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9. 날바다풍경

 

감탕 뿌연 당나라 산동반도의 등주항구를 떠난지도 이틀이 되였다.

날씨는 맑고 바다는 록색으로 푸르다.

배는 철바람 받은 돛을 만폭으로 펼치고 쏜살같이 내달렸다. 이대로라면 닷새안으로 영안성에 닿을수 있었다.

어린 왕건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바다풍경까지 좋아 신바람났다. 하긴 웬만해서는 뭍에 내리지 않던 도불과 함께 등주거리를 돌아치던 여운도 그득해서일것이다. 어린 건으로서는 붐비는 이국의 거리를 돌아보는것이 처음이여서 보는것마다 새로웠다. 사람도 물건도 놀라움을 자아냈다.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도불은 등주의 왕씨패거리들을 따로 만나야 할 일도 있었지만 건을 위해서 특별히 걸음했다. 어린 건이 비단옷을 펄럭이며 세상을 처음 보는듯 한 호기심에 들떠 걸어갈 때 도불은 베옷을 입고 그뒤를 따르는 종같았다.

물어보는것도 많았지만 하나하나 아는껏 대답해주었다. 도불은 구석구석 등주의 곳곳을 기웃거리는 건의 뒤를 따라갔다. 그래서 건은 실컷 등주거리를 싸다닐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 건이 부풀대로 부풀어오른것은 바로 그것때문이기도 할것이다.

건은 선실안팎을 들락날락하는가 하면 이물고물도 싸다니고 때로는 돛줄을 잡고 바다멀리를 우두커니 바라보기도 하였다.

《도불아저씨, 언제쯤이면 뭍이 보이나요?》

건은 키를 잡고있는 도불에게 물었다.

도불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무표정이다. 마치도 시끄러운 아이를 대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건은 개의치 않는다. 도불의 평시 표정이 늘 그러했다. 좋다나쁘다 도무지 나타내지 않는다. 말도 없다. 흔들리는 배우에 습관되여서인지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걷는다. 배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시킬 때도 말없이 손짓, 눈짓으로 하였다. 도불의 이런 태도를 건은 잘 안다. 마치 질그릇같은 무엇인가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실지 그렇지 않다는것을 잘 안다.

《집 떠난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어요.》

건은 바다멀리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말하고나서 힐끗 도불을 보았으나 역시 도불은 무표정하다.

《도련님, 엄마 젖이 그립소이까?》 하고 화식일보는 사람이 지나치며 놀려주었다.

《씨, 아니야! 지루해서그래.》

《허, 그런 말 하면 안되오이다, 배를 타고서는…》

화식맡은 사람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지나갔다.

건은 도불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저씨, 내가 키를 잡아보겠어요.》

도불은 건을 바라보다가 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나이에 비해 퍼그나 숙성한 건이다. 벌써 도불의 어깨에 닿는다.

도불은 턱짓으로 건에게 선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싫어요. 난 아저씨와 함께 있겠어요.》

도불의 입가에는 비웃음같은것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도불은 어린 건이 뭐니뭐니해도 배멀미를 하지 않는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어른들도(하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웬만한 배길에 멀미를 이겨내기가 어려운데 건은 천성이 배사람기질을 타고났는지 멀미를 세게 하지 않았다. 건의 아버지 왕륭이 무척 걱정 많겠다. 배타는 일이란 그리 랑만적인것이 못된다. 지금 어린 건이 평온한 바다를 보고 좋아하지만 폭풍이라도 만나면 배타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힘든가를 알게 될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게 더 좋다. 모르고 그만두는게 더 좋다. 사서 고생할게 뭐란 말인가.

생각에 잠겼던 도불은 흠칫했다.

그는 멀리 남쪽하늘가에 떠오르는 구름을 보았다. 한동안 구름을 보다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나쁜 구름같지는 않았다.

《후에 배길 좋을 때 잡아봐라. 지금은 안돼.》

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는 여전히 평온하다.

점심을 먹고나서 별로 일없는 선원들은 선실에 들어갔다.

《선장님, 이번 항행은 무사할것 같소이다.》

돛줄을 살피던 배사람이 도불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도불은 눈을 흘겼다.

방정떨지 말라, 배 대기 전에 룡왕님 화내실라…

바다에 어둠이 깃들었다.

별이 떠올랐다.

도불은 키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쉬려고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배길이 비교적 평안했다. 어려운 배길은 지나간셈이다. 도불은 술을 한사발 들이키고 잠을 청했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말똥말똥해졌다.

누가 욕질했다.

《네가 그럴줄 몰랐다. 어쩌자는거야?》

도불은 기분이 나빴다.

《여보게!》

누가 흔든다.

《왜 그래?》

도불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불을 흔든 곰보가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날씨가…》

《?!》

도불은 벌떡 일어나 갑판에 올랐다.

《언제부터 바람질하기 시작했어?》

《얼마 안됐소이다. 초경 좀 지나서…》

도불은 바람새를 가늠했다. 바람에 더운 김이 내뱄다. 다시 하늘을 보았다. 별들은 여전히 밝았으나 동쪽하늘가에 별들의 빛이 많지 못했다.

《사람들을 깨울가요?》

도불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바람이 차츰 세졌다.

《제길!》

도불은 아래입술을 질근히 깨물며 중얼거렸다.

