하면 세상이 깐뜰해지게 죽는 스님인지라 자기의 잠을 두려워하였다.

어떻게 하나 세달사까지 가자. 거기 가면 우선 마음놓고 잘수 있고 또 어차피 아침이 되면 깨여나 배를 채울수도 있는것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시주받으러 가는지, 동냥가는지 하여튼 그래서 떠난 세달사에 못 들어간지도 벌써 닷새째나 되였다. 주지스님이랑 어쩌구 있는지. 그들이 자기에 대해서 뒤소리를 해댔으리라는것은 뻔하고… 에라,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은지 모르겠다.

《꾸-욱- 쿠》

서늘한 바람을 맞아서인지 트림이 솟구쳤다. 구멍이란 구멍으로 온통 술냄새가 쏟아져나왔다.

《이게 다 고 좀보녀석때문이야… 나무아미타불.》

스님은 중얼거렸다.

아호비령쪽으로 올라가서 웅담을 구하자바람으로 돌아서 내려오던 길에 토끼골에 들린것은 꼬맹이를 만나보려고 해서였다. 키는 작달막하고 몸도 그리 실한편이 아닌 꼬맹이는 지금같은 세상에 살아가는데는 마깝지 않은 사람이였다. 사농공상이라고 나리님귀족들, 아니 무슨 성골, 진골하는따위를 내놓고는 그래도 버금간다는 농부라 농사는 천하지대본 어쩌구저쩌구하지만 그따위 소리는 다 개수작이고 하다못해 기운이 세다든지, 칼부림이라도 할줄 안다든지 뭐 그러루한것이 있어야겠는데 꼬맹이에게는 그것이 없다. 한마디로 녀석은 못난이다. 녀석에게 특이한것이 있다면 뜨물통이라고 해야 할지… 무엇이든 남보다 우쭐해질것이 있어야… 그런대로 속썩이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서 바보구석을 찾으려고 하는것이다. 계급에 따라, 재산과 힘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자기 잘못을 남에게 넘겨씌우려고 한다. 그래서 세상 살아가는 명분을 찾으려 하는것이다. 나보다 뭐든지 빠지는게 있으면 그런 놈 대하기가 편안하다는것이 은근한 세상의 처세요령이면 요령으로 되여버린 이즈음에 꼬맹이는 그 누구에게나 마음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였다. 이를테면 아무나 자기 잘못, 자기 약점을 그에게서 넉넉히 찾을수 있는것이다. 뜨물통처럼, 먹다버린걸 모아놓은 뜨물통처럼. 그러나 스님이 보건대 꼬맹이는 마치 부처님처럼 돼먹지 않은 놈팽이들의 수모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것이다. 녀석의 웃음이 바로 그걸 말해주고있었다.

사람은 저한테 없는걸 바라기마련이다. 스님이 꼬맹이를 이상하게 바라보는것은 온통 거짓말같은 부처님의 자비심이 그에게서 엿보였기때문이였다. 그리고 또 벌써 세달사에 몇번 그 꼬맹이가 스님을 만나러 왔는데 그때마다 공교롭게 만나지 못했기때문이다.

무슨 일이냐? 대충 알고있다. 스님더러 사람 하나 만나보라는것이다. 뭐하는 사람이냐? 삼캐는 사람이다. 어디 사냐? 영풍 면악산 어디서 산다더라.

까짓거 만나보지 뭐.

그래서 꼬맹이를 찾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그는 못 만나고 생각지도 않던 좀보를 만난것이다.

좀보는 토끼골의 짜한 왈짜였는데 그와는 벌써 몇년전에 알게 되였다. 언제인가 스님은 좀보와 맞섰다가 죽신하게 얻어맞았다.

다시 왔단 봐라, 아예 죽여치울테다.

좀보가 침을 퉤 뱉으며 씨- 했는데 그때에 좀보는 아마 네까짓게 이쯤 혼났으면 다시 얼씬 못할테지 한 모양이다.

웬걸, 스님은 이튿날 다시 나타났다.

《네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한 나는 너와 기어코 싸워 이길테다.》 하는 스님에게 좀보는 기가 질렸고 기가 질려 싸웠으니 이길수 없었다.

좀보는 왈짜의 법통이 있는 녀석이여서 한번 꺾이자 그대로 스님을 《형님》이라 불렀다. 좀보는 스님을 보자 마치 십년만에 만나기라도 하는듯 닭을 비튼다, 술을 낸다 야단이였다. 물론 술과 고기를 마다할 스님이 아니였다. 스님의 마음속에는 이미 파계한 원효스님이 깊숙이 자리잡고있었다.

에라, 저 좋아하는데 내가 삐죽거릴게 뭐냐 하고 마주앉은게 하루를 보냈다. 녀석만 아니라면 그달음으로 백마산까지 내닫는건데… 할수 없지.

젊은 스님은 문득 하늘의 초생달을 보며 멈추어섰다.

초생달은 미인의 눈섭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썩어빠진 사대부의 수작이다. 초생달이 무슨 미인의 눈섭이냐. 저게 낫날이다. 그리고 초생달은 바로 나야 나.

스님은 희미하게 웃었다.

천하는 이제 어두워졌다. 아니, 애초에 신라는 밤이였는지도 모른다. 화랑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도 신라는 밤이였다.

밤, 질투와 시기로 가득찬 밤, 그밤은 바로 녀인이다.

그밤에 초생달, 그것은 바로 세달사의 선종이라는 스님, 아니 궁예라고 하는 바로 나다!

궁예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늑대는 벌써 어디론가 사라졌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