건이 걱정이다. 제발 건이 배에 오른 이번만은 편안하길 바랬는데…

바람은 폭풍으로 변해갔다. 밤파도가 노호한다.

배사람들은 갑판우에서 자기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했다. 돛을 모조리 내리워 묶어놓았고 용충줄과 사디줄을 바싹 죄여놓았다.

폭풍은 밤이 깊어감에 따라 더해갔다. 바다는 파도끼리 부딪쳐 대혼란이다. 파도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덤벼들었다가는 아우성치며 부서져 물보라를 배에 들씌웠다. 바다는 역시 바다다. 심술이 사납다 할지. 아니, 그것은 바다를 모르는 사람의 푸념에 불과하다. 바다의 본성은 그런것이다. 때로는 아름답고 잔잔하지만 때로는 무섭고 사납다. 언제 어느때 좋고나쁜지 그건 바다나름이다.

간간이 시커먼 구름장에서 번개불이 쪼각쪼각 찢겨지고 거품을 뿜는 파도는 그칠새없이 닥쳐들었다.

파도는 점점 더 높아졌다. 배는 파도우에 난딱 올라앉았다가 순간에 까마득한 바다밑으로 곤두박질했다. 그때는 온몸이 섬찍해지고 이제는 영영 바다밑에 가라앉고마는가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다시 파도우에 쑥 올라서기도 하였다.

건은 어느새 잠에서 깨여나 이 무서운 파도를 보고있었다. 그는 도불의 팔소매를 꼭 잡고있었다.

배가 으르렁거리는 파도밑으로 곤두박질했다가 다시 솟구칠 때마다 건은 신음소리를 질렀다.

돛가름대들이 물속에 들고 이물은 거의 파도밑에 파묻히군 하였다. 이런 속에서 도불만이 웃고있었다. 그는 마치 이런 때가 즐거운듯 배며 파도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고있었는데 여전한것은 그의 비웃음이 담긴 표정이였다.

《노를 단단히 붙들어라! 힘을 내, 힘을!》

도불은 파도와 바람을 가늠하며 키를 조종하여 배가 파도를 가로지르게 하는데 힘을 썼다.

동아줄을 울리는 바람소리는 마치 미친놈의 울부짖음같았다. 돛대가 삐걱거리고 배의 어디선가 신음하는듯 한 소리가 울렸다.

《잘한다! 힘을 내라, 이 사람들아!》

도불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때때로 껄껄 웃었다.

건은 무서운 속에서도 그런 도불이 신기하여 파도를 들쓰면서도 홀린듯 바라보고있었다.

도불은 말없던 사람답지 않게 수다스러워지고 쾌활해진듯싶었다. 그는 마치 강가에서 배놀이하는 사람처럼 태연하였다.

파도는 여전히 날뛰고 배는 파도따라 까불었다.

《하하. 바다가 건을 알아보는구나. 그래, 무섭지?》

《무, 무서워요. 아저씨는 무섭지 않아요?》

《무섭다. 이때껏 배를 탔지만 오늘 같은건 처음이구나.》

《난 막 추워요.》

《그래, 겁이 나서 그러는거야. 이리 와!》

도불은 건을 꽉 그러안았다.

배는 더 세차게 요동쳤다.

《괜찮아, 건! 사내라면 이런 일을 겪어봐야 하는거야. 이제… 오늘을 꼭 되돌아볼 때가 있을게다. 살아간다면 그때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죽을가봐 겁나요!》

《뭐라구?》

《죽을가봐 겁난단 말이예요.》

《응, 누구나 그런거야. 그래도 이겨내야 해. 죽는건 별게 아니야. 룡궁으로 간다고 여기면 돼, 그렇지 건?》

《모르겠어요.》

《네가 그래도 말을 하는걸 보니 용타. 하하하.》

갑판맡은 배사람이 네발걸음으로 도불에게 다가왔다.

《선, 선장! 끝장이오이다. 이런…》

《술이나 마시고 선창에 뻗어있어!》

《난 내 눈으로 보았소이다. 배가 등주에서 떠…떠날 때 쥐새끼 한마리가 쪼, 쪼르르…》

《달아났다 그거야? 그럼 제사상을 차려. 죽은 다음에야 제사술을 먹을수 있나…》

《롱이 아니오이다.》

《그래 어찌자는거야, 자식! 바지에 똥쌌구나, 썩 사라져!》

《선장, 난…》

《사라져! 하백님이 우릴 보살핀다.》

그 사람은 흐느껴울며 선창으로 기여들어갔다.

《봐라! 저 사람은 오래동안 배를 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겁이 났구나. 겁이 나면 이런 때는 죽는다. 하지만 괜찮아. 우린 죽지 않아. 사람이 죽는건 파도때문이 아니고 마음이 약해서 그러는거야. 건!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면 돼. 뭘 요쯤한걸 가지고… 자 자, 힘을 내라! 키를 잡아봐라. 그렇지, 오른쪽으로… 그래, 이젠 왼쪽으로… 잘한다. 이런 때 일을 하지 않으면 겁이 더 생겨. 자, 잘한다!》

건은 도불에게 매달리다싶이 하고 키를 잡았다.

배는 이미 자기 항로를 벗어나고있었다. 그러나 그런것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은 파도에 배가 깨지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배는 남쪽으로 표류하였